화성 56

일상_20241115

오후가 접어들어 잠시 오른 체육공원에도 겨울이 찾아왔다.여름에 무성하던 풀숲은 거뭇하게 변해서 앙상한 봉우리를 드러냈고, 가려져 있던 벤치는 봉긋 솟았다.같은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체육공원 뒷산에 조망이 트여 높은 하늘이 드러났다.몇 바퀴 돌다 머무르지 않고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갔는데 역시 인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길바닥에 두텁게 덮인 솔잎을 밟을 때마다 폭신폭신한 감각이 느껴졌다.반면에 짧지만 가파른 구간이라 오를 때와 달리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발을 디뎠다.체육공원 운동장에 거의 닿을 무렵 가파른 오르막길에 계단이 깔려 있었는데 계단 위에도 솔잎이 두텁게 쌓여 완연한 겨울이 도래했음을 알 수 있었다.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작은 고개의 흔적이 드러났다.여름엔 무성한 숲으로 인해 가려져 있었는데 겨..

냥이_20241103

녀석으로 인해 가족들이 모이면 대화가 늘었다.집 나간 가족들도, 집을 지키는 가족들도 녀석에 대한 대화에서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심지어 녀석을 마음을 얻기 위해 감정팔이까지 하는 가족도 있었다.녀석은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줄곧 간식과 놀이를 즐긴 가족들에게 마음을 줬고, 뒤늦게 녀석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시크한 녀석에게 원망보단 관심 동냥을 바랬다.오후에 오산 세교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동안 이제는 눈치가 빠른 녀석이 유독 눈앞에 따라다녔다.외출을 위해 옷을 주섬주섬 입는 동안 녀석은 멀리 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현관이 한눈에 보이는 의자에 앉아 묘한 자세로 쉬고 있었다.두 족발을 이렇게 하는 건 뭐냥?깨물어 달란 거냥?어엿한 성묘인데도 냥이들은 귀여움과 동시에 묘한 애수로..

일상_20241102

가을밤이 무르익어 동탄에 도착, 잠시도 뜸을 들이지 않고 곧장 야심한 산책을 나섰다.이 가을이 무심히 지나는 게 아니라 내가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있다는 자책이 들어 늦은 밤에도 길을 나섰는데 막상 거리에 나서자 길을 걷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아마도 나처럼 자연이 준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닐까?많은 단풍이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매혹적인 절정의 고운 빛깔이 남아 있었다.때마침 바람이 살랑이며 이파리를 흔들자 가로등 불빛도 매료되었는지 이파리에 맞춰 살랑이는 춤을 췄다.벤치에 앉아 지나는 바람이 주변을 돌아보란다.빛을 굴절시킨 단풍은 여전히 초록의 꿈을 놓치지 않은 채 바람의 선율에 맞춰 춤을 췄다.단풍의 이파리가 초록일지라도 가을의 성숙이 물들어 강렬한 초록이 아닌 봄의 그것처럼 고운 초록을 흩뿌렸고, ..

냥이_20241102

껌딱지가 떨어질 땐 퍼질러 자거나 햇살이 좋아 일광 소독을 할 때인데 특히나 가을볕이 좋던 주말에 집사들이 모여 녀석의 심리적 안정감이 극도에 달하면서 햇살이 쏟아지던 따스한 창가에서 일광 소독을 준비했다.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여겨질 무렵이 이맘때쯤이라 녀석 또한 창을 열어 시원한 바람 속에서 그 따스함을 만끽하며 그루밍 중이었다.집사들이 쇼파에 앉아 있나 꼼꼼히 훑어본 뒤 녀석은 그대로 퍼질러 누웠다.어디든 누우면 제 잠자리가 되고, 쉼터가 되었다.한참을 일광 소독한 뒤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해 쇼파에 드러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집사들은 평소처럼 생활을 해도 녀석은 여간해서 잠을 떨치지 않았다.그만큼 제 영역이라 여긴 집 안에서 낙천적으로 변했다.녀석이 자는 걸 그대로 두고 집을 나와 오산으로 ..

가을 일상_20241019

거의 한 달에 한 번 마빡 잡초 뽑는 날.워낙 활동하기 좋은 가을이라 예약한 시각보다 훨씬 앞당겨 느긋하게 걸어 헤어샾에 도착했다.무심하게도 모처럼 떠난 여정 중엔 연일 청명하던 날이 미세먼지로 안타깝게 하더니 다녀온 뒤로 연일 청명했다.멀리 칠보산, 건달산도 선명하게 보이던 날이라 3km 넘는 거리를 걸어 단골 헤어샾으로 출발.화성 전체가 완연한 가을이 내려앉자 온통 축제 분위기로 뒤덮였다.동탄에서 웬만한 아파트 단지나 밀집 지역의 공원엔 축제와 장터가 열려 사람이 북적거리며 활기가 넘쳤는데 2동탄으로 넘어오자 그 분위기가 한층 더 고조되어 여울공원을 걷던 중에도 멀리 축제 소리가 요란했다.부쩍 짧아진 낮이 아까워 얼른 머리 잡초를 뽑고 밖을 나와 돌아가는 길에 요란한 축제의 장터로 스며들자.여울공원은..

동탄에서의 가을 밤 산책_20241008

그야말로 생활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낮엔 활동하기에 있어 조금 덥긴 했지만, 해가 지고 밤이 깊어갈수록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마음에 쏙 들어맞는 날씨와 기온이었다.조금 빠르게 걷는다면 기분 좋은 범위 안에서 체온이 올라가며 거북하지 않은 선에서 등판에 살포시 땀의 흔적이 느껴졌고, 가만히 있으면 전형적인 가을의 청량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앉은 자리에서 사이다 한 잔을 들이킨 기분이었다.원래 그리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고 밤 마실 산책을 나섰지만 인덕원 일도 잘 마무리된 여운이 더해져 살짝 기분이 중력을 이긴 상태라 동탄여울공원을 거쳐 반석산을 우회하여 노작문학관을 지나 무장애길을 타고 복합문화센터까지 꽤 많은 걸음수를 채웠다.그래도 체력적인 버거움을 전혀 눈치 못 챈 건 역시나 가을의 힘..

가을 전주곡, 동탄 반석산_20241006

전날 내린 비와 아직 남은 구름이 묘한 가을 정취를 연출했고, 그로 인해 가을은 한층 익어 그립던 제 빛깔을 되찾아 세상을 활보했다.반석산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로 향하며 매년 가을마다 습관처럼 육교에 서서 길을 따라 번지는 가을에 중독되어 버렸다.이 나무의 이름도 모른 채 십여 년 이상 가을마다 나무 사잇길로 지나다녔다.대왕참나무?이 나무들도 가을이 깊어질 때면 붉게 물들며 지나는 사람들을 반기겠지?반석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초입에 묘한 기시감이 들어 고개를 돌리자 냥이 녀석이 쳐다보고 있었다.집사라고 꽁꽁 숨어 있는 녀석을 단번에 알아보다니.한동안 쳐다보던 녀석이 내가 아는 척을 하자 두 발짝 멀어졌다.녀석에게 있어 내가 공포의 대상이라 얼른 자리를 벗어나 언제나처럼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과 보폭을 ..

냥이_20241005

녀석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기나긴 여행을 다녀온 마냥 하루 죙일 퍼질러 잤다.집사의 괜한 욕심으로 녀석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바엔 차라리 원래처럼 외출할 땐 집에 두고 CCTV를 활용해야 스것다.낮에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쏟아지자 녀석은 볕이 좋은 곳에서 연신 잠을 잤다.전날까지 극도로 동공 지진을 보였기 땜시롱 많이 피곤했겠지?오후가 되어서야 녀석은 일상으로 돌아왔는지 사람한테 안겨서 졸다가 대화도 엿듣다 하며 원래의 똥꼬발랄한 모습을 보였다.녀석은 내려올 생각이 없었던지 자는 척만 했고 잠에 빠져든 건 아니었다.손을 갖다대자 슴가를 스담해 달라고 팔을 벌려 슴가를 보여줬다.손을 떼자 '왜 스담 더 안하냥?'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뇬석아, 자는 척 하지 말고 내려와!오후 해가 많이 기울 무렵 반석..

일상_20240922

한 주가 지나지 않았는데 한가위 연휴에 그리도 사람을 괴롭히던 폭염은 순식간에 물러나고 그토록 바라던 전형적인 가을이 다가왔다.전날 이케아에 갔다 기운이 쏙 뽑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뒤늦게 산책을 나서 맨발 걷기의 메카가 된 반석산으로 향했고, 겁나 쾌적한 날씨 속에서 만 보를 훌쩍 넘겨도 피로감을 느낄 수 없었던 천국에 있었다.폭염이 불과 며칠 전이라 갑자기 북녘에서 밀려온 서늘한 바람이 밤에는 상대적으로 춥게 느껴졌건만 활동을 시작하자 최적의 기온으로 맞춰졌고, 게다가 적당한 구름이 햇살을 가려 외출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가을하늘은 언제 봐도 감동이란 단어를 능가할 그 어떤 표현도 생각나지 않았다.그만큼 눈을 뜨고 활동하는 자체로 행복의 달달함이 느껴질 정도였다.반석산에 오르자 금요일 밤부터 전날 ..

무심한 한가위 폭염과 가을 하늘_20240917

완연한 가을로 넘어온 한가위에도 여름의 위력적인 폭염은 여전했고, 에어컨은 연일 휴식도 모른 채 끊임없이 돌아갔다.베란다 창 너머 하늘빛은 완연한 가을이건만 더위는 지칠 줄 모르고 그 세상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더위에 주눅 들었고, 오죽했으면 고양이도 덥다고 에어컨 앞에서 애정 공세를 폈다.그러다가도 창밖 청명한 하늘빛에 이끌리듯 가족들과 뭉치를 차에 태워 가까운 노작 호수공원으로 갔는데 혈기왕성한 뭉치만 신났다.하늘빛은 이렇게 고울 수 있을까?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의 선들이 선명하다 못해 마치 눈앞에 바짝 다가온 것처럼 입체감이 풍부했다.더위와 한가위가 겹친 날이라 너른 공원은 텅 비어 강아지들이 뛰어놀기 안성맞춤이었다.사진에 뜨거운 더위가 표현되지 않아 마치 서늘한 가을 아래 메타세쿼이아가 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