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생활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낮엔 활동하기에 있어 조금 덥긴 했지만, 해가 지고 밤이 깊어갈수록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마음에 쏙 들어맞는 날씨와 기온이었다.
조금 빠르게 걷는다면 기분 좋은 범위 안에서 체온이 올라가며 거북하지 않은 선에서 등판에 살포시 땀의 흔적이 느껴졌고, 가만히 있으면 전형적인 가을의 청량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앉은 자리에서 사이다 한 잔을 들이킨 기분이었다.
원래 그리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고 밤 마실 산책을 나섰지만 인덕원 일도 잘 마무리된 여운이 더해져 살짝 기분이 중력을 이긴 상태라 동탄여울공원을 거쳐 반석산을 우회하여 노작문학관을 지나 무장애길을 타고 복합문화센터까지 꽤 많은 걸음수를 채웠다.
그래도 체력적인 버거움을 전혀 눈치 못 챈 건 역시나 가을의 힘 아니겠나.
저녁 식사로 과식한 여파도 있어 19시를 조금 넘어 습관처럼 다니던 복합문화센터 야외음악당으로 걷다 평소 걷는 구간이 아쉬울까 싶어 노작마을 방향으로 노선을 급선회했는데 그러다 자석에 끌린 듯 여울공원으로 향했고, 오산천 산책로 옆 작은 공간에 밝은 가로등 불빛에 조잘거리는 한 무리 꽃밭에 첫걸음을 멈췄다.
밝은 블루라이트를 온화하게 굴절시키는 꽃무리의 초록과 빨강이 유난히 이쁜 조화를 이뤘다.
바람이 거의 없던 순간이라 조화가 아니었나 착각도 들었는데 어떤 방법으로도 인공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빛과 질감이 시각으로 전달될 정도였다.
나루교를 지나 여울공원에 접어들자 꽤 많은 사람들이 밤 산책에 나선 걸 알 수 있었다.
걷던 무리에서 살짝 벗어나 인공습지에 접어들자 습지 화석처럼 남아 덤덤히 졸고 있는 생명들과 달리 공기는 가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인공습지 가장자리 데크길엔 작별만 남겨둔 수국도 불빛처럼 환하게 핀 채 시들고 있었는데 어찌 보면 올해 마지막 불꽃같았다.
인공습지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산책로에 합류하기 전, 차가운 불빛을 받아 따스한 정감을 방출하는 벤치의 풍경에 살짝 앉는 시늉만 했다.
다리에 휴식을 주고 싶었지만 더 많은 시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휴식은 사치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공원이 조성되고 한참 뒤에 만들어진 원형과 소용돌이가 절묘하게 조합된 작가정원은 야외 공연장이자 잔디광장 같은 외형에 작은 연못이 있고, 길은 소용돌이처럼 점점 내부로 향했다.
주변 고층 아파트와 어우러져 위에서 본다면 지상에서 보는 것과 다른 형상을 보이겠지?
작가정원 가장자리 길을 따라 걸으며 빛도, 바람도 잦아든 작가정원의 정제된 정취에 은은하게 맴도는 가을 향기에 심취했다.
원래 느티나무 행님 찾아뵐 생각이었는데 현재 공사 중 펜스가 쳐져 있어 거기로 들어가지 못하고 옆 곰돌이 가족들의 파티만 참석했다.
작가정원은 이렇게 움푹 들어간 넓고 편평한 잔디광장으로 타원형을 띄고 있지만 선의 끝지점이 없는 완벽한 원형이 아닌 끝과 다른 끝이 존재하는 원형이었다.
작가정원은 말 그대로 작가적 상상이 결합되어 천편일률적인 둥그런 모양이 아닌 묘하게 원과 곡선의 만남이었다.
음악분수와 폭포를 물에 앉아 볼 수 있는 계단식 관중석은 평소에도 물이 찰랑찰랑 흐르는데 밤이 찾아와 잠자고 있던 등불을 깨워 은은하게 무지갯빛이 반짝였다.
아쉽지만 느티나무 행님은 뵙지 못하고 길을 걸어 노작문학관 옆을 지나 반석산으로 향하는 무장애길로 향했다.
동탄2에 비해 화려하거나 밝지 않은 대신 잔잔한 빛이 파동 치는 동탄1 노작문학관 옆엔 계단식 지형에 벤치가 가로등 아래 틈틈이 놓여져 있었는데 가을 밤산책에 나선 사람들이 비교적 많았고, 각자 자리를 틀어 희미한 불빛처럼 소곤소곤 이야기 꽃을 피우거나 음악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렇게 까마득했던 가을이 찾아왔고, 세상은 가을 불빛을 밝히며 절정의 시간으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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