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일상_20240922

사려울 2024. 9. 25. 22:18

한 주가 지나지 않았는데 한가위 연휴에 그리도 사람을 괴롭히던 폭염은 순식간에 물러나고 그토록 바라던 전형적인 가을이 다가왔다.

전날 이케아에 갔다 기운이 쏙 뽑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뒤늦게 산책을 나서 맨발 걷기의 메카가 된 반석산으로 향했고, 겁나 쾌적한 날씨 속에서 만 보를 훌쩍 넘겨도 피로감을 느낄 수 없었던 천국에 있었다.

폭염이 불과 며칠 전이라 갑자기 북녘에서 밀려온 서늘한 바람이 밤에는 상대적으로 춥게 느껴졌건만 활동을 시작하자 최적의 기온으로 맞춰졌고, 게다가 적당한 구름이 햇살을 가려 외출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가을하늘은 언제 봐도 감동이란 단어를 능가할 그 어떤 표현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큼 눈을 뜨고 활동하는 자체로 행복의 달달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반석산에 오르자 금요일 밤부터 전날 낮까지 내린 호우의 영향으로 맨발 산책로는 진흙탕이었고, 거기를 벗어나 노작문학관 방면으로 걷자 뽀송뽀송한 맨땅이 드러났다.

뭔가 급히 도망가는 녀석이 보여 고개를 숙여 바라봤는데 땅강아지였다.

어릴 적 흔하디 흔해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괴롭히던 땅강아지가 반석산에 살고 있었다니!

이런 정겨우면서 그리운 생명의 휴식을 방해했다는 미안함에 녀석이 길가 풀숲으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살펴봤다.

달걀 모양의 머리는 땅속의 터널을 드나들기 좋게 생겼다. 앞다리가 두더지처럼 짧고 납작하여 굴을 파기에 알맞고 물에서 헤엄도 칠 수 있다. 팔 힘도 굉장한 편인데 손가락으로 가볍게 잡으면 팔 힘으로 손가락을 밀어낸다. 힘을 오래 주지는 못 해 얼마 안 가 다시 오므라들긴 하지만 이 정도면 대단한 편. 대체로 땅굴생활을 하지만 땅 위로 나가기도 하며 등뒤에 있는 넓은 뒷날개로 불빛을 찾아 날아다니기도 한다. 청각기관이 없고 암컷의 산란관은 퇴화되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출처] 땅강아지_나무위키
 

땅강아지

메뚜기목 땅강아지과의 곤충 이다. 화석상의 최초는 20세기 중반 프랑스 남서부 샤랑트마리팀 의 백악기

namu.wiki

발목을 지나 종아리 아래까지 깊은 진흙탕을 밟았지만 세족장이 있어 시원하게 흙을 씻어내자 충분히 더 걸을 수 있었는데 늦게 나오는 바람에 시간이 아쉽긴 했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아이가 진흙탕에서 넘어졌는지 정강이 쪽에 긁히고 까인 흔적에 온통 흙으로 도배되어 조금 씻어주자 연신 고맙단다.

아이 아빠는 무심히 지켜보는 바람에 내가 조금씩 씻어준 건데 아이가 그리 고마워할 줄이야.

도리어 아이 아빠는 자신이 하겠다며 조금 퉁명스러웠다.

그래도 큰 상처는 없어 다행이지.

집으로 돌아올 무렵 서녘이 무척 인상 깊었다.

적당히 뒤덮인 구름떼와 그 구름의 균열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얼마 남지 않은 빛, 그리고 서녘 마루와 구름 너머를 붉게 적신 석양이 화려한 오렌지빛 노을을 잠시 만들어냈다.

10분 정도 지났는데 벌써 노을은 구름 저편으로 사라졌고, 가을밤은 소리소문 없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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