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57

일상_20240531

소나기처럼 내리는 빛내림, 가끔 볼 수 있는 야생화의 만개, 밤을 잊고 호수변에 무수히 날아다니는 곤충을 만나며, 새삼 여름을 실감했다.비록 일교차가 커서 아침저녁엔 바람이 차긴 한데 이게 바로 간과했던 행복이었다.한여름이면 지나쳤던 시원한 바람을 그리워하고, 이내 잊어버리며, 다른 계절을 맞이하는 반복적인 일상에 우린 얼마나 많은 소중하고 고마웠던 걸 잊었던가.지난 뒤에야 깨닫게 되며 '성숙'이 다져지겠지만, '후회'의 후유증도 겪게 된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퇴근하여 귀가길에 만난 바위취.조금만 허리 굽혀 고개 숙이면 보이는 것을.현관을 열자 한창 그루밍하던 녀석이 하던 걸 멈췄고, 이렇게 서로 빤히 눈을 맞혔다.콧등과 주뎅이 부근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저 털.얼마 지나지 않아 미..

오산 오색시장까지 도보 여행_20240512

오산에서 동탄까지 왕복 2만보를 간신히 채웠음에도 보이는 봄의 전경들은 단조롭지 않고 이채로웠다.어느 하나 의식하지 않고 약속처럼 다가와 각양의 미모를 선보이는 봄꽃들, 그리고 들판에 홍수처럼 넘치는 봄기운에 뒤섞여 작은 소용돌이를 이루는 수많은 생명들의 조화가 어느 하나 낯설지 않으면서 어색하거나 무미건조하지 않고 제 역할에 충실했다.여기에서 획 하나 변형시켜 여름이라 해도 그 또한 어색하지 않은, 자연은 모서리 하나 없는 유연한 곡선이며, 끊김 없는 연속적인 이음에 틈틈이 향기를 숨겼다.거리 곳곳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오는 화려한 꽃들로 치장되어 어느새 보는 사이 사진까지 찍게 되었다.인간의 욕망에 내재된 소유의 욕구, 그래서 이 아릿다움을 갈취하게 되면 범법자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폰카 속..

비 내리는 날, 아까시 향 가득한 산책_20240506

올해 마지막 향기 불꽃을 태우는 아카시는 강한 빗줄기에 진화되고, 그렇게 작별의 인사도 없이 떠나버렸다.유난히 짙은 향을 명징한 기억으로 남겼지만, 유별나게 강한 봄비 속에 사라져가는 많은 봄의 흔적들은 그렇게 말끔히 잊혀져 버렸다.동탄에서 오산까지, 다시 오산에서 동탄으로 빗속을 걸으며, 아카시 향수를 맞는 행복, 괜히 청승이 아닌 삶에서 결핍에 대한 고찰이라 하겠다.봄비치곤 꽤 많은 양이 지속적으로 내렸지만 큰 우산 하나 들고 밖으로 나와 오산천변을 따라 오산으로 걸어갔다.자전거를 이용해 뻔질나게 다니긴 했어도 걸어서 오산까지는 처음이었는데 지난번처럼 아까시 향에 취해 처음으로 도전해봤다.특히 사랑밭 재활원 부근 수변엔 아까시나무가 많아 곧장 거기로 향했는데 굵은 빗줄기에 꽤 많은 꽃이 떨어졌다.금반..

일상_20240421

불현듯 찾아왔다 말없이 가버린 그 계절, 그 시절.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소중했던 순간, 시간이었다.또한 그래서 기다리고, 가슴 열어 맞이한다. 오산천을 비롯하여 아직은 조성 중인 자라뫼공원에 전날 내린 비의 흔적에 휴일 여유가 내려앉았다.다시 오산천을 넘어 정갈한 가로수길을 걸었다.신록과 소생의 끌림은 비교적 강했기 때문이었다.걷는 사이 봄꽃에 마음이 휩쓸렸다.요즘 서울 중구나 동탄은 인도가 변신 중이었다.너른 인도 한가운데 소소한 정원을 조성하여 계절 색이 짙은 생명들이 뿌리를 내렸고, 바로 옆에서 걸음을 응원했다.수국이 벌써 핀 건가?아직 봄이란 말이야, 벌써 여름 생명이 얼굴을 내밀면 안 되지!정처 없이 걷다 오산 외삼미 저수지까지 걸었다.비와 구름이 뒤섞인 날씨도 때에 따라서 반가웠다.들판 민..

대중적이고 친근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동탄 보나카바_20240414

김제에서 동탄까지 날아온 동상, 그래서 뭔가 특별한 식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입맛에 후회는 없어야 되겠는데 녀석의 입맛을 잘 알기 때문에 주저 없이 보나카바로 예약을 했다.서울에서 태어나 어릴 적 원주로, 학교는 충주로, 회사는 오산으로, 다시 회사가 전부 이전하면서 김제로 기구한 삶(?)을 사는 녀석이지만 워낙 해외 출장이 잦고, 회사 내 입지가 괜찮아 심적 안정이 느껴졌다.근데 거구인데도 불구하고 가리는 식재료는 어찌나 많은지.예전에 익산 일해옥-여기 완죤 내 스탈-에 데려갔다 쥔장의 한 마디에 삐칠 정도로 마음도 여리지만(?), 가리는 식재료는 무궁무진한데 특히 범용으로 사용되는 계란과 파는 거부했다.일해옥에서도 계란과 파를 빼고 달라는 말에 쥔장께서 "뭐든 다 잘 먹게 생겼는디 워째 가리는 게..

동탄과 오산 사이 친근한 야산, 필봉산_20240225

필봉산은 오산시 내삼 1동의 마을 뒤(동쪽) 있는 산으로 이 지명의 기록상 유래는 조선시대로 전해지는데, 조선의 22대 임금의 정조 임금(1776-1800)께서 1789년(정조 13년)에 자신의 부친인 장현세자(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기며 현륭원을 만들고 그 후, 배다리를 만들어 한강을 건너면서 10여 차례나 행차한 기록이 나오는데, 필봉산이란 지명을 갖게 된 것도 이때쯤으로 보인다.필봉산은 해발 144.2m 정도의 산으로 정조가 화산에 나섰다가 화남방의 오미 즉, 오산까지 행차하시어 필봉산을 보시고는 산은 낮지만 일대의 산이 없어 멀리서 바라보니 "붓의 끝" 모양과 같아 필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전해진다.[출처] 필봉산 정상 소개 화성과 오산 사이에 길게 뻗은 필봉산은 봄꽃들의 잔치가 성대한 곳으로..

비 그친 여름 녹음, 독산성_20200801

바삐 달려온 폭우가 숨 고르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사이 동탄과 인접한 독산성을 올라 마음의 때를 훌훌 털어버린다. 연일 사위를 둘러싸던 비구름이 잠시 하늘로 오르자 세상도 모습을 배시시 드러내며 밝은 미소의 신록도 겸연 쩍어 서서히 고개 든다. 문명이 졸고 있는지 지나는 바람 소리에 치찰음은 들리지 않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텁텁함도 없다. 아담한 뒤뜰에서 철 없이 뛰어노는 냥이 가족의 발랄함에 문득 부러운 시선이 묻어난 걸 보면 무척이나 빈정대는 시선에 이골이 났나 보다. 산은 아무 말이 없다지만 때론 우매한 생각에 훈계와도 같은 일갈은 있다. 둘이 만나 하나의 안락한 접점을 이뤘다. 나풀거리는 개망초 군락 너머 세상은 그리 간결하지 않다. 행복한 가족의 품, 이 행복 오래 누리길. 무거운 정적의 보적사에..

도심의 작은 쉼터, 독산성_20200717

억겁 동안 세속을 향해 굽어 보는 나지막한 산에 둥지를 틀고 앉아 잠시 기댄 문명의 한 자락. 그 담벼락에 서서 흐르는 공기를 뺨으로 더듬어 본다. 마치 하나의 형제처럼 산성과 사찰은 나약한 의지를 위로하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많은 바램들을 몽롱한 목탁 소리로 바람처럼 흩날린다. 많은 시간을 버텨 왔지만 앞으로 맞이해야 할 시간의 파고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두려움처럼 막연한 시련과 희열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의지의 등불이 꺼지지 않기를, 또한 자연의 포용이 변치 않기를 기대하는 포석 같다. 석양의 볕이 꺼지며 하나둘 밝혀지는 문명의 오색찬연한 등불이 특히나 아름다운 저녁이다. 도심에 둘러 쌓인 작은 녹지치곤 꽤나 멋지다. 사람들의 발걸음만큼이나 분주한 까치가 알싸한 데이트에 여념 없다. 독산성에 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