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132

구슬픈 고양이 울음소리, 소백산 휴양림_20210909

어느 순간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낮이 부쩍 짧아져 서둘러 하루 해가 등을 돌려 사라져간 잔해만 보인다. 시나브로 찾아든 가을이 문턱을 넘는 이 시기, 문득 뜨거운 노을처럼 가슴은 따스해지고, 무겁던 시야는 초롱이 불 밝힌다. 초저녁에 단양 소재 소백산 휴양림으로 출발, 단양에 들러 식재료를 마련한 사이 어느새 밤이 내려 도착했다. 평일치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여긴 산중 다른 세상 같다. 남한강이 발치에 내려다 보이는 공원이기도 하고 숲속이기도 하다. 칠흑 같은 암흑 속을 헤치며 잠시 걷는 동안 발치에 소리 없이 지나는 남한강을 마주했다. 휴양림 내 타워전망대를 따라 무심히 쳐진 거미줄을 뚫고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전망대에 서서 사방을 찬찬히 살피는데 정적 속에서 평온의 기운이 자욱했다. 잡고 ..

무엇보다 동해 조망, 탑스텐호텔_20210630

피서철이 오기 전 동해는 폭풍전야 같다. 삼척을 오게 만든 무릉계곡은 폭우로 인해 다음을 기약하고 동해안을 따라 한적한 여행을 선택한 이번 여행은 소기의 목적인 한적한 정취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짧지만 편안한 휴식을 취해 감사한 여행이기도 하다. 옥계 방면 해안을 따라 일렬로 정갈하게 늘어선 불빛이 마치 바다에 떠있는 일련의 어선 같다. 썬크루즈처럼 어떤 객실에서도 바다가 보이는, 비교적 오래된 숙소지만 도리어 통짜의 시원스런 객실은 널찍해서 좋다. 게다가 회사 복지 프로그램 덕을 톡톡히 본다. 정동진의 유명인싸, 썬크루즈가 숙소 창 너머에 훤히 보였다. 금진항 따라 멋진 해안도로가 있음에도 거기를 제대로 여행하지 못해 남은 아쉬움은 다음 기회에.

반짝이며 슬며시 머문 빗방울_20210615

밤새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둠도 잠든다. 함께 저녁을 먹는 동안 빗소리가 마음껏 들어올 수 있도록 큰 창을 열어 젖혀 고기가 굽히는 소리와 뒤섞인다. 늦은 밤에는 비를 맞으며 스피커에서 기어 나오는 음악을 뒤섞는데 마치 깊은 산중 음악회가 열린 착각이 든다. 심지어 비는 소리만 깨우는 게 아니라 허공에 흩날리는 빛도 깨운다. 아슬하게 비를 피하는 녀석을 잡아서 든든한 자리로 옮기고 녀석 또한 빗소리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 흔하던 것들이 그리 귀하게 된 세상을 살며 함께 이 땅, 이 시간에 살아야 될 소중한 생명이다. 빗방울이 맺혀 보석이 되었다. 그저 비일 뿐인데 존귀한 보석에 길들여진 인간이 왜곡하는 장면이겠다. 이튿날 비는 그쳤지만 밤새 내린 비가 여전히 세상에 남아 꿈과 알을 ..

오도산 가는 날_20210427

여행의 출발과 함께 늦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성묘를 꽃피는 춘삼월 끝물에서야 감행했다. 이미 세찬 바람에 잔뜩 실려 세상을 떠도는 송화가루가 자욱하지만 도심을 벗어나 뺨을 간지럽히는 숲 속 향기는 간절한 휴식의 내음과 흡사했다. 매번 방문 때마다 같은 자리에 서서 정독하는 계절의 정취를 보는 재미는 마치 애써 찾는 파랑새의 자취를 쫓는 것 마냥 졸립던 눈마저 초롱해진다. 최종 목적지인 오도산 휴양림으로 출발하여 고령을 지나는 길에 식사를 해결하고 동네를 둘러보던 중 시간의 흔적이 역력한 한옥에 발걸음이 멈췄다. 너른 마당 본채와 문간 사랑채는 고전적인 한옥을 그대로 살렸고, 옆채는 현대식의 단촐한 현대식인데 나무를 잘라 인간이 편의에 따라 만든 형태를 보면 꽤 오래전 부터 지붕을 받들어 나무 특유의 무늬와..

그래서 올 수 밖에 없는 파크로쉬_20210302

다음 숙소로 옮겨 봇짐을 풀고 리조트 주변을 산책하며 그리 멀지는 않지만 운행의 걸림돌이자 멋진 동반자 였던 눈길에서의 긴장 또한 훌훌 털어낸다. 적어도 1년에 한두 번 오는 사이 속속들이 알게 된 덕분에 이제는 발길이 뒤섞이지 않고 익숙하게 찾아낸다. 창가에 놓인 자리에 앉아 고압적인 풍채의 가리왕산을 보는 게 이곳의 뷰포인트로 생각 이상으로 규모가 거대한 데다 봉우리는 아니지만 그에 걸맞은 고도가 한눈에 보여 누구든 매료될 수밖에 없다. 또한 가리왕산 반대편 백석봉은 가리왕산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나 특이하면서 독특한 산줄기를 보노라면 그 매력의 우열을 가리는 건 의미가 없고, 다만 미려한 산결을 어느새 시선으로 붙잡아 미로를 그리듯 눈길을 뗄 수 없다. 한바탕 퍼붓다 그친 눈보라는 대기의 잡티를 모..

불빛 가득한 야경, 사북 둘레길_20210227

과거의 모습을 탈피하고자 거칠게 몸부림치는 사북의 밤은 여느 지방의 마을처럼 일찍 찾아와 깊은 잠에 침묵 중이다. 따스한 남쪽 나라와 달리 여전히 겨울 기운이 웅크리고 있어 끼고 있는 마스크 내부엔 어느새 이슬이 맺혀 인중을 간지럽히며 먼 길 찾아온 수고에 구수한 사투리처럼 입술 촉촉한 대화를 이어간다. 어두운 밤에 어디를 갈 엄두는 나지 않아 지난번 봐두었던 둘레길을 밟으며 오랜만에 찾아온, 오랜 공백을 깨듯 연탄 내음이 코끝 살랑대는 밤공기를 폐부로 맞는다. 여전히 사북의 밤은 일찍 찾아오지만, 대기를 가득채우는 빛잔치는 기세등등하다. 퇴근 뒤 열심히 달려 사북에 도착, 복지 프로그램으로 미리 예약한 메이힐즈에 짐을 풀고 바로 사북 지장천 둘레길로 이동했다. 지나는 길에 지장천을 중심으로 잘 다듬어진..

빛의 언어, 함벽루_20210103

잠깐 주어진 시간에 텅 빈 공원 거리를 산책하며 뺨을 찌르는 겨울 강바람과 잠시 시간을 보낸다. 속삭이는 귓속말처럼 강 너머 공원 불빛은 각양각색의 은은한 스펙트럼을 연주하며 청력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향기를 발한다. 10여 분간 누각에 서서 처음 밟아본 땅의 무지개빛 소리와 코끝 알싸한 바람의 향기, 잠시지만 새로운 공간의 흥겨움에 잠시 냉철한 현실을 잊는다. 잠시도 소홀하지 않고 약속한 때가 되어 불빛이 바뀐다. 강에 기댄 그 컬러가 아른거리며 혀 끝의 달콤한 캔디 같다. 도심가를 등지고 있어 멋진 도시 야경은 기대할 수 없지만 텅 빈 세상에 홀로 선 기분을 선물해 준다. 강가 전망을 적나라게 알려주는 누각으로 빛과 강의 질감이 눈으로 전해진다. 불 꺼진 작은 절을 지나 강변길과 산책로를 걷는다. 계속..

여명이 지고 은하수가 핀다, 태백에서_20201109

겨울 같은 만추, 여명이 나리는가 싶더니 찰나의 인연처럼 해는 순식간에 동녘마루를 박차고 뛰어올라 단숨에 어둠을 깨친다. 가을은 그리 짧은 게 아니지만 떠나려 할 때 뒤늦은 아쉬움처럼 아침의 고요 또한 분주한 세상이 펼쳐지고 나서야 애닮음을 아쉬워한다. 치열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맞이하는 휴식에 비로소 평온에 눈이 트이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가 기지개를 켠다. 눈이 제대로 뜨이지 않는 깊은 졸음을 애써 누르고 베란다로 나와 새벽 여명을 맞이하며, 태백의 평화로운 대기에 추위를 잊는다. 마치 모든 세상이 깊은 잠에 빠져든 것만 같다. 찰나... 잠시 사색에 빠졌을 뿐인데 성급히 동트며 이글거리는 햇살의 촉수를 뻗어 세상을 흔들어 깨운다. 사용하지 않는 구형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집에 설치하여 CCTV로 ..

뿌연 몽환 같은 태백_20201108

태백에서의 첫날밤은 추위가 다가오기 전 매서운 바람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작은 소리조차 바람이 집어삼켰다. 1천 미터 넘는 고지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마치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졸음처럼 거리를 따라 걷는 가로등 불빛은 요동도 않고 자리를 지키며 부쩍 다가온 겨울을 맞아 미리 움츠린 채 평온의 옷을 껴입은 것만 같았다. 한밤에 홀로 빠져나와 주차장 끝에서 장벽처럼 서 있는 산이 둘러싼 태백 도심을 응시했다. 미세먼지가 살짝 끼어 있어 광해는 안개처럼 첩첩이 쌓여 있었고, 불빛은 작은 심호흡도 멈췄다. 이런 날 은하수 보는 걸 기대하지 않았지만 한참 뒤에야 사진에서 아주 미세하게 볼 수 있었다. 왠 횡재! 태백에 오면 늘 이 전망을 한참 주시하는데 그저 평온의 강렬한 에네르기파로 인해 잡념이 산화되어 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