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봄을 만나러 금호강변을 걷다_20220430

사려울 2023. 3. 3. 20:44

인가와 불쑥 떨어진 강변의 봄은 움튼 녹색 물결이 출렁이는 가운데 그 물결 위로 이따금 손짓하는 봄꽃이 바다 파도의 하얀 물거품을 대신했다.
강을 따라 힘차게 흐르는 바람이 신이 난 이유는 어디든 내민 손을 맞잡아줄 새로운 생명이 강변 위에 공백 없이 자라 심지어 바람의 신명에 덩달아 밝은 색의 물결을 잘게 부숴줬고, 때마침 황사도, 미세 먼지도 어디론가 숨어 세상은 넘치는 유희가 강이 되고, 산이 되던 날이었다.

고산서당에서 나와 반대 방면인 금호강과 합류하는 방향으로 걸어 얼마 지나지 않아 야구 꿈나무들이 비지땀을 흘리는 리틀야구장에 다다랐고, 봄에 맞춰 각종 야생화들이 지천에 흐드러지게 폈다.

꿈나무들의 재능 잔치라 꽤 많은 가족들이 한데 모여 열기도 높았고, 좁은 길가에 아슬아슬하게 세워놓은 차량들과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차량들로 짧은 구간 북새통이라 이내 그 자리를 빠져나와 가던 방향으로 전진했다.

두 열차선과 강, 그리고 강변길이 꼬여 인가가 거의 없음에도 조금은 소란스러운 곳이었는데 그에 어울리지 않게 아카시터널은 꽤나 매혹적이었다.

금호강과 남천이 만나는 매호교에 다다라 한숨 돌렸다.

가공이 거의 되지 않은 강변 따라 봄의 활기가 물씬 풍겼는데 낚시에 여념 없는 강태공들과 자전거 여행 중인 사람들, 봄맞이 도보 여행 중인 사람들이 뒤섞여 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갓 피어난 초록과 노랑이 함께 봄의 양분을 먹고 들판을 적셨다.

어쩌면 봄에 피어나는 초록은 연녹색과 같아서 노랑에서 파생된 게 아닌가 싶다.

올해 꿀벌은 참으로 귀하신 몸이었다.

초봄 냉해로 인해 다수의 꿀벌들이 사라져 늬우스에 연일 등장했고, 그로 인해 인간과 공존해야 될 귀한 생명의 일시적 소멸은 꽤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어떤 개싸가지가 버려놓은 쓰레기 더미에 매달려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에서 마음 한 켠이 짠했다.

진행하던 방향으로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고, 꽤 많은 아카시나무를 스쳤다.

특히나 아카시나무 가지가 견디기 힘들 만큼 꽃이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열렸는데 여기 또한 예외 없이 공기 중 향은 거의 없었다.

요맘때 부는 바람 내음에서 그리 익숙하고 향긋하던 아카시향이 없다는 게 무척 낯설게 느껴졌고, 익숙하던 정취의 변화 속에서 '무심코'란 말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싶었다.

소소하게 스치던 것들이 얼마나 세상의 응어리진 부정들을 긍정으로 순화시켜줬던가!

우뚝 선 강변길에서 너른 금호강의 봄과 그 너머 장쾌한 풍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달랬다.

또한 이 모습이 자연스러운 야생의 강변 같았다.

강변 따라 봄의 결실들이 산들바람 따라 주렁주렁, 출렁출렁거렸다.

뚝방길에서 금호강 반대편도 강변 못지않은 봄으로 채색되었다.

가천잠수교에 진입할 무렵, 누가 봐도 유기한 강아지가 두려움에 떨며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날 선 경계감을 드러냈다.

이 모습을 보고 다산콜센터에 신고했지만 관련 업무는 처리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아 다시 거기서 안내해 준 유관기관 연락처로 연락을 취했으나, 주말 휴일이라 연락이 안 되어 음성과 연락처만 남겼다.

요 며칠 기온이 제법 서늘하고 강변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불어 얼마나 공포와 추위에 떨었을까?

누구든 반려 생명을 선택할 권리는 있지만 그 권리는 책임이라는 전제가 있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권리는 자격도 없고, 박탈당할 권리도 있다.

반려 생명을 선택하는 건 자신의 필요에 따른 선택이지만 그걸 선택하는 순간 책임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그래서 반려 생명을 입양할 때 인간에게 처럼 비교적 많은 비용을 감안해야 된다는 캠페인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사회보장제도에 포함된 건강보험과 달리 아직 반려 생명에 대한 보장제도가 없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반려 생명에 대한 선택을 재단하는 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자 차별이라 아직은 자발적인 수용을 존중하지만 분명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은 앞서 법률적인 부분과 더불어 윤리적인 부분이라 이성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생명을 경시하는 건 결국 범죄의 근원과 대담성으로 증폭되며, 그로 인해 결말은 스스로를 비극으로 몰아넣는 행위다.

고산2동 방면 금호강 가천잠수교로 내려가는 뚝방길 초입, CCTV 앞 기둥에 녀석이 묶여있고, 그 옆에 물과 밥그릇이 있었다.

주변을 서성이자 녀석은 계속 짖었다.

언뜻 보면 나이 많은 노견 같았는데 SNS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워낙 짖는 통에 녀석이 더 무서워할까 싶어 잠수교로 내려와 계속 연락을 시도해 봤지만 녹록치 않았고, 슬픈 사연을 모르는지 하늘과 강물은 무심할 만큼 너르고 푸르기만 했다.

주변을 맴돌며 여기저기 신고를 해봤지만 주말이라 쉽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약속 시간이 임박해서 문자와 음성 메시지만 남기곤 돌아섰다.

잠시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떤 분에 의해 임시 보호소로 옮겨졌고, 한숨 쓸어내렸다.

강변이라 바람도 많고, 다니는 사람도 꽤 많았다.

게다가 기온이 뚝 떨어진 날이라 제법 서늘했다.

주차된 곳까지 약 2.5km를 걸어가야 되는데 봄에 심취한 사이 시간이 꽤 흘러 잰걸음으로 이동하면서도 틈틈이 곁눈질로 봄을 누렸다.

벌써 이팝나무엔 하얀 눈이 내렸다.

뚝방길 양 옆이 이렇게 아카시나무로 깔려 있어 착잡한 마음을 쉽게 떨쳐낼 수 있었다.

이 길 괜히 멋진데!

산딸기 순이 힘차게 하늘로 솟구쳤다.

동글동글 귀여운 무당벌레가 줄기에 매달려 진딧물 식사를 했다.

매실이 벌써 이렇게 크다니!

봄이 그만큼 무르익은 동시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아쉬움 가득했다.

뽕나무 오디가 형체를 빚어냈다.

계속된 봄의 흔적들.

리틀 야구장을 지나 주차된 곳에 거의 도착했다.

대기가 청명한 날이라 멀리 산의 형체가 또렷했고, 시야에 펼쳐진 공간이 가슴 벅찰 만큼 시원했다.

점점 높아지는 산능선 아래 꿈틀거리는 봄의 흔적들로 인해 잠시나마 선 채로 몰입의 희열을 누렸다.

저녁 무렵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던 근린공원이 순간 조용해진 틈을 이용해 사진으로 담으며, 평온했던 하루를 되짚었다.

이로써 짧은 대구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는데 당초 만나 뵙고자 했던 병환의 이모부는 뵙지 못했다.

몇 차례 이모께 연락을 드렸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제는 추억으로 이모부에 대한 고마움을 묻어야 되겠다.

물론 이모는 예나 지금이나 그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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