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

쓸쓸한 망우당의 밤_20170503

오랜만에 찾아 온 대구는 아부지 찾아 뵙고 미리 예약해 놓은 인터불고 호텔로 도착, 그 사이 해가 서산으로 기운지 한참을 지난 깊은 밤이 되어 버렸다.오마니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카메라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피커를 챙겨 바로 옆 망우당 공원으로 행차 하셨는데 언제나 처럼 여긴 밤만 되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적막의 공간으로 단장해 버린다.(망우공원 야경_20150403, 산소 가는 날, 봄도 만나_20160319) 영혼이 없는 누군가가 나를 째려 보는 낌새에 올 때마다 깜놀한다.가뜩이나 사람이 없는 공원에 흐릿한 조명 뒤 동상은 자주 오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처럼 가끔 들리는 외지인은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을 거 같다.분명 밤에 누군가 여기에서 나처럼 놀라 자빠진 사람이 있을 거야. 텅빈 공..

아부지 잘 계셨슈~_20170503

예년 보다 늦은 성묘?보통은 설 지나고 활동하기 딱! 좋은 4월달에 찾아 갔건만 올해엔 회사 업무 파악으로 5월에야 가출한 정신머리를 찾아 오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한 해 전에는 3월에 가고 올해는 5월이라... 늘 같은 자리에서 찍는 인증샷임에도 갈수록 매끈해 지는 풍경이 점점 낯설어진다.특히 가을에 비포장된 길을 자욱히 덮고 있는 낙엽과 조금은 덜 정갈한 울퉁불퉁 튀어 나온 나무 가지들이 늘어선 길이 더 정감이 간다. 어디서나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민들레. 아부지, 그간 잘 계셨쥬?다른 자식들은 이미 다녀 갔고 저는 이제야 와부렀어요.여기서 혼자 지내신 것도 조만간 30년 가까워지는데 늘 우리 가족 보살펴 주신 덕에 오마니, 자식들 모두 건강하고 손주들도 더불어 겁나 징그러워요.우리가 건강할 ..

일상_20170501

이거 5월인데 왜 여름 같지?간소한 차림으로 동네를 다니는데 워째 얼마 걷지 못해서 땀이 삐질삐질 베어 나온다. 아파트 담벼락을 가득 채운 영산홍은 꽃망울을 활짝 터트리기 시작하는 시기에 맞춰 동네 곳곳을 물들여 나간다.근데 이 강렬한 햇살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겁나 뜨겁구먼. 동네 고샅길은 따가운 햇살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 사람들로 느므느므 한산하다.소나무 가로수가 많아 겨울에도 비교적 우거진 길인데다 처음엔 한눈에 보이던 길 전체가 이제 성장판이 팍팍 열린 나무로 가려져 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반석산 아래 노인공원 팔각정 아래엔 따가운 햇살을 피해 아직 남은 봄바람을 쐬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꽃봉오리를 피우는 중이시다. 대낮 공원을 밝히는 활짝 핀 민들레 씨앗. 둘레길을 접어 들자 살랑이는..

석가탄신일 전 미리 찾아간 만의사_20170426

무신론자이면서 오마니 기도는 종교적인 차원과 다르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모셔다 드리고 나는 조용한 사찰에서 봄바람 맞으며 기분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원은-최소한 우리 오마니께선 그렇다- 굳이 종교에 완전 의존하는 게 아니라 지극한 기원 중 단지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까 예전처럼 그걸 굳이 거절하거나 비판?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때마침 올 석가탄신일은 여느 해와 달리 좀 빠르게 5월 초라 미어 터지는 고행은 피하기로 하고 미리 느긋하게 다녀 오기로 했다. 사실 만의사는 가깝고 만만한 거리라 다니시는 거지 내용물은 그리 흡족하지 않으시단다.왜냐?모든 종교의 타락 징후는 바로 세속에 젖어 들듯 돈독이 올랐다는 건데 여기는 딱 유전자가 돈의 DNA가 티 난다.그래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하..

일상_20170423

봄이 무르익어 가는 반석산 둘레길을 일요일의 게으름을 박차고 일어나 걷게 되었다.한 동안 자전거 타기를 등안 시 하면서 위안 삼아 반석산을 올랐건만 여름이 가까워지면 다시 자전거 타기에 집중하기로 하고 올 봄은 걷기로만 했다. 노인공원에서 부터 둘레길에 합류하여 가볍게 걷기 시작한다. 단숨에 오산천 전망 데크까지 걸어 가면서 봄이 참 많이 익었구나 싶다.어느샌가 5월부터 조금만 활동해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짧은 봄을 실감하게 되는데 얼마 남지 않은 4월의 조바심에 잠깐의 짬이 허용되면 이 길로 접어 들던 횟수가 이제는 셀려면 복잡해 졌다.이 길을 이용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는 이마저도 힘들다고 벤치만 보이면 넙죽 엉덩이를 깔고 깊은 심호흡에 허덕였지만 이제는 친숙해진 만큼 전망 데크는 그냥 무시하고..

일몰_20170422

서산으로 지는 태양이 유별나게 커 보이던 저녁, 지상의 옅은 구름에 비끼어 여러 가지 컬러의 옷을 걸쳤다.맑은 대기로 인해 선명한 그 자태에 잠시 눈이 멀었던 봄날 저녁. 해가 완전 지고 나서 둘레길을 걷던 중 길에 아주 미세한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봄에 활동을 재개하는 아주 작은 곤충들의 눈빛이란 걸 평생에 걸쳐 처음 알게 되던 날, 거미 한 마리가 둘레길을 가로 질러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다.엄청나게 가느다란 그 빛을 못 봤다면 널 밟았겠지?이 사실을 알고 나서 부턴 밤에 둘레길을 걷기가 조심스럽다.

일상_20170421

금요일의 칼퇴근에 맞춰 집이 아닌 동탄복합문화센터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넋 나간 사람 마냥 걸었다.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제법 활기가 넘치는 중에 유독 눈에 띄이는 일렬로 늘어선 꽃들. 손에 있는대로 아이폰을 그대로 활용해서 담은 꽃들이 뮤지컬을 앞둔 배우들의 화려한 드레스 같다. 야외 공연장 뒷편은 잔뜩 찌뿌린 날이라 생각보다 산책 중인 사람들이 적은 대신 공연장 좌석이나 야외 테라스는 언제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여전하다. 나도 모르게 둘레길로 접어든 건 길 따라 걷다 초록의 유혹에 이성이 마비 되었을 터, 골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의 한결 같은 정돈된 모습이 보기 조~타.(일상_20170415)일 주일 정도 지난 사이 초록이 많이도 세상을 보기 위해 솟아 올랐다. 둘레길..

추억을 걷다_20170419

길지 않은 시간이 주어 졌음에도 나는 주제 넘게도 무리한 여행 계획을 세웠고 비웃기라도 하듯 출발하는 저녁 시간부터 계획이 어그러져 1박의 여행은 그저 한적한 곳에서 잠이나 자고 오는 반쪽 짜리가 되어 버렸다.게다가 출발하는 이른 저녁 시간에 기습적으로 내린 비는 사실 가는 길조차 나의 단념을 부추겼으나 평일 한적한 시간에 쉽지 않은 결단이었던 만큼 강행의 깃발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이번 만큼은 게릴라식 여행이라 3주 전에 미리 예약해야만 하는 회사 복지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었지만 평일의 혜택은 모든 숙소가 단기 비수기라 아쉽긴 해도 주말 휴일에 비해 저렴하다는데 위안 삼아야 했다.충주 켄싱턴 리조트는 그나마 집에서 접근이 용이한, 여행 기분을 충족하면서 이동 거리가 짧은 곳인데다 충주는 이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