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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섬과 손 내민 육지의 접점에서, 축산 죽도산_20220315

해안 따라 오뚝 솟은 산은 원래 섬이었으나 뭍에 대한 억겁의 갈망을 바다가 성취시켜 줬다. 강강술래 대나무끼리 서로 손을 잡아 작은 언덕을 강인한 해풍으로 부터 지키고, 언덕은 한 뼘 몸을 내어 대나무를 껴안아 고립된 세상으로부터 함께 의지하며 영속의 포부를 공유하는 죽도산은 어느새 속성이 전혀 다른 육지와 바다의 오작교가 되었다. 죽도산 죽도산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육지와 동떨어져 있는 섬이었습니다. 죽도산 인근에는 축산층이 흐르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산천을 따라 함께 흘러오던 모래가 만든 모래둔덕이 점점 커지면서 원래 섬이었던 죽도산이 육지와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원래 섬이었다가 육지가 된 섬은 ‘육계도’라 불립니다. 강 하구의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육계사주는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지형으로..

길과 바다의 멋에 빠지다, 영덕 해파랑길_20220315

예전 기억을 표류하다 보면 동해 바다와 뭍 사이 견고한 철조망이 꽤나 동경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현실이 극복할 수 없는 철옹성 같았건만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군사 시설이 철거되면서 웅크려 머나먼 미래를 꿈꾸던 해안 쪽길은 뒤늦게 세상과 조우하며 품 안에 간직했던 슬픈 사연과 태초의 자연을 거대한 선물 보따리 마냥 풀어놓았다. 사실 ‘영덕’하면 생각나는 건 십중팔구 ‘대게’ 외에 딱히 각인될 만한 명소는 기억에 없었고, 그로 인해 여정에서 영덕은 지나는 길목의 한적한 어촌마을로만 여겨졌다. 2019년 봄 여정에서도 영덕은 한치 주저 없이 다른 동해 바다를 이어주는 마을 외에 고민도 하지 않았었는데 해파랑길 소식을 듣고 먼 길 달려 첫걸음 내디딘 결과, 이제라도 알게 된 걸 다행이라 여겼다. 바다와 가파른 뭍..

시간이 졸고 있는 영덕 해안마을_20220315

동해 해안도로 따라 여정길에 만난 한적한 어촌마을이 한가득 쏟아지는 햇살을 쬐며 갈매기와 함께 했다. 겨울이 떠나고 봄을 맞아 한창 분주한 시간 조각을 끼워 맞추는지 인적의 흔적은 없고, 그 공백을 빼곡히 채운 나른한 아침의 바닷바람만 졸고 있는 고요한 마을을 깨울새라 소리 없이 휘날렸다. 이튿날 나른한 봄빛이 수평선까지 닿고, 그 볕은 꿈틀거리며 바다로 열어젖힌 창을 넘어 개운하게 인사를 건넸다. 숙소와 바다 사이 작은 공간에 소소한 밭을 일구는 손길에서 갤러리에 들러 한 폭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느지막이 숙소를 출발하여 영덕 강구를 기점으로 매끈한 7번 국도를 버리고 구불한 해안도로로 핸들을 돌려 다시 도로 따라 천천히 진행하던 중 강태공들이 분주한 작은 어촌마을 방파제로 걸었다...

첫 영덕 여정에 만난 청량한 밤바다_20220314

망망대해 포부를 품은 시야는 거침없었다. 나른한 봄이 무색하게 싸늘한 꽃샘추위 일갈은 꽤나 섬뜩한 칼날을 휘두르지만 이미 여유 넘친 봄기운을 이길 수 없고, 허공을 낙서로 일갈한 미세 먼지도 봄소식 쫓은 단비에 주눅 들었다. 정갈한 수평선을 따라 수놓은 일상의 물감은 이렇게 저물고, 저렇게 피어났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한쪽이 완전 바다로 트인 창을 열고 바람에 실린 바다 내음의 청량감에 도치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미세먼지가 거의 없는 청명한 밤하늘과 수평선이 미려한 빛을 피웠다. 비교적 오래된 건물과 달리 깔끔한 내부는 바다 조망 뷰를 살리기 위해 온전한 유리로 틔워놓았다. 영덕의 첫 여정에서 첫인상은 꽤 흡족한 밤이었다.

밤에 휴게소에서 만난 고양이_20220314

주유할 겸 잠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는데 얼핏 본 냥이가 재활용 분리수거통 부근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 처음엔 인형인 줄 알고 긴가민가 싶어 다가가자 몇 발 도망간다. 때마침 비가 내린 뒤라 여기 있나 보다 싶어 "밥 하나 줄 테니 여기 있어" 돌아와도 그 자리에 가만있었다. 햇반 그릇이 석판 바닥에서 잘 미끄러져 멀찍이 습식 파우치를 줬음에도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녀석이었다. 울 냥이는 습식 하나로 3~5끼를 먹는데 녀석은 앉은자리에서 해치운 걸 보면 배가 고프긴 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멀어지는 사이 녀석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래서 한 편으론 다행이다 싶었고, 한 편으론 마음 짠했다. 습식 하나 풀어주자 금새 다가와 먹는 걸 보면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녀석은 식사..

맥미니와의 작별_20220312

반년 조금 넘게 연을 맺은 맥미니를 떠나보낸 날. 집에서, 스터디카페에서 태블릿에 물려 불편한 생활을 청산하는 신호탄이다. 그래도 이 가격에 이 정도의 성능이라니, 외계인이 만든 물건인 게 틀림없다. 처음 올 때의 모습으로 다시 변신. 단촐한 구성에 깔맞춤한 박스와 외관. 찍힌 흔적은 뭐지? 티비와 연결해서 셋톱박스 겸 간단한 컴 용무로 사용할 때. 허나 요즘 웬만한 티비는 넷플이나 디플, 티빙 어플이 포함되어 나오기 때문에 셋톱박스 용도는 현저히 줄었다. 티비 자체로 지원되면서 직관적이고 간편하게 기능 전환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어디를 두더라도 꽤 잘 어울린다. 내 기준에 전체적 평을 하자면 작년 여름부터 태블릿 조합으로 노트북의 빈자리를 꿋꿋이 대체했었는데 아무렴 외부에서는 불편한 부분이 한두..

냥이_20220306

어찌 이리 사람한테 붙으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냥이 껍질을 입은 사람인가? 태블릿에 찍힌 범인의 행적. 방바닥에 방치한 태블릿을 밟아 카메라 모드 전환되고, 한술 더 떠 셔터까지 젤리로 마구 눌렀다. 어떻게 보면 너구리 같고, 어떻게 보면 산모기 같은 넌 누규? 100장 정도 찍힌 걸 보면 셔터에 젤리를 걸쳐 놓은 게 아닌가 싶었다. 스스로 추억의 징표를 찍는 녀석이라니... 이래서 웃는다.

메마른 길 지나 흐르는 낙동강_20220126

이리로 흘러 저리로 간다. 말 없는 강은 미처 소리 낼 틈 없이 바다를 오로지하며 이내 깊은 푸르름에 잠기고, 말 잃은 산은 지나는 강을 시샘할 틈 없이 하늘을 오로지 하며 이내 깊은 푸르름에 잠긴다. 하늘에서 달려온 강이 다시 하늘로 사라질 무렵 각처를 방황하던 강에게 한자리 내어준다. 강을 건너 너른 공원을 지나 홀로 걷는다. 산의 간극이 좁아질 무렵 여러 갈래 나누어 흐르던 길은 하나의 길로 고갯길로 향하고, 이미 말라 버린 인적 물결은 극도의 갈증을 느낄 겨를 없다. 멀리서 달려온 강은 이 자리를 묵묵히 지난다. 그러곤 더 먼 곳을 향해 쉴 틈 없이 느린 걸음을 옮긴다. 짧은 시간만큼 찰나의 머무름. 인적은 증발해 버렸지만 강물은 변함없다.

자연과 문명의 접점에서, 용담호 자연생태습지공원_20210514

꽃동산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긴 하나 묘하게 시간이 맞지 않아 발걸음을 돌리고 위안 삼아 찾아간 습지공원은 텅 빈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규모가 제법 큰 만큼 많은 손길을 거쳤음에도 그 지독한 고독을 벗기 위한 집착인지 꼭꼭 숨겨둔 빛결을 꺼내 만개한 공작의 날개처럼 공원의 봄빛은 사방으로 활짝 폈다. 진안읍에서 가까운 꽃동산은 코로나19로 출입이 안되어 하는 수 없이 방향을 틀어 용담호 생태 습지 공원으로 향했다. 너른 주차장은 차량이 두 대, 하나 나머지 한 대는 공원 작업 차량이었다. 용담호 자연생태습지공원은 2009년 완공된 공원으로 인공습지와 자연습지를 비롯하여 관찰데크, 탐방로, 출렁다리, 18홀의 파크골프장이 조성되어 있고 진안읍과 자전거 도로가 연결된 대규모 습지 공원이었다. 원래는 언건마을..

고원에 부는 세상 향기, 황매산_20210513

인간이 품어온 동경이 쉬어가는 곳, 철쭉이 질 무렵 뒤따라온 신록의 물결이 바람결에 출렁이며 자욱한 봄내음이 가슴까지 술렁인다. 봄이면 철쭉이, 가을이면 억새가 터줏대감이 되어 무던히도 여행자들을 설렌 이끌림에 마주치는 고원은 그 일몰 또한 아름답다. 갈망하던 은하수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실망의 매듭이 풀릴세라 가슴을 현혹시켜 돌아갈 의지를 잊게 된다. 언덕으로 봉긋 솟아올라 다시 그 위에 닭벼슬처럼 첨예하게 자리 잡은 황매산 능선은 공존하는 두 세상이 다른 책임을 부여받은 마냥 시선으로 판별되는 질감이 대조적이다. 철쭉과 억새 군락지가 너른 고원에 사지를 펼쳐 드러누워 있다면 한 줄기 산자락은 그와 다른 생명들이 울타리를 치고 그들만의 영역을 만들어 지내는 형상으로 철쭉만 만났던 지금까지와 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