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11

평온의 결실_20200920

뙤약볕 아래 태연히 갈 길을 가던 냥이를 부르자 냉큼 돌아서서 가까이 다가온다. 커피 한 잔 마시던 차, 츄르 프라푸치노 한 잔 할래? 가을이면 만물이 풍성해진다고 했던가? 다짐과 도약이 풋풋한 봄이라면 고찰과 성숙은 결실과도 같은 가을이렷다. 자연과 어우러진 생명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듯 하나를 위해 일 년을 버틴 결실은 인내가 뿌려져 더욱 아름답다. 강과 길을 따라 들판으로 번진 가을은 수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잠시 걷던 수고로움에 영혼의 물 한 모금을 살포시 건넨다. 내가 유쾌한 건 '말미암아' 불씨를 달래고, 네가 아름다운 건 '믿음'의 도화선이다. 여주 행님 댁에 도착, 머릿속은 온통 평온만 연상된다. 들판에 덩그러니 서 있던 한 쌍이 아쉽게도 제 짝을 잃었다. 한 편의 아름다운 ..

한적한 충주 남한강변을 거닐다_20191001

여느 마을마다 주변 지형지물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명과 이름을 달아 놓은 걸 보면 옛사람들은 세상 모든 걸 의인화 시키고 동격화 시켜 생명이나 자연을 함부로 경시하거나 차별을 두지 않았다.심지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들판의 바위에도 닮은 것들을 유추시켜 이름을 달아 놓았고, 부를 때도 마치 사람처럼 친숙한 어법을 사용했는데 그렇게 자연스레 배운 것들을 구전으로 남겨 어쩌면 세상 모든 것들과 어울려 공존공생하는 방법을 말문 터지듯 습성으로 익혔다.마을을 한 바퀴 크게 돌며 지형과 그런 친숙한 우리말에 재미난 동화를 경청하듯 세세히 들으며 반 나절을 보내고, 혼자 자리를 떠나 부론으로 넘어 갔다.사실 흥원창으로 갈 계획을 세웠지만 어중간한 여유를 갖다 보니 확고한 목적지를 정한게 아니라 결정 장애를 겪었고..

한가위 만의사_20180924

한가위 당일, 부시시 늦잠을 자던 중 큰누님이 집으로 들어 오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이번엔 혼자오게 된 이유가 큰 조카는 한창 바쁜 대기업 생활, 둘째 녀석은 상영관 알바로 가장 바쁘면서 일당이 짭짤하단다.큰매형도 물론 급작스런 업무.제사를 끝내고 가족들끼리 가까운 근교 나들이를 하기로 했는데 첫번째 코스는 오마니 종교적인 부탁으로 만의사를 방문하기로 한다. 역시나 전형적인 가을이라 하늘도 높고 푸르거니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그 맑은 하늘을 등지고 불상이 세상을 바라본다.오마니는 사찰을 다니며 언제나처럼 절을 하시고, 나는 오마니 핑계로 사찰을 둘러 보며 사진을 찍는다. 사찰 초입부터 반기는 것들이 많다.코스모스 군락지에서 한껏 펼친 꽃잎으로 부는 바람을 따라 살랑이는 코스모스와 꽃은 이미 시들어..

일상_20161008

몸에서 새록새록 기생하던 각종 습진들이 창궐할 무렵, 난 가려움에 항복하고 주말 이른 아침에 병원을 찾아야만 했다. 가을의 청량감을 가득 누리면서 나를 가렵게 한 녀석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신념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는 여름이 물러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건 벌써 성급히 가을 옷으로 갈아 입었네! 따사롭게 내리쬐는 가을 햇살과 더불어 길가를 가득히 덮은 국화는 호랑나방들의 안식처가 되어 퍼질러 일광 중이시다. 걷는 김에 주말 아침의 조용한 거리를 막무가내로 산책해 본다.전형적인 가을의 드높고 청명한 하늘에 맞춰 햇살은 겁나 따가운데 찌든 여름을 씻어 주는 보약 같은 날씨라 지친 육신에 생기를 불어줘 마치 이 상태라면 하루 죙일 걷더라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만 같다.그렇다고 걷겠나마는. 독실한 ..

봄이 익어가는 마을_20160409

올해 다짐한 것들 중 하나가 오마니 모시고 가끔 여행 가기.여행은 좋아하시는데 가는 건 겁내신다.그 말쌈이 무언고 허니 우리 나라 지천을 보시면 늘 감탄사 연발하시면서도 여행 후 유형의 결과물이 없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것.그래도 여행을 좋아하시는 반증은 막상 길을 떠나면 잘 따라 오시며 아주 유심히 주위를 감상하신다.그래서 봄이 한창 익어갈 무렵, 간소하게 준비해서 망설임 없이 길을 떠났다. 토요일 오전에 출발하여 점심 무렵 도착, 끼니를 해결한 후 경산으로 향하던 중 금호강변에 제법 규모가 큰 꽃밭을 발견했다.어차피 완벽한 목적지와 경로를 집착하지 않는다면 여기도 여행의 일정 중 하나로 급조할 수 있는 고로 차를 세우고 꽃의 군락지로 몸을 날렸다. 나즈막한 키로 땅바닥에 붙어 소리소문 없이 자라..

봄 전령사, 산수유꽃_20160320

여전히 겨울 내음이 묻어 코끝에 홍조를 띄이게 하는 초봄, 매화가 보이기 전부터 찬바람결에 살랑이는 노랭이가 겨울색이 여전한 세상에, 그래서 더욱 돋보이는 산수유꽃.3월이면 그리 아침 저녁으로 낮에 남은 포근함이 자취를 감추는 시기임에도 어느 샌가 꽃망울을 터트려 시선을 유혹한다.크게 눈에 띄지 않아서 꽃망울이 터졌는지도 모르고 지내다 문득 정신 없이 바쁜 꿀벌이 간헐적으로 눈 앞을 왔다리 갔다리 하니까 그제서야 반가운 사람을 만나듯 잔뜩 경직된 도끼눈에 힘을 풀고 이리저리 찾아 보면 의외로 주변에 산수유꽃이 참 많다. 한 동안 귀차니즘이 카메라를 잊게 해줘서 셔터를 누르는 감도 어색한데 그래도 이런 반가운 삿대질에 동물적인 감각으로 꽁꽁 숨어서 '나 찾아봐라~' 숨바꼭질하는 카메라를 어떻게든 찾아내 화..

반딧불이를 만나러 갑니다_20150627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울나라 오지 중 하나인 경북 영양인데 같은 오지 동무 중 봉화는 도로가 좋아져 쉽게 갈 수 있지만 영양은 아직 그렇지 않다. 여전히 봉화나 안동에서도 한참을 지루한 산길로 가야 되는데 그런만큼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2007년 가을에 검마산을 갔었는데 피부에 닿는 그 보드라운 빗방울의 느낌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걸 보면 흐른 시간동안 그 느낌이 강하게 각인되었나 보다. 전날 영주역에서 일행들과 만나 늦은 밤에 도착했던 흥림산 휴양림은 산림청이 운영하는 검마산과는 달리 영양군에서 운영하는 작고 아담하지만 깨끗한 휴양지였다. 흥림산 휴양림에 도착해서 푹 쉬고 다음날 아침, 베란다 너머를 보니 가을이 온 마냥 하늘이 높고 시원하기만 하다. 비록 산과 계곡의 규모는 검마산에..

올해 첫 꽃_20150328

이제 완연한 봄이란건 내가 느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봄의 대명사이자 전령사 역할을 하는 꽃의 만개일 거다. 그 중에서도 온통 황막한 겨울 풍경을 뚫고 상대적으로 도드라지게 아름다운 빛깔을 거만하게 뽐내는 진달래와 사군자로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계신 매화가 되겠지.때마침 시나브로 봄이 세상에 안착하려 할때 귀띔해 주는 이 두 꽃이 눈에 띄이는 시기라 내 개인 차, 자전차를 몰고 주위를 훑어 보러 나갔다. 뭘 저리 보고 있나 했더니?? 새들이 편하게 쉬라고 낚시 금지 구역을 만들었더니 낚시하는 사람들.여기에 사람들이 들어가 있으면 어김없이 새들은 없거나 여기서 뚝 떨어져 자기들끼리 눈치 보며 유영하더라.그럼 이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닭?지능과 하는 폼은 새지만 날지 못하니까. 틈새에 민들레 한 송이..

20140524_진주

진주 촉석루는 들려 줘야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아니겠나?이쁜 도시에 비해 초행길을 운전하는 입장에서 양보 받기는 쉽지가 않아 진땀은 좀 흘렸어.얌전한 사람들과 아예 험악하게 양보할 틈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이 극단적이라 몇 블록 지나쳐 버리기 일쑤 였는데 그래도 밥은 먹어야제.도심가 한가운데 알차게 들어선 진주중앙시장 안에 제일식당이 무지 유명하다더라. 주말치곤 좀 이른 아침인데도 역쉬 재래시장은 사람들이 참 많구먼. 시장 안으로 좀 걸어 들어가면 이 진주중앙시장 간판이 보이네.어때?적당히 옛날 생각에 뽐뿌질하는 간판 아닌가?난 친숙하기만 하는데다 어릴 적 시장 입구에 있던 낡은 간판이 새록새록 어릴적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해 주는구만. 안 쪽에 있는 제일식당인데 여긴 메뉴가 딱 하나여. 바로 요 우거지..

아버지 산소, 그리고 가족들과...

지난 초 여름에 자전거를 이용해서 혼자 온 이후 모처럼 찾은 아버지 산소. 이번엔 혼자가 아닌 누나 식구들과 같이 움직였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에 찾은 산골짜기는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었고 일행들 또한 설레는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공원 묘지 관리 사무소 뒷편에 강아지 한 마리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웃거리길래 다가갔더니 올 듯 말 듯 하면서 도망가 버린다. 조카들이 강아지가 이 쪽으로 갔다는 말에 봤더니 대가족이 오손도손 살며 어쩌다 지나는 길손을 반가워 하듯 꼬리를 사정 없이 흔들어 댄다. 원래 사납게 짖어 대는 개가 몇 마리 있었는데 작년부턴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이 순둥이만 남아 지나는 사람마다 꼬리를 흔들어 대더니 이렇게 떡!하니 귀여운 강아지를 거느리게 되었고 강아지들도 덩달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