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이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그 적막한 울림에 잠시 기댄다.
지나는 이도, 마을 인가도 거의 없는 외딴 깊은 산속 마을처럼 수풀이 무성하고, 바위 틈틈 이끼가 자욱하지만, 그렇더라도 넘치는 건 여유와 소박한 정취다.
걷다 아픈 다리를 잠시 쉬게 해 주는 육각정과 따가운 햇살을 막아 주는 건 감히 배려라고 읽어도 되겠다.
가을이 살짝 드리워진 여름 내음은 시원한 코끝에 살짝 덧씌워진 물의 향기처럼 파닥거린다.
그 유혹 참지 못하고 해가 지는 촉박함을 잊은 채 풀숲 너머 연신 졸고 있는 호수가 깰까 사뿐히 그 길을 밟는다.
호수 위 전망대가 비록 무성한 여름에 가려 뻗어나가고자 하는 시선이 좌절되더라도 가지 사이 간간히 풍기는 세상은 하늘처럼 넓고 산자락처럼 포근하다.
거대한 자태에 탄성과 함께 위압감도 느낄 만큼 규모면에서 지금까지 본 여느 은행나무보다 압도적이다.
온갖 잡다디한 시련과 근심이 올지라도 기대고 있는 이 한땅을 지켜줄 든든함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무지만 충분히 믿음의 교감은 의심할 여지없다.
시골 마을에 한 그루 정도 버티고 있는 나무들은 우상화된 종교보다 좀 더 현실적인 밀착의 포용이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그늘 이상의 의지를 바랐고, 나무는 묵묵히 한자리를 내어줬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나무는 지금까지 당산나무와 비교해 보면 좀 더 진중한 기운과 더불어 포용력은 남다르다.
텅 빈 광장에서 1시간 이상 나무 한 그루에 기댄 건 단순히 위안 받길 원하는 이기심이 아니건만 나도 모르게 품 속의 안락을 느끼고 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거대한 위용을 어떻게 형용해야 될지 아직도 적절한 표현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만큼 거대한 위용에 탄성은 무조건적 반사다.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규모는 변함없고 모습만 다를 뿐.
가까이 다가서 나무의 거대한 위용은 뿌리와 줄기가 근원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여길 잠시 들르고 나서 다음 목적지는 간현이었지만 기대치 않은 성취감에 남은 일정을 접고 땅거미를 맞이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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