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다.
봄이 가까이 오느라 기다린 사이 어느새 봄은 무르익어 멀어질 약속만 남겼다.
그래서 집착적으로 봄을 쫓는 사이 깨닫는 바, 계절을 누리는 본능 실현의 과정이 행복이란 것.
완성되고, 소유하는 건 잊혀진 과정의 빈자리에 공허가 쌓이고, 과정을 즐기는 건 여전히 뽐뿌질하는 심장의 역동을 느끼게 했다.
돌이켜보면 기대가 용해된 과정에서 긴장과 굴곡이 상대적으로 희열을 증폭시켜, 그게 곧 생생한 행복이라, 봄의 기대에 아직 남은 내 인생, 내 건강을 확인하며 새삼 행복을 느꼈다.
앞서 그걸 느끼게 해 준 진천, 그리고 이번엔 영종도에 감사 드릴 차례였다.
지인 댁에 방문했던 차에 하늘신도시에서 걸어 도착할 수 있는 바다 전망의 씨사이드파크로 갔다.
레일바이크가 운영 중이라 멀리서부터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는데 너른 광장에 알차게 들어선 봄소식을 누리며 사람들은 바이크 위에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연신 바이크가 휙휙 지날 때마다 건널목은 철길 건널목처럼 통행금지 경고가 떴고, 바이크가 지나자마자 이내 철길 횡단이 가능했다.
철길은 해안길과 나란히 지나며, 어떤 방법으로든 바다와 함께 봄을 즐기는 여러 방법들을 제시했다.
마치 바다의 무수한 바람과 파도가 깎아서 만든 것처럼 기암의 형태로 덩그러니 서 있는 두 개의 바다전망대 사이를 철길이 가르며 지났다.
이참에 바다전망대에 올라가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보이는 바다를 살펴보기로 했다.
5층 높이의 전망대를 가기 위해서 좁은 계단을 올라야 되는데 호기심에 들떠있어 오르는 길에 가쁜 숨을 잊어버렸다.
바다전망대에 오르면 조금 더 높다고 해서 조금 더 특별하고 더 먼 세상을 보여줬다.
멀리 인천을 필두로 숨 가쁜 뭍과 마주했다.
미세먼지가 무색하게도 인천 북항과 월미도가 선명하게 보였다.
물론 시선을 북쪽으로 더 돌리면 청라신도시까지 관망 가능했다.
남쪽으로 시선을 틀면 송도와 수평선 위를 날렵하게 달리는 인천대교까지 관망 가능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영종도 특성상 이렇게 시야는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방파제 같은 바다로의 둔턱을 사이에 두고 남서쪽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이따금 놓여진 벤치와 바다 벽화가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직선 콘크리트를 잊게 해 줬다.
썰물이 지나는 자리, 그 갯골은 생태의 통로며 큰 변화가 없는 바다의 작은 읽을거리였다.
밀물에 떠밀려 왔다 썰물이 빠지며 남은 생명들은 상위 포식자이자 다른 생명들의 젖줄이 되어 물이 빠져나가는 틈에 바다새떼가 모여 식사를 즐겼다.
해안과 바다 사이에 산책로는 그리 크지 않지만 철길 따라 길게 뻗어 작은 이야기와 추억을 환원시켜 줬다.
갯벌 위에 뭔가 움직임이 있어 자세히 보자 두 사람이 갯벌을 분주히 오가며 무언가를 채취했고, 뭍에서는 관리자 한 분이 만약을 대비해 갯벌을 삼엄하게 되살폈다.
남서쪽으로 곧게 뻗은 해안선 위로 석양이 붉게 타올랐고, 하늘을 덮은 비늘 같은 구름도 채색시켰다.
17시 가량인데도 해가 떠있다는 건 낮이 점점 길어지고, 봄이 무르익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송산 인근 카라반 캠핑장에서 건널목을 건너 송산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선로 사이에 핀 민들레의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했다.
겨울에도 노란 꽃잎을 열어놓고, 늘 짓이겨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서 활짝 웃는 강인함 위의 유연한 생명의 속성을 잠시 감상했다.
황사 예보에 맞게 노란 대기 위로 미세한 빛내림이 무수히 그려졌다.
송산으로 향하는 길은 카라반 캠핑장과 실외 테니스장 사이 조금은 애매한 길이라 지도를 믿고 걸어가자 적절한 시기에 이정표가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려줬다.
테니스장이 끝나는 지점에 송산으로 향하는 길은 도리어 선명해서 주저할 필요 없이 바로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낮은 산이라 산책하듯 천천히 오르면 봄도 덩달아 보였다.
외길이라 도중에 갈등의 여지도 전혀 없었다.
겨울이 만든 황량한 언덕 위에 돋아나는 진달래는 그래서 더욱 돋보였다.
도중 갈림길에 명확한 목표를 제시한 이정표.
초입 이정표에서 송산 정상까지 0.6km 중 정상 바로 아래라 조금만 더 힘내자.
어느덧 정상에 가까워지며 연이은 계단을 힘차게 밟아 올랐다.
정상에 오르면 나무가 우거져 특별한 조망을 기대하긴 힘든 데다 신록이 피어나고, 여름 녹음이 우거지면 시계는 많이 가려 전망대로서 매력은 없었다.
반면 바다 인접한 우거진 숲이라 녹지를 좋아한다면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
정상에서 잠시 머물렀다 지인 댁으로 향하기 위해 출발, 익살맞은 까마귀가 자욱한 낙엽을 능숙한 발재간으로 파헤치더니 무언가 득템 하여 부리로 단단히 물었다.
잠시 눈이 마주쳤고, 녀석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역시 나무숲이라 이른 봄을 알려주는 생강나무의 노란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바다 씨사이드파크에서 올랐다 내려가는 길은 반대편 신도시로 향했고, 오를 때처럼 내려오는 반대편 길도 이렇게 걷기 수월했다.
길가 개나리도 하나둘 꽃을 틔우고 있었다.
해안에서 송산을 완전 넘어와 영종대로에 접한 데크길로 내려온 시각은 17시 반 정도.
약 20분 가량 송산을 즐겼던 만큼 체력적으로 무리가 없는 산책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위해 영종도 최북단인 미단시티로 향했다.
기대 없이 찾았는데 꽤 괜춘한 맛집으로 아직은 공백이 대부분인 미단시티에 여기만 북적였다.
특이한 인테리어와 가성비가 매력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포만감은 어느새 극에 달했다.
정원에서 출입구로 가는 길에 식당 지하층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외부로 나오자 해는 지고, 미약한 땅거미만 남아 아쉬운 하루를 달랬다.
가성비를 무기로 내세워 큰 부담 없이 여러 요리를 즐길 수 있는 뚜띠쿠치나는 드레싱이 조금 과하긴 했지만 본질을 아는 곳이라 영종도에 오면 충분히 이용할만했다.
이렇게 저녁 식사를 끝으로 영종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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