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498

반석산에서 기분 좋은 야경 산책_20200404

정적이 무겁던 이 도시가 해가 지날수록 야간 산책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초저녁에 집을 나서 습관적으로 불빛을 따라 걷던 중 간헐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도리어 반갑다. 가장 만만한 반석산 둘레길을 선택, 익숙한 길을 따라 등불도, 봄소식도 피어나 방긋 웃어줘 피로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둘레길을 걷다 처음 한숨 돌리는 곳은 오산천 방향 전망데크로 오산천 너머 여울공원은 환한 가로등 불빛이 무한할 만큼 적막하다. 이따금 지나는 사람들의 소리가 반가울 때, 바로 이 순간이다. 벚꽃이 한창인 산책로엔 밤에도 드물긴 하지만 인적은 쉽게 눈에 뜨인다. 둘레길을 걷다 가장 지속적인 오르막길을 지나면 두 번째 나뭇잎 전망데크에서 도착하여 습관처럼 한숨 돌린다. 해가 거듭될수록 동탄 일대는 꺼지지 않는..

봄꽃 가득한 길을 거닐며_20200402

봄이 되어서야 보이는 것들, 꽃과 새로 피어나는 녹색과 더불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흔하게 부는 바람과 쏟아지는 햇살에서 조차 실려 오는 싱그러움이다. 퇴근길에 미리 챙겨둔 카메라로 사람들이 흔히 외면하는 가로수를 한 올 한 올 시선으로 챙기던 사이 부쩍 길어진 낮을 무색하게 만드는 아쉬운 밤이 젖어들었다. 지금까지 감동에 너무 무심했던지 길가에 늘 오고 가는 계절에도 홀로 감동을 오롯이 챙기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시간이란 녀석이 늘 무심하다 지만 만약 시간이 옭아매는 조바심이 없었다면 감동의 역치도 없었을 것을. 평소 발길이 뜸한 국제고등학교 인근 거리에 어느새 벚꽃이 만개하여 화사해졌다. 국제고등학교를 지나 사랑의 교회 옆 인도로 걷던 중 만난 들꽃의 빛결. 사랑의 교회 앞 정원에도 봄이 완연하..

봄이 내려앉은 흔적_20200326

싱그러운 봄의 조화로움으로 모든 생명이 무사히 지나간 고난에 대한 안도와 함께 움츠린 기지개를 켠다. 비록 황량한 들판이 자욱할지라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동감은 그래서 더 돋보이고 반갑다. 내가 사는 고장도, 머나먼 지역도 봄은 늘 같은 행보를 걷지만 천차만별의 각양각색을 일깨운다. 늘상 부는 바람도 각별하게 만드는 봄, 모든 계절이 사이좋게 오고 가는 대한민국은 이래서 숭고하고 아름답다. 작은 병아리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것 같은 개나리는 흔하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리를 숙이면 보이지 않던 애정이 넘친다. 산수유꽃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열매가 약이 되는 건가? 복합문화센터의 정취에서 봄의 싱그러움과 나른함이 느껴진다. 착한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으로 어느 누군가의 선행이 끊이질 않고, 이 가련..

새벽 여명_20200314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 초까지 얼마만인지 모를 만큼 대기가 맑아 아침 여명의 빛결이 무척이나 곱디고웠다. 심연의 바다가 놀랄세라 오렌지 물감을 살포시 풀어 잔잔히 어우러지는 어울림인 양 빛깔의 경계를 규정 지을 수 없었다. 무보정 자체로도 가슴 벅찬 하루의 시작을 실감케 한다. 청명한 하늘을 보는 게 얼마만일까? 파랑새는 곁에 있었던 걸 뒤늦게 알아차린 것처럼 일상이었던 청명한 하늘이 이제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봄의 전주곡, 여주_20200304

섣부른 봄소식 같지만 향긋한 미각의 여운을 남기는 봄나물이 시나브로 지천에서 자리를 잡고 봄의 전령사를 자처했다. 동면이 한창이던 식욕이 플라시보 효과 마냥 봄나물로 인해 군침이 돌고 허투루하던 땅이 숭고해지던 순간, 남한강 두물머리에 부는 세찬 바람에도 부드러운 촉감이 뺨을 어루만진다. 억겁 동안 한강이 조각해 놓은 예솔암을 마주하면 숨가쁘게 달려오던 능선이 견고한 솜씨로 절단된 광경에 잠시 동안 넋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의지와 이성을 압도하는 자연의 이치라 그 앞에선 경건해진다. 여주 들판에 그림 같은 전경 앞에서 춘곤증이 밀려온 마냥 나른하다. 뿌리가 조금 질겨지는 시기지만 지금 아니면 올해 냉이 먹기는 어렵다. 은사 덕분에 한자루 뜯어 챙겨 풍성한 밥상을 꾸밀 수 있겠다. 지천에 널린 봄나물..

마중 나온 함박눈, 가리왕산 휴양림_20200225

가리왕산 휴양림은 평면지도 상 다닥다닥 붙은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이 자리에서 살펴보면 고도차가 있어 그 부담스러운 거리 사이에 장벽 역할을 한다. 가리왕산을 출발할 무렵, 밤새 내린 비가 진눈개비로 바뀌었고, 휴양림은 텅 빈 채 다시 찾아올 사람들을 기다리며 또다시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그 많던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공허를 채우기 위해 그토록 가냘픈 빗방울이 못내 아쉬워 함박눈으로 옷을 갈아 입고 나들이 나왔을까? 잔치가 끝나면 남은 건 공허의 잡동사니들. 그래도 늘 이 자리를 지켜주던 숲이 공허가 아닌 휴식으로 다독이겠다.

눈 내리는 산책에서 만난 냥이_20200216

그립던 눈이 사무치도록 내리던 휴일, 반석산 둘레길을 한 바퀴 걷는 동안 변덕스럽게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내리던 눈은 이내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지만, 발길이 쉬이 닫지 않는 곳에선 서로 모여 무던히도 조잘댄다. 겨울에만, 그것도 눈이 내릴 때만 만날 수 있는 뽀송뽀송한 눈꽃이 화사한 꽃잎을 부풀려 이따금 내비치는 햇살을 굴절시켜 망막이 시큰거리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모든 신경은 지칠 기색이 없다. 햇살을 가르며 그치질 않는 눈송이가 어느새 무르익어 추운 겨울밤도 따스하게 저민다. 눈이 내린 시간은 좀 지났지만 여전히 눈발은 날려 눈이 쌓일만한 곳엔 풍성한 솜을 뿌린 것 같다. 굶주린 길냥이 가족을 만난 곳, 세찬 눈보라와 달리 정취는 따스하다. 올라프?는 아니구나. 굵직..

충무공의 영혼, 현충사_20200211

곡교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 금세 도착한 현충사는 따가운 햇살 충만한 풍경에 마치 활기찬 봄의 축제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 다녀왔던 기억은 이미 퇴색되어 버렸지만 그 위대한 업적은 어찌 잊을까. 무게감보다 진중함에 압도당하는 현충사. 이 자리에 서자 나도 모르게 향에 불을 붙이고 고개를 숙이며 뒷걸음으로 조심스레 자리를 벗어났다. 현충사가 아우르는 곳에 아산이 있고, 아산은 현충사를 품고 있다. 현충사를 수놓는 나무는 감탄사를 늘어 놓아도 모자람 없는, 하나같이 범상한 굴곡이 있다. 현충사를 빠져 나올 무렵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장면이 아름다운 동행의 상형문자 같다. 잊을 수도, 잊혀지지도 않는 역사의 큰 획과 같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자취가 깊게 새겨진 곳, ..

추억 속 간이역의 출발이자 종착지, 정선역_20200202

기차역의 낭만을 보고 싶거들랑 정선역으로 가야된다. 막연한 그리움, 기대와 설렘. 기차역은 예나 지금이나 특유의 감성은 변색되지 않는다. 곡선의 철길은 직선화 되면서 의도와 결과만 중시되지만, 기차역은 문명의 혁명에도 결국 건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처음 정처 없이 기차 여행을 떠나 도착한 곳이 정선역이라 몇 년 동안 기억을 고스란히 숨겨둔 채 애써 외면했던 진실은 봄의 기지개처럼 견고한 땅을 비집고 나오듯 어쩌면 나는 정선역이 변화하지 않길 바랬지만 발아하는 호기심을 막을 순 없었다. 시간의 흔적이 완연하지만 묘하게도 수채화 같은 추억의 담담한 행복은 어떤 상흔도 없다는 걸 확인한 게 뜻 밖의 수확이랄까? 시간의 이야기가 그토록 많던 간이역은 대부분 사라지고, 기차의 정취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짧은 시간 정든 것들과의 이별_20191129

구례에서의 2박 3일, 아니 25일부터 29일에 이르는 올 들어 가장 긴 여정의 마지막 날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떠나면서 새롭게 정을 맺었던 많은 것들과 이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 구례에 도착할 때부터 따라온 미세 먼지로 인한 뿌연 대기는 아쉽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여행지의 멋진 전경과 생명들은 반가웠고,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의 인연일지라도 정이 깃들어 시원 섭섭한 여운은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인가 보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느긋하게 떠날 채비를 하며 그간 암흑과 추위를 피하며 편안하게 잠자리를 제공해 준 이 공간이 못내 아쉬워 밖을 나와 가까이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평화로운 전경과 그에 어울리지 않은 공사로 인한 소음은 짧지만 정이 들었다고 제법 익숙해졌다. 다만 숲속 수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