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 대한 사색 327

맛과 식감, 두 마리 토끼와 같은 새조개_20240224

과하지 않은 바다 내음, 쫄깃한 식감이면서 질기지 않은 새조개 샤브샤브를 처음 먹어봤는데 새조개의 공로도 인정하지만 전라도식 스원, 구수한 육수를 만나면서 통제할 수 없는 식욕으로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특히 차가운 바람이 불면서 온몸에 퍼지는 따스함은 감당 불가였다.순차적으로 나오는 맛깔난 음식들.가짓수가 푸짐한 대신 제대로 된 몇 가지만 집중해서 차라리 메뉴의 짜임새는 알찼다.뒤이어 새조개는 정말 새부리 모양이었다.끓는 육수에 3분.쫄깃한데 질기지 않았고, 바다 내음이 퍼지는데 비리지 않았다.거기에 톳 무침이 이리 맛난 줄!여간해서는 음식점에 가면 처음 세팅된 반찬만 즐기고, 아무리 맛나도 추가로 요구하지 않는데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갖춰진 것만 즐기자는 소신도 이렇게 무너질 수 있구나.순식간에 새조..

라떼는 마리야! 고구마라떼_20240222

오장동에서 두 형과 한 잔 뽀개고 헤어져 찬형과 백병원 앞까지 걸어와 뒤돌아서기 아쉬워 투썸에서 고구마라떼를 시켜 도란도란 대화꽃을 피웠는데 가만 정신차려 머그잔을 보니 라떼가 2/3만 담겨져 있었고, 아무리 술이 취해도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이미 찜을 한 상태라 뒤늦게 뭐라 할 수 없잖아.그렇다고 찐~한 사골을 듬뿍 담은 것도 아니었다.

소통과 협상의 시작, '어떻게 받아 들이게 하지?'_20240214

근래 읽은 책 중 가장 단숨에, 가장 재밌게 읽어 버린 책이라면 단연 요 녀석이다.실제 내용은 무척 간소하고, 삽화가 많은 데다 문체는 마치 독백조로 읊조리는 듯 하지만 누군가 꼭 듣길 바라는 의도가 포석으로 깔렸다.'어떻게 받아 들이게 하지?'양계장과 주인, 일꾼들의 소통을 위해 고심하고 해결해 나가는 양계장 주인의 고군분투가 문자로 새겨져 있지만 쉽게 머리에 연상되는 책으로 문자의 분량이 적다고 쉽게 쓰이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을 것 같다.그만큼 호소력을 위한 작가의 고뇌가 보인다.회사에 동명이인이 있어 그분한테 책이 오배송되어 버렸고, 며칠 전 연락을 통해 이날 정중히 돌려받은 뒤 단숨에 읽어 버렸는데 작가 친구님이 고맙게도 싸인까지 해줘서 어찌나 좋은지, 예나 지금이나 책선물은 사람을 무척 설레게..

선물_20240210

설날이라 잔뜩 들어온 선물들을 하나씩 펼쳐봤다.근래 사과 값이 금값이라 배에 비해 빈약하고 때깔도 생겨 먹다 말았다.그런데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의 선봉장답게 가운데 떡!허니 자리 잡았다.상대적으로 착하게 보이는 배는 햇배와 묵은 배를 섞는 상술을 발휘하여 푼돈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영혼은 팔 지언정 돈은 포기 못하는 행태를 보자니 정직하게 사업하는 분들이 엄하게 피해 보는 세상, 그래서 반어적으로 용팔이, 테팔이, 장똘배기 홧팅~!

카스타드 양심, 딸기_20240131

부쩍 물가가 폭등한 게 명절이 끝나도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동네 근린상가의 종종 들리던 과일가게에 가서 딸기를 하나 샀더니 내부가 요상하게 변해서 마치 설탕물에 절여 놓은 것 같아 다시는 가지 않기로 한 마당에 이제는 하나로마트에 들러 딸기를 샀다.위에 딸기를 걷어내자 허술한 아랫부분이 드러났다.손 대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사진을 하나 찍었는데 알고 보니 1kg이 아닌 800g이었다.이런 카스타드를 표절한 놈들 같으니라구.하동 품애 딸기?무게를 재어보니 820g 정도 나왔다.200g 정도의 허술함에 그 이상 빈정이 상했다.

영월의 부활과 문화 태동을 위해, 영월관광센터_20240126

38국도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에 영월을 지날 무렵 서둘러 길에서 벗어나 청령포 인근 관광센터에 들렀다.지난해 영월 여정에서 월욜 휴무로 헛걸음쳤는데 경험 학습으로 이번엔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센터 내부엔 카페, 식당을 비롯하여 주변 관광지나 행사에 대한 지도나 팸플릿이 비치되어 있었고, 공연장, 기념품 판매, 작품 등이 두루 비치되어 있었는데 나름 의욕적으로 추진한 흔적으로 규모도 꽤 크고, 구성도 비교적 신경을 써 조잡하거나 난해한 동선이 없고, 주변 경관이나 접근성도 좋았다.굳이 단점을 꼽자면 식당 메뉴 중 옹심이를 주문했는데 내가 알던 그런 옹심이도 아니었고, 정갈한 구성에 비해 내용물은 허접했으며, 외부 도로가의 마감 또한 엉성하다.기념품은 영월 특산물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할 수 있는..

산골의 따스한 정감이 있는 곳, 태백 철암도서관_20240125

철암마을을 가르는 철길엔 정겨운 건널목이 있고,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부담하여 만든 도서관도 있다.전산 접속이 필요해 미리 통화했던 철암도서관으로 가서 약 1시간 동안 노트북을 두드릴 때,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와 순박하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었다.물론 자리 자체는 편한 게 아니었지만 여정에서 이런 경험은 절경을 마주한 것과 같았다.오며 가며 아이들은 연신 인사를 했는데 그 순박한 인사와 눈빛이 처음엔 이질적이었으나, 점점 빠질 수밖에 없었고, 도서관을 떠나는 순간에도 발걸음을 어렵게 뗄 수밖에 없었다.다음엔 기나긴 태백 시가지를 해파랑길 여정처럼 편도는 도보로 도전해야겠다.숙소에 돌아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사이 해는 지고 멀리 백두대간 너머로 덩그런 달이 배시시 웃었다.철암도서관은 정부지원금 없이..

하늘과 가까운 태백 오투리조트 저녁 설경_20240123

1천m가 넘는 고지에 우뚝 선 숙소는 2015년 처음 연을 맺었고, 일대 베이스캠프 삼아 거의 매년을 요긴하게 활용 했었던 친숙한 경험에 비추어 올해도 빼지 않았다.자연은 오래된 것들에서 싫증 나거나 낡았다는 느낌이 없건만 인공적인 것들은 낡은 것들에서 과정에 따라 극단적인 '현재'의 결과가 있기 마련인데 여긴 점점 거리를 둘 때가 되었다.회사를 통한 제휴 프로그램의 혜택과 감성 사이에서 이제는 감성의 역치에 다다르고, 꽤 많은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괜히 성질 버릴 필요 없겠다.여러 가지 중 특히 중대형 평형대를 제외한 소형 객실의 경우는 조리 시설이 없었다.화재 위험? 급 나누기?객실내 베란다 통유리창은 틀이 변형된 건지 창을 완전히 닫더라도 너른 틈이 보였고, 그 틈 사이로 한파가 몰고 온 찬바람이 ..

기억도 바랜 경주_20240114

기나긴 휴가의 첫 여정은 경주에서 시작했다. 경주... 10년도 훨씬 넘은 경주에 대한 기억은 첫 관문 격인 경주 채색이 명확한 고속도로 톨게이트만 선명할 뿐, 도로를 달리면서도 다른 기억은 전혀 없어 당혹스러웠고, 그로 인해 외곽도로를 주구장창 달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청 방면으로 향했다. 초등 시절 수학여행의 고정 레파토리가 경주였었고, 2007년에 업무로 잠깐 살았던 걸 제외한다면 경주는 거쳐가는 관문이었으며, 그나마 친구들과 감포에 종종 들렀던 때도 90년대 후반이었던 걸 감안한다면 그 기억이 명징하게 남아 있는 것도, 경주가 전혀 바뀌지 않은 것도 더 이상한 게 사실이라 어쩌면 당시 순간의 기억이 정상인 게 맞겠다. 시청 부근 뚜레쥬르에 들러 간식을 마련하고 파편화된 기억을 더듬어 경주역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