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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기억의 시작, 임실 세심자연휴양림_20221104

3년 만에 다시 찾은 휴양림에서 가을의 자취가 남긴 잔상에 가슴이 물들었다.불태울 듯한 그 많던 단풍은 어디로 가고 이제 남은 불씨가 누군가를 손꼽아 기다린 한적한 휴양림, 만추라 읽지만 미련은 여전히 온전한 가을 텍스처 만을 오려 망막을 굴절시켰고, 걸음은 약속처럼 계절의 흔적으로 방향을 잡았다.뽀얀 대기를 비웃듯 가을이 채색한 빛결은 그 무엇의 방해도 굴하지 않던, 임실의 만추였다.[이전 관련글] 한적한 가운데 오로지 물소리 가득한 세심 휴양림_20191008임실 세심 휴양림 도착은 당초 예상 시각보다 이른 초저녁이었다.가는 거리가 멀어 느긋하게 가다 보면 밤 늦은 시각이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고속도로 트래픽은 거의 없었고, 미리 내려간 커meta-roid.tistory.com기나긴 가을 휴가의 첫 ..

가을에 대한 노란 편지, 괴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_20221027

그리움의 모양이 점을 찍어 노란 물결 흩날렸다.이렇게 가을은 끝끝내 낙엽으로 키스의 여운만 남겼지만 또한 계절은 어느새 숨결처럼 다가왔다.충북 괴산군 문광면 양곡리에는 아름다운 문광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작은 농촌마을인 양곡리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들과 괴산을 찾은 사람들에게 산책과 명상을 할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문광저수지는 호수 위로 드리워진 산그림자와 아침 물안개 그리고 저수지 옆으로 은행나무길이 조성되어 있어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문광저수지는 깨끗한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한국농어촌공사에서 1978년에 만든 400미터 길이의 저수지이다.준계곡형의 저수지로 주변에 숲이 우거져 있고, 고목이 많아 사계절 내내 ..

가을 젖는 반계리 은행나무_20221011

시대의 순응과 시간에 대한 평온이 800년을 버티게 한 원동력일 수 있겠다.나무의 껍질을 빌려 세상을 유유자적하는 신선 같은 존재, 원주 거돈사지 느티나무와 함께 생명의 그늘이라 불러도 그 표현이 모자를 숭고한 존재 앞에서 가을 향연에 물들었다. 거대한 시간 앞에서, 반계리 은행나무_20200912찾는 이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그 적막한 울림에 잠시 기댄다. 지나는 이도, 마을 인가도 거의 없는 외딴 깊은 산속 마을처럼 수풀이 무성하고, 바위 틈틈 이끼가 자욱하지만, 그렇더meta-roid.tistory.com 천년 사찰의 흉터, 원주 법천사지와 거돈사지_20201015벌판에 덩그러니 움튼 잊혀진 시간들. 전쟁의 상흔과 희생의 파고에 제 한 몸 지킬 수 없었던 치욕은 기나긴 시간의 빗줄기로 아..

호수 속 가슴 아련한 추억의 횡성호수길B_20221011

길을 걷는 동안 바로 옆에 줄곧 호수가 동행하는 둘레길을 따라 A코스를 지나 B코스로 접어들었다.전날 기습적인 추위와 두터운 구름이 몰려와 물안개는 만나볼 수 없지만 걷기 수월한 호반길은 젖어드는 가을이 길섶 호수와 숲을 흔들어 깨웠다.그래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시계는 잠시 뒤로하고 오롯이 마음이 추동하는 여유만 쫓다 보니 걷는 걸음에서 피로가 발목을 잡지 않았다.시간의 관용이 일상에서 익숙해진 습성을 마비시켜 늦어도 조급하지 않았고, 앞이 아닌 곳으로 시선을 던져도 불안하지 않는 횡성호반은 얼마 남지 않은 녹음과 다가올 신록 사이에 깊은 잠을 자기 전, 변모의 숙연함이 찰랑였다.B코스와 A코스의 다른 점은 너른 길에서 오솔길로 바뀐다는 점이었고, 같은 점은 호수와 숲의 경계를 예리하게 관통했다는 점이..

가을에 한 발 다가선 횡성호수길A_20221011

이른 새벽에 걷는 호수길 따라 가을은 깊게 뿌리를 내려 정체된 공기 속에서도 독특한 향취가 줄곧 함께 걸었다.대부분 호수 둘레길이 호수에서 멀찍이 떨어져 평행선을 그린다면 이곳 호수 둘레길은 호숫가에 녹아든 나뭇잎도 식별할 만큼 지척에 붙어 묘한 정취가 있었다.마치 동네 공원길을 걷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길은 탄탄하게 닦여져 있었고, 그 길의 지루함에 발길 돌릴까 싶어 파생된 길은 산중 오솔길처럼 한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폭에 호수와 숲 사이를 교묘하게 뚫고 호수로 돌출된 반도로 지그재그 뻗어 있어 걷는 재미도 솔솔 했다.새벽에 피어오를 물안개는 기대할 수 없는 날씨라 아쉽지만 모든 만족을 채울 수 없는 노릇이었고, 8km 조금 넘는 도보길을 걸으며 도시와 다른 텅 빈 산책로에서 산책의 무료함과 피로를..

가을 찾기, 일상_20220926

정처 없이 걷는 가을 길목에서, 어차피 계절은 명확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가장 화평하며 뚜렷한 간극도 없었다. 인생의 변곡점처럼 시간에 대한 명징한 기약은 없어도 필연의 만남과 작별만 명제로 다짐할 뿐이었다. 걷는 걸음 사이 로즈의 이쁜 품새에 깊은 한숨 뱉어 버리듯 잠깐의 휴식은 혐오가 도저히 가장할 수 없는 뽀얀 사색의 선물이었다. 베란다에 어느새 방아나물이 제 안방처럼 자라 꽃을 선물한다. 서로의 관심에 함께 화답하는 징표다. 가을이 짧다고 여겨지는 건 사람들 머릿속에 그려진 전형적인 가을만 추동하기 때문이다. 오는 가을에서 아름다운 진면목을 찾는다면 가을은 충분히 긴 시간이다. 로즈 동생이면서 무척 경계심이 많으면서 다가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녀석이지만 이쁜 옷을 입었다. 얼굴만 이쁜 게 아니라 ..

역사적 자취의 침묵과 평온, 고창 무장읍성_20220917

흔하던 시간이라 아무 감정의 소비도 없었는데 막상 작별의 귀로에서는 보이지 않던 아릿다움이 저녁 땅거미가 사라지듯 흩어지고, 지워지길 바랬던 처절한 과거는 저녁노을과 같은 궤를 밟으며 엮인 성벽 사이로 어렴풋한 찬가가 진동했다.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엮은 대지의 파란만장한 기록들, 보잘 것 없는 돌이 갈망의 자력으로 결속되어 영근 이 자리에 붉은 노을 파도가 철썩일 때마다 부서진 빛의 잔해들은 평온이 서린 대지에 누워 콧노래 흥얼거렸다.발자국 소리가 큰 반향이 되는 평온한 마을에서 발끝 힘겹게 솟는 들판의 작은 풀도 역사의 그림에 한 터럭 붓이며, 토성의 한 뿌리에 매달린 곁털인 것을, 무심한 석양이 단호히 빛가지 거둘 때 돌아가는 등 뒤로 작은 진공으로 먹먹했다.무장읍성(茂長邑城)은 전북특별자치도..

간극의 숙명, 고창 병바위_20220917

이별도, 그리움도 못내 지우지 못할 운명, 그러면서 홀로 설 수 없는 숙명을 가진 묘한 인연은 마치 악몽을 떨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 현실임을 간파하는 형세였다.서강의 선돌이 그렇고, 선유도 망주봉이 그렇듯 절묘한 간극이 빚어낸 두 개의 홀로서기가 그려낸 하나의 평행은 병바위 또한 시선의 종착점을 기렸다.석양이 지기 전 마지막 여정, 무장으로 떠나는 걸음이 무거운 이유였다.병바위는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에 위치하며, 신선이 잔치를 벌이고 취하여 자다가 소반을 걷어차 거꾸로 선 술병이 병바위가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1992년 고창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고창군지'에 실려 있으며, 2009년 고창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고창군지'에 병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선동(仙洞) 뒤 선인봉에 사는 신선이 ..

바위와 하늘이 만든 고창 두암초당_20220917

염원과 신념은 자연 위에 군림하지 못할지언정 아우를 수는 있다.바위에 새겨진 불상처럼 철학과 종교의 아슬한 경계의 외줄을 타고 신념 혹은 염원의 추에 매달려 아찔하게 지탱한 결실은 시간도 숙연해한다. 어릴 적 시골집에 독사가 무척 많았는데, 바위산 중턱에 웬 비단개구리가 많나 했더니 어김없이 녹색으로 독이 잔뜩 오른 독사 하나 황급히 계단길을 벗어났다.아이 때 독사를-심지어 뒷산 이름은 뱀산이었다- 지겹도록 봤음에도 여전히 친근함과 거리는 먼데 다행이라면 사람보다 뱀이 더 놀라 자빠질 정도라 괜한 위협보다 침착하게 주위를 살피는 게 낫겠다.두암초당은 고창 아산면 반암리에 있는 초당으로 호암 변성온(1530~1614)과 인천 변성진(1549~1623) 형제가 만년에 머물렀던 곳.[출처] 두암초당_디지털고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