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바위와 하늘이 만든 고창 두암초당_20220917

사려울 2023. 12. 4. 21:38

염원과 신념은 자연 위에 군림하지 못할지언정 아우를 수는 있다.
바위에 새겨진 불상처럼 철학과 종교의 아슬한 경계의 외줄을 타고 신념 혹은 염원의 추에 매달려 아찔하게 지탱한 결실은 시간도 숙연해한다. 

어릴 적 시골집에 독사가 무척 많았는데, 바위산 중턱에 웬 비단개구리가 많나 했더니 어김없이 녹색으로 독이 잔뜩 오른 독사 하나 황급히 계단길을 벗어났다.
아이 때 독사를-심지어 뒷산 이름은 뱀산이었다- 지겹도록 봤음에도 여전히 친근함과 거리는 먼데 다행이라면 사람보다 뱀이 더 놀라 자빠질 정도라 괜한 위협보다 침착하게 주위를 살피는 게 낫겠다.

두암초당은 고창 아산면 반암리에 있는 초당으로 호암 변성온(1530~1614)과 인천 변성진(1549~1623) 형제가 만년에 머물렀던 곳.
[출처] 두암초당_디지털고창문화대전
 

두암초당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초당. [개설] 두암초당(斗巖草堂)은 호암(壺巖) 변성온(卞成溫)[1530~1614]과 인천(仁川) 변성진(卞成振)[1549~1623] 형제가 만년에 머물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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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좌바위에 붙어, 사상에 기대어 영모정이라는 재실 위에 들어선 작은 정자로 어디에서 보든, 심지어 그 자리에서도 감탄할만했다.

두암초당으로 가는 길은 영모마을 넘어 있긴 하나 가까이 주차할 곳이 마땅찮아 마을회관 공터에 주차 가능했었는데 그걸 몰라 조금 헤매다 겨울 주차할 수 있었고, 아산초등학교 옆에서 출발하는 짧은 산길을 오르면 바로 두암초당으로 이어졌다.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이내 초당이 나왔는데 이 지점에서 풀숲에 있던 녹색 독사가 잽싸게 도망가는 걸 보고 그때부터 발밑을 살피며 걸었다.

어떻게 이런 작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이런 단아하고 독특한 초당을 지었을까?

진입하기 전 작은 쪽문이 있는데 때마침 열려 있어 초당으로 진입했다.

초당에서 보이는 마을 전경.

앞서 방문했던 선운산이 인파로 북적였던데 반해 여긴 인척임에도 인적을 만날 수 없었다.

가을로 접어들어 논은 서서히 가을맞이로 노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실제 두암초당 내부는 무척 협소한 편이었는데 거대한 전좌바위 아래 파묻힌 작은 공간이라 공간의 크기는 무의미했고, 나무로 다져진 초당은 생각보다 단단하게 들어서 있어 위태롭지 않았다.

두암초당에서 내려와 초당 바로 이래 보이던 영모정을 잠시 훑어봤는데 여긴 대문이 굳게 걸어 잠겨져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지만 저 전경만으로도 예사롭지는 않았다.

두암초당은 영모정과 바로 뒷켠 작은 숲에 가려져 있었다.

영모정에서 조금 내려오자 거기에 가려졌던 두암초당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무심히 푸르른 하늘을 이고진 전좌바위가 곁들여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정취가 물씬했다.

두암초당을 둘러본 뒤 이어 바로 옆 독특하고 홀로 우뚝 선 병바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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