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던 시간이라 아무 감정의 소비도 없었는데 막상 작별의 귀로에서는 보이지 않던 아릿다움이 저녁 땅거미가 사라지듯 흩어지고, 지워지길 바랬던 처절한 과거는 저녁노을과 같은 궤를 밟으며 엮인 성벽 사이로 어렴풋한 찬가가 진동했다.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엮은 대지의 파란만장한 기록들, 보잘 것 없는 돌이 갈망의 자력으로 결속되어 영근 이 자리에 붉은 노을 파도가 철썩일 때마다 부서진 빛의 잔해들은 평온이 서린 대지에 누워 콧노래 흥얼거렸다.
발자국 소리가 큰 반향이 되는 평온한 마을에서 발끝 힘겹게 솟는 들판의 작은 풀도 역사의 그림에 한 터럭 붓이며, 토성의 한 뿌리에 매달린 곁털인 것을, 무심한 석양이 단호히 빛가지 거둘 때 돌아가는 등 뒤로 작은 진공으로 먹먹했다.
무장읍성(茂長邑城)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무장현(茂長縣)은 1417년(태종 17)에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長沙縣)을 합쳐 만든 새로운 행정 구역으로 두 현의 중간 지점에 치소를 정하고 같은 해에 읍성을 축조하였다. 무장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연구와 관련해 학술적 · 역사적으로 가치가 큰 유적으로 2005년부터 2019년까지 8차례의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다. 특히 2018년 조사에서 조선시대의 화약 무기인 비격진천뢰 11점이 성의 동남쪽 군기고로 추정되는 건물지에서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출처] 무장읍성_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차량 몇 대 정도 주차무장읍성 방문자센터에 이미 다른 차량들이 주차된 상태에서 딱 한 대 공간이 비어 있어 거기에 주차를 한 뒤 성문으로 향하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나무 한 그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고창에 들어설 때 기재충천하던 나무의 모습은 여기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휘어짐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뒤틀림이 성숙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
거기에 홀린 듯 성문으로 향했는데 성곽 곳곳이 수리나 공사 중이라 나무가 서 있던 자리는 그냥 토성 형식으로 되어 있고 완만하여 그냥 넘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우선 성문으로 들어선 모습이 궁금했다.
또한 멀쩡한 성문을 두고 굳이 공사 수리 중인 곳을 넘기도 구차했다.
전문적인 용어를 모르겠지만 성문 외부를 성곽이 일차적으로 감싸는 형태로 통로이기도 하지만 가장 취약점이기도 한 성문에 접근한 적군에게 공격으로 방어를 하는 형태였다.
근데 무창읍성 자체가 완전 복원한 건지 아님 큰 원형이 보존되어 일부 복원인지 몰라도 성문 일대 성곽은 완전 제대로였다.
성문을 감싸는 성곽을 돌아 성문 정면에 도착, 성 내부에 멋진 나무가 가장 먼저 맞이했다.
마을 자체가 무척 조용해서 이런 성벽은 화려한 사치 같았는데 잠시 걷는 순간 그 궁합은 잘 짜여진 성벽 같았다.
고창무장객사는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것으로 선조 14년(1581)에 건립하였다.
객사는 궐패를 모셔 두고 현의 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는 정청과 왕명으로 지방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들의 숙소로 쓰이는 좌·우현으로 구성된다. 이 객사의 정청은 바로 위까지 내려와 있다. 눈썹은 초승달처럼 갸날프게 처리되어 있고 눈은 반쯤 뜨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초석의 석재 하부는 네모지게 상부는 반구형으로 다듬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 외에 별다른 특징이 없다.
우현은 정청보다 지붕을 낮게 꾸미어 건물의 격식을 낮추었다. 이 밖에 외대문 중문과 좌우량이 있었으나 남아 있지 않다. 석축에 오르 내리는 돌계단 등에도 호랑이·구름무늬 등을 양각해 놓아서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건물 정면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객사의 건물은 면사무소로 사용하면서 일부 형질을 변경했던 것을 1990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출처] 고창무장객사_국가유산청
성문을 넘어 가장 먼저 보였던 건 좌우로 떡 벌어진 무장객사와 그걸 감싼 멋진 나무들이었고, 무장읍성 내부는 정갈하고 말끔하게 정비되어 근래 방문했던 산성이나 읍성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공원이었다.
단순히 현대에 와서 문화재 발굴차원에서 복원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거대한 나무 한 두 그루 정도는 옮길 수 있더라도 이렇게 많은 나무들을 옮길 순 없는 고로 지금까지 잘 보존된 상태라 설명될 수밖에 없었다.
성문에 들어서 시계 방향으로 성곽 따라 걷는 동안 오래된 나무들이 군락 형태로 모여 시작 전부터 들었던 생각은 고창 여정에서 무창읍성을 그냥 지나쳤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었다.
남쪽에서 살짝 동쪽으로 틀어진 위치의 성문에 들어와 시계 방향, 즉 무장 객사 우측엔 연이 빼곡한 비교적 큰 연못이 있었고, 연이 가득해서 연못이 아닌 줄 알고 지나칠 뻔했다.
그래서 다시 연못 위 작은 정자로 향했다.
연못 정자에서 서쪽 성벽인 토성과 그 아래 내부는 너른 잔디밭 광장과 같았는데 초가을 특유의 무르익은 짙은 초록에 연노랑을 뿌려 조만간 다가올 가을빛을 예고했다.
연못 정자는 지나치게 가공하지 않은 통나무로 지어 선명한 나뭇결과 매트한 브라운이 그대로 노출되어 과거의 흔적을 재현한 읍성의 정취를 그대로 연장시켰다.
연못을 벗어나 토성으로 된 서쪽 성벽을 타고 시계방향으로 걸었다.
사념 속에 가득했던 잡념도, 타자도 활기를 잃어버린 순간이라 한걸음 한걸음에 몰입의 진공 상태가 되었다.
걸어왔던 길에 멋진 나무가 성벽 이상의 견고하고 풍성한 나무가 둘러쳐진 무장객사와 연못이 너른 잔디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서쪽 성벽은 이렇듯 토성 형태라 성곽을 걷는다는 기분보다 차라리 잘 다듬어진 언덕 능선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이폰 광각으로 넓게 바라보면 잔디 광장엔 푸른 초원 같았다.
성의 규모를 본다면 지금까지 거쳐왔던 많은 성들과 비교해 그리 작은 규모가 아닌데 내부는 도무지 쓸모없는 공백이 없었고, 말미암은 여백만 듬성듬성 있었다.
그래서 공허도 설자리가 없었다.
역시 풍성하고 멋진 나무 벽에 보호받는 관아가 단아한 자태로 자리 잡았다.
숨 가쁜 하루, 그 많던 이야기와 기억으로 채웠는데 일몰이 숙명으로 다가왔다.
곧게 뻗은 서쪽 성벽이 어느 순간 전환점을 맞아 북동쪽으로 유연하게 꺾였다.
나지막한 담장 속에 갇힌 관아의 동헌.
서쪽 성벽 끝에서 북동쪽으로 꺾이는 성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매끈한 토성 성벽에 우뚝 솟은 소나무는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초록 백지에 역동적인 역사를 말해줬다.
이런 대지에 나고 자라는 나무는 뒤틀리는 동안 통찰하고 곧게 뻗으며 깨닫는다.
그래서 어느 생명도 쓸모없거나 가벼운 건 없다.
북쪽 성벽 또한 토성 형태며, 서쪽에서 북쪽 성벽으로 걷는 사이 석양은 서산마루를 넘어갔다.
일몰 석양은 절대 뒤돌아보지 않아 늘 뒷모습만 각인시켰다.
처음 들어섰을 때와 달리 환하던 세상은 점점 빛이 사그라들었다.
북쪽 성벽 아래엔 상대적으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고, 사람들의 발길이 그만큼 적다는 반증으로 잔디와 뒤섞인 잡초들이 무성했다.
북쪽 성벽도 반을 지나 상대적을 성내 남쪽과 서쪽 방면에 하늘 높이 솟은 나무숲과 그 안에 있던 건축물들 대신 북쪽은 공원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신 중이었다.
계속해서 시계 방향으로 걷던 중 지극히 초가을다운 정취로 비교적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북동쪽 방면으로 이어진 성벽이 남동쪽으로 꺾이는 부분에서 성내를 바라보자 성 내부가 훤히 보일 만큼 너른 초원이나 다름없었다.
큰 나무숲과 작은 언덕이 무장객사.
보존된 원형이 시간에 휩쓸려 사라진 텅 빈 역사들과 뚜렷하게 대비되었다.
남동쪽으로 뻗은 성벽 초입에 북문이 자리 잡았는데 남문과 마찬가지로 성곽이 성문을 감싼 형태였다.
북문 위에서...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석양은 이미 사라져 급격히 어둑해졌다.
북문을 지나 성문이 구분해 놓은 밖과 안을 바라봤다.
물론 성이 축조될 당시엔 살벌한 사선이었겠지만 이제는 매끈한 과거의 낭만으로 남았다.
첫발은 남문에 들였고, 뒤돌아봄은 북문에서 행했다.
아직은 진행형인 무장읍성은 많은 부분 토성 형태로, 일부는 원형 복구 중이었다.
성곽은 남동쪽에서 큰 원을 그리듯 남서쪽으로 휘어졌다.
매몰찬 석양이라 또다시 원망하고, 노을빛 남긴 아름다운 석양에 또다시 겸연 섞인 원망을 거뒀다.
인간 마음이 그러면서도 간사함이 반복되었다.
노을에 취해 어느덧 성곽을 한 바퀴 돌아 출발점이었던 남문에 도착했다.
성벽을 이루던 돌 하나하나가 선명했건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기억 마냥 그 선명했던 하루는 이제 하나의 암흑 덩어리로 동화되었다.
완전히 해가 지고 이따금 찾았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버리자 다시 무창읍성은 홀로 남았고, 진공의 상태가 되었다.
고창에서의 하루...
짬짜면으로 유명한 고창읍 시장통-선운산-두암초당-병바위를 거쳐 무창읍성까지, 서해 인접한 벌판 위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고창에 숨겨진 명소와 만나며, 짧은 시간이 아쉽던 하루는 그렇게 아쉬운 노을처럼 휘영청 밝은 여운만 남겼다.
이틀 일정으로 고창에 왔지만 오롯이 고창에 몰입할 수 있었던 시간은 단 하루, 내려올 때엔 상상의 기대로 설렜고, 올라갈 때엔 기대 이상의 벅찬 기억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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