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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여울 소리, 통고산_20211028

잰걸음으로 태백에서 넘어왔지만 석양은 끝끝내 뒤를 밟고 따라와 어둑해져서야 통고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백의 도로에 몸을 싣고 높은 산, 터널을 지날 때마다 가을 여정길에 만난 정겨움은 배가 되고, 막연히 그립던 마음은 온 세상이 잠든 밤이 되어 날갯짓하며 옅은 운무를 조금씩 벗겨냈다. 카메라 하나 동여매고 통고산 휴양림의 가장 깊은 공터에 다다를 무렵 희미하게나마 운해 너머 이따금씩 밤하늘 별들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 통고산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광회리·왕피리에 걸쳐 있는 산.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서히 구름이 자리를 뜰 무렵 암흑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은하수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더 이상 진척이 없을 것 같아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앞에서 혹시나 하..

막연한 그리움, 만항재를 스치다_20211028

만항재의 스팟라이트에 가려진 만항재가 아닌 것들. 그래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인 만항재 풍경과 달리 인척임에도 지나는 이들을 그리워한다. 이미 만추를 지나 겨울로 접어들어 지는 석양의 가느다란 빛조차 간절한 현실을 방불케 한다. 태백오투전망대를 마지막으로 정선 일대 여정을 접고 백두대간을 넘어 또 다른 가을을 찾으러 떠난다. 만항재 풍력발전소와 그 아래 산허리가 길게 이어진 운탄고도가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화방재에서 함백산로드를 따라 만항재로 가는 오르막길은 그리 버거운 건 아니다. 일대 고도가 1천m 이상이라 도로가 이어진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도 그래서 까마득한 높이가 아니지만 일대 거대한 골짜기를 마주한다면 빼곡하게 중첩된 능선과 골짜기에 모세혈관처럼 이어진 작은 골짜기들이 높은 고도를 새삼 느끼..

솔고개와 상동에 깃든 가을_20211028

곡선이 익숙한 솔고개에서 심지어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조차 온통 뒤틀리고 휘어진 곡선일진대 가끔 그 곡선을 훼방 놓는 직선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둥근 망막에 굴절된 시선마저 불편하다. 암담한 막장으로 가는 길은 뒤틀린 심보 마냥 구부정 산길의 원치 않는 쏠림을 겪다 못해 멀미까지 일으킬 심산이지만 고개 마루에 서 있는 소나무는 지나는 이들의 엉킨 심경이 곧 미래의 매듭임을 깨쳐준다. 그리 높지 않은 솔고개 모퉁이를 돌아 앞을 보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소나무를 응시하게 되고, 그 시선의 첫인상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신선 같다. 더불어 소나무 너머 그 이상의 통찰에도 경거망동하지 않는 단풍산의 멋진 산세는 급박한 심경조차 이완시켜 잠시 쉬는 동안 이마에 구슬진 땀방울을 너스레 미소와 함께 털어준다. 사라진 광..

첫 걸음과 마지막 걸음, 운탄고도 화절령_20211027

막장의 상처를 자연이 치유한 흔적인 도롱이연못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며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벼운 눈인사로 공간에 대한 공유와 공감을 아우른다. 사북의 잃어버린 탄광마을_20141129 전날 늦은 밤, 신고한 터미널에 도착했을땐 이미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리는 중이었는데 일행을 만나 다른 곳은 둘러볼 겨를 없이 강원랜드 부근 하이캐슬리조트로 가서 체크인 후 조촐한 맥주 meta-roid.tistory.com 가을 열매 설익은 하늘숲길, 화절령 가는 길_20201007 가을이면 달골 마냥 찾는 곳 중 하나가 정선 하늘숲길(사북의 잃어버린 탄광마을_20141129, 하늘숲길에 가을이 찾아 들다_20191023, 하얀 하늘숲길을 거닐다_20200203)로 고산지대에 조급한 가을과 더불 meta-roid.ti..

막장과 삶의 포용, 운탄고도_20211027

가을이 되면 막연히 그리운 곳, 담양과 정선 중 하늘숲길이 있는 정선땅을 밟는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봉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까치발을 들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공존의 친근함을 과시하는 하늘숲길 일대는 무겁게 석탄을 이고 가는 삼륜차에 밟히고, 시간의 폭풍에 먼지처럼 옛 시절이 흩어지자 이제는 고독에 밟힌다. 언젠가 사라질 약속처럼 한 때 세상을 풍미하던 석탄은 비록 폐부와 생존의 지루한 복병이었지만 이제는 사무친 그리움의 석상이 되어 비록 까맣던 흔적이 증발해 버릴지언정 가슴에 새겨진 기억은 돌처럼 더욱 굳어져 버렸다. 그 애환을 아는지 속절 없이 능선을 넘은 바람은 선명한 자취처럼 꿈틀대는 운탄고도에서 긴 한숨을 돌리며 터질 듯 쏟아지는 가을 햇살 아래 잊혀진 옛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 또한 ..

고요, 적막, 평온한 우포_20211025

석양이 남은 하루 시간을 태우는 시간에 맞춰 우포출렁다리에 다다라 쉴 틈 없던 여정에 잠시 쉼표를 찍는다. 간헐적으로 오가는 사람들과 간소한 눈인사를 주고 받으며 적막강산의 정체된 공허 속에서 희열과 여독으로 점철된 존재를 조용히 되짚어 본다. 가끔 낯선 사람들의 사소한 지나침이 반가울 때가 바로 이런 경우 아닐까? 상대 또한 그런 그리움의 만연으로 무심한 듯 주고 받는 목례에서도 감출 수 없는 반가운 미소와 함께 지나친 뒤에 그 행적을 돌아보며, 다시 마주친 시선의 매듭을 차마 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좀 전까지 밭을 한가득 메우던 농부의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여행자의 발자국 소리만 굴절된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정이라 걷는 동선을 줄일 목적으로 꾸역꾸역 차를 몰고 출렁다리로 접근..

낙동강을 건너며_20211025

무척이나 한적한 황강을 지나고 낙동강변길을 달리며 잠시 한숨 돌리기 위해 합천창녕보에 멈췄다. 땀을 훔치기 위해 쉬던 한 무리 자전거 동호회 무리가 아니라면 온전히 공백 상태인 전망대에 올라 주변 경관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출입은 금지 상태. 찬물에 손을 씻고 주차된 차로 가던 도중 주차장 바닥에 뭔가 보였다. 저게 뭐지? 하고 가까이 다가가자 어린 뱀 하나가 아스팔트 포장된 주차장 한가운데 일광욕 중이시다. 아마 개발로 인한 보금자리 변화 때문이 아닐까? 독이 없는 아주 어린 뱀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자 걸음아, 날 살려줍쇼 그러는 것처럼 황급히 도망간다. 너무 어린 녀석이라 불쌍한 마음에 더 이상 쫓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뱀을 돌 같이 볼 수 없어 옮겨 주지는 못했다. 합천에서 낙동..

갈대의 물결, 황강_20211025

나른한 여느 시골 마을에 움츠리고 있던 갈대 천국을 만난다. 이런 여행에서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명소를 찾는 성취감은 명소와 다른, 아니 그 이상의 만족이란 선물로 보상받으며, 여정의 힘이 되어준다. 무심코 인간에게 밟히는 갈대 명소와 달리 자유에 몸부림치는 이곳 갈대의 행복한 춤사위는 명소의 정갈한 멋보다 오지의 원초적인 안락에 가깝다. 때론 개발과 가공이라는 미명하에 파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인간본위로 강요당한 희생은 본능의 재간에 지켜진 아름다움에 거슬릴 때가 있다. 황강(黃江)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강변이 갈대 천지다. 이렇게 쉴 새 없이 광활한 갈대밭도 오랜만이라 숨겨진 갈대 천국이라 할만하다. 내 이름은 도둑가시.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고 그 이..

적중과 초계의 둥지, 초계 분지_20211025

산이 에워싼 분지 지형은 많지만 이렇게 동그랗게 모양을 갖춘 곳은 얼마 있을까? 우연히 위성 지도를 보다 그 특이한 형세에 시선을 빼앗겨 언젠가 찾으리라 다짐했고, 바로 그 숙원을 해결할 기회로 뻥 좀 보태면 우포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라 지체 없이 달려갔다. 지구가 뜨거웠던 시절, 아마도 거대한 분화구의 흔적이 아닐까 근거 없이 추론해 보는데 철원오대미가 유명한 이유 또한 거대 칼데라의 흔적으로 인해 무척이나 기름진 토양을 하늘로부터 선물 받은 만큼 이곳도 아니나 다를까 무르익은 벼의 황금물결이 파도친다. 전국을 다니며 눈을 현혹하는 곳이 참 많은데 여긴 호기심을 현혹시킨 곳이라 내 기어이 햅쌀이 나오는 시기를 맞춰 밥도 맛보고, 도보 여행도 하리라. 초계 분지 - 위키백과, 우리 모두..

포근한 적막, 우포생태촌_20211024

무거운 적막은 내게 있어 평온이요, 이따금 허공을 가르는 차량의 질주는 낯선 길을 함께 하는 친구 같다. 가느다란 불빛 한 줄기조차 없는 생태공원의 암흑 속에서도 생명의 미묘한 파동은 도시에서의 위협적인 곁가지와 달리 미약한 등불 마냥 냉혹한 계절과 문명의 역습에 움츠러 신음하는 마지막 희망의 몸부림이다. 생태촌 앞에서 나지막한 냥이 울음소리에 반사적으로 다가서 한 움큼 밥을 내밀자 어린 냥 둘이 다가와 허기와 경계 사이에서 잠시 갈등을 하더니 결국 생존의 본능에 어쩔 도리 없이 발치 앞에서 다급히 식사한다. 동이 트고 세상의 역동이 눈을 뜨자 햇살이 부서지는 대지가 삶을 노래하는 곳, 우포에서 가을바람에 이끌린다. 합천에서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대구에서 큰누님을 모셔드릴 겸 죽전 부근 일식집에서 식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