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이 익숙한 솔고개에서 심지어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조차 온통 뒤틀리고 휘어진 곡선일진대 가끔 그 곡선을 훼방 놓는 직선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둥근 망막에 굴절된 시선마저 불편하다.
암담한 막장으로 가는 길은 뒤틀린 심보 마냥 구부정 산길의 원치 않는 쏠림을 겪다 못해 멀미까지 일으킬 심산이지만 고개 마루에 서 있는 소나무는 지나는 이들의 엉킨 심경이 곧 미래의 매듭임을 깨쳐준다.
그리 높지 않은 솔고개 모퉁이를 돌아 앞을 보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소나무를 응시하게 되고, 그 시선의 첫인상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신선 같다.
더불어 소나무 너머 그 이상의 통찰에도 경거망동하지 않는 단풍산의 멋진 산세는 급박한 심경조차 이완시켜 잠시 쉬는 동안 이마에 구슬진 땀방울을 너스레 미소와 함께 털어준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3대 소나무
[출처 - 인천in.com]
정선 도사곡 휴양림에서 상동을 돌아 만항재로 가는 길에 필연처럼 마주하게 되는 단풍산과 소나무를 만났다.
무르익은 가을이 단풍산에 내려앉아 소나무와 어떤 어울림을 가질까 문득 궁금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만항재로 가는 길에 9월 초 즈음 상동 산길에서 언뜻 마주쳤던 유기묘도 궁금했다.
더 정확하게는 지나칠 당시 밥 한 줌과 물 한 모금만 던져 놓다시피하고 보호소에 신고하지 않은 채 방치했던 후회도 한몫했다.
결과적으로 유기묘의 정체는 오리무중.
오지마을에 내려앉은 가을의 형태만 익히고 돌아서는 애석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세상에 혼재된 수많은 진리 중 하나, 바로 이 순간이 최고의 시기며 최고의 기회란 말이 뇌리에 메아리처럼 울리다 사라졌다.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소나무는 혼자서 단풍산 아래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다.
첫 모습은 그리 반가울 수 없다.
게다가 가을과 함께하는데 더할나위 없다.
자태의 흐트러짐이 없음에도 고통은 커녕 아량으로 보답하는 소나무는 이 길목의 성인이자 친구며 등대가 되기도 한다.
얼마만큼 꼬여있는지 헤아릴 수 없지만 유추해 보건데 극도로 심란한 어떤 누구라도 숙연하게 만든다.
그루터기 대신 단정한 벤치에 앉아 있다 보면 허공을 유영하는 가을과 함께 신명 나게 웃을 수 있다.
단풍산 정상부근은 벌써 가을이 자리를 잡았고 그 가을은 점차 산을 타고 무르익는다.
고도에 따라 형형색색 제각기 다른 가을의 위로 생선 비늘처럼 번뜩이는 단풍산의 위용은 언제 봐도 사군자 부럽지 않다.
이런 멋진 자태를 보는 것만도 이리 흐뭇하여 그 맛에 취해 여기를 길목 마냥 찾는 걸까?
작은 광산은 아직 진행형.
터미널 옆 시계점의 시곗바늘은 몇 년 전부터 멈췄다.
선명한 기억 더듬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찾은 휑한 모퉁이에도 어느덧 가을색 창연한 산자락 손길 뻗은 이야기 하나.
올 가을에 그냥 지나칠 새라 서운한 앙금을 쓸어 버리듯 곱디고운 단풍색 완연하다.
지나는 길에 오래 발목 잡히는 기우는 금세 잊혀져 홀연히 지나쳤다면 몹쓸 후회가 무거울 뻔했던 찰나의 순간, 때마침 가을 대기는 눈부신 민낯을 살포시 내민다.
이번 가을에 제대로 된 단풍을 놓칠 뻔했다.
여행은 이러하여 실망할 필요도, 호기심을 재단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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