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여느 시골 마을에 움츠리고 있던 갈대 천국을 만난다.
이런 여행에서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명소를 찾는 성취감은 명소와 다른, 아니 그 이상의 만족이란 선물로 보상받으며, 여정의 힘이 되어준다.
무심코 인간에게 밟히는 갈대 명소와 달리 자유에 몸부림치는 이곳 갈대의 행복한 춤사위는 명소의 정갈한 멋보다 오지의 원초적인 안락에 가깝다.
때론 개발과 가공이라는 미명하에 파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인간본위로 강요당한 희생은 본능의 재간에 지켜진 아름다움에 거슬릴 때가 있다.
강변이 갈대 천지다.
이렇게 쉴 새 없이 광활한 갈대밭도 오랜만이라 숨겨진 갈대 천국이라 할만하다.
내 이름은 도둑가시.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자연의 공통적인 속성이자 본능인 유일한 생존 방법이 뿐.
나를 보면 뭔 생각이 드냐?
끈덕지게 따라붙는 혐오 같지?
허나 난 모략도 모르고, 심장을 탈취하지도 않는다.
또한 정신을 갈취하는 방법도 모른다.
어때?
그래도 내가 나쁘더냐.
가던 길을 멈추고 강변에 내려가 바람에 따라 출렁이는 갈대의 향연을 감상한다.
이름난 갈대 명소 못지않게 뚝방길 따라 흐르는 갈대밭의 전경이 유명세를 피해 숨은 명소다.
세상풍파를 여러 해 겪은 느티나무 아래 제대로 된 쉼터가 조화롭다.
인간이 편의대로 뜯어고친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에 돌과 나무를 살짝 끼우고 얹어 하나가 가진 허전한 공허를 미약한 둘의 만남으로 옹골찬 하나가 되었다.
길 가는 나그네의 땀과 넋두리도, 이 땅에 의지한 사람도 허울 없이 기댈 수 있는 그 아량을 유형의 존재로 조각한다면 아마도 이런 작품으로 표현되지 않을까?
위대한 스승은 열 마디 말보다 묵직한 눈빛만으로도 크나큰 깨달음의 유희를 새겨 준다고, 나도 모르는 사이 고개가 숙여지고, 가슴이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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