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가슴 내밀 듯 동해 바다와 만나는 뭍의 경계를 이어주는 해파랑길이 이번 바다 여행의 백미였다면 내륙의 백미 중 하나는 바로 동강이 첩첩의 산을 비집고 들어서 뭇 생명의 기개에 봄의 효능감을 나눠주는 젖줄이 아닐까.
발길을 구애하듯 몇 년 걸쳐 애정의 징표 마냥 숨겨진 그 모습에 절절한 그리움을 여과 없이 살가운 고백을 해도 봄의 시샘이 뿌연 장벽을 밀어 넣어 늘 멀어지는 동강과 그 절경을 뭉특한 모습으로 애간장 화답했지만 이번만큼은 청명한 대기가 선명한 수평선도 보란 듯 활짝 가슴을 열었다.
한 무리 산악회 사람들이 빠져나간 고갯길은 안도의 한숨을 뱉으며 말없이 흐르는 동강처럼 다시금 시간은 유유히 흐르고, 지나던 구름도 잠시 멈춰 땀을 훔쳤다.
칼날 같은 절벽의 그 미려한 선에 뭐가 그리 신난 건지 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시하며 자연이 선사한 선물로 무척 맑은 대기와 잠시 잊은 행복의 단잠을 흔들어 깨웠다.
문희마을에서 칠족령길 따라 첫걸음을 호기롭게 떼었다.
이 정도 날씨라면 내가 바라던 바, 날씨가 마음에 들어와 읽었나?
늘 봄 여정에 끼워 넣은 시기와 맞물려 미세 먼지와 황사로 선예도가 뚜렷한 뼝대를 볼 수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하늘이 감복 하시와 잡것들을 쫓아내신 겐가?
길 어귀에 이런 이쁜 지도가 생겼다.
마음 같아선 친절한 지도의 가르침에 복종하고 싶지만 벼르던 목표를 버릴 수 없다규!
첫 이정표는 언덕길에서 완연한 산길로 바뀌는 곳에 있는데 이 구간은 그리 만만하게 볼 수 없지만 막상 길을 걷는 순간부터 감탄을 아끼지 않게 되고, 그러는 사이 어떻게든 도착하게 된다.
이제 1.6km 구간 동안 설렘을 잠시 억누르고 길에 몰입을 해야 된다.
한 무리 산악회 사람들이 내려가자 원래의 적막이 산길 동무가 되었다.
돌탑 사이를 지나면 아찔한 산길이 이어지는데 얼마 전 내린 비가 여전히 남아 가뜩이나 지지력이 약한 흙길이 더 무른 상태였다.
그 발아래 동강이 지나간다.
유래와 전설로만 남겨진 산성.
예상대로 길은 좁은 데다 물렀고, 조금이라도 헛디디면 가파른 산세로 남아날 게 없어 보였다.
이러니 한 걸음 한 걸음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오르막길을 따라 칠족령 전망대에 가까워지는 순간, 하늘과 맞닿은 길 끝의 모퉁이를 지나면 칠족령 전망대에 도착하게 된다.
칠족령 전망대에 도착, 스토리텔러의 노력이 여기저기 엿보였다.
칠족령은 평창과 정선의 경계인데 오늘 목적지인 전망대와 하늘벽 구름다리는 정선에 속해 있었단 사실을 이제 알았다.
SNS 친구께서 이런 부분에 박학다식하셔서 일일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 여러 명칭 중 이건 꼭두서니목이란다.
청괴불나무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시골 출신이면서도 난 당췌췌췌 그게 그거 같고, 저게 그거 같다.
고진감래?
지금까지 얇은 베일에 쌓여 있는 것처럼 뿌연 대기 속 동강 뼝대길만 만났었는데 이번만큼은 그 어떤 날보다 청명하여 아껴둔 탄성을 꺼냈다.
한 폭 시야의 화선지에 자연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붓으로 억겁 동안 한 올 한 올 새겨 넣은 이 장관은 작은 사진으로 담기엔 인간의 위선조차 제대로 관통할 수 없는 장면이기도 했다.
전망대에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낌없는 찬사 뿐.
난 이 순간 만큼이나 무능한 적 없건만 감상하는 것조차 벅차 얼음처럼 온몸이 굳고, 사념은 백지가 되었다.
가진 렌즈가 크롭의 16mm라 힘차게 휘몰아치는 사행천이 잘렸지만 다행히 아이폰에 화각 넓은 렌즈가 달려 있어 함께 담았다.
허나 이 입체감 번뜩이는 느낌을 어떻게 가슴에 새기고 어떤 수단을 표현을 해야 할까?
최종 목적지인 하늘벽 구름다리가 육안으로도 이다지 선명하게 보였다.
동강 뼝대길, 아니 강이 만든 모든 길 중 전망대~하늘벽 구름다리 구간은 백미 중 백미, 지금까지 고이 아껴둔 군계일학이란 표현을 과감히 써도 되겠다.
오래전에 '선생 김봉두'란 영화 촬영지가 바로 저 잠수교 건너 수줍은 듯 몸을 숨긴 마을이었다.
뼝대가 병풍처럼 사방을 에워싸고, 동강이 낭만을 실어 나르는 곳, 시선은 그 작은 마을에서 끝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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