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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저 고요한 무주_20190429

2009년 초봄에 온 이후 언젠가 다시 오리란 다짐만 손에 꼽아 놓고 드뎌 숙원을 푼 무주 행차시다.거쳐간 적은 많지만 무주에 목적을 두고 온 건 10년 만이라 당시를 반추해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성스러운 백두대간이 품은 고장이라면 어느 하나 소홀한 곳 없겠지만 작고 아담 하면서 잘 꾸며진 모습이나 과묵 하면서도 많은 전설과 구전을 간직하고 수줍은 듯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기실 겸손과 뚝배기 같은 이미지가 연상 되기도 한다.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지역도 첫 인상이란 게 반이라고 하지 않더냐.봄비가 구슬프게 내리던 초저녁에 도착하여 무주를 아우르는 남대천을 거쳐 미리 예약한 숙소에 봇짐을 풀어 헤쳤다. 초저녁에 도착하여 간단한 비상 식량을 마련하는 사이 빗방울이 가늘어지고, 그 가늘어진 보슬비가 피부에 닿자 ..

일상_20190426

봄의 종말을 고하는 비일까?봄비의 소리가 구슬프다.그럼에도 피부에 살포시 내려 앉아 조잘거리는 비가 반갑다. 단풍색이 젖어 걷고 싶어지는 길. 말라버린 무성한 칡 더미에서 새로운 싹이 꿈틀대며 허공을 향해 팔을 뻗기 시작한다. 한껏 망울을 펴고 싱그러운 포옹이 한창인 봄꽃들.봄의 전령사들이 지난 자리에 같은 궤적을 그리며 솟아난다. 비가 그치고, 서산 마루에 걷히던 구름의 틈바구니로 석양과 노을이 하늘을 뜨겁게 태운다.

다시 찾은 통고산의 가을_20181026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방문은 통고산 휴양림이다.각별한 추억, 특별한 가을이 있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통고산은 일시에 변해 버리는 가을이 아니라 제 각기 다른 시간의 흐름을 타고 계절의 옷을 입는다.통고산에 도착하자 여전히 비는 내리지만 빗방울은 조금 가늘어지고 가볍게 흐린 날이라 어둑하기 보단 화사하게 흐린 날이었다.쨍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표현이 좋고 가느다란 빗방울이라 조금 비를 맞는 감수만 한다면 활동하기 무난하다. 통고산 휴양림 초입 안내소에 잠시 내려 매년 찾아올 때마다 인사를 나눴던 분과 잠깐 대화를 하고 바로 진입 했고, 첫 만남은 여전히 인상 깊은 단풍의 향연이 나를 반겼다.평일이라 통고산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차를 이용해 천천히 앞으로 진행해도 어느 하나 민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시 찾은 영양의 가을, 한티재에서 생태숲 _20181026

앞전과 같은 동선을 따라 이동하다 구부정한 한티재 고갯길을 넘던 중 가파른 언덕에 도배된 들국화 군락지를 발견했다.오지 마을에 이런 광경이 사뭇 신기하다.비교적 굵어진 빗방울을 우산 없이 맞으며 카메라가 젖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진 몇 장을 남길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숨 막힐 듯 매캐한 들국화 향이 대기의 분자 분포도를 뒤틀어 버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고갯길에 먼 곳부터 서서히 다가가며 찍는 동안 내리는 비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한티재 주유소에 들러 굶주린 차에 식사를 든든히 채워 주고.. 다시 갈 길을 재촉하며 수비면을 지나는 길에 학교가 보여 잠시 차를 세우고 차창만 연 채로 한 컷. 희안하지?반딧불이 생태숲에 2번을 왔었는데 한결 같이 굵은 가을비가 카메라를 허락하지 않고 기억의 창고만 ..

다시 찾은 영양의 가을, 흥림산에서 자생화 공원까지_20181026

그 놈의 지독한 아쉬움으로 9일만에 다시 찾은 영양이지만, 아쉬움의 진원지 였던 가을비가 조롱하듯 똑같이 재현 되어 은둔의 방해를 간접적으로 항변하며 완고한 거부처럼 보였다.차라리 현재의 상황을 즐기자는 의미로 욕심을 내려 놓자 비도 가을의 일부로 재해석 되었다.비는 잠자고 있던 사물의 소리를, 가을은 움츠리고 있던 감성을 일깨웠다. 늦은 밤에 도착해서 두터운 여독이 어깨의 백팩처럼 묵직할 거라 우려 했지만 기우에 불과할 뿐, 눈을 뜨자 믿기 힘들 만큼 몸이 가볍고 마음은 홀가분했다.앞으로 가게 될 여정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을에 대한 상상은 거품이 잔뜩 든 기대감이 아니라 담담한 가운데 있는 그래도 받아 들일 심보 였으니까.흥림산 휴양림의 텅빈 휴양관을 나와 곧장 출발하지 않고, 잠시 윗쪽에 자리 잡고 ..

영양의 숨겨진 보배_20181017

이방인에 대한 경계일까?카랑카랑한 새소리는 날이 서 있고, 온 세상 사물을 두드려 대는 빗소리는 두서 없다.인적이 거의 없는 아주 작은 마을은 낯선 발자국이 신기하고, 콘크리트 먼지에 익숙해진 시신경은 그저 모든게 이채롭다.조금 이른 가을이라 마냥 아쉬움이 남는 건 미련의 기대를 양산하고, 결정에 매말라 있던 발걸음은 한바탕 퍼붓는 가을비 마냥 호탕하기만 하다. 굵어진 빗방울에 옷이 배겨낼 도리가 없어 우산 하나에 의지한 채 수생식물 관찰장의 데크길로 한 발짝 한 발짝 자근하게 걸어갔다.관리사무소 바로 뒷편이라 아주 가끔 지나가는 차가 빗물에 젖은 도로를 가르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대기를 파고 들어 허공으로 뻗어 흩어졌다.세상의 소리라곤 오로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우산에 부딪히고 작은 연못에 떨어져 동..

일상_20180916

휴일에 가을 비가 내리는 공원을 걷는다.올 여름에 마른 장마에 대한 보상처럼 가을이 되자 비가 내리는 양과 횟수가 부쩍 늘었고, 특히나 지루하고 긴 폭염 뒤의 가을 비라 청량감이 더해진다. 가느다란 비라 우산을 쓰지 않고 얇고 가벼운 방수 재킷을 걸쳐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데다 얼굴에 살포시 닿는 느낌도 도리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평소에도 북적대지 않는 공원 산책로에 비까지 내려 더욱 적막하다. 비가 내릴 때만 만날 수 있는 푸른 잎사귀 위의 물방울들은 지나치게 낯가림이 심해 비가 그치면 금새 어디론가 쏜살 같이 줄행랑 치는 녀석들이라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세상 구경 삼매경에 빠졌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내가 온 줄도 모른 채 서로 조잘 대느라 여념 없다.약한 대낮의 세상 빛을 쪼아 먹곤 다시 ..

비 오는 날 영화 마녀를 보다_20180709

비 내리는 월요일, 마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비를 먼저 만났다.조만간 삼복더위가 예견되는 시점이라 차라리 이런 시원한 비가 반갑기도 하고, 괜히 설레기도 한 마음을 갖고 상영관으로 들어간다. 굵은 비가 연못 위에 촘촘한 파랑을 일으키자 시원한 소리가 세상 모든 소음을 흡수시켜 버린다. 딱히 볼 만한 영화도 없었지만 한국 영화 치곤 액숀이 독특하다는 평에 거리낌 없이 예매를 한 건데 그 특별한 액숀을 보여주는 과정이 지나치게 친절한 나머지 이해시키는 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래서 지루하다.이것들이 나를 바보로 아나?영화 러닝 타임 중 마지막 일부를 위해 기다리고 설득되는 과정은 짜증, 막판에 전개되는 액숀은 신선.후속작이 나온다면 했던 이야기를 억지로 반복하지 말고 일사천리로 진행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