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46

봉화에서 영월을 넘어_20190714

우구치 계곡을 경계로 경북 봉화와 강원 영월이 만나는데 이렇게 결정한 길이 생각보다 길고 험난 했다.가는 길은 멀고 고갯길은 이내 끝나 버릴 것처럼 평탄해지다 다시 급격 해지길 여러번 거듭되자 드디어 완만한 내리막길이 나오는,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도로의 컨디션을 떠나 원래 다니던 루트인 봉화-영주-제천-충주에 비해 훠얼씬 시간 소요가 많았다. 사진이 짬뽕 되어 버렸는데 여긴 행정 구역상 영월로 우구치를 넘어 급격한 내리막길이 완만해지는 작은 산골 마을 어귀였다.높고 구불구불하 고갯길을 넘자 풀리는 긴장처럼 작지만 멋진 산골 마을이 인상적이었다. 여긴 각화사 한 켠에서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의 진원지 중 하나로 깊은 수풀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곳이다.비가 내리긴 해도 약간 후덥지근한 날이라 이 소리가..

진중한 시간, 각화사_20190714

춘양에서 출발할 무렵 소강 상태의 호우가 다시 퍼붓다 멈추길 몇 번, 그 사이 춘양을 벗어나 영월 방면으로 미끄러져 갔다.펼쳐진 길을 따라 낯선 방향으로 묵묵히 나아가자 거대한 장벽 백두대간이 앞을 막아선다.둥지로 가기 위해 결국 넘고 지나게 될 숙명이지만 눈 앞을 가로 막는 호기심에 이끌려 긴 호흡 삼아 찾아간 각화사. 하염 없이 내리던 비가 가늘어질 무렵 겁 없이 초행길을 누비다 도착한 각화사는 여전히 빗물이 하얀 먼지처럼 허공에 흩날린다. 아주 오래된 흔적의 석탑은 작지만 알찬 시간과 정성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절 내부에서 가장 요란한 건 힘차게 솟구쳐 나오는 생수였다.그 소리에 이끌려 극심한 갈증에 시달린 사람 마냥 한아름 떠서 벌컥벌컥 마셨다. 천년 고찰의 시간들이 누더기처럼..

춘양에서 잠시_20190714

각자 집으로 가는 날이라 귀찮은 식사 준비는 제외하고 춘양에서 해결하기로 했다.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유래와는 다른 의미지만- 시골 장터에 대한 부푼 기대도 있었건만 막상 도착해서 둘러 보자 전체가 조용했다.한 분 말씀이 휴일과 장날이 겹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때마침 쏟아지기 시작한 호우로 구경이고 뭐고 할 것 없이 후딱 식사를 마치고 바로 헤어졌다. 억지 춘양격의 고향. 호우가 조금 지체 되었더라면 좀 더 많은 사진을 찍었겠지...만 만사가 귀찮아졌다. 식사를 하러 찾던 중 갑작스런 호우로 그냥 영업하는 식당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식당의 후문에 이런 처마가 있고, 거기에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와 비를 피하고 있다. 잠시 호우가 소강 상태로 접어 들었을 때 장터 뒷편으로 쉼터와 작은 광장이 보여 거..

별빛 이슬_20190713

가족과 만나 안동에서 맛난 저녁을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기나긴 밤 답게 지나치는 차량이 거의 없었고, 그 평온한 도로를 느리게 질주하며 많은 이야기로 마음껏 웃으며 숙소에 도착했다.주변에 불빛이 없어 미리 약한 외등을 켜놓고 갔던 바, 짙은 암흑 속에 차를 세워 놓고 마당을 가로 질러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자욱히 피어 있는 풀에서 눈부신 광채가 얇은 불빛을 반사시켰다. 산중의 풀밭에 달라 붙어 있는 영롱한 보석의 광채.그 영롱함의 주인공은 수줍음 많은 이슬이었다. 해가 지면 어디선가 숨어 있던 이슬이 나타나 가느다란 빛을 먹곤 그들만의 언어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하루 해가 비출 때면 또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겠지만 이슬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 기다림과 한 없이 스스로를 낮추는 겸..

유유자적한 시간_20190713

그리 이른 아침에 일어난 건 아니지만 새벽 공기 내음이 남아 있어 물가에 다슬기를 잡으며 잠시 음악과 함께 앉아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낸다. 의자를 하나 두고 앉아 있자니 금새 다리가 시려 오지만, 버텨 내면 어느 정도 참을만 하다.다슬기를 잡을 요량으로 여울에 발을 담근 건데 햇살이 강한 편이라 래쉬가드를 입고 자리를 잡았다. 보란 듯이 발치에 앉아 화려한 자태를 펼쳐 보여주는 호랑나비 한 마리가 주변에 날아다니며 시선을 끈다.가까이 다가가면 살짝 날아 올랐다 다시 주위를 맴도는 걸 보면 두려움이 별로 없나 보다. 다른 가족의 집에서 키우던 분재가 시들하여 여기 가져다 놓았는데 그냥 두기 애매해서 행여나 하는 미련에 땅을 파서 심어 보았다.다시 생명을 틔우면 좋으련만. 언제부턴가 말벌의 출현이 잦아 주..

밤이슬을 밟다_20190713

퇴근해서 곧장 온다는 게 늑장 부리는 사이 21시가 넘어서야 출발, 목적지인 봉화까지 3시간 조금 더 걸려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빛이 전혀 없는 어둠을 랜턴에 의지해 나아가 마당을 지나 숙소에 들어가는데 발이 축축하다.밤 이슬이 작은 빛에도 영롱하게 반짝거려 너른 마당에 나와 보니 풀에 알알이 박혀 졸고 있다.근데 솜털 같은 저 하얀 벌레는 뭘까?

막연한 추억과 그리움, 봉화역_20190516

막연한 기다림과 그리움.텅빈 시골 역의 허허로운 플랫폼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다 본다. 무심한 석양은 안중에도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서서 출발의 설렘과 도착의 안도를 얼마나 느꼈을까?덜컹이는 열차의 승차감이 무척 불편하건만 어색한 신경을 마비시키는 기대감은 설사 열차의 좌석이 모두 매진되어 제대로 된 자리도 없이 한정된 공간을 떠도는 와중에도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지루하던 불편은 금새 메말라 사라져 버린다.감정이란 오묘하게도 한 순간의 불편과 투정을 극도로 자극시켰다 이내 가라 앉고 모든 설렘에 몸을 맡겨 버린다. 시골 역 치곤 꽤 크다.해는 서녘으로 기울어 그림자도 덩달아 길게 늘어난다.가끔 시골 마을에 들렀다 간이역에 들러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플랫폼에 잠시 서서 텅빈 시간을..

송이능이 식당 솔봉이_20190516

봉화에 오면 능이나 송이 요리의 전골, 백반을 자주 먹었는데 영주 도심에 있는 동궁을 찾다 빈정이 상해서 다른 집을 물색하던 중 봉화 내성천변에 있는 솔봉이를 방문 했다.동궁과 지극히 주관적인 비교를 하자면 여긴 풍성함에 비해 퀄리티는 아주 높지 않지만 평타 이상은 한다.동궁은 가짓수가 여기 보다 조금 적지만 맛은 조금 더 세련된 수준이랄까?허나 볼륨과 나물 무침은 여기가 좀 더 낫다. 경상도 음식 치고 꽤나 가짓수가 많은데 특히나 녹색 나물 무침들은 감칠 맛 난다.동궁을 가다 결정적으로 발길을 돌린 건 첫 방문 때만 음식을 제대로 음미했고 그 이후 어눌한 한국말 쓰시는 분의 빈정 상하는 상스러움에 단 돈 10원도 아깝다는 주관에 발길을 끊었다.어차피 내가 아니라도 갈 사람들은 얼마 든지 가니까 그런 마..

범바위를 굽이 치는 낙동강_20190516

관창폭포에 이어 찾아간 범바위 전망대 또한 사람들 사이에 그리 알려진 공간이 아니다.명호면을 지나 시골 치고는 잘 다듬어진 도로를 따라 가다 춘양 방면으로 빠지자 얼마 가지 않아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나오고 이내 한 눈에 봐도 여기가 전망대 구나 싶은 곳이 바로 범바위 전망대다.감히 낙동강 최고의 전망 중 몇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단언해도 좋을 만큼 절경이라 하겠다. 절벽 위에서 바라보이는 절경.절벽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범상치 않은 절경을 보상한다. 조금은 우습게 생긴 외모의 범이지만 이 녀석이 바라보고 있는 절경은 절대 예삿내기가 아니다.억겁 동안 계곡을 깎고 깎아 번뜩이는 뱀처럼 휘감는 강의 기세는 첫 눈에 감탄사를 연발시키지 않고는 못 버티게 만든다.이 작은 겨레의 땅에 깨알처럼 숨겨..

금단의 영역, 관창폭포_20190516

정글처럼 깊고 눅눅한 습기 내음까마득한 산 속처럼 칼로 도려낸 듯한 수직의 바위만년설로 뒤덮혀 메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물길더불어 언뜻 보게 되면 소리만 공명시킬 뿐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런 폭포가 있다.조물주가 거대한 바위를 이 자리에 두고 예리한 칼로 수직의 평면을 완성시켰고, 자연은 그 견고한 그릇에 물줄기를 그어 영속적인 징표를 약속 했다.변함 없는 관심을 두겠노라고, 그래서 늘 생명이 외면하지 않게 하겠노라고.깊디 깊은 비밀의 방에 그들만의 세상인 양 날벌레와 꽃 내음이 진동을 한다. 관창폭포를 찾은 건 온전히 지도의 힘이다.종종 가는 봉화 인근에 뭐가 있을까?산과 계곡이 깊다는 특징 외에 디테일과 지식이 없어 자근히 찾던 중 눈에 띄는 몇 군데를 발견하고 후기를 찾아 보는데 정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