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천리 행군?_20190924

사려울 2019. 10. 2. 05:32

하루 동안 천리 행군 저리 가라다.

학가산에서 출발하여 원래 목적대로 대구, 봉화를 거쳐 집으로 갈 심산인데 단순하게 직선길로 가는 것도 아닌지라 고속도로와 꼬불꼬불 국도를 종횡무진 했다.



학가산 휴양림을 빠져 나와 예천IC로 가던 중 어등역 이정표를 보고 핸들을 돌려 반대 방향길로 접어 들어 처음 들어본 시골 간이역에 잠시 들렀다.

멀찌감치 차를 세워 놓고 혼자 걸어 어등역에 다다르자 굳게 문이 닫혀 더이상 운영하지 않는 폐역이었다.

이런 모습의 간이역은 참 익숙한데 깔끔하게 덧칠해진 외벽은 왠지 이질감이 든다.




어등역 바로 앞은 이렇게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 개울 너머 마을로 접어 들기 위해선 작고 낡은 다리를 건너야 되는데 얼마나 발길을 외면 받았는지 다리는 위태롭고 다리 초입은 수풀이 무성하며, 다리 건너 작은 상점은 주인이 떠난지 오래된 듯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작은 시골 마을의 다리와 같던 철도가 직선화되고, 덜컹대던 열차에서 나던 소음이 뜸해질 만큼 시골에서의 살던 사람들이 떠나 이제는 지나치기 마련이고 자연히 간이역이 문을 닫게 된다.

결국은 사라지고 잊혀질 과거의 유물일 뿐일까?

서울은 매일 하루가 치열한 삶이자 전장 같은데 여긴 그 치열함이 얼마나 그리울까?

따가운 가을 햇살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씁쓸한 기분을 가진채 뒤돌아서 어등역을 떠났다.

갈 길이 멀기도 했지만...



후딱 점심을 해치우고 아버지 산소에 들르자 유독 올해 자주 한반도를 습격 했던 태풍이 뿌린 비의 여파로 산소 곳곳의 흙이 유실되었다.

비단 우리 무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엉성한 흙이 드러나 있는걸 보면 많은 비가 내렸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당장 손 댈 수 없어 관리사무소에 들어가 신청 접수를 통해 보수를 요청했다.

그러곤 다시 출발하려는데 발치에 하늘소 비스무리한게 기어 가고 있어 잠시 쪼그리고 앉아 나무늘보처럼 뒤뚱이며 어디론가 힘겹게 기어가는 녀석을 쳐다 봤다.

하늘소가 아니라 풍뎅이?




이후 안동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안동에 들러 고픈 커피 한 사발 후딱 떠서 국도와 지방도를 경유해 봉화로 갔다.

여기 투썸은 지난번 가족들과 안동 들렀을 때 왔던 카페로 사람이 제법 많아 의외다 싶었는데 이 날은 더 많아서 1층은 테라스까지 사람들이 가득했다.

물론 갈 길이 멀어 오래 머무르지 않았지만 아침과 밤을 제외하곤 자리 차지하는게 쉽지 않겠다.



한참을 달려 봉화에 도착했는데 여기 왔던 취지가 무색해져 버렸고, 실망만 안은채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어 이내 자리를 떴다.

비가 얼마나 내렸으면 도로 가장자리에 토사가 무쟈게 쌓여 있던데 그 토사가 흘러 나온 언덕배기 시작하는 즈음에 이런 달팽이가 슬금슬금 기어 다닌다.

처음엔 뱀이나 지렁이로 착각했는데 가만히 째려 보니 달팽이다.

이렇게 크고 긴 달팽이는 처음 봐!




하루 동안 강행군이라 지치고 허기질만도 하다.

식사 하기 전에 먼저 여주에서 꽤나 많이 얻은 건고추를 싣고와 봉화 시장에 들러 갈아서 고추가루로 만들려고 했는데 전부 거절한다.

수 십 킬로그램 빻는 방아간에 이 정도는 해줄 수 없단다.

몇 군데 들렀음에도 전부 비웃듯 거절한다.

자근한 이해와 설득의 화법이 참으로 많건만 하나 같이 매몰차게 거절과 비웃음을 준다.

재래 시장을 가면 흥정으로 이어지거나 아니면 완고한 거절이다.

아름답거나 지저분한 관습이 아직도 여전한 시골 장터라 오지 시골 마을로 통하는 봉화의 순박함을 환상처럼 그리고 있던 오마니께서 적지 않게 충격을 받으셨다.

봉화 시장 내 식당에서의 불친절과 몇 번 시장에 들렀다 진절머리 나는 불친절에 회의감을 느끼셨던 바 이참에 완전 정나미 떨어졌나 보다.

옆에 내가 있지 않아서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여간해서 그런 표현을 잘 하지 않으신 성격에 비추어 모여 있는 몇 군데 방아간에서 뭐 보듯 집단 따돌림에 버금가는 조소와 비아냥을 던졌겠지?

가뜩이나 이번 봉화행에 적정량의 실망을 챙기시어 그 실망의 불에 기름을 끼얹었으니 당분간 오지 않겠다는 표현을 쓰실 정도다.

화는 나더라도 배는 채워야지.

올봄에 들러 나름 가족들 평이 좋았던 솔봉이에 들러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는데 마침 송이와 능이철이라 전골로~

처음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한 테이블 가족 손님이 앉아 있었는데 주문을 하고 옥수수를 털고 있는 사이 2팀이 들어왔고, 식사 중에 다시 두 테이블이 들어찼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 좀 남기긴 했지만 배를 든든히 채우고 집으로 출발하며 이번 여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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