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91

고창 가는 길, 그리고 단아한 맛과 멋_20220916

봄에 가려다 불발되어 뒤늦게 고창으로 향했다.하필 한여름 같은 초가을, 일기예보에서 낮기온 30도 넘는 폭염이란다.그건 내가 신경 쓸 바 아니라 계획에만 충실하자.상습정체구간을 지나 어느 순간 고속도로는 거짓말처럼 한산하고 뻥 뚫렸다.옅게 뿌리는 빗방울이 그치고, 형체가 보이지 않던 방문산에 구름이 걷히며, 고창에서의 시간이 열렸다. 간헐적으로 옅은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천안 지나 정안까지는 꽤 차가 많았었는데 서천공주 고속도로를 타면서부터 금욜 같지 않게 한적했다.오후 햇살이 서녘으로 많이 기울어 약한 빗방울이 창을 때리다 그쳤다.부여를 지날 무렵이었다.서천으로 넘어가 조금만 더 진행하면 서해안 고속도로에 합류가 임박했다.서천공주 고속도로가 끝나고 서해안 고속도로에 합류하는 중이었다.서천에서 ..

화정족발에서 만난 슬픈 냥이_20220908

찐더위와 엉뚱한 버스를 잘못 타는 걸로 인해 일산까지 3시간 소요, 모처럼 만난 지인과 쇠주를 들이켰는데 묘하게 취하지 않는 건 어떤 안주보다 감칠맛 나는 대화 덕분이었다. 잠시 나와 한층 시원해진 바람을 쐬는데 길 생활이 고된 녀석을 만나게 되었고, 녀석으로 인해 우리 냥이 이야기로-사실은 팔불출의 입덕 터지는 자랑질이 맞겠지만- 이렇게 새로운 대화 소재가 흥미진진할 줄이야. 같은 길 생활 하던 냥이라 길에서 잠시 만난 녀석의 모습에 고단함을 유발한 고달픈 숙명이 읽혔다. 그래도 놀라지 않고 잠시 눈인사 건네는 여유와 더불어 녀석의 불편해하는 한 쪽 눈을 보면서 마음이 쓰라렸다. 녀석의 왼쪽 눈이 언뜻 봐도 확연히 불편해 보였다. 냥이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슬픔이 서린 건 그들만의 숙명에 내가 휘..

쭈꾸미 카페, 하남 달마당_20220811

체감할 수 있는 물가 상승은 잠시 잊고 입에 착! 달라붙는 주꾸미를 달래느라 땀 좀 흘렸다. 미사신도시를 살짝 벗어난 정갈한 쭈꾸미 전문점에서 그리 풍성하지 않지만 적은 가짓수에 비해 맛깔난 음식으로 미각이 흥겨웠고, 허기진 속을 달래는 사이 쭈꾸미+흑삼겹에 앞서 나온 메밀막국수와 묵사발 또한 단독적인 메뉴로 음미해도 모자람 없었다. 미사에 사시는 지인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주저 없이 여기로 안내하신다. 미사나 강동 지역 토박이나 다름 없는 분이라 주변을 훤히 아시는 분인데 여기가 예전에 카페 였다고? 그래서 카페 분위기의 한식집이었다. 내부 분위기나 소품은 꽤 정갈했다. 물론 가격은 조금 사악한데 근래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 길들여져 크게 체감할 수는 없었다. 메밀막국수, 묵사발에 이어 ..

까마득한 바다 앞 해운대, 그리고 떠나기 전 부산 밀면_20220723

빌딩숲 너머 바다라... 바다가 무한한 행복의 표상이라면 그걸 앞에 두고 숨죽인 사념을 달래는 건 작은 행복이라 할만했다. 비록 어디론가 흩어진 커피 향이 아쉬울지라도 내리는 비에 스민 희곡에 낭만이 서리면 그만 아닌가. 짧은 시간은 마치 단잠의 곡조를 추종하듯 그렇게 여운만 남기고 떠났다. 이튿날 열심히 폭주했음에도 숙취는 그리 무겁지 않았던지 서슴없이 해운대로 달렸다. 19년에 왔던 이른 봄바다와 사뭇 다른 여름 정취였다. 우측 광안대교와 좌측엔 이기대와 오륙도. 오륙도 방향으로 수평선에 걸친 걸친 요트가 이 순간만큼은 시인이 되었다. 어느새 부산의 명물이 된 광안대교와 그 너머엔 아파트숲이 빼곡했다. 카페테라스에 겨우 자리 하나가 생겨 후다닥 찜한 뒤 아이스 한 잔 때렸다. 방파제 위로 이따금 새들..

부산에 도착_20220722

요즘 다른 가족들이 각개전투처럼 뿔뿔이 부산행 열차를 탔다. 나 또한 퇴근과 동시에 스텔스모드를 켜고 서울역에서 부산행 열차에 올라 잠시 정신의 스위치를 끈 사이 어느새 부산 도착. 돼지국밥, 회, 밀면과 더불어 부산을 실감했다. 밀면 곱빼기가 6천원! 회사 부근에 모인 평양식과 함흥식 랭면이 1만3천원인 걸 감안한다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 감동이었다. 게다가 만두 5천원까지 곁들인다면 설사 배가 터지더라도 얼굴엔 미소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 도착하여 광장에서 바로 한 컷 담았다. 여름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 18시반 조금 넘었음에도 여전히 대낮 같았다. 특히나 청명한 대기는 선물이나 마찬가지. 지인을 만나 범일동 돼지국밥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는데 소면 무한 리필이면서 가격은 8천원. 근래 폭등한 ..

파주에서 찾은 맛집과 가성비_20220512

파주에 갈 일이 있어 용무를 보고 식사를 고민했는데 추천해 준 집으로 날아갔다. 수육 정식이 단돈 6천원!!! 심지어 된장찌개도 딸려와서 뱃속에 넣어달란다. 하루가 다르게 생활 물가가 메뚜기처럼 뛰는 마당에 푸짐한 식사 한 끼 6천원, 심지어 마늘 수육이라 맛도 괜찮았다. 거기다 2인분 정도 되는 막국수는 단돈 7천원!!! 전형적인 새콤달콤한 맛이었다. 뼈다귀칼국수는 같은 교하에 있긴 해도 완전 다른 쪽이었는데 나름 유명한 집인지 대기실도 있었다. 여긴 단돈 1만원이라 앞서 수육집의 가성비와 비교할 수 없었지만 거짓말 쪼금 보태 양은 세숫대아 수준이고, 맛은 은은하고 구수한 내 스탈이었다. 이래저래 파주에 와서 춘곤증이 더해진 식곤증과의 한 판 전쟁을 벌일 판이었다.

넘치는 구수함, 홍천뚝배기_20220430

대구에 오면 꼭 한 끼 챙기는 음식이 찜갈비와 뚝배기 해장국인데 아점은 커피 한 사발에 뚝배기 한 턱으로 해결했다. 이거 대구에만 있는 뼈다귀 해장국인데 흔히 먹는 것과 분명 차이가 나는 건 걸쭉한 국물에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우거지가 뚝배기를 넘어 곧 탈출할 것 같은 비쥬얼 뿐만 아니라 마치 구수하다는 형체가 넘칠 듯 꽉 들어차 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짧고 촘촘한 대구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만의 담양 필수 코스, 진우네집국수_20211221

담양에 오면 꼭 방문하는 식당 두 곳 중 하나는 집에서 대충 말아먹는 국수를 연상시키는 국숫집이다. 지난번 4천 원 하던 국수가 이번엔 5천 원으로 인상폭은 꽤 큰데 그래도 이번 담양 여행에서 두 번이나 찾아갔다. 여기 별미는 멸치 육수에 삶은 계란으로 내 취향에 정확히 저격한 맛이다. 외부엔 예전 유원지처럼 야외 탁자가 즐비하게 늘어서 한눈에도 국수거리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영산강변에서 겨울 강바람을 관통한 따끈한 육수가 꽤 먹을만하다. 옆자리에 냥이한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트렁크에 밥을 가져왔건만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 아쉽다. 깔끔한 멸치육수, 진우네집 국수_20200624 흡사 타운하우스를 닮은 모습, 비교적 들어선지 오래된 축에 비하면 관리는 잘 되어 있지만, 어떻게 해서도 극복할 수 없는 ..

여주와 부론을 오가며_20211002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아침부터 온 세상을 태울 듯한 강한 햇살에 은사 따라 덩쿨마 터널로 향했다. 덩쿨마가 만들어 놓은 녹색의 터널이 무척 인상적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덩쿨마는 크기가 제각각. 덩쿨마? 흔히 알고 있던 뿌리에 열매가 '주렁주렁' 맺는 녀석이 아니라 이건 가지가 덩쿨로 자라는 줄기에 열매가 '덩실덩실' 맺힌다. 맛은 영락없는 마에 모양은 연밥 같기도 하고, 돌덩이 같기도 하다. 모처럼 은사를 찾아뵙고 '덕지덕지' 붙은 피로와 잡념을 떨치던 날이었다. 아궁이와 가마솥은 조만간 문화재로 등재되더라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점점 사라져 가는 동시에 시간의 짙은 향수가 매캐하다. 이 정취가 마치 가을 초저녁에 어디선가 전해져 오는 낙엽 태우는 향 같다. 앞마당을 둘러본 뒤 점심 식사도 하고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