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여주와 부론을 오가며_20211002

사려울 2023. 2. 4. 00:53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아침부터 온 세상을 태울 듯한 강한 햇살에 은사 따라 덩쿨마 터널로 향했다.

덩쿨마가 만들어 놓은 녹색의 터널이 무척 인상적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덩쿨마는 크기가 제각각.

덩쿨마?
흔히 알고 있던 뿌리에 열매가 '주렁주렁' 맺는 녀석이 아니라 이건 가지가 덩쿨로 자라는 줄기에 열매가 '덩실덩실' 맺힌다.
맛은 영락없는 마에 모양은 연밥 같기도 하고, 돌덩이 같기도 하다.
모처럼 은사를 찾아뵙고 '덕지덕지' 붙은 피로와 잡념을 떨치던 날이었다.

아궁이와 가마솥은 조만간 문화재로 등재되더라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점점 사라져 가는 동시에 시간의 짙은 향수가 매캐하다.

이 정취가 마치 가을 초저녁에 어디선가 전해져 오는 낙엽 태우는 향 같다.

앞마당을 둘러본 뒤 점심 식사도 하고 드라이브도 할 겸 부론으로 향했다.

부론에 가면 꼭 들러 식사를 하는 곳 중 하나.

여느 식당과 다를 바 없지만 내겐 특별한 곳이다.
마실 규모는 작지만 도로 양옆에 차량이 즐비하게 늘어서 비교적 활기가 넘치는데 더불어 식당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고, 손님도 의외로 많다.
특히 짬뽕, 갈비탕, 손칼국수집은 시골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그중 노부부가 운영하시는 손칼국수집은 특히나 저렴한 가격에 비해 한결같은 맛과 왠지 모를 편안함이 있어 자주 찾는 편이다.
비쥬얼에 비해 맛난 김치와 걸쭉한 칼국수가 적지 않은 양인데도 늘 국물까지 비우는 걸 보면 꾸준한 맛과 두 분의 성실하신 모습에 허기와 감성이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얌전히 앉아 있던 녀석이 이뻐서 눈인사를 건넨 것 뿐인데 살벌한 표정으로 내게 돌격하는 냥.

무심코 길가에 있던 녀석에게 시선을 낮추자 마치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인정사정없이 온몸을 부벼댄다.
때마침 트렁크에 습식 밥이 하나 있어 녀석 그릇에 털어내자 이번에도 인정사정없이 폭풍흡입한다.
지난번 소백산휴양림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마끼아또 같은 치즈 녀석이다.
그런 거 보면 치즈가 대체적으로 경계심이 적고, 사교적인가?
잠깐 옆에서 녀석을 지켜보는 사이 습식 하나를 뚝딱해치운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습식 하나를 꿀꺽했다.

밥그릇엔 멸치와 녀석의 밥이 섞여 있는데 이 모습이 왜 이리 측은할까?

부론 거리엔 대체적으로 냥이들이 많아 아마도 주민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것 같다.

근데 냥이 식단과 달라 좀 걱정되긴 했다.

아니면 마음껏 물이라도 마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

다시 여주로 넘어와 은사 뒤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몇 군데 들렀다 찾아간 비밀 화원 같은 곳.

비밀의 화원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내게 있어 인상적인 곳으로 때마침 쥔장이 계시지 않아 잠시 둘러본 뒤 바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허락 없이 담은 것들이라 세세한 사진은 제외하고 대략적인 것들만 봐도 그저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는 대지에 작은 공간을 활용하여 녹색의 향연을 이리도 빼곡히 그려 놓았다.
-거부감 드신다면 사과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바로 내리겠습니다.-
입구를 지키는 백구와 하얀 발발이가 짖을 듯한 기세로 다가왔다 큰 경계 없이 사라진 걸 보면 여주 벌판만큼이나 낙천적인 분 같다.
아름다운 것만이 모든 지향점이 될 수 없듯 여긴 깊은 숲이 만든 세상 속의 또 다른 세상 같았다.

어느 하나 새로 구입한 게 없단다.

그만큼 재활용 과정에서 꼼꼼히 선별하셨겠지?

자그마한 땅에 온갖 녹색 생명이 풍성하다.

작은 연못도 있다.

주변의 삭막한 벌판에 이렇게 녹색 생명으로 가득 차 있어 한눈에 띄일 법도 했다.

작은 공간을 어찌나 알차게 꾸며 놓으셨는지 울타리 하나 차이로 다른 세상에 온 기분, 이를 테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세상을 넘나드는 문 너머의 또 다른 세상 같다.

강변에 작은 쉼터가 가을과 무척 잘 어울린다.

비밀의 화원 같은 곳을 나와 조금 떨어진 또다른 장소.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곳인데 아직 오픈하지 않아 내부 사진은 담지 않았다.

여주의 기름진 벌판에 옹골차게 익은 벼가 가을에 맞춰 고개를 숙이며 누렇게 영글어갔다.

오래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 오가느라 분주한 꿀벌은 올겨울이 들어서기 전 마지막 농번기다.

은사께 인사드리기 전, 울타리에 나풀거리는 코스모스 따라 순둥순둥 꿀벌도 깡총거린다.
폰카 셔터를 열심히 눌러 댔지만 초점 잃은 것들이 많아 제대로 된 건 몇 장 되지 않는다.
햇살 가득 품은 시골 가을바람은 뺨을 스쳐도, 옷깃을 흔들어도 여전히 정겹기만 하다. 

덩쿨마가 주렁주렁 늘어져 있어 멀리서 보면 거대한 물고기의 비늘 같았다.

하루가 무르익고 햇살이 따사롭던 은사 댁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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