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절경과 절벽의 경계에서, 칠족령과 하늘벽 구름다리_20200224

사려울 2021. 8. 7. 18:53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멀쩡하던 몸이 휴일을 맞아 탈수기에 쥐어 짤 듯 쑤시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월요일이 되면 거짓말처럼 멀쩡해진다.

뭔 말인고 허니, 긴장감이 작은 느낌을 극대화시켜주고, 공포가 잠자고 있던 초인적인 능력과 집중력을 흔들어 깨울 때가 있다는 말인데 우리나라에서 최애 절경을 간직한 동강에 매년마다 최소 한 번 정도 여행하며 극도의 몰입감을 즐긴다.

(칠족령 설화가 남긴 절경_20190217, 칼끝 벼랑에 서다, 하늘벽 구름다리_20190217, 칠족령의 마법_20190329)

동강 중에서 정선~평창~영월의 경계를 뱀이 기어가는 형세라고 해서 사행천이라 부르는데 이 구간은 천혜의 절경을 이룬다.

이틀 계획으로 가리왕산과 동강 여정을 계획했던 기대는 첫날, 가리왕산 입산 통제로 인해 먼지처럼 흩어져 버리고, 최후의 보루인 동강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극도의 긴장감은 여전했지만 매질도 몇 번 당하면 초연해진다고 처음과 달리 이제는 절벽 위에 그려진 좁은 길을 걷더라도 자연스럽게 나오던 개다리 춤은 추지 않았고, 대신 절경에 대한 감탄의 배터리는 여전히 가득했다.

추위에 얼었던 대지는 서서히 녹으며 비가 내리지 않았음에도 길은 질펀했고, 그토록 세찬 바람이 대지를 흔들어 됨에도 낙엽은 자욱했다.

허나 자연은 늘 같은 모습 같지만 미묘하게 달라지거늘.

모습은 같지만 표정은 다르다.

지금까지 이 여정길 중에서 대기는 가장 청명했고, 반대로 바람은 가장 잠잠했던 날.

언제 가더라도 운 좋은 날은 내 마음에서 결정하고, 자연은 그런 선택을 응원해준다.

출발은 늘 문희마을이다.

영화로 따지면 잔잔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복선이 등장하듯 나긋하게 걷던 동강이 극적인 이면을 보여 주기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 길지 않은 구간에 비해 칠족령으로 가는 산길은 수월한 편은 아니다.

어느 정도 오르면 산언저리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측은 무척 가파른 지형이라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좁은 폭의 길로 가게 되는데 땅이 무르고, 낙엽이 소복한 곳이 많아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내딛게 된다.

이 이정표가 나올 무렵이면 하늘벽 구름다리로 가는 길과 갈라져 제장 방면으로 얼마 가지 않아 전망대가 나온다.

최종 목적지인 하늘벽 구름다리를 이정표만 보고 가게 되면 분명 낭패를 본다.-실제 낭패를 보고 되돌아오는 사람도 봤고-

절대 0.5km가 아닌데 누군가 0을 지워 버렸다. 공감~

칠족령을 오른다면 반!드!시 거쳐야 될 관문은 전망대 되시겠다.

1년 전엔 넓지 않은 전망대에 불륜 그룹이 쳐놓은 텐트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제대로 감상하기 힘든 여건이었지만 그 이후 인적이 거의 없는 것과 같아 무척 외롭게 공간을 지켜 오래 머물 수 없음에도 자리를 뜨는 첫걸음이 무겁게 여겨지는 곳이다.

우측으로 쭉 연결된 칼날 같은 벼랑을 따라 가장 높은 지점 언저리쯤에 하늘벽 구름다리가 있는데 렌즈로 바짝 당겨 보면 어렴풋이 그 형체가 보이지만 처음 왔을 때는 개념이 없어 우뚝 솟은 지점을 한참 지난 곳으로 착각할 만큼 바로 인척처럼 보이지만 실제 체감 거리는 엄청나게 멀다, 엄청나게!

절벽을 따라 우뚝 솟은 지점을 55mm로 당겨 보면 생각보다 또렷하게 보인다.

지역 사투리로 뼝대라고 하는 절벽의 틈을 연결하는 다리가 하늘벽 구름다리로 요즘 여기저기 설치 열풍의 주역인 흔들다리와는 개념이 틀린, 어찌 보면 다리 본연의 역할만 수행하는 짧고 하드한 다리라 여기의 명물은 아니지만 저기까지 가는 길과 더불어 연속되는 절벽과 그 아래 세상을 바라보는 절경이 무척 매력적이다.

사진을 크롭 하면 더 형체를 알 수 있다.

뼝대와 뼝대 사이 짧은 구간을 연결하는 다리치곤 그 위에 서면 다리 신경은 마비되고 떨려온다.

게다가 전망대에서 다리 구간이 감히 최고의 구간이 아닐까 싶다.

 

 

 

 

전망대를 밟으면 깊은 한숨을 몰아쉬기 전에 감탄사를 먼저 뱉게 해 주는 절경에 지금까지의 고행은 감로수의 단맛으로 바뀐다.

다만 16mm 렌즈도 오롯이 담지 못해 하는 수 없이 화각이 더 넓은 고프로로 찍지만 결과물은 기대하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하늘벽 구름다리로 출발, 얼마 지나지 않은 지점부터 길 왼쪽은 수직의 절벽이라 시선은 절경을 훑으면서도 좁고 위태로운 길을 번갈아 쳐다보게 되는데 몸은 초긴장 상태고, 머리와 가슴은 본능적으로 흔들어대는 감동의 연속이다.

1년 전 3월에 방문하여 베이스캠프 삼아 자리를 깔았던 곳을 한눈에도 알아차리고, 그 부근 절벽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의 경쾌한 곡조를 들었다.

사실 위태로운 길에서 심장이 쫄깃쫄깃한데 오래 눈 감을 담력은 없지만 몇 번 밟은 길이라 간은 시나브로 커지긴 했다.

전망대에서 가다 보면 굴곡진 내리막인데 완만해질 무렵이면 잔뜩 신경을 곤두세워 발아래 진행 방향으로 몰입하던 정신머리를 이제서야 사방으로 흩뿌리게 되며, 칼날 같은 절벽의 멋진 지형 또한 감상할 수 있다. 

하늘벽 구름다리로 가는 길은 아찔 한 곳이 몇 군데 있다.

하늘벽 구름다리에 거의 다다른 지점 중 경사면이 심하고 단순 도보가 쉽지 않은 곳에 로프를 잡고 이동해야 되는데 이미 내렸던 눈이 녹거나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음지 길이 질퍽한 곳을 지날 무렵 몇 걸음 질러가겠다고 발을 디뎠다 아슬한 상태로 진땀 흘렸다.

흙이 물러 약간 가파른 경사로 인해 밑으로 슬슬 내려가는데 마땅히 잡을 만한 지형지물이 전혀 없어 잠시 당황했다 다시 돌아 나와 한숨 쓸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을 선택했는데 바로 이 구간 인접한 곳이라 방향에 대한 의문이 들 무렵 등장한 만큼 이 이정표가 반가웠다.

하늘벽 구름다리를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살짝 솟은 지형에서 길은 우회해서 돌아가는데 그 길과 절벽 사이엔 비교적 평탄하면서 솔잎 자욱이 깔린 너른 공간이 있어 거기로 빠져 진행 방향으로 뻗은 칼날 지형을 훑어보자 최종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는 길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지만 단단히 부여잡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있어 조금만 더 힘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하늘벽 구름다리 위에서 동강이 조각해 놓은 미려한 선을 바라봤다.

하늘벽 구름다리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아찔하지만 독특한 장면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인데 옥빛 동강을 따라 수직의 아찔한 절벽이 함께 붙어 길게 늘어선 장면은 그 어느 곳보다 이 자리에서 바라볼 때 웅장한 현장감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비교적 포근한 날이라 추운 겨울 동안 움츠려 있던 한무리 날파리떼가 새로이 다가올 봄을 분주히 준비하느라 아찔한 허공을 유영한다.

만만한 길이 아니어서 구름다리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며 참아왔던 긴장과 기나긴 호흡을 뱉는다.

앞서 들렀던 전망대가 산 중턱에 자리하는데 동면에서 깨어나지 않은 나무가 많아 전망대가 선명하게 관찰되는 걸 보면 겨울도 여느 계절 못지않게 많은 매력이 있다.

수직의 두 뼝대를 연결하는 구름다리는 비교적 오래전에 세워져 세월의 흔적을 고유의 무늬 마냥 빛바래거나 도색이 벗겨진 부분이 많지만 당시로서는 크리스털 바닥이 전무후무하던 때라 유리 위에 섰을 때 익숙지 않은 공포가 꽤나 신선했을 터, 이제는 그 명성이 퇴색되었다 할지라도 이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절경은 분명 차별화된 특색이 있어 다리의 연식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크리스털 바닥은 이미 세월의 흔적으로 아찔함은 없고, 자세히 봐야 발아래 수직의 절벽이 어렴풋이 보인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면 천길 절벽 아래 미려한 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처음엔 무섭고, 다음은 여유가 생기며 마지막은 경이롭다.

다리를 건너 좀 더 진행하면 여느 산과 비슷한 정취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넓고 편평한 솔밭이 나온다.

구름다리까지 오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과정의 반복으로 이제는 좀 대담해졌는지 조금만 평탄해도 밋밋하고 단조로워 어느 정도 진행하다 다시 구름다리로 되돌아오며 이어진 절벽과 나무와 바위에 가려진 구름다리를 바라봤다.

충분히 앉아 절경의 정취에 취해 몽롱한 기분을 넉넉하게 누린 뒤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던 중 절벽 길가 소나무 그루터기에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볼 수 있다.

칠족령과 구름다리를 잇는 유일한 길은 이렇게 아찔하면서 폭도 상당히 좁다.

내가 이 길을 지나왔다고? 이렇게 길 자체만 쳐다봐도 아찔한걸?

양옆이 절벽 낭떠러지라 역치가 극도로 상승해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았나 보다.

돌아가는 길에 앞서 베이스캠프라 지칭했던 이 자리에서 작은 의자를 두고 절벽 아래 세상을 물끄러미 주시했었지.

빈약하지만 작게 내어준 응달에서 땀도 훔치고, 한 모금 물의 간절함도 채웠다.

그리고 끝으로 많이 누그러든 바람과 작별의 아쉬움을 나눈 뒤 다시 제 갈길로 떠난다.

절벽 가운데 동강 할미꽃을 비롯한 봄기운이 시나브로 싹을 틔우려 한다.

전망대를 지나쳐 왔던 길로 내려가다 갈림길에서 백운산 방면을 보고 살짝 오르면 또 다른 동강을 만날 수 있는 능선길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 능선 절벽 아래엔 또 다른 절경이 웅크리고 있었다.

더불어 백운산의 늠름한 기세도 볼 수 있는데 비교적 멀찍이 떨어진 걸로 봐서 칠족령에 비해 훨씬 기나긴 코스임에 틀림없다.

동강이 감싸고 도는 이 마을엔 나리소와 바리소, 고성산성이 있는 만큼 다가오는 겨울 무렵 병방산~제장마을 구간의 숨겨진 이야기를 차근히 들어봐야겠다.

모든 여정을 마치고 원래의 출발지인 문희마을로 돌아올 무렵엔 해가 많이 기울어 가리왕산 휴양림으로 떠나야 했다.

절경은 쉽게 자태를 드러내지 않고, 쉬운 길도 허락하지 않는다.

앞서 영월 어라연 여정이 비교적 수월한 동강의 자태를 탐색할 수 있었다면 이번 칠족령 일대는 짧은 동선에 비해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

다만 어라연은 먼발치에서 굽이치는 절경이었고, 여긴 절경의 접점이란 것.

절경 사이를 위태롭게 걷지만 공포가 마냥 발목을 붙드는 게 아니라 주변의 경관에 심취할 수 있도록 극한의 몰입에 따사로운 손을 전달하여 발걸음이 한층 가볍다.

문명과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자연의 이면이기에 수줍은 자태를 입고 봄처럼 따사로운 연지곤지 찍어 살포시 짓는 미소는 매혹의 도가니에서 출렁인다.

태고의 시간을 들여 날카로운 지형을 만들고, 쉽게 허락하지 않은 발길을 따라 바람도 어쩌면 힘겨워하는지도 모른다.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다독이는 사이 바람과 새의 지저귐이 공감과 공존의 정체성을 찾으며, 미지의 세계를 맞닥뜨린 끝 모를 길을 따라 걷는 사이 산과 강이 빼곡하게 만나 정겨운 넋두리에 심취해 있는 동강, 어디인들 매력이 바랜 곳 없겠냐만 각별히 잊을 수 없는 곳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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