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칠족령의 마법_20190329

사려울 2019. 8. 20. 03:04

파크로쉬에서 이어지는 동선은 지난번과 거의 같다.

정선에 들러 동막골 곤드레밥을 줍줍하고 칠족령으로 넘어가는데 2월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난 반면 이번엔 조금 늑장을 부렸고, 다만 지난번처럼 길을 헤매거나 가던 길을 멈추고 여유의 감상에 젖지 않아 막상 도착 시각은 거의 비슷했다.



동강은 여전히 귀한 생명들의 은신처와도 같은 곳이었다.

물론 꽃을 찍기 위해 들린 건 아니지만 화사한 표정으로 방긋 웃으며 쳐다 보는데 외면할 수 있을까?

신록의 싹이 대지를 뚫기 전, 황량한 물감이 만연한 가운데 가끔 고개를 내밀고 햇살을 한껏 받아 들이는 꽃들의 고운 빛결이 한 눈에 들어와 시선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봄의 정령들은 어떻게 이런 화려하고 화사한 색의 유전자를 깨우쳤을까?

눈이 즐거운 만큼 이런 작지만 오묘한 존재들이 사랑스럽다.


칠족령을 향해 거침 없이 출발, 저질 체력을 극복하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고충을 겪으며 힘겹게 칠족령으로 가는 길에 볼 수 없었던 봄의 흔적들이 목격된다.




생강나무의 꽃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향은 화려하다.

겨우내 간직했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봄 대기에 충분히 나눠줄 만큼 가진 게 많다.





바람꽃이 활짝 폈다.

다른 곳에선 없는데 유독 한 자리에 군락지를 형성했고, 밀림의 사자 마냥 무리는 짓지만 조밀하게 붙어 있지는 않는다.



가파른 낭떠러지에도 빼곡한 나무숲 사이 생강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드뎌 칠족령 전망대 도착.

여전히 빼어난 절경의 극치를 보여 주는 동강과 그 주변을 둘러싼 절벽 능선이 보인다.



이번엔 하늘벽 구름다리 길로 가되 도중에 멈춰 충분히 쉬면서 이 절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좁은 길과 양 옆의 절벽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감상엔 소홀했던 지난 여정의 아쉬움이 컸기에 이번만큼은 목적지에 대한 집착보다 절경에 좀 더 세밀한 신경을 쓰면서 여유롭게 절벽길도 감상한다.




한 번 다녀왔다고 이제는 멀리서 보이는 좁쌀만한 구름다리가 눈에 띄인다.

봄철 황사에 미세 먼지는 늘 따라다니는 공식이 되어 버려 청명한 대기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이번만큼은 대기 중 미세 먼지 농도가 심하지 않아 먼 거리에서도 구름다리가 비교적 선명하다.

그와 더불어 역시 카메라 렌즈는 좋은 걸 쓴 보람이 있다...지만 이제야 실감하는 싸구려 안목과 실력을 조금이나마 깨치게 되었다.



여전히 절벽과 급한 경사가 양 옆에 포진한 좁은 길을 걷는다.

종종 이런 돌무리가 한 쪽면의 낭떠러지를 막아 주기도 해서 고맙긴 한데 결국 길이 험난해지는 부작용도 있다.

바위 계단 같은 길을 걸어야 되는데 길 자체가 좁아 이마저도 위험하다.



폭이 가장 좁아지는 구간은 이렇게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 양 옆으로 절벽과 급한 낭떠러지가 인접해 있다.

길이 이러니 주위 절경을 마음 편하게 감상하기도 쉽지 않고, 걷는 도중 길 곳곳에 드러난 돌뿌리도 같이 신경을 써야 되는 실정이라 자칫 발을 헛디디거나 돌뿌리에 걸리면 상당히 위험하다.

자연적 걷는 동안 고양이 털끝이 쭈뼛 서듯 온 몸에 긴장이 잔뜩 들게 된다.

그래서 주변을 감상하는 것보단 차라리 가는 길을 신경 쓰는게 더 영양가 높은 선택이다.



처음엔 거의 의식하지 않은 동강할미꽃을 보게 되자 욕심이 생겨 사진을 찍으며 앞으로 가야 될 길을 잊어 버리고 무아지경에 빠져 들었다.

대부분 길에서 잘 보이지 않는 절벽 중간중간 작은 공간에 할미꽃이 서식하다 보니 그 꽃을 보는 시선이 자칫 절벽 가장 아래로 향하는 순간 모골이 송연하다.

그래도 사람의 욕심이란...


절벽에 핀 동강할미꽃은 주체할 수 없는 수줍음에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만큼 매혹적이고 도도하다.

바람조차 그들을 도우려 세차게 흔들어 설사 할미꽃을 보더라도 촬영은 커녕 제대로 감상하는 것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제장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베이스캠프(?)를 잡고 에너지 보충과 갈증 해소를 한다.

아직은 봄이 완연히 내린 곳이 아닌 만큼 햇살이 따가운 날이라 그늘이 거의 없어 아주 작은 공간에 소나무 가지가 만들어 놓은 좁은 그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때마침 헤드스트랩에 고프로를 끼워 촬영 상태를 유지한 터라 지금까지 녹화된 영상도 훑어 볼 겸 쉬다가 오늘은 여기까지만 나아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영월에 들러 서강을 만나기로 했다.



마치 칼 끝을 걷는 기분.

좌측은 수직 절벽, 우측은 가파른 낭떠러지에 유일한 길은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다.

좌측은 강풍이, 우측은 바람이 잠잠하다.

이 위태로운 길을 걸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이 진중해지고, 가끔 둘러 보는 주변 경관은 천혜의 장관이다.

쉽지 않으면 가치가 더욱 증폭된다.

늦었지만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을 알게 되어 설렌다.

사람이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좁은 길에서 땀을 훔치다 보면 다가온 계절의 내음과 지나가던 바람의 세상 이야기가 장엄한 곡조 마냥 속삭인다.


이런 감상에 젖을 무렵 난 어느새 다시 찾아올 기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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