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영덕 동해안 절경을 품은 상대산 관어대_20240118

사려울 2024. 4. 3. 10:49

 

더욱 찌뿌둥하고 굵은 비가 내리는 이튿날, 해파랑길은 무리라 이참에 쭈쭉빵빵한 전망 좋은 곳을 골라 이동하다 마을 입구 한 무리 멋진 나무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평화로운 동네에 길을 사이에 두고 몇 그루 소나무 선배님들이 저마다 멋진 포즈 취하는데 쌩까면 이 어찌 후회로 보답받지 않을쏘냐.
곧게 하늘로 향하며 절개를 새긴 소나무.
하늘로 향하다 하늘 가려 나그네 지켜주는 소나무.
휘어짐과 뒤틀림, 나아감과 물러섬을 모든 가지에 되새긴 팽나무.
하늘 향해 방사형으로 흩뿌리는 소나무.
그 관용과 포용에 앞으로의 여정을 기원하며 대선배님들께 인사드리고, 바다로 향했지만 파도 개거침, 바람 개세차 출입 통제에 굴복하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약속한 상대산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거의 지식이 없던 영덕이 개 멋짐 하는 순간이었다.

 

영덕 괴시리 팽나무는 고려말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시인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이름 지은 괴시리를 지키고 있는 희귀하고 특별한 나무다. 관어대마을 어귀 도로변에서 마을 입구임을 알리는 이정표 구실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정자나무로 이용해 왔으며 최근에는 나무 주변을 마을 근린공원처럼 단장했다.
괴시리 팽나무는 수령이 400년쯤 되고 높이가 17m쯤, 가슴높이 둘레는 2.6m쯤 된다.
팽나무와 바로 곁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와 느티나무 몇 그루가 함께 어우러지며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숲 안의 나무 여러 그루 가운데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팽나무뿐이다.
[출처] 영덕 괴시리 팽나무_뉴스퀘스트(https://www.newsquest.co.kr)
 

[한국의 보호수-①경상북도편] 영덕 괴시리 팽나무(215) - 뉴스퀘스트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

www.newsquest.co.kr

숙소에서 일어나 괜히 늑장을 부리곤 하루 시간이 아까워 뒤늦게 호다닥 챙겨 고래불해변 방향으로 무조건 내달렸다.

전날 오후부터 추적추적 내린 비가 그칠 기미가 없었고, 동해 강풍의 위력이 실감 나던 하루였는데 그럼에도 쨍한 햇살 대신 전반적으로 조도가 약하긴 해도 대기가 청명한 날이라 영해 방면에 접어들어 직선으로 쭉 뻗은 7번 국도가 유난히 스원하게 트였고, 그로 인해 병곡까지 달리는 대신 영해에서 내려 해변으로 향하던 중 해안의 작은 산을 발견하곤 짧게나마 정보를 수집해서 곧장 거기로 향했다.

거의 도착할 무렵 마을 초입의 한적한 도로가에 몇 그루 소나무가 멋있어 잠시 정차를 한 뒤 일일이 소나무 행님들께 인사드렸다.

넘나 평화로운 마을 초입의 쉼터와 소나무 조합이 멋짐 한데 특히나 소나무는 저마다 고유명사처럼 자태가 남달랐다.

 

 

우측은 문을 닫은 식당이었고, 우회전을 하면 상대산 관어대로 가는 길이란 입간판이 있어 거리가 가까운 곳이라 나름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바로 좌측 버스정류장 앞 소나무로 마치 하늘을 떠받치는 품세였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나무는 두 그루 나란히 자리 잡아 하나는 위로 곧게 뻗었고, 다른 하나는 대조적으로 조금 위로 뻗다 이내 사방으로 뻗으며 거기서 나온 또 다른 잔가지들은 다시 흩어지고 뒤틀렸다.

무척 인상적이라 주변을 돌면서 두 그루 나무를 정독했는데 곧게 뻗은 나무는 절개를, 사방으로 뻗는 나무는 세상만사를 되새겼다.

언뜻 보기에도 마을을 지켜주시는 등빨 행님들이라 잠시 후 오르게 될 상대산 여정도 허락해 주십사, 그리고 무사히 여정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인사드렸다.

상대산 관어대를 위해 마을에 조성된 주차장에 차량을 두고 사방을 둘러보자 첫인상만큼 평온한 마을이었고, 상대산 관어대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어 어렵지 않게 상대산으로 향했다.

더불어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시골 마을임에도 무척 깨끗한 공공 장실이 있어 홀가분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관어대를 가리키는 이정표에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었고, 전방 산허리로 향하는 길이 금세 눈에 들어왔다.

길 양 옆은 고풍스런 집이 너른 간격을 두고 자리 잡았고, 길은 산 초입까지 아스팔트로 포장된 상태였다.

상대산 정상이자 관어대로 가는 초입.

길을 지킴과 동시에 일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물론 취지가 그런지 모르지만 최소한 이렇게 조성함으로써 무분별한 훼손을 방지할 수 있다는 소견- 선명한 길을 내어 놓았다.

길은 찾기 쉽고 비교적 완만해서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되겠다.

계단길이 끝나고 이내 야자매트길로 이어졌다.

헷갈릴 성싶으면 적당히 시안성 좋은 자리에 이정표가 땋!

길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근본은 거의 같았다.

우측 나뭇가지에 벌건색이 보여 순간 놀랬다.

선지로 착각할 수도..

갈림길에서 관어대만 바라보고 걸었다.

목은기념관은 상대산으로 오는 길에 지나쳤던 목은이색기념관으로 아마 이용했던 길은 최근에 조성되었고, 그전에 이용하던 길이 아니었나 싶었다.

이정표 상 두 간판의 빛깔이나 오래된 정도가 완연히 다르기도 했다.

길은 대체적으로 완만하며, 소나무 숲이라 그런지 공기 중에 은은한 솔향이 폐부로 들어와 머리를 맑게 다스렸다.

이렇게 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훼손이 많아 보이긴 했는데 도중 곁길들을 보면 모세혈관처럼 희미한 것들도 많았다.

그래도 이 길을 만들어 가이드를 쳐놓아 다른 곁길로의 통행을 방지한 만큼 이제부터라도 무분별한 훼손을 방지하자는 취지 같았다.

어느 정도 길을 걷자 다시 갈림길이 나왔고, 바로 좌측엔 전망바위가 있었고, 우측엔 정상 관어대로 향하는 오르막길이었다.

우선 정상으로 궈궈!

정상에 거의 근접한 것 같았는데 치악산의 사다리 병창길을 방불케 하는 가파른 계단길이 나왔다.

물론 오래 가지 않아 정상에 다다르게 되는데 의외로 가파른 구간이 있을 줄이야.

나무 계단이 끝나면 길의 소재가 바뀌며 정상이 임박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바닥엔 언뜻 돌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자연석이 아닌 시멘트로 만든 인공석이었고, 교묘하게 찍어내긴 했어도 금세 티가 나긴 했다.

이 정도 진행하게 되면 점점 시야는 멀리 트였다.

그러다 좌측으로 접어들자 바로 관어대가 있는 정상이 나타났다.

 

 

명사십리 파수꾼이자 천리안 등골 끝에 닿아 양면의 모습, 겨울 바다의 실체와 이상에 찬가를 외쳤다.
평화롭던 마을 어귀에서 숲의 바람 노래를 들으며 차근히 오르다 어느 순간 길은 아름다움과 미지로 갈리는 두 갈래 길에서 사다리 병창길을 연상시키는 짧은 계단길 올라 나선형 트인 길을 지나면 사람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사방 트인 전망대가 맞이했고, 외로이 솟은 세 갈래 나무가 반겨줬다.
높지 않은 산이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할 엔 홀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산과 함께 하는 들판이 바다처럼 정체성에 기립하거나 중력이 잔뜩 조인 바다가 가슴 열어 품어줄 수밖에.
서로 다른 두 지형이 맞닿는 점에 홀로 서서 두 존재의 화합인 명사십리 푸르고 노란 물감 뒤섞여 감히 탄성을 쏟았다.
명사십리가 보배라면 상대산은 보석함이었다.

관어대 바로 앞에 서서 영해 방면을 내려다봤다.

동해와 인접한 곳에 얼마 되지 않은 너른 평야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다.

관어대(觀魚臺)는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정자로 상대산(上臺山)[183m] 정상에 있다. 상대산은 성황당산(城隍堂山)이라고도 불린다. 상대산 정상에 올라서면 서쪽은 바위 절벽이 있고, 동쪽으로 동해가 펼쳐져 있다. 북쪽은 백사장을 끼고 울진군 후포면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포항 호미곶을 바라볼 수 있다. 현재의 관어대는 2015년 건립된 것이고, 원래의 관어대는 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절벽에 있었다고 한다.
[출처] 관어대_디지털영덕문화대전

물밑에 노니는 물고기를 헤아릴 만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관어대란다.

영해 평야라고 해야 되나?

흐린 날인데도 대기가 무척 청명해서 가까이는 크게 굽이쳐 달리는 송천의 물줄기부터 멀리는 장벽처럼 뻗어있는 첩첩 산줄기까지 비교적 선명하게 보였다.

관어대 우측으로 접어들면 길고 너른 명사십리 해변이 발아래 펼쳐졌다.

관어대에서 대진항 방면으로 조금 내려가면 대진항 일대, 바다전망대가 보였다.

세찬 바람의 위용을 알려주듯 해안으로 연신 뻗어나가는 하얀 물거품이 갯바위를 채색했다 이내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 정도라면 관어대는 관동대라 불려도 손색없을 정도.

명사십리와 함께 상대산에서 가장 인상적인 소나무는 세 갈래 굽이치며 사이좋게 하늘 향해 뻗어있었다.

세찬 바람에 비가 관어대 내부까지 흥건히 적셔 놓았고, 심지어 물이 고여 있는 곳도 있었는데 바닥이 전반적으로 젖어 있어 맨발로 딛자 양말이 이내 젖어버렸다.

이왕 젖은 김에 양말을 벗고 편하게 다니며 사방을 훑어봤다.

명사십리 방향.

대진, 덕천, 영리, 고래불해변이 연달아 이어져 하나의 기다란 모래사장을 이렇게 명명해 놓았다.

명사십리 해변은 2개 면, 4개 리가 엮인 꽤 규모가 큰 해변으로 관어대에서 바라보면 그 규모가 실감 났다.

그중 고래불해변은 가장 처음 찾은 해수욕장으로 초교 당시 한참을 달려 도착했고,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에 미역이나 파래가 꽤 많이 섞여 있었다.

물론 세세한 지형적인 특징은 기억을 못 하지만 첫 경험에 대한 상징성은 일평생 잊을 수 없다.

관어대 세 줄기 소나무를 마지막으로 감흥이 채 사라지지 않은 상대산을 하산하기 시작했다.

해안에 우뚝 솟아 해발 고도가 낮은 산이지만 내려가는 길 한쪽 방면은 거의 절벽 수준이었다.

오를 때 몰랐지만, 그리고 무성한 소나무에 가려졌지만 발치에 영해 평야가 바로 펼쳐져 있었다.

산에 오를 때 마지막 갈림길에서 슬쩍 봤던 바위전망대는 하산 때 들렀다.

이 광경 또한 무척 아름다웠다.

흐린 날의 청명한 대기와 산허리 솜처럼 뿌려진 구름 사이를 비집고 달려온 송천과 벌판이 가슴에 떠있었다.

그렇게 달려온 송천은 명사십리가 널어놓은 자리에서 바다를 타고 세상에 뿌려졌다.

내려가는 길은 오를 때 밟았던 궤적을 그대로 되짚었다.

평온한 마을의 정취가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달콤했다.

이 달달함 어쩔!

하늘의 혈관처럼 겨울나무는 마을 공기로 뻗어 파고들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상대산 행적을 눈으로 그렸고, 그 행적의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역시 오길 잘했다는 만족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 만족감을 그대로 안고 다음 행선지, 대진항과 명사십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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