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해안의 친근한 혈관,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_20240117

사려울 2024. 3. 28. 00:18

23년 봄 이후 다시 찾은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부분적으로 당시 수해가 복구되긴 했지만 그 길에 잠재된 정취는 그대로였다.
세찬 겨울바람과 달리 바다는 온화했고, 어촌 마을은 그지없이 평화로웠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시작하여 호미곶까지 약 18km의 첫 구간인 선바위 힌디기까지는 접근성이 좋았고, 바다 위 데크길과 그 주변 기암의 상호작용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과 같은 지점을 향해 앞서거니 하며 짧은 시간이나마 길의 풍미를 공유하는 동안 그 매캐한 매력 위에 노 저어 유유히 흘러갔다.

 

파도와 동행하는 시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1_20230508

호미반도를 에둘러 인간의 자취는 선명했다. 비바람의 예봉이 꺾인 이튿날에 해안둘레길을 다시 도전, 다행히 자연이 허락을 해주고 길을 내준 날이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도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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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 -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 흥환간이해수욕장 6.5km / 약 2시간 소요
* 포항역에서 시내방면 승차(107·500·501), 죽도시장에서 환승(101·200), 동해면사무소 하차 동해지선버스(09:10, 14:00, 16:20) 탑승,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하차
*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포스코방면 101 승차, 동해면사무소 하차 동해지선버스(09:10, 14:00, 16:20) 탑승,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하차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포스코방면 200 승차, 동해면사무소하차 동해지선버스(09:10, 14:00, 16:20) 탑승,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하차
* 주소 : 포항시 남구 동해면 호미로 3012(연오랑세오녀 문화공원)
* 동해면사무소에서 동해지선버스가 자주 없으므로 택시를 이용해도 됨(3.2km)
[출처] 호미반도 해안둘레길_경북나드리_여행작가이순영
 

경북나드리

경북나드리 소개페이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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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출발, 무거운 하늘에도 수평선은 선명했다.

걷기에 먼 길이지만 거리를 잊기에 충분한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주차장에서 해안둘레길로 향한 이정표는 선명했던데다 이미 지난봄에 여정의 기억이 생생하여 순풍을 탄 돛단배처럼 망설임 없이 길에 들어서 잰걸음으로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음엔 1코스부터 시작해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여기를 출발점으로 잡아 어쩔 수 없군.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주차장에서 바로 옆 텅 빈 사설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전, 살짝 비소식이 있긴 했지만 강렬한 햇살을 쏟아지는 것보다 활동하기 수월한 날씨라 왕재수!

현재 운영을 하지 않는 민간 시설의 주차장을 가로질러 초원 같은 바다 절벽 위로 향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길섶 소나무의 자태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인가가 없는 바람의 언덕 같은 곳.

살랑이는 바닷 바람이 겨울치곤 포근했다.

춥든 포근하든 길 위에는 겨울만의 정취가 녹아있고, 계획했던 여정이라 바다의 심술만 없다면 어떻게든 여정을 끝내리라 다짐했기 때문에 날씨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초원 같은 언덕을 지나면 길 옆은 바로 바다와 낭떠러지를 경계로 했다.

이런 길 은근 멋진 데다 시야가 탁 트인 동해의 특징이 그대로 펼쳐져 있어 순간 동안 시간이 멈추길 바랬다.

얼마 걷지 않아 바다 절벽 위 전망대와 해안둘레길로 진행되는 갈림길에 도착, 의례히 전망대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동해 뻥뷰가 돋보이는 작은 전망대에 도착.

뭍에서 한 치 더 높다고, 더 나아갔다고 보이는 것들이 확연히 달라졌다.

첫 전망대에서 길에 대해 묻고 스스로에게 잘했음을 답했다.

걸어왔던 방향으로 뒤돌아봤다.

출발하기 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건 이번 여정의 탁월한 선택에 명징한 확신이 들었다는 것.

몸을 돌려 가야 될 방향으로 응시하며 하나를 기원했다.

목표인 호미곶까지 추호의 의심 없이 걷겠지만 별 탈 없이, 또한 길섶 이야기들을 정독할 수 있도록 자연의 응원을 바랬다.

댕이 하나 사람들 무리 속에 뒤섞여 있어 일행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안 사실로 사람들이 데리고 온 게 아닌 해안둘레길로 진행하다 보면 첫 갯마을에 사는 녀석으로 주변을 자유롭게 다니는 똑똑한 녀석이었다.

데크길을 벗어나 호미곶을 연결해 주는 929 도로에 잠시 합류,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고, 예상대로 진행할수록 인적은 점점 뜸해졌다.

멀리 한 무리 인파 또한 단체로 해안둘레길을 찾은 사람들로 저 지점부터 도로에서 벗어나 해안 따라 내리막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929 도로에서 갈라져 바닷가 도로길로 진행했다.

한 무리 인파는 넥스트랩에 단체 이름표를 달고 있었는데 잠시지만 조용한 어촌마을에서 반가운 소음을 들려줬다.

입암1리 마을에 다다를 무렵 한 무리 인파가 지나쳤다.

가야 될 길이 멀지만 주눅 들지 않았던 건 바다와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것들이 동행하기 때문이었는데 이 순간부터 가슴이 넓어졌다.

좀 전 인파 사이를 비집고 달려가던 댕이 녀석을 만났다.

누굴 기다리는지, 아님 마을을 지키는 건지 모르지만 평온한 마을답게 무척 온순했다.

입암1리 마을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해안둘레길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었는데 짧은 데크길을 지나면 해안둘레길 바로 옆에서 동해 파도가 생동감 넘치는 연주를 하고, 종종 파도가 거칠어지면 길도 넘나들게 되지만 이번만큼은 축복받은 날이라 파도가 찰랑이는 피아노 독주처럼 잔잔했다.

바다 위를 지나는 데크길은 비교적 짧은 편이나 이건 어디까지나 예고편에 불과했다.

전방 멋진 전망을 가진 머메이드 간판이 보였다.

머메이드 간판을 지날 무렵, 바다와 인접한 곳이라 그 사이 아주 비좁은 틈바구니로 해안둘레길이 이어졌고, 역시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해안둘레길의 파릇한 매력이 넘실거렸다.

이런 여러 형태의 길은 누가 기획했을까?

진심으로 응원했다.

바다의 진심을 알고 싶다면 이 길가 바다를 떠올릴 만큼 강렬했고, 선명했고, 정겨웠다.

머메이드를 지나면 길의 형태가 사라졌고 그러다 얼마 진행하게 되면 다시 길의 형태가 조립되는 흔적이 있었는데 지난번 수해로 홍역을 앓았던 곳으로 부분적으로 복구가 진행 중이었다.

걷기 편한 길을 바란 게 아니라 질감을 느끼고 싶은 바로 그곳이라 걷는 속도는 급격히 떨어지더라도 전혀 나쁘지 않았다.

길의 나침반.

이런 표식이 어느 순간부터 정겨워질 예정이었다.

선바우로 접어들기 전, 입암2리 마을 포구를 지났다.

전방에 선바우가 보이는 마을 주차장에서 어촌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

선바우에 접어들기 전에 보이는 공공 화장실에서 남은 숙원을 풀어야 했다.

선바우에서 힌디기까지는 지금까지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이 땅의 이야기와 사람들이 주입한 전설과 설화들, 그리고 바다와 함께한 이야기들이 선바우를 위대하게 만들었고, 그 이야기들을 듣고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실제 이날도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부터 선바우와 힌디기까지였다.

바다 위를 지나는 데크길을 밟자 경쾌한 발자국 소리가 "통통"거렸다.

출발할 때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몇몇 무리의 분들이 있었는데 앞으로 진행하는 속도는 내가 빨랐음에도 사진을 찍거나 주변 경관을 감상할 때는 한 동안 멈춰 서서 목석처럼 굳어 있는 사이 걸음은 빠르지 않았지만 꾸준하게 걸었던 덕분에 진행 속도가 비슷했고, 선바우에 접어들어서는 전체적으로 걷는 속도가 뚝 떨어지다 보니 거의 동행하다시피 했다.

고이 묻혀 있던 땅의 역사를 파도가 들춰 몇 세대에 걸쳐 기록해 놓은 걸 알 수 있었다.

바다 전망을 놓지 않으면서도 바다와 인접한 구간의 숨겨진 이야기는 무척 신비롭기만 했는데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었고, 길을 지날수록 바위의 재질도 점점 달라졌다.

그와 더불어 발아래 쉼 없이 철썩이는 바다의 맥박 소리가 곁들여져 마치 바다의 일부이자 지각의 일부란 착각이 들었다.

파도가 조각해 놓은 기묘한 형태의 폭포바위란다.

바위 위에 뾰족한 부분이 남아 이 또한 기묘한 모양새다.

이 구간 바다 데크길은 다른 곳에 비해 조금 긴 편이었다.

그래서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진동이 발바닥에 고스란히 전달되어 가까워졌다 멀어지길 반복했다.

완전히 다른 재질의 바위가 속에 박혀 있었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계속해서 늘어서 있었는데 형태가 그렇거나 아님 시각적 질감이 그러했다.

이 바위는 지나서 보면 댕댕이 모습 같기도 했다.

아니면 말미잘 같거나.

장벽처럼 늘어선 바위를 따라 길도 굽이치고 휘어졌는데 진행할수록 바위의 질감과 빛깔이 점점 바뀌고, 그로 인해 정취도 변해갔다.

무심히 떨어져 나온 바위는 생명이 있어 직접 걸아간 걸까?

아님 포세이돈이 나른 걸까?

바위도 그렇지만 크고 작은 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모습도 자세히 보면 나름 진풍경일 수 있겠다.

댕댕이 같은 바위.

어찌 보면 스핑크스 같기도 한데 네 다리가 표현되었고, 곧 도약할 자세 같기도 했다.

머리만 보면 까까머리나 말미잘 같다.

아마도 해안둘레길 통틀어 이 구간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었다.

마치 전체가 하나인 양, 그리고 조물주가 빚은 양.

바다 데크길은 선바우에서 시작하여 힌디기에서 끝나는데 앞서 바위가 의인화를 통해 생명을 불어넣었다면 힌디기는 생명을 기원하는 재단 같은 형세였다.

물론 이 구간 데크길이 끝나도 짧은 해변을 지나면 다시 데크길로 이어지긴 했다.

하나의 거대한 암반처럼 바다 아래도 바위였고, 그 위를 옅은 파도가 찰랑거렸다.

아기발 바위라는데 잔잔한 파도가 다가와 아기발바닥을 간지럽혔다.

힌디기의 자태를 보자니 충분히 설화가 깃들만했다.

누군가는 염원을, 또 다른 누군가는 성취를 담아두는 작은 바위 동굴이 옅은 깊이긴 해도 선명하게 뚫려 있었다.

힌디기를 지나 하선대 바다 데크길로 향하며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해안둘레길의 정취란 게 해안선을 따라 교묘하게도 이어져 있고, 길의 형태도 다양했다.

출발지부터 비슷한 속도로 진행하던 한 무리 사람들은 힌디기를 지나 흥환간이해변에서 방향을 달리했다.

거대한 바위 지형에 바다와 모래가 뒤덮고 있는 해변을 지났고, 이번 바다 데크길은 하선대를 관망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

이 작은 해변은 굵은 모래 입자와 작은 조약돌로 이루어져 해수욕장으로의 역할은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육안으로 봐도 바다 밑이 편평하고 너른 바위라 나 같은 수린이 수준에 적합했다.

하선대로 향하는 바다 데크길에 접어들어 왔던 길과 힌디기를 되짚어봤다.

뒤돌아봄은 목적의 상실과 표류가 아닌 미련의 원초적 반응으로 만날 것들과 지난 것들에 대한 집착이기도 했다.

사선 형태의 지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위 절벽 위에 해파랑길 펜션이 보이는데 이 데크 구간은 비교적 짧아 여기를 지나면 먹바우와 마산리 마을이 기다렸다.

길이 바위 절벽 뒤로 돌아가는 지점에서 하선대를 가장 생동감 있게 관찰할 수 있는데 때마침 갈매기와 가마우지? 바다 까마귀? 가 하선대에 앉아 휴식을 때리고 있었다.

데크 위를 걸어 하선대에 도착했다.

선녀의 전설은 하늘로 올라가고, 이제는 바다 생명의 쉼터가 되어 버렸다.

하선대를 지나면 이내 마산리 마을로 접어드는 초입이 나왔다.

이렇게 잔잔한 동해 바다와 평행하게 걸었지만 피로감을 잊은 상태로 계속해서 걸었다.

먹바우(검둥바위)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정유157)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부부로서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다에 가서 해조를 따고 있던 중, 갑자기 한 바위가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이는 비상한 사람이다」 그래서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그 남편이 돌아오지 않음을 괴이히 여겨 가서 찾다가, 남편의 벗어놓은 신이 있음을 보고 또한 그 바위에 올라가니, 바위는 또한 그전처럼 세오를 싣고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보고 놀라서 왕께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세오를 귀비로 삼았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이 없어지니, 일관이 말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이 지금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이런 괴변이 일어났습니다」 왕은 사자를 일본에 보내어 두 사람을 찾았다. 연오는 말했다.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이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비(妃)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거요」 이에 그 비단을 주었다. 사자가 돌아와서 아뢰었다. 그 말대로 제사를 지냈더니 그런 후에 해와 달이 그 전과 같아졌다.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며,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했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연오랑세오녀 신화이다. 이 검둥바위가 연오랑 세오녀를 싣고 간 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먹바우에 도착.

길을 걸어도 크게 힘들거나 피로감이 없는 이유, 바로 이야기와 볼 것들이 지나는 사람들에게 마법을 걸어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힘든 과정을 잊게 하기 때문이었다.

먹바우 일대 짧은 모래사장을 지나면 마산리마을로 접어들게 되는데 지난번 길목을 지키던 댕댕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산리 마을 방파제를 지나며, 테트라포드에 갈매기들이 각자 자리를 꿰차고 휴식 중이었다.

해안 따라 길게 늘어선 마을을 지나는데 톳 같은 해초가 무척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저거 반찬에 무쳐 먹거나 밥과 같이 해 먹으면 개꿀맛인 데다 특유의 식감으로 인해 씹는 재미도 있어 종종 먹었다.

왜 저걸 뒤늦게 알았을까?

방파제쯤 왔을 때 이정표를 보자 출발지에서 2.9km 걸어왔고, 2코스 선바우길의 끝인 흥환간이해변까지 약 1.9km 남았다.

해안둘레길은 마을 끝 방파제에서 해변으로 꺾여 흥환해변까지 1.2km를 인가가 없는 구간에 진입했다.

방파제에서 앞으로 가야 될 길을 보면 지나왔던 길과 또 다른 느낌의 해안 코스로 바다와 나지막한 언덕 끝자락이 맞닿는 바람에 길은 바다 위 데크길로 걸어야만 했다.

지난번 찾았을 때는 이 구간 파도가 비교적 강해 일부 데크길은 넘실대는 파도에 바닥이 젖어있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해안둘레길이라 주저 없이 길을 걸었다.

마산리를 지나 인가와 작별하고 바다와 낮은 언덕 사이 공백 지대를 걸었다.

앞서 가시는 분은 마산리에서부터 걸어가시는 분인데 바다에서 무언가를 채취하는 현지인이었다.

돌을 엮어서 해변에 조성한 길을 어느 정도 걷자 바다 위로 지나는 데크길이 가까워졌다.

장대 같은 키의 힌디기 해안 절벽과 달리 여긴 나지막한 높이지만 바다와 바람이 문질러 다듬은 듯 기암보단 대체적으로 매끈했다.

바위의 뽀얀 속살이 드러나 뜨거웠던 지구를 가늠케 했다.

아라힐펜션 부근에서 데크길이 끝나고 다시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해변을 걸었다.

내 걸음이 비교적 빠른데도 불구하고 앞서 가시던 분은 축지법을 쓰는지 그리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성큼성큼 멀어져 갔다.

가끔 걷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거나 사진을 찍는 짧은 시간을 뺀다면 그래도 걷는 속도를 올렸었는데 잠깐 사이 거리를 벌어진 걸 보면 현지 주민이 아닌 바다 신선이었을까?

우측 오르막 계단은 아라힐펜션과 연결되는 길로 묵혀진 시간을 예상해 보면 해안둘레길이 조성되기 이전에 왕래가 가능하도록 만든 길 같았다.

다시 바다 데크길에 올라서 뒤돌아 왔던 길을 둘러봤다.

하선대 이전에 거쳐왔던 곳은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 이후 먹바위나 마산리 마을 일대부터 까마득하게 줄지어 서 있었으며, 해초가 인상적으로 많던 일대라 바다엔 톳 같은 해초가 찰랑이는 파랑에 몸을 맡겨 넘실거렸다.

한참을 걷다 문득 이렇게 뒤돌아보면 왔던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만큼 왔던 과정의 기억은 선명한데 시간의 흐름은 무뎌져 역시나 해안둘레길에 온연히 몰입했었나 보다.

데크길에서 마주한 군상바위는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옆으로 늘어선 사람들을 연상시켰다.

이런 걸 보면 이걸 유추해서 명명하는 것도 대단했다.

군상바위를 지나면 이내 짧은 데크 오르막길로 전망대에 다다르고, 이게 2코스 선바우길의 마지막 데크길이기도 했다.

대략 육지의 솔미재 아래 정도 위치한 해안길 구간으로 여기를 끼고돌면 바로 흥환간이해변이었다.

전망대에서 포항 시내를 바라보면 정말 까마득히 멀어졌고, 그래도 대기 공기질이 좋은 편이라 시계는 선명했다.

거친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한 무리 새들이 부러운 순간이었다.

전망대에서 진행 방면을 바라보면 바로 흥환해변과 그 너머 흥환리, 발산1리 마을이 보였다.

출발지에서부터 비슷하게 걸어왔던 한 무리 사람들은 여기까지 여정을 마무리하고 원점으로 회귀하는 차량을 기다렸고, 그로 인해 짧은 동행의 줄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한 구간 바다 데크길과 작별하기 전, 엄지를 세우듯 길도 봉긋 서서 뒤돌아설 때까지 바라볼 태세였다.

흥환간이해변을 분기점으로 드문드문 보이던 사람들도 자취를 감췄는데 여기까지는 비교적 걷기 수월한 편인 데다 접근성이 좋아 최종 목적지인 호미곶을 제외한다면 사람들이 가장 많은 코스이기도 했다.

흥환간이해변은 비교적 규모가 큰 해변으로 모래알은 비교적 굵지만 거칠지 않았고, 해변 정중앙에 공공화장실이 있었는데 지난번 여기를 이용하면서 느낀 점은 악취가 심해 다음부터 굳이 이용하지 않기로 해서 이번엔 패쑤!

대신 해변이 끝나는 지점에 노란색 신축 공공화장실이 있어 거기에서 해결하는 편이 훨 나았다.

숙박시설과 카페가 있는 지점을 지나며, 여타 해안둘레길에 비해 조성된 지 오래된 흔적이 역력한 길인데 그나마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여기 일대가 사람들 왕래가 많은 편이었다.

길에 냥이 한 녀석이 웅크리고 있다 어차피 가야 될 길이라 녀석을 부르며 걸음을 옮기자 쏜살처럼 달아나 전방 데크길 쪽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 가방에 츄르와 밥을 챙겼었는데 아쉬웠다.

해변이 거의 끝날 무렵 데크길은 교묘하게 민가와 해변 사이를 지났다.

공식적으로 해안둘레길 2코스의 마지막인 보건진료소 부근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다리 부근이 한창 공사 중이었는데 이제는 그 날카롭던 소리가 사라져 마을 전체가 고요했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시작된 해안둘레길 2코스 선바우길은 6.5km를 지나 3코스인 구룡소길에 바턴을 내어줬다.

하늘은 여전히 무거운데도 대기는 청명했고, 걸어왔던 길에 비해 아직 가야 될 길이 훨씬 더 많이 남았음에도 지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여행은 첫출발이 가장 힘든 만큼 출발하는 순간 극도로 몰입하며 즐기게 되고, 그로 인해 후회를 하지 않게 되는데 특히나 해파랑길과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바다에 대해 생경했던 편견을 깨부수며 산과 다른 매력을 깨우쳐줬다.

그 이후 바다 둘레길을 하나씩 깨닫는 중인데 회귀본능인지 처음 그 매력을 깨쳐준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다시 찾았던 만큼 그리 설레던 조바심이 어느새 희열로 바뀌던 순간이었고, 이어 3코스 구룡소길의 매력을 빨리 답습하기 위해 쉼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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