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척이다 잠에서 깨어 자리를 박차고 나와 텅빈 것만 같은 시골 마을의 새벽 공기를 마주했다.
아직 여명 조차 서리지 않은 새벽이지만 조금 있다 보면 뉘적뉘적 여명이 암흑을 깨치고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허공을 서서히 밝히기 직전의 시각이라 아무런 인적도, 날벌레도 없는 이 자리에 서서 이슬 내음이 살짝 실려 있는 새벽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신기하게도 가로등 하나 밤새 불이 들어와 위안이 된다.
이 빛마저 없었다면 멍한 암흑에 얼마나 심심하고 적막 했을까?
마치 황망한 대해에서 만난 등대처럼 이 빛이 내려 쬐이는 곳을 거닐며 세상에 동등하게 뿌려진 대기를 찬찬히 훑는다.
처음 이 자리에 섰을 당시 같은 자리에 가로등이 있었지만 시간의 굴레처럼 빛 바랜 전등이 힘겹게 뿌려대는 빛도 지금처럼 의지할 곳 없는 대해에서 든든한 위안이 되곤 했었다.
얼마 서 있지 않았는데 벌써 동녘 하늘에 여명이 자욱하게 밝혀진다.
생강이 빼곡히 심어진 밭 너머 나즈막한 언덕과 같은 산은 아무도 밟지 않은 동네의 그저그런 산이지만, 빼곡한 밤나무의 결실이 떨어져 이따금씩 밭과 길에 굴러 내려 온다.
허리를 숙여 생강 잎에 앉은 익살스런 이슬에 시선이 닿는다.
아직은 햇살이 없는 새벽.
들풀은 이슬을 머금고 이슬은 심약한 빛을 머금어 여전히 어둑한 새벽에 희망처럼 밝은 빛을 뿌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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