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미세먼지 바다에 우뚝 솟은 바위신(神), 치악산 비로봉_20240129

사려울 2024. 5. 8. 21:47

도전에 대해 사전적 의미를 넘어 나태함을 합리화한 다른 핑계로 방호했었고, 번지 점프를 하듯 과감히 떨치며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그래서 실행에 앞서 효능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작 전 워밍업 차원에서 치악산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 동안 체력의 임계점에 다다르면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그걸 극복하는 효능감과 더불어 자신감을 지탱시키는 자존감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구룡사를 지나 세렴폭포까지는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도달했고, 여기서부터 치악산 사다리병창길의 악명을 떨치기 위해 잠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아이젠을 착용하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오르막 급경사길로 한발 한발 내디뎠다.

나는 늘 치악산을 좋아한다.
내가 산을 잘 타거나 타인 이상의 체력적 강인함을 가져서가 아닌 단지 강원도 산간지대에 들어서기 전 비교적 평탄한 벌판에 우뚝 솟은 지형적 특수, 게다가 집에서 가장 접근하기 좋은 명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집에서 출발하여 새말을 거쳐 치악산까지 1시간 반이면 충분한데 조만간 여정을 계획할 포천은 같은 경기(도) 임에도 2시간이 넘게 걸린다.
구룡사에서 900m 이상을, 본격적인 치악산의 진면목을 보이는 세렴폭포에서 2.7km만에 약 800m를 오르는, 오직 오르막길만 이어지는 그 급격한 경사를 극복한 뒤 정상에서 느끼는 감회는 어쩌면 적은 노력으로 극대화된 만족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지난해 2,3,5월 초에 정상을 오른 뒤 조금 소홀해지긴 했지만 그 명징한 기억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 산길을 걷는 동안 길섶의 추억들에 급격히 이입된 걸 보면 지친 체력을 원망하지 않았고, 거기에 더해 스치는 존재들을 무던히 관찰하며 정상까지 닿을 수 있게 단단히 결합된 모든 자연의 상호작용에 경의를 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여전히 치악산을 오를 수 있도록 내어준 길을 존경했다.

구룡사에서 세렴폭포까지 오는 동안 마음속 약한 부분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핑계로 여기까지 왔다 먹먹한 마음에 다시 돌아갈 인간의 나약한 본능이 발현되면 나 또한 고민의 귀로에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고,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치악의 면목을 드러내는 사다리병창길에 발을 디디는 순간 도리어 오기가 발동하며, 어느 정도 오르게 되면 들인 노력이 괘씸해서 끝장을 보기 때문이었다.
이 다리가 뭐라고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비치는 걸까?
그런 나약함과 비장함 사이에 흔들리는 표정이 보이는지 다리 너머에 징그러운 오르막 계단이 쳐다보고 있었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에서 계단 종류를 많이도 수집해 놓았다.
여긴 얼마 오르지 않아 돌계단으로 이뤄진 급경사 구간이었는데 오죽했으면 계단 위로 해가 비췄고, 언뜻 봐서는 석양으로 착각될 수 있었다.
치악산에 오기 전까지 스틱과 아이젠을 귀찮은 도구라 여겼었는데 그런 건방진 생각을 바꿔준 계기가 바로 치악산, 그중에서도 비로봉 사다리병창길이었다.
이전에 치악산 남대봉 오르는 길에도 스틱 없이 다녔었고, 스틱을 챙겨야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등린이며, 잼병이었다.
그래도 뒤늦게라도 스틱과 아이젠의 고마움과 손에 익을 수 있도록 해준 치악산에 감사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치악산의 명물, 사다리병창길.

‘치’가 떨리고, 그 치에서 ’악‘소리가 나는 치악산의 명물, 사다리병창길은 말 그대로 온몸에 ’병‘이 나고 ’창‘에 걸린 듯한 고통을 동반하게 되는데 역으로 이 길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치악산 비로봉에 오를 수 있었을까 고찰해 봤을 때 도리어 고마운 길이자 경이로운 길이기도 했다

푯말을 보면

사다리병창길은 구룡사 큰골에서 세렴폭포와 갈라지는 곳에서 시작되는 바위로 된 치악산의 주탐방로에 해당합니다. 바위 모양이 사다리를 곤두세운 것 같다고 하여 ‘사다리병창’이라고 부르며, 병창은 영서지방의 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합니다.

사다리병창길 푯말에서부터 여기 구간을 지나는 동안 아슬아슬한 바위 절벽과 허공을 지나는 길이 펼쳐지는데 주변에 나무가 우거져 그 아찔함은 안대를 낀 것처럼 시신경이 자각할 수 없지만 조금만 관찰해 봐도 위태로움과 동시에 이런 곳에 길을 내어놓은 인간의 위대함도 인지할 수 있었다.
더불어 내가 아는 최고의 길 중 다섯 손꼬락, 발꼬락 안에 드는 구간이 바로 이곳이기도 했다.
정선 칠족령 절벽길, 순창 채계산 칼바위 능선길, 장흥 천관산 정상 능선길, 괴산 산막이옛길과 더불어 치악산 병창길/종주능선길은 그 길 위에 있는 동안 희열로 현재의 시름을 잊게 되고, 성취감으로 중추신경계에 도파민이 줄줄 흘렀다.

말등바위 전망대 도착.
스펙터클한 광경은 아니지만 나란히 뻗어 있는 앞뒤 능선의 조화로움이 신비감을 자아냄과 동시에 의문도 생겼다.
전망대가 의지한 곳이 말등을 닮았단 걸까? 아님 전망대에서 보이는 작은 산자락이 말등을 닮은 하나의 바위란 걸까?
이리보고 저리 봐도 어쩌면 거대한 치악산이 하나의 바위가 아닐까 상상도 되었던 만큼 보이는 산자락이 되었건, 아님 전망대가 딛고 있는 바위 절벽이 되었건 둘 다 말등바위라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전망대 북동쪽 천지봉, 매화산 방면은 치악산 비로봉에서 뻗어 나와 북동쪽 방면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설산이었다.
실제 작년 3월 초에 방문했을 당시에도 중턱 위쪽으로 눈이 쌓여 있었는데 특히나 한 지점에 만들어진 빙벽을 보노라면 실제 그 앞에서 본다면 멋있지 않을까 여겨졌다.

전망대 남쪽으로는 비로봉이 보였는데 여전히 머리 위에 우뚝 솟아 과연 저 봉우리에 오를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단순하게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이 아니라 바로 머리 꼭대기에 솟은 바위나 뜬구름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비로봉과 반대 방향인 북쪽은 치악산의 큰 산자락 사이로 구룡사와 횡성 방면으로 멀리 대기에 미세먼지층의 경계가 선명하게 보였고, 또한 온통 눈에 쌓여 계단조차 사라진 정상 부근과 비교하면 풍경이 극명하게 차이 났었다.

말등바위 전망대에서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다 어느덧 위를 보니 머리 위로 까마득하게 솟은 비로봉이 그 위용을 과시했다.
인간은 비로봉에 돌탑을 쌓았지만 자연은 치악이라는 거대 바위탑을 쌓았고, 그래서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가 자연일 수밖에 없었다.
때론 저 모습을 보면 치악산은 인간의 위선을 꾸짖으며 올라오던 길을 돌아가라며 경고하는 것도 같았다.

세렴폭포에서 출발하여 비로봉 구간까지 사다리병창길은 인내와 체력의 한계를 곱씹게 했는데 특히나 절반을 넘어 비로봉에 가까워질수록 경사도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할 정도였다.
이렇게 보면 저게 계단이 아니라 산으로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지네처럼 보였다.
그래도 저 존재들이 없었다면 치악산에 오를 수 있었을까?
힘들고 울적해서 눈물 나는 게 아니라 고마워서 눈물이 아주 찔끔했다.

정말 평온한 정신으로는 비로봉에 오를 수 없는 만큼 중간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 마냥 어쩌다 보면 정상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정상에 오르자 강원 내륙만큼의 풍성하고 견고한 상고대는 없지만 그래도 세찬 바람이 정교하게 조각한 상고대가 기다렸고, 그 너머 설경에 도치되었다.

치악산 북녘 끝자락에 우뚝 솟은 천지봉과 그 너머 매화산이 번뜩이는 산세가 가장 먼저 시선에 닿았다.
이쯤에서 나도 모르게 성취의 거대한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미세먼지가 짙던 날이었는데 지표 가까이 내려앉은 미세먼지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정상은 무척 청명했는데 그 미세먼지들도 치악산의 산세에 주눅 들었다.
얼마나 미세먼지가 심했던지 산 아래 원주 시내가 너무 뿌연 나머지 식별하기 힘들 정도였었다.

비로봉에 서서 동쪽 원주 방면에서부터 서서히 시선을 돌려 시계반대 방향인 남쪽 향로봉, 남대봉 방면, 이어 동쪽 횡성과 영월 방면으로 정독했다.
전체적으로 자욱해 보였지만 몇 번 산행과 경험을 통해 대략 어떤 봉우리가 남대봉이고, 어떤 봉우리가 시명봉이며, 백운산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고, 더불어 전체적인 지대가 높은 강원 내륙에 접어들기 전이라 치악산의 고도차를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사방이 트여 마치 공중탑에 선 기분이 들기도 했다.
비로봉에서 바로 아래는 정말 까마득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개다리춤을 몇 번 추고도 남을 정도.

세렴폭포에서 정확히 1시간 40분 걸려 비로봉에 도착하자 처음에 그 많던 사람들이 일시에 떠나고 호젓한 비로봉에 세찬 겨울바람뿐이었다.

정상의 이 자리에 서면 사유는 늘 같았다.
험준한 산꼭대기에 돌탑 3개를 쌓은 인간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무거운 바위를 들어 올려 봉우리를 만든 자연도 위대한 부분들이 너무 많은데 우린 늘 매크로한 부분을 간과하고 마이크로한 흠집에 혈안이 되는 걸까?

1시간 동안 비로봉에 머무르며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에 몰입한 사람처럼 까마득한 발아래 세상을 감상했고, 다시 왔던 길을 따라 하산하기 시작했다.
지네 등처럼 길게 뻗은 산자락은 사다리병창길이 이어진 능선길이며, 그 옆 깊게 들어간 계곡이 바로 나란히 진행되는 계곡길이었고, 다시 그 옆에 작게 돌출된 봉우리가 바로 말등바위 전망대에서 보이던 산허리였다.

비로봉에서 내려가기 전 사다리병창길 방향으로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 같은 작은 공간이 있어 항상 거기에 서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착각에 빠지는데 현타가 오는 순간 생면부지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조심해서 내려가지 않으면 비로봉의 고도를 체감하게 되는 곳이라 출발 전 크고 긴 한숨을 몰아치게 되었다.
우리가 일생 동안을 비교해 보면 이 한순간은 지극히 작은 일부인만큼 작은 노력으로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 바로 치악산이 아닐까 싶었다.
실질적으로 기나긴 휴가의 마지막 여정을 치악산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고, 오지 않았던 공백 동안의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치악산 자체에 대한 경외감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래서 완전히 하산한 뒤 치악산 비로봉을 향해 뒤돌아서 꼭 되뇌이는 게 “치악 행님, 오늘도 양다리가 마음대로 춤을 추게 해 주시어 감사드리고, 다음에 올 때 꺼증 겁나 건강허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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