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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행길_20200507

집으로 가는 길에 정주행 하지 않고 곁길로 살짝 빠져 하나로마트에 들른다. 지역 농산물은 동탄에 비하면 비교적 저렴하면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야채나 과일 등이 있어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이면 거의 습관적으로 방문하게 되는데 한적한 마을 정취에 비해 하나로마트 규모는 꽤 넓고, 그 옆엔 정겨운 초등학교가 붙어 있다. 세상을 태울 듯 강렬한 햇살 아래 정말 모든 생명이 타버린 게 아닌가 의심이 들만큼 인적을 찾기 어려운 마을에서 간단한 요기까지 해결한 뒤 고속도로 상행선에 올라탄다. 멋진 산세에 반해 이 도로를 이용할 때면 가급적 머무르는 휴게소에서 눈과 몸에 끼인 피로를 털어낸다.

나무와 동물숲을 떠나며_20200507

가뜩이나 더위가 성급한 대구에서 하루 차이로 서울과 완연히 다른 계절의 파고를 실감한다. 숲 속에 은둔한 숙소를 이용한 덕에 생각지도 못한 애증의 생명들을 만나던 날, 가련함이 교차하여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거리를 활보하는 공작이 이색적이긴 하다. 오전 느지막이 봇짐을 챙겨 떠나는 길에 숙소에서 마련한 차량을 거절하고,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애니멀밸리를 관통하게 되는데, 고도가 가장 높은 숙소에서 차량이 있는 입구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반대로 지속된 내리막이라 이른 더위에 큰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넉넉한 시간을 핑계 삼아 꼼꼼히 둘러보기로 한다. 프레리독. 사진도 충분히 귀엽지만 실제 녀석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더 귀엽다. 카피바라? 한길을 중심으로 꼬불꼬불 엮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익살맞은 귀염둥..

일상_20200504

마치 녀석은 처음부터 가족 같다. 붙임성과 넋살에 있어 냥이와의 간극은 기우였을 뿐, 원래 그랬던 것처럼 무척이나 적응을 잘하고 애교도 끊임없다. 올리브영에서 구입한 딸랑이 두 개 중 하나는 거의 외면당하고, 나머지 하나는 잘 가지고 논다. 아주 미세하게 방울 소리만 나도 열일 제쳐두고 달려와 사냥놀이에 바로 빠져든다. 이런 녀석과 한참을 즐긴 후 창 너머 청명한 대기를 쫓아 냥이 마을로 출발한다. 어린이날 전날이라 그런지 야외공연장 잔디광장엔 아이들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졌다. 냥이 마을로 바로 직진하지 않고, 반석산 둘레길로 우회하여 냥이 마을로 들어서기로 하자. 특히나 노란 꽃들이 눈에 띄어 쉰들러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데 노란색 인식이 완벽하지 않지만 이쁘게 잘 표현되었다. 하..

봄바람 따라 만의사에서_20200421

예년에 비해 이른 석가탄신일로 인하여 앞서 절에 방문한 가족들과 떨어져 텅 빈 사찰 풍경을 찾았다. 개발로 인한 훼손이 많기는 하나 산중에 자리 잡아 오롯이 자연의 품에 기대고 있어 봄의 정취 또한 갓 잡은 신선한 생선의 번뜩이는 비늘 같았다. 무신론자인 나는 봄의 색깔에 경건해지고, 불신론자인 가족들은 진중한 소망에 경건해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본당으로 향하기 위해 첫 계단을 오르면 수많은 연등이 걸려 바람에 지화자 춤을 추고 있다. 만의사에 와 보면 확실히 봄의 정취가 물씬하다. 흙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봄꽃이 자리를 잡고 어여쁜 얼굴로 봄볕을 쬐고 있어 덩달아 봄의 설렘에 도치된다. 꽃복숭아의 가지 하나에 두 가지 색깔이 동시에 피었다. 신기한 고로~ 지속된 오르막길을 따라 법당 몇 개를 지나..

냥이 마을_20200417

이번엔 평소에 비해 많은 양을 챙겨 갔는데 늘 보이던 냥이들이 보이질 않았다. 뭔 일이 있는 걸까? 주변을 둘러봐도 그리 큰 변화는 없는데. 어디선가 냥이들이 한 둘 모이기 시작해서 가까이 있던 녀석들이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온다. 밥이 오면 두 녀석이 가장 먼저 입을 댄다. 치즈 얼룩과 얼룩 두 녀석은 이내 친해져 이제는 녀석들이 제법 반갑다는 표현으로 몸을 문지른다. 처음에 비해 경계는 많이 풀렸지만 요 쪼꼬미 녀석은 아직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데 비해 밥은 용케 알고 달려와 두리번거린다. 행여 다른 녀석들이 올까 싶어 여기에 따로 밥을 넣었는데 얼룩이가 뭔가 특별한 게 있을까 싶어 다가와 몇 입 먹는다. 배부른 자의 여유. 나무 가지에 얼굴을 비비는 표정이 익살 맞으면서도 귀엽다. 여기 모여사는 녀석들..

봄꽃 따라 번지는 핑크 퍼레이드_20200417

봄의 정점에서 전령사들이 잠자고 있던 봄을 일깨워 길게 기지개를 켠다. 이토록 아름다운 봄의 진면목이 그토록 오랫동안 깊은 잠을 깨며 화사한 소식들을 알차게 준비해 왔다는 이치가 오묘한 싹을 틔울 줄이야. 들판에 피는 허투루한 야생화 조차 제각기 다른 모습의 개성을 드러내며 흐르는 시간을 잊게 만든다. 양분 가득한 봄의 기운을 먹고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세상 나기를 하는 존재들을 보며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왜 숭고하고 거룩한지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냥이 마을에 들렀다 녀석들과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야외음악당으로 방향을 정하고 걷는데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하는 봄이지만 벌써 화려한 예고 한다. 복합문화센터 방향으로 내려오면 영산홍도 하나둘 꽃망울을 틔우고 있는데 이 또한 진한 핑크빛을 탄생시킨다. 매혹적인..

나른한 진풍경, 송지호_20200414

화진포에서 다시 남쪽 방면을 향해 7번 국도의 매끈한 직선을 따라 출발, 송지호의 평온에 이끌려 옆길로 샜다. 텅 빈 해변에 발을 들여 걷기 힘든 고충도 잊고 바다 가까이 다가서서 바다내음 짙은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시야가 뻥 뚫리는 기분, 동해의 매력엔 가희 반할만하다. 파도가 해변을 집어삼킬 듯 돌격해 오다 해변의 평온에 중화되어 급격히 잠잠해진다. 큰 파도에 아슬아슬한데도 갈매기들은 아랑곳 않고 태연하다. 가끔 녀석들끼리 침묵을 깨는 장난과 울음소리가 들리다가도 이내 다시 찾아온 평온. 한 마리 갈매기의 비상, 미친 듯 부딪히는 파도와 미동도 하지 않는 죽도,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고깃배... 몽환적이다. 바다에 죽도란 섬이 있는데 이 섬을 돌아온 파도가 죽도와 해변 사이에서 서로 맞부딪히는 게 ..

나른한 봄의 평화, 화진포_20200414

파도와 바람은 지치지도 않는다. 허나 그 선율은 치유의 유전자가 있어 더 이상 북으로 갈 수 없음에 대한 위로를 해주며 동시에 왔던 길을 고스란히 바라고 떠날 응원도 빼놓지 않는다. 세상에서 발자취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무수히 많아 언제 다시 이 자리에 서서 시간의 감회를 자근히 씹을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여정의 선택과 결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경험의 스승인지 통감한다. 내가 떠나더라도 자연은 무심하게도 안색 조차 변하지 않지만 또한 다시 만나더라도 태연한 모습으로 대답하며, 언제나 변치 않는 신뢰로 회답한다. 요란한 믿음은 부서지는 파도처럼 한낯 휘영청한 거품일 뿐. 숙소에서 출발 준비를 모두 끝내고 베란다에 나와 전날 거대한 암흑과도 같던 바다가 전날과 전혀 다른 얼굴을 내밀었다. ..

둔중한 밤바다, 고성 대진해변_20200413

모두가 잠든 가운데 홀로 깨어 밤새 분주한 파도는 적막을 집어삼킨 채 지칠 줄 모른다. 그럼에도 소음이 아닌 자장가로 거듭나 긴 여정의 끝에 경직된 신체를 이완시켜 준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행복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밤이다. 밤에 도착하여 처음 맞는 적막에 밤 산책은 접고 숙소 베란다에 나와 쉴 새 없이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이따금 창 너머에 반짝이는 등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휴전선과 접경 지역이라 늦은 밤이면 출입이 통제되는 해변은 환한 불빛만이 자리를 지키고, 이따금 비치는 등대 불빛이 불현듯 외로움을 알려줬다. 이러한데 해변 앞 작은 섬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독한 고독에 시달렸을까? 오래된 시설이라 내부에 오래된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특히나 주방기구들은 낡은 데다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