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pro 37

짧은 시간의 장벽, 장미산성_20200829

변화무쌍한 날씨답게 이내 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을 떨군다. 온몸이 젖은 들 대수롭지 않다 여겼건만 갈피를 잡지 못한 천둥소리에 떠밀리듯 걸었던 길을 되밟는다. 인적이 전혀 없는 길을 따라 평원을 휘몰아치는 남한강 물줄기를 제대로 가슴에 담지 못했는데... 고즈넉한 산사의 길을 따라 그 끝이 궁금했는데... 나처럼 힘겹게 산을 이고지고 올라선 바람의 연주를 채 끝까지 듣지 못했는데... 허공 어딘가에 숨은 번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음에 다시 오라 한다. 다시 오는 건 아깝지 않다만 지금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회가 아쉽다. 자연과 시간은 항상 내 주위에 있건만 미묘한 감각은 제각각이지 않은가. 초행길이라 지도에 표기된 봉학사 바로 아래 주차한 뒤 길을 걸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오를수록 안개가 ..

적막의 비가 내리는 금성산성_20200624

아침에 간헐적으로 내리던 빗줄기가 정오를 지날 무렵부터 굵어져 금성산성으로 가는 길 위에 작은 실개울을 만들었다. 전날과 같은 길을 답습한 이유는 내리는 비로 인해 텅 빈 금성산성에서 바라본 풍경이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충용문에서 만난 굶주린 어미 고양이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교적 화창한 담양은 가지런히 정렬된 새침한 느낌이라면 비 오는 날엔 슬픈 곡조를 목 놓아 부르는 망부석 같은 느낌이었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빗소리는 상당히 정제되어 풍경과 달리 고요했고, 아무도 찾지 않은 산성은 희로애락을 극도로 배제하며 차분한 모습은 잃지 않는다. 어디론가 서서히 흘러가는 물안개는 지상에서 남은 슬픔을 모두 껴안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도, 안개도 ..

여유의 세계, 금성산성_20200623

이번 담양 여행의 목적은 국내 최고의 인공 활엽수림인 관방제림과 강천산과 이어진 산자락 끝에 담양 일대를 굽이 보는 금성산성. 소쇄원, 메타세쿼이아길, 죽녹원은 워낙 유명 인싸인데다 특히나 소쇄원은 광주와 화순 사이에 끼어 있어 거리가 멀고 3년 전에 다녀온 터라 이번 여행 동선에선 고려하지 않았다. 지인과 저녁 식사 약속으로 시간이 촉박하여 금성산성 초입 보국문과 충용문까지 여행하기로 한다.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백팩 하나 짊어진 채 금성산성으로 향하면 산성 탐방 안내도가 나와 대략적인 잣대가 된다. 산길치곤 완만하고 너른 길이라 걷기 알맞다. 거기에 더해 이런 대숲과 나무 터널이 있고, 걷는 동안 숲을 쓸어 올리는 바람 소리는 곁들여진 음악과 같다. 나비 하나 나풀거리며 주위를 맴돈다. 20..

우뚝선 한순간, 오도산_20200615

칠성대에 이어 황매산 은하수를 기대했지만 불발의 아쉬움으로 찾아간 오도산은 처음이 아니었다. 여기 또한 앞서 들렀던 칠성대처럼 사방에 시야가 트여 천리안의 시원스런 시야를 봉인할 수 있었는데 예사롭게 부는 바람 조차 예사내기가 아닌 건 인간의 감정이 덧씌울 수 있는 최고의마법 중 하나다. 미세 먼지로 인하여, 쨍한 햇살로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도 사실은 투정일 뿐, 여행은 내가 원하는 퍼즐처럼 일기와 만족을 모두 낚을 수 없지만, 로또처럼 기대감에 감성의 환각을챙길 수 있다. 다만 로또와 차이점은 결과가 허무하여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과 만족에 몸서리 치며 추억이 풍성해지는 것과의 차이랄까? 앞서 들렀던 칠성대와 이곳 오도산의 공통점은 해발 고도 1,100m를 살짝 상회한다는 것과 사방이 트여..

작은 절경과 호수를 질주하다, 운일암반일암과 용담호_20200615

운장산 칠성대를 벗어나 용담호로 가는 길목에서 힘찬 물소리에 이끌려 잠시 쉬어간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길을 따라가던 중 불영계곡을 축소한 듯한 작은 계곡에 작은 팔각정을 만났고, 그 자리에 서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여울 소리에 남은 사념을 풀어헤친다. 검룡소에서 처럼 일체 소음이 배제된 흐르는 물소리에도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도덕정에 잠시 멈춰서 바위가 연이은 계곡의 비경과 물소리를 감상한다. 같은 쉼표라 할지라도 이왕이면 선이 굵은 점을 찍을 수 있었다. 팔각정은 잠시 오르막으로 소소한 높이에서 굽이치는 물살과 소리를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다.

평온의 눈이 내리는 검룡소_20200412

5년이란 시간이 흘러 같은 장소가 어떻게 변했을까? 급작스런 눈발이 복병이 아닌 환대의 징표라 자화자찬 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아닐 만큼 쏟아지는 눈이 연출한 세상은 묘한 추억의 반추를 표류하게끔 포근한 포용을 발휘했다. 함백산에서 내려와 주저 없이 검룡소로 향하는 길은 간헐적 눈발이 날리긴 했지만 쌓일 만한 양도, 기온도 아니라 이동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검룡소 입구에 도착하자 앞서 방문했던 시기와 달리 입구는 꽤 너른 테마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던 반면 세찬 바람이나 텅 빈 입구는 변함없었다. (한강의 세상 만나기, 검룡소_20151128)차에서 내리기 전, 우산을 챙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괜한 갈등을 때리다 행여 함백산처럼 폭설이 내리지 않을까 싶어 우산도 챙겨 천천히 걸어갔다. 검룡소..

봄에 환생한 겨울 왕국, 함백산_20200412

엘사의 마법이 발휘된 걸까? 목화솜 같은 함박눈이 내려 순식간에 하얀 세상이 펼쳐져 겨울의 집착적인 미련을 실감케 했다. 서둘러 사람들이 떠나 세상은 텅 빈 듯 눈처럼 쌓인 적막과 두터운 눈구름처럼 정적만 휩싸고 돌며, 그로 인해 바람 소리가 지축을 흔드는 번개 소리 마냥 대기를 가득 채웠다. 당초 함백산에 오를 계획은 없었지만 만항재로 가는 텅 빈 도로에 차를 세워 두고 그칠 줄 모르는 눈발을 향해 걷다 결국 함백산을 올랐다. 2015년 초겨울, 우연찮게 함백산 초입에 방문했다 순식간에 퍼붓는 함박눈이 만든 설원을 행보했던 추억을 더듬어 같은 자리에 방문하자 굵어진 눈발을 등지고 산에서 하산한 한 분께 산길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눈꽃들만의 세상, 함백산_20151128) 아이젠이나 스틱 중 하나는 ..

2층 광역버스 첫 승차_20200411

아마도 기억엔 이 날이 처음 아니었나 싶다. 여전히 1층 버스가 주류를 이루어 지나다니는 2층 버스는 간혹 보긴 했어도 동탄 광역버스에 도입 되었단 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드뎌 탈 수 있는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져 룰루랄라 하면서 2층으로 전력 질주를 했고, 다행히 맨 앞자리는 비어 있었다. 기존 버스가 디젤을 연료로 사용해서 승차감이나 진동은 확연히 좋아졌는데 문제는 좌석간 거리가 좀 짧고 가장 치명적인 건 등받이가 거의 젖혀지지 않아 한 자리에 앉아 오래 버텨야 되는 서울 외곽 특성상 불편할 수 있겠다. 그래도 첫 날의 그 기분, 터널이나 톨게이트 천장에 부딪힐 거 같은데 묘하게도 통과되는 걸 보면 버스가 조금 덜컹이거나 통통 튀어 버리면 영락 없이 헤드샷 될 수 있겠다. 또한 한남고가나 동탄나들..

절경과 절벽의 경계에서, 칠족령과 하늘벽 구름다리_20200224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멀쩡하던 몸이 휴일을 맞아 탈수기에 쥐어 짤 듯 쑤시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월요일이 되면 거짓말처럼 멀쩡해진다. 뭔 말인고 허니, 긴장감이 작은 느낌을 극대화시켜주고, 공포가 잠자고 있던 초인적인 능력과 집중력을 흔들어 깨울 때가 있다는 말인데 우리나라에서 최애 절경을 간직한 동강에 매년마다 최소 한 번 정도 여행하며 극도의 몰입감을 즐긴다. (칠족령 설화가 남긴 절경_20190217, 칼끝 벼랑에 서다, 하늘벽 구름다리_20190217, 칠족령의 마법_20190329) 동강 중에서 정선~평창~영월의 경계를 뱀이 기어가는 형세라고 해서 사행천이라 부르는데 이 구간은 천혜의 절경을 이룬다. 이틀 계획으로 가리왕산과 동강 여정을 계획했던 기대는 첫날, 가리왕산 입산 통제로 인해 먼..

눈 내리는 산책에서 만난 냥이_20200216

그립던 눈이 사무치도록 내리던 휴일, 반석산 둘레길을 한 바퀴 걷는 동안 변덕스럽게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내리던 눈은 이내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지만, 발길이 쉬이 닫지 않는 곳에선 서로 모여 무던히도 조잘댄다. 겨울에만, 그것도 눈이 내릴 때만 만날 수 있는 뽀송뽀송한 눈꽃이 화사한 꽃잎을 부풀려 이따금 내비치는 햇살을 굴절시켜 망막이 시큰거리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모든 신경은 지칠 기색이 없다. 햇살을 가르며 그치질 않는 눈송이가 어느새 무르익어 추운 겨울밤도 따스하게 저민다. 눈이 내린 시간은 좀 지났지만 여전히 눈발은 날려 눈이 쌓일만한 곳엔 풍성한 솜을 뿌린 것 같다. 굶주린 길냥이 가족을 만난 곳, 세찬 눈보라와 달리 정취는 따스하다. 올라프?는 아니구나. 굵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