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 261

솔고개를 지나다_20170916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래서 무심코 넘겨 버릴 수 있는 여행의 길목에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자연은 식상해 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동네 인도 주변에 아무렇게나 태동하는 자연의 터전조차 계절까지 넓게 잡지 않고 하루를 비교해 보더라도 신선한 일상의 한 단면 같아 소소한 변화에도 급한대로 폰카를 이용해 담아 둔다.2년 전 방문했던 상동은 길목 켠켠이 쌓여 있던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차에서 내려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내 기억의 의심이 기우인 양 정겨움이 생생하게 되살아 나며 마치 옆 동네를 방문하는 듯 친근한 착각에도 빠졌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자연에선 아직 가을을 느낄 수 없고, 여전히 또아리를 틀고 자리를 잡은 여름이 좀처럼 떠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상동으로 가는 길목에 항상..

여명_20170905

자연이 펼치는 상상력의 나래는 대체 어디까지 그 촉수를 뻗칠까?전날과 비슷한 시간에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고 전혀 다른 형태의 노을 자욱을 휘저으며 더욱 강렬한 화염 자욱을 멋대로 그려 놓는 것 같아도 수십 년 동안 짜놓은 문명의 치밀함을 비웃듯 하늘이라는 종이에 일몰의 물감을 풀어 노을의 수를 정교하게 새겨 놓는다.일상이 되어 버린 흠잡기 습관이 부끄러울 만큼 포근한 다독임에 숙연해져 전날과 같이 넋을 빼앗긴 내 사념은 알알이 들어와 박혀 도저히 뺄 수 없을 것만 같던 비난의 찌든 때를 탈피하고 개운한 수면 뒤의 가뿐한 설렘의 자세로 여전히 가을을 기다린다.일 년 만에 만나 생소할 법도 한 가을이 마치 시종일관 내 삶의 곁에서 지켜봐 준 친구 같다.

여명_20170904

가을도 오고, 하루의 시간도 오는 이른 새벽녘에 창 너머 일출이 뿌려 놓은 노을의 찬란함을 넋 놓고 바라 보다 멍한 정신을 털고 카메라로 경이로움을 낚아 챘다.자연이 그려 놓은 한 편의 이 장엄한 그림은 일장춘몽처럼 한 순간 흩어져 버릴 새라 바삐 담았는데 바라보는 내내 바람이 실어온 가을 내음의 향연에 취해 그토록 기다리던 가을의 상상으로 행복감에 젖은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암흑의 도화지에 보드라운 붓을 살랑이며 희망을 그려 놓는다.

가을과 여름 사이에, 조령산_20170902

전날 긴 동선을 그리느라 피로도가 꽤나 누적 되었는지 해가 높이 뜰 무렵 느지막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때우고 통나무집을 나섰다.명색이 조령산 휴양림에 왔는데 숲과 조령관 공기는 허파에 좀 챙겨 넣어야 되지 않겠는가.여기 온 이유 중 하나도 오래 걷기 힘든 오마니 배려 차원인 만큼 산책하기 수월하고 그참에 조령관까지 가는 방법도 가장 쉬우면서도 걷는 희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막상 산책로를 걷기 시작하자 기대감이 산속의 물 이상으로 철철 넘쳐 여기저기서 사진 찍느라 여념 없다.그도 그럴게 우거진 숲과 더불어 이른 가을 바람이 걷는 내내 숲속의 향그러운 내음을 실어 주는 데다 이따금씩 뛰쳐 나오는 다람쥐와 새들이 촐싹거리며 응원해 주는 것처럼 보여 년중 내내 도시 생활에..

낯설던 예천과 친해지다_20170901

애시당초 가족 여행이라고 계획했던 조령산 일대가 누님 식구의 권유로 예천을 들리잔다.예천은 몇 번 지나 다니긴 했어도 들린 적은 한 번도 없고 한반도 지형의 회룡포 정도만 아는 정도로 지식이나 지인이 전혀 없는 상태라 철저하게 네비에 의존해 기대감만 챙겨 떠났다.점심은 누님 식구가 지난번에 들렀던 예천 변두리의 맛집이 있다고 해서 초간편식 아침으로 때우고 서둘러 출발했다.왜냐하면 경북도청 신청사, 효자면 한천 골짜기, 예천 일대를 둘러 보는 광범위한 계획을 잡아서 동선이 꽤나 길고 처음부터 하루는 이 일대를 다니기로 계획했기 때문이었다.물론 내 방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예천나들목과 가까운 이 외갓진 곳에 꽤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 하나를 찾아간다고 제법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옆에는 마치 펜션과 같은..

귀여운 철마, 문경 레일 바이크_20170831

이미 보름 훨씬 전에 잡아 놓은 가족 여행에서 누님의 추천으로 문경 레일바이크를 첫 통과 의례로 잡았다. 일찍 출발한다고 했건만 시간은 훌쩍 지나 점심을 넘어 섰고 시간을 아낀답시고 점심을 집에서 해결하는 사이 지나치게 털어버린 이빨 세례들로 오후2시!레일바이크는 5시까지 도착해야 되는데?부리나케 서둘러 순조롭게 출발했고 나는 카니발 뒷좌석에 큰 대자로 뻗어 모자란 잠을 잤다.근데 운전 중인 누님과 대화를 나누던 가족들이 너무 심하게 이빨을 털었는지 안성분기점에서 음성 방면으로 빠지는 길을 놓쳐 안성나들목까지 가버렸다.그 이후 난 잠에 빠져 들어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일어났고 다행히 4시에 문경 구랑리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구랑리역은 레일바이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역으로 평일 오후라 이용객은 거의 없어..

여명, 일출_20170813

일요일 새벽 부시시한 잠을 깨고 창 너머를 바라 보곤 턱관절 무리가 상당했다.옅은 여명이 구름 드리운 동쪽 하늘에 서서히 떠밀리며 셀 수 없이 많은 결들이 붉게 물들어 간다.이 장관의 정체는 비 내린 뒤 개인 하늘을 밝히는 일출이렸다.이러니 세상 천지가 불에 타들어가는 착각이 들 수 밖에. 광각렌즈를 다시 물려 넓게 담아본 하늘 세상.저녁 노을보다 새벽 노을이 더 청명하고 알싸한 이유는 새벽의 싱그러운 이슬 내음에 예민한 얼굴의 촉각이 나머지 오감을 유혹하여 바라보는 시선이 편견의 굴레에 마비 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 현자는 마음의 생각이 모든 이치를 바꾼다고 정의 내렸지 않은가.너를 만질 수 있다면 뜨거운 오렌지 빛깔에 내 손은 온통 지문의 결을 따라 화려하게 채색 되겠지?

대프리카_20170808

대구 하면 더워도 넘무나 더워 생겨난 신조어, '대프리카'란다.여름이면 어차피 서울도 더운 건 매한가지라고 한다만 그러다 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이나 차를 타고 대구에 도착해서 도어를 열고 나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헉!'소리가 날 정도.수은주가 특출 나게 올라가는 건 아닌데도, 그렇다고 그 열기가 서울도 열섬 현상으로 뜨겁긴 마찬가진데도 더 덥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대구가 전통적으로 덥다는 편견도 있지만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온실 안에 있는 착각 때문이 아닐까?실제 내가 갔던 날이 그렇게 더운 날은 아니었음에도 바람이 거의 없어 확실히 서울과의 체감 온도 차이는 완연하긴 했다.역시 대프리카~이 말은 회사 갓 입사한 젊은 영계한테서 들은 말인데 들을 수록 열라 웃겨. 내가 모처럼 대구에 내려간 ..

일상_20170717

하루 죙일 지루한 장마비가 내리다 못해 베란다 정원의 잡초 끝에 미세한 물방울로 그 흔적을 남겨 놓았다.워낙 미세해서 눈에 보일똥 말똥 가느다란 빛이지만 영롱함은 크기가 아닌 투영시킨 빛을 밤하늘 별처럼 여과 없이 밝혀 놓음에 일말의 의심조차 없다.카메라가 포커싱하지 못해 메뉴얼로 바꿔 정확하게 맞추진 않았음에도 내 눈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이 순간 만큼은 한 줄기 이름 없는 잡초가 아니라 고결한 한 생명이기도 하다.

일상_20170707

비 내리는 금요일, 비를 맞는다는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정신 줄 놓았거나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허나 난 가끔 어설프게 비가 내리는 날, 가방 속에 우의를 챙기긴 했어도 내리는 비를 어느 정도 맞다 흠뻑 젖을 만큼 내리거나 오래 노출이 되었다 싶을 때 그제서야 우의를 꺼내 입는다.왜냐구?이상하게 비나 눈 내리는 날 왠지 센치해지데~낙엽 끝이나 가지에 매달린 빗방울들도 이쁜데 꽃러럼 화려, 화사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의 숭고, 영롱한 아름다움이 맞겠다.빛이 굴절된 이 빗방울 보면 엥간한 꽃보다 더 아름다운 건 내 취향이겠지. 이른 새벽 여명이 밀려드는 동쪽 하늘이 결 고운 빛의 오렌지 컬러가 내 방의 창 너머에 고요한 파동을 그린다.뒤척이던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사진으로 담아 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