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대프리카_20170808

사려울 2017. 8. 16. 23:35

대구 하면 더워도 넘무나 더워 생겨난 신조어, '대프리카'란다.

여름이면 어차피 서울도 더운 건 매한가지라고 한다만 그러다 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이나 차를 타고 대구에 도착해서 도어를 열고 나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헉!'소리가 날 정도.

수은주가 특출 나게 올라가는 건 아닌데도, 그렇다고 그 열기가 서울도 열섬 현상으로 뜨겁긴 마찬가진데도 더 덥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대구가 전통적으로 덥다는 편견도 있지만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온실 안에 있는 착각 때문이 아닐까?

실제 내가 갔던 날이 그렇게 더운 날은 아니었음에도 바람이 거의 없어 확실히 서울과의 체감 온도 차이는 완연하긴 했다.

역시 대프리카~

이 말은 회사 갓 입사한 젊은 영계한테서 들은 말인데 들을 수록 열라 웃겨.




내가 모처럼 대구에 내려간 이유는 평일에 휴일을 보내기 위함이며 더불어 에어팟을 선물해 준 지인에게 왠수를 갚고자 함 이었다.

이번에도 미리 예약해 놓은 망우당공원 옆 인터불고 호텔에 전 날 도착해서 바로 지인을 만나 회포를 풀고 허벌나게 자빠져 자곤 오전 9시 넘어서 숙소에서 출발했다.

영남제일관을 지날 때 맨날 밤에만 보던 그 남량특집 분위기가 생각났지만 역시 낮엔 제 위용을 갖춰 늠름해 보인다.

(쓸쓸한 망우당의 밤_20170503)

바로 옆이 동촌유원지라 걸어서 투썸플레이스까지 가는데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도 벌써 등판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화랑로를 넘어 가는 육교 위에서 망우당공원 진입 전.





날이 흐릴 거란 일기 예보는 살짝 빗나가 구름 많은 화창한 날에 가깝다.

덕분에 이날 목과 팔이 홀라당 타버려 유명 피서지에서의 썬탠 효과가 났다.

그럴만도 한 게 동촌역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금호강 여행을 다녀왔지.




마땅히 아침 요기를 할 만한 곳이 없어 투썸플레이스에서 커피 한 사발 때리면서 크로크무슈를 아침 대용으로 했는데 전날 너무 잘 먹어서 입맛도 크게 솟구치지 않은데다 크로크무슈 하나가 의외로 든든했다.

동촌유원지 투썸플레이스에서 얼추 아침을 해결하고 동촌역으로 해맞이 다리를 건너던 중 화창한 대기를 담는다.

한 때 동촌유원지 명물이었던 구름다리는 몇 년 전에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 해맞이 다리가 그 바턴을 이어 받았는데 예전 아날로그 시대에 치장할 수 있었던 온갖 종류의 액세서리를 두르고 사람들의 주머니 한 닙을 노리던 로맨스는 없어져 버렸다.

지금은 그저 매끈한 문명으로 치장하여 간소해 졌다.




동촌역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금호강을 따라 강정을 다녀 오겠노라던 의도는 뜨거운 햇살과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로 인해 금새 체력이 고갈 되면서 당초 취지를 잊은 채 신천 고수부지로 노선을 급 변경했다.

게다가 출발 전 그리 든든하던 속은 어느 순간부터 에너지 구멍이 뚫렸는지 힘과 의지가 줄줄 새는 마당에 내가 여기서 왠 개고생 인가 싶어 중동교까지만 가는 걸루 하고 자전거를 돌려 수성교 인근 빕스에서 에너지를 보충해 버렸다.

그리 배가 고파서 단단히 별러 빕스를 들렀건만 막상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이 귀찮아 질게 뭐람!

꼴랑 식사 한 접시를 끝내자 더 먹을 의지도 없었고 식욕도 급 하강.

아까운 쩐이여!




어느 정도 흥분을 진정시키고 다시 동촌역으로 출발, 마음 같아선 지하철을 타고 동촌역까지 수월하게 가고 싶건만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두자 싶어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저어 가는데 칠성시장 부근에서 이런 조촐한 분수쇼를 한다.

세상이 월매나 귀찮았으면 무겁게 가져간 카메라조차 가방에 고이 모셔 두고 끄집어 낼 생각을 안 했는데 이때다 싶어 이날 유일하게 카메라를 꺼내 이 분수쇼를 찍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난 너무 무모했어.

봄이나 가을도 아닌 한여름에 내가 청춘도 아니면서 이런 유창한 포부를 실행하려 했다니!



우여곡절 끝에 가다 쉬다를 반복해 가며 동촌역으로 가면서 뙤약볕에 노출된 비교적 긴 구간인 검단 강변 야구장 그늘 아래에서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멍 때리기도 했지만 결국 무사히 도착, 진드기 떼듯 동촌역에 자전거를 반납했다.

인터불고 호텔 가는 것도 귀찮아 카페에 들어가 갈증 해소 시키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화사한 쇼케이스 안에서 잠자리 하나가 보이길래 가까이 다가서자 통유리 벽과 아크릴 등불 사이 틈에 갖혀 있었다.

근데 이 녀석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거미한테 포획 당한 상태 더라.

불쌍한 잠자리를 끝으로 하루죙일 개고생한 이 불쌍한 중생을 돌이켜 보며 대구에서의 마지막 밤을 고요히 보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건 당초 대구에 가서 하고자 했던 일들은 다 했으니까 그걸루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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