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낯설던 예천과 친해지다_20170901

사려울 2017. 9. 15. 01:57

애시당초 가족 여행이라고 계획했던 조령산 일대가 누님 식구의 권유로 예천을 들리잔다.

예천은 몇 번 지나 다니긴 했어도 들린 적은 한 번도 없고 한반도 지형의 회룡포 정도만 아는 정도로 지식이나 지인이 전혀 없는 상태라 철저하게 네비에 의존해 기대감만 챙겨 떠났다.

점심은 누님 식구가 지난번에 들렀던 예천 변두리의 맛집이 있다고 해서 초간편식 아침으로 때우고 서둘러 출발했다.

왜냐하면 경북도청 신청사, 효자면 한천 골짜기, 예천 일대를 둘러 보는 광범위한 계획을 잡아서 동선이 꽤나 길고 처음부터 하루는 이 일대를 다니기로 계획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방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예천나들목과 가까운 이 외갓진 곳에 꽤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 하나를 찾아간다고 제법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옆에는 마치 펜션과 같은 무인텔이 있는데 나무 컨테이너박스 같으면서도 귀티가 자르르 흐르고 정갈한 품새다.

여기는 숯불제육이 괜찮다고 해서 가뜩이나 간소한 아침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사이 기대감에 더해 식당 옆을 흐르는 작은 개울에 뛰어 들어 민물고기도 잡아 먹을 만큼 뱃가죽은 등짝에 찰싹 달라 붙어 있었다.

이런 한갓진 자리에 어떻게 사람들이 알고 찾아 왔을까 싶을 만큼 주차장에 차가 들어차 있고 잠시 밖에 서 있는 동안 두 대의 차량이 더 들어 왔다.

식당 인근에 한맥CC가 있어서 그런건지 아님 정말 소문난 곳인지는 몰라도 일단 허기를 채우고 판단해 보자.




숯불로 애벌구이한 제육 볶음이랄까?

간이 잘 베어 있으면서도 숯불에서 건질 수 있는 특유의 향긋함이 조화로운 제육 볶음과 서울에서 먹는 맛과 확연히 다르게 끝맛이 매꼼하게 톡 쏘는 청국장은 이곳 기본 메뉴로 가격은 서울보다 확연히 저렴하면서 양은 푸짐한 곳으로 전날 먹었던 올갱이 해장국에 비해 만족도가 높은 곳이었다.

야채가 한창 비싼 시기인지 쌈 채소가 적은 대신 제육을 듬뿍 넣었다는 쥔장의 말은 건성으로 듣고 무지막지하게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폭풍 흡입하는데 맛이 뭐가 필요 하겠나?



경북도청 신청사를 가자는 누님의 명령(?)으로 예천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 영락 없이 가을로 펼쳐진 하늘을 감상하는 사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도청에 도착했다.

역시 '가을 답다'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심연의 바다를 뒤집어 놓고 엉성하게 풀어 헤친 목화솜을 물위에 띄워 놓은 것만 같은 그 풍경은 결코 허투루하지 않고 조목조목 적당한 위치에 서서 너른 바다를 유영하는 것만 같다.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급한대로 누님 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는 사이 전형적인 시골 벌판에 다른 세상이 나온다.




경상북도 신청사는 안동과 예천에 걸쳐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동서양 기풍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그 주변을 신도시가 들어설 예고처럼 매끈한 도로로 사방에 뻗어 있다.

이 또한 방문 예정이 없었건만 사업성을 검토한 누님 식구의 계산된 동선의 일부 였다.

난 이날 완전 루돌프 사슴이었군.



엄청난 기세의 햇살을 피해 청사 내부로 들어와 보니 매끈한 건물 답게 내부 곳곳은 깔끔한 조형물과 홍보를 위한 갖가지 '꺼리'가 자리 잡고 시선을 잡아 끈다.



유일한 카페에서 스원한 커피 한 잔씩 들이키며 갈증을 식힌 후 이곳저곳을 둘러 보자 뜻밖의 친숙한 캐릭도 한자리 차지하고 이왕 쉬는 김에 자기들한테도 관심 표현을 해달랜다.

까투리의 행복한 숲속 이야기에 주연이신 까투리 가족들과 조우한 우리 가족들.

초상권 운운하는 관계로 요 사진 한 장만 달랑. 



청사 뒷 뜰에 잠깐 둘러 보다가 돌 무더기 틈에서 홀로 매력적인 컬러의 옷을 걸쳐 입은 꽃 한 송이가 담박에 시선을 잡아 끌어 증명 사진 한 장 찍어주자.

청사의 규모가 꽤 커서 지상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의회를 지나 도청까지도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초행길이라 어디가 어딘지 모를 판에 가까이 주차해 놓았다고 판단하고 걷는 사이 큰 건물의 의회 옆에 더 큰 건물의 도청이었다.

최종 목적지가 여기가 아니라 오래 지체할 수 없어 손에 들고 있던 커피가 바닥을 드러내자 다시 갈 길을 바라고 출발, 토담을 간다고 예천을 한 번 거치고 도청에 들렀다 오늘의 진정한 목적지에 들르기 위해 다시 예천을 거치고, 저녁 식사겸 매형 추천으로 예천읍 테마 거리를 간다고 들렸던 만큼 하루에 예천을 3번씩 들렸으니까 평생 걸쳐 처음 갔던 곳 치곤 확실한 신고식을 치렀던 이날은 시종일관 전형적인 가을의 눈부신 햇살이 꼬리처럼 따라 다녔다.

낮은 따가운 햇살로 덥지만 그 햇살을 피하거나 저녁이 되면 시원해지는 가을의 전형 답게 적당히 활동함에 있어서 짜증나는 더위가 아니었고 해가 지면 하루 고생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보장 받는 계절이기도 했기에 여행(?) 중 지칠 겨를은 없었다.



예천읍을 거쳐 도착한 곳은 작년 하반기에 개장한 사과테마파크란다.(관련 포스트-자연으로 떠나는 여행, 예천 곤충나라 사과테마파크)

한천의 백석저수지를 끼고 산책하기 좋은 호수 공원과 예천 사과를 널리 알리기 위한 홍보관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데 반해 많은 돈을 들인 홍보관은 아무도 볼 수 없는 썰렁함 그 자체였다.

누님네를 따라 백석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따라 산책로가 있고 곳곳에 전망을 즐기며 쉴 수 있는 데크가 있어 밑져 봐야 본전, 그 뒤를 따라 갔다.

일차로 쉬는 곳은 호수 너머 전망대 같은 곳 좌측 하단의 그늘에 숨어 있는 데크.



데크에 도착해서 불어오는 가을 내음에 취해 있는 동안 하염 없이 앉아 쉬고 계시는 잠자리와 눈이 마주쳤다.

가을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는 건지 가까이 다가 가도 도망갈 생각이 없는 현실 감각을 상실한 잠자리는 한참을 산책하고 돌아와도 그 자리에 앉아 움직일 기미가 없어 죽은 줄 알고 손을 뻗자 냉큼 날아가 버린다.

괜한 설레발에 잠자리의 달콤한 휴식을 방해 해서 쏘리하구먼.





데크에는 설익은 호두가 몇 개 떨어져 있어 껍질을 까자 알맹이가 튼실한 걸 보니 다람쥐가 나무 위에서 실수로 떨어 뜨렸나 보다.

비록 조금 설익은 호두지만 작은 조각을 입안에 넣자 특유의 호두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콩알 한 쪽도 나눠 먹는다고 가족들과 개미 똥꼬 만큼 나눠 먹고 데크 뒷편의 전망대에 올라 보자.

나무 계단을 오를 수록 떨어진 낙엽과 칡꽃이 자욱히 떨어져 있는 걸 보면 평소 인적이 거의 없음을 반증해 준다.

덕분에 계단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사이 잠깐 만에 팔각정처럼 세워 놓은 전망대에 도착, 안은 얼마 되지 않는 집기들이 나뒹굴어 흩어져 있고 탁자며 의자에 먼지는 자욱히 뒤덮혀 있다.

명색이 전망대라 저수지를 비롯하여 그 일대를 한눈에 훤히 내다 볼 수 있건만 사람의 발길이 지독히도 그리운 흔적들 뿐이다.

우리가 타고 왔던 저수지 건너편 도로는 927 지방도에서 뻗어 나온 지선인데 이 길을 따라 좌측 방향의 뿌듯한 오르막길로 진행하면 그리 높지 않지만 무척이나 한적한 고갯길을 지나 종종 들렀던 풍기와 소백산이 나와 그제서야 상실했던 방향 감각을 더듬을 수 있었다.

지나는 바람이 거울처럼 잠자고 있던 호수 표면을 미세하게 일렁이게 하는지 댐부근과 달리 스크레치가 촘촘하게 그어져 있다.



호수 건너편 사과 테마파크 앞에 우리가 타고 온 깜둥이 카니발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나 싶더니 이내 다른 차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와 문이 열리고 깨알만한 아이 둘이 뛰어 나와 홍보관의 누런 건물로 들어간다.

청명한 날씨에 비교적 먼 시계도 선명하게 보이는 가을 대기는 깊어질 가을에 대한 기대감에 벌써 부터 궁뎅이 춤을 실룩거리게 할 정도로 설레게 하는 이 가을로의 이행이 부서진 조각처럼 문득 떠올라 하루 죙일 돌아다니는 피로감을 잊게 해준다.





전망대 뒷편에도 작은 마당과 조립식 집이 있을 줄이야.

렌즈 교환이 귀찮아-사진을 찍는 넘이 이런게 귀찮다니 뉘 집 총각인지 몰라도 베짱이 괴기를 쳐묵하셨나?- 광각 렌즈를 끼운 채 사진을 쭉 찍다가 도저히 버티기 힘들면 세 번 생각해 보고 망원 렌즈로 갈아 끼워 다시 쭉 사진을 찍어 나가다 아주 잠깐 광각이 필요하면 아이뽕으로 찍는 난 천재?

한 전망하시는 팔각정은 이렇게 직접 와 보면 나름 신경 써서 축조를 했건만 찾아 오는 이도 거의 없을 뿐더러 관리도 영 신통찮다.

그래도 내겐 매끈한 대신 북적이는 것보단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어도 이렇게 한적한 게 더 좋다네~

게다가 시골의 전망대 답게 산중이면서 탁 트인 전망을 접하게 되는 순간 지저분한 내부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게 된다. 



벌어진 턱을 이제 추스르고 나를 애타게 기다릴 다른 가족들과 합류를 위해 올라왔던 계단을 따라 다시 내려가는데 주위에 시종일관 향긋한 향취를 뿌리는 칡꽃과 요따구로 탐스럽게 열린 호두열매가 주위 곳곳에 널려 있다.

계단을 뛰어 넘어야 되는 위험은 감수하지 않기로 하고, 게다가 이건 예천군민의 재산이기에 보는 걸루 만족하고 달덩이 같은 가족들 얼굴 보러 내려 가봅세.



데크에 내려 오자 전망대에 오르기 전 요지부동이던 잠자리가 여전히 꿈쩍도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 손을 뻗자 냉큼 날아가,



멀리 가지도 않고 다시 여기에 내려 앉는다.

애시당초 괴롭힐 마음은 추호도 없었던 만큼 걍 지나쳐 차를 세워 놓았던 사과 테마파크로 걸어 간다.




호수 위 둘레길을 따라 가던 중 전망대 아래 비탈이 심한 절벽에 홀로 노란 옷을 입고 쳐다 보는 꽃 한 송이가 워낙 눈에 띄여 사진을 아니 담을 수 있나.



좀전에 쉬던 데크를 따라 둘레길은 호수 위로 이렇게 구불거리며 뻗어 있어 혼자 전망대에 오른 사이 다른 가족들은 이 길을 따라 걸어 갔다 어느 순간 길이 끊겨 다시 돌아왔단다.

사과 테마파크가 생기면서 백석저수지 일대도 이렇게 꾸며 놓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오지의 너른 공원이 참 안쓰럽다.

마치 2015년 가을에 찾아간 영양의 반딧불이 공원(영양에서 가을을 만나다_20151024)처럼 푸짐한 상에 홀로 앉아 그 많은 음식을 혼자 먹는 느낌이랄까?

기회가 된다면 올해 깊어가는 가을에 이 일대를 다시 찾으련다.



호수에 담긴 가을하늘.



데크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면 그 위에 우리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던 전망대와 둘레길이 보인다.




누님 가족이 최종 목적지로 선택한 이곳은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전망이 좋고 적당한 고도에 위치한 고즈넉한 산중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지 이 부근을 서성이며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낱낱이 둘러 보곤 가던 방향으로 다시 출발, 아주 작은 인가가 모여 있는 고샅길의 한 켠에 화사하게 가을 햇살을 반사시키는 백일홍은 마치 우리 가족의 방문을 환영하려는 듯 해맑게 활짝 피어 있다.

문명의 소음이 거의 없는 초행길에서 만난 백일홍의 짙은 핑크빛은 아이폰 조차 감히 담지 못하는 심연의 컬러를 간직하고 있다 일시에 그 컬러의 파동을 낯선 방문자에게 흩뿌려 주는 것만 같다.











가던 길을 따라 뿌듯한 오르막을 경유하다 보면 곤충박물관을 지나 풍기와 연결시켜 주는 한적한 고갯길인 고항재를 사이에 두고 예천, 풍기의 광활한 영역에 걸쳐 국립 자연 치유원이 있었다.

일종에 보존된 자연 숲에서 힐링을 한다는 개념인데 예천에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탓에 너른 공원에 몇 개의 테마들이 있건만 고항재 인접한 공원은 각종 야생화와 수풀이 우거지다 못해 산길까지 덮을 만큼 무성했다.

시간을 두고 수풀 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걷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가족과 왕성하게 자라난 수풀에서 뭐가 튀어 나올까(?) 싶어 대충 사진 몇 장만 찍고 다시 가던 길로 향했다.

고항재를 넘자 예천과 다르게 자연치유원 입구는 비교적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있던데 예천과 대비해 볼 때 새로운 세상 같았다.

그런 새로운 세상을 뚫고 도로를 따라 진행하자 풍기읍이 나오고 작년 가을에 방문 기억이 났던 고구마 카페에 들러 커피와 함께 몇 가지 고구마 빵을 곁들이며 왔던 길을 되짚어 봄과 동시에 앞으로의 일정을 잠시 나눴다.

맛집이라고 찾아간 문경의 올갱이 해장국은 좀 아니다 싶고 예천 한맥CC 초입에 있던 토담은 푸짐하고 정갈하긴 했으나 추켜 세울 정도는 아니었기에 당당하게 소개했던 누님네가 좀 머쓱했는지 실망을 만회하고자 예천 축협에서 운영하는 식당의 한우를 야심만만하게 권한다.

누님네를 제외하고 다른 가족들은 초행길이었던 만큼 속는 셈치고 다시 믿어 보기로 하자며 3번째 예천읍으로 향했다.

근데 전화위복이랄까?






생갈비와 갈비살을 넉넉하게 시켜 먹었던 예천 축협은 엄지손꼬락과 엄지발꼬락까지 추켜 세워도 모자를 만큼 맛, 향, 식감에 있어 압도적이었다.

조금 허기진 거 같아 허겁지겁 먹었던 고구마 빵이 식욕을 억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한 접을 입에 넣는 순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매력에 끌려 엄청나게 포식해 버렸다.

그 매력이란게 한우의 깊은 맛과 더불어 고깃살이 얼마나 연한지 먹는 중에도 시종일관 감탄사를 연발 했으니 더 이상 게임 끝이다.

역시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정신 없이 생갈비를 먹는 동안 사진이고 나발이고 다 귀찮두마 식당을 나서자 가을 하늘의 매력이 한눈에 들어 오니 사람 참 간사하고 가볍다.

지방의 청정한 대기와 더불어 그 날 특히나 청명한 가을 하늘에 비키는 노을은 장엄한 연출이 전혀 없었음에도 일몰에서 퍼지는 붉은 색상과 가을의 깊은 하늘색의 앙상블로 처음 찾아간 예천의 한적한 풍경과 함께 유유자적 산책을 하면서 둘러 보지 않으면 서운할 것만 같아 어느 정도 부푼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걷기로 했다.




예천교를 넘어 예천을 관통하는 한천 고수 부지에 다다를 무렵 해는 서산마루로 벌써 넘어가 그 잔해만 남겨 두었건만 그 마저도 한무리 구름떼와 어우러져 해가 지는 아쉬움을 토로하듯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잠깐 둘러 본 정도지만 아마도 예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가 예천상설시장 일대에서 군청 사이 정도? 아님 말고~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았는데다 번쩍이는 간판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걸 보면 당연하겠지?



다음 찾은 곳은 맛고을 문화의 거리.

누님네도 근래 들어 짧은 시간 예천에 몇 번 다녀온 실력임에도 참 많이 다녔는지 아는게 허벌나게 많다.

게다가 예천의 특징까지 대략 설명하기로 예천은 대도시에서 온 외지인이 많아서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 휴일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오히려 썰렁하단다.

그래서 인지 이 거리는 평일이 더 북적댄다네?




주택가와 식당이 밀집하여 편도로 차 한 대 지나다닐 수 있는 비교적 긴 사잇길에는 요즘 붐이 일어나는 벽화마을처럼 도처에 옛 향수를 자극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지나는 길손들의 발목을 잡는다.

불타는 금요일 밤인데도 이 거리가 한산한 건 좀 어색하긴 하나 여유 때리면서 구경하는 맛은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족 단위로 산책 중인데 그래서 인지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은 거의 없고 가볍게 담소를 나누며 빼곡하게 널려 있는 익살맞은 벤치에 앉아 쉬다 다시 산책을 했다.

특히나 무더운 여름이 금새 자취를 감추고 초가을의 시원한 날씨-갑자기 가을 같은 날이라 타이밍은 좋았다-를 실어 나르는 분주한 바람살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그냥 기분이 좋아져 산책을 다녀야만 할 거 같은 날이었던 만큼 적잖게 걷는 내내 피로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고 2~3년 새 급격히 체력이 약해진 오마니께선 그짓말처럼 한 마디 피로한 내색 없이 잘 따라 다니셨다.

언제까지 지금의 건강이 유지될지, 그리고 얼마나 더 정정하실지 모르지만 지금라도 늦지 않았다면 다닐 수 있는 여행 또한 뒤늦은 건 아닐 터, 가급적이면 하드한 트레킹 정도는 혼행으로 하거나 마음 맞는 일행들과 다녀야 지만 그렇지 않고 유유자적한 여행에 함께 다닐 예정인데 평생 자식들에 대해 맹목적으로 사셨던 분이라 여행을 소비와 소모로 생각하시다 근래 들어 뒤늦게 깨달으시고는 여행을 가면 크게 표현하지 않으셔도 좋아하 하시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다시 예천교 고수 부지로 돌아와 이 밤의 마지막 아쉬움을 정리하며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조령산 휴양림의 통나무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저녁을 먹고 잠시 하는 산책이라고 생각했건만 예상치 않게 눈이 즐거웠던 만큼 빠르게 지나치는 시간에 떠밀려 어둑한 밤이 모든 공간을 암흑으로 빼곡히 채워 버렸고 즐거웠던 눈이 마음을 다독여 준 덕분에 우리 모두는 흡족한 시간을 가슴에 한아름 안고 하루를 접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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