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57

가을에 한 발 다가선 횡성호수길A_20221011

이른 새벽에 걷는 호수길 따라 가을은 깊게 뿌리를 내려 정체된 공기 속에서도 독특한 향취가 줄곧 함께 걸었다.대부분 호수 둘레길이 호수에서 멀찍이 떨어져 평행선을 그린다면 이곳 호수 둘레길은 호숫가에 녹아든 나뭇잎도 식별할 만큼 지척에 붙어 묘한 정취가 있었다.마치 동네 공원길을 걷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길은 탄탄하게 닦여져 있었고, 그 길의 지루함에 발길 돌릴까 싶어 파생된 길은 산중 오솔길처럼 한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폭에 호수와 숲 사이를 교묘하게 뚫고 호수로 돌출된 반도로 지그재그 뻗어 있어 걷는 재미도 솔솔 했다.새벽에 피어오를 물안개는 기대할 수 없는 날씨라 아쉽지만 모든 만족을 채울 수 없는 노릇이었고, 8km 조금 넘는 도보길을 걸으며 도시와 다른 텅 빈 산책로에서 산책의 무료함과 피로를..

봄의 비바람도 반갑던 하늘자락공원_20220331

산 위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는 전망대는 세찬 비바람도, 집어삼킬 듯 기세 당당한 구름도 천적은 되지 못했다. 옷깃 여미는 추위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늦잠 자는 봄나물을 깨울 수 없는 노릇이라 한 줌 봄소식을 코끝에 챙겨 돌아가며 산 위 우뚝 선 전망대는 작은 위안에 콧노래가 되어준다. 봄소식 가득 품은 빗줄기는 굳이 피하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마치 때가 되면 만나 소주잔 함께 나누는 친구 같아 옷 젖는 걱정보다 그 정겨움은 비할 바 없다. 짧은 시간이라도 좋고, 여유 충만한 시간이라도 좋은, 그래서 산중에 알싸한 봄과 비의 화음에 설레게 떠난다. 산 정상 가까운 곳에 양수발전소가 있고, 그 일대를 공원화 시켜 이렇게 멋진 전망대를 세워 숨겨진 절경을 찾으란다. 싸늘한 봄비에 맞게 기온도 서늘한..

따스한 봄비 내리던 예천_20210327

봄나물 중 하나인 머위를 뜯으러 왔으나 아침부터 기세 좋게 내리는 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접고 돌아오게 되었다. 산중 비를 피할 생각 없이 고스란히 몸을 두드리는 빗방울은 마치 함께 음악을 연주하듯 재즈선율로 피어나 봄이 움트는 골짜기에 진동하며 강인한 잡초처럼 새 생명의 씨앗을 곁 뿌린다. 때마침 지나는 낮은 구름도, 텅 빈 도로를 질주하는 시골 버스도 평온의 품 안에서 흥겨워하는 작은 정취의 조각으로 모여 거대한 평화의 속삭임에 빗방울은 신명 난다.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민들레는 겨울에도 종종 볼 수 있을 만큼 봄꽃이라 한정 짓기에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어 왔다. 오는 길에 괴산에서 비상식량을 미리 마련, 교촌과 콜라보로 나온 크로켓이라 간장 치킨이 속에 들어있고, 겉은 쌀로 바싹바싹하다. 머..

우포 출렁다리와 쪽지벌_20201119

우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출렁다리는 생태촌 창녕 공무원을 통해 추천받은 우포 일주 탐방로 중 꼭 들르길 추천하던 장소로 바로 앞까지 차량 출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멀찌감치 차를 두고 뚝방길을 따라 찾아갔는데 우포 하류 위치에 산밖벌이라는 근래 복원한 늪과 쪽지벌 사이를 가르는 토평천 도보길로 스릴감이나 절경보다 원시 하천 위를 걸으며, 산업화 시기에 거리를 누비던 버드나무의 희미한 기억을 반추할 수 있다. 갈대가 무성한 산밖벌을 돌아 출렁다리를 건너 뚝방길을 따라가면 쪽지벌로 향하게 되는데 우포에 발을 딛고 가장 아름다웠던 건 들판 민들레처럼 혀에 살짝 감기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하나씩 재현되고 있다는 것, 그냥 아무렇게나 두어도 자연은 스스로 각성하고 틀을 잡아가는 자생 기능이 발현되고 있..

원시 호수의 형태, 우포_20201119

우포는 크게 우포, 사지포, 목포, 쪽지벌이 있는데 우선 우포 먼저. 사는 인근에도 큰 저수지가 몇 개 있긴 하나 우포는 4개의 호수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늪지대이자 자연 생태지역이나 진배없었다. 산과 달리 주변을 돌며 산책하기 좋은 평탄한 길인데다 수도권과 달리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인가도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전체를 본다면 마치 테마별 분류한 것처럼 분위기가 조금씩 달랐다. 4개의 호수 중 가장 큰 우포늪을 먼저 밟으며 걷기 좋은 대대제방으로 향했다. 이미 떠난 가을의 흔적만 남아 퍼붓는 비와 세찬 바람이 더해 을씨년스러웠다. 이따금 우두커니 서 있는 버드나무의 노랑이 바람결에 펄럭이며 바람을 뒤따르려 하지만 매몰찬 바람은 멀찍이 남겨 두고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져 버렸고, 호수 한 켠에 빼곡히 ..

어스름 사이 동 트는 문광저수지_20201015

물들어 가는 은행나무의 정취, 동녘마루 너머 하늘을 태우는 해돋이, 밤새 웅크리고 있다 새벽녘 기지개를 피는 물안개.먼 곳의 그리운 소식처럼 가을 정취는 소리 없이 대기를 유영하며 작은 날개짓을 한다.올 때 그랬던 것처럼 갈 때도 발자욱은 없지만 쉬던 자리에 여운의 향기는 짙다.새벽동이 트기 전에 찾아가 예상치도 못한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기다렸건만 대부분의 사진들이 바이러스에 취한 것처럼 오류가 나며 이미지 파일로 인식하지 못했다.아쉽지만 메모리카드를 주기적으로 포맷해 주는 수밖에.동이 트기 전, 주차장에 도착하자 이미 와서 기다린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차에서 기다렸다.완전히 어두운 밤과 같아 분간하기 어렵지만 은행나무길의 호기심을 풀기 위해 길을 걷노라니 간간히 암흑을 헤치고 길을 걷는 사람들과 마주..

거대한 시간 앞에서, 반계리 은행나무_20200912

찾는 이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그 적막한 울림에 잠시 기댄다. 지나는 이도, 마을 인가도 거의 없는 외딴 깊은 산속 마을처럼 수풀이 무성하고, 바위 틈틈 이끼가 자욱하지만, 그렇더라도 넘치는 건 여유와 소박한 정취다. 걷다 아픈 다리를 잠시 쉬게 해 주는 육각정과 따가운 햇살을 막아 주는 건 감히 배려라고 읽어도 되겠다. 가을이 살짝 드리워진 여름 내음은 시원한 코끝에 살짝 덧씌워진 물의 향기처럼 파닥거린다. 그 유혹 참지 못하고 해가 지는 촉박함을 잊은 채 풀숲 너머 연신 졸고 있는 호수가 깰까 사뿐히 그 길을 밟는다. 호수 위 전망대가 비록 무성한 여름에 가려 뻗어나가고자 하는 시선이 좌절되더라도 가지 사이 간간히 풍기는 세상은 하늘처럼 넓고 산자락처럼 포근하다. 천연기념물 원주 반계리 은..

시간의 침묵, 동탄호수_20200808

줄곧 내릴 것만 같던 비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인 사이 호수 산책로를 걷는다. 호수에 비친 세상 그림자가 휘영청 늘어서 무거운 하늘을 잠시 가리며 근심을 잊으라 한다. 그 울림에 무심히 걷다 어느새 다시 굵어지는 빗줄기가 금새 인적을 증발시키고, 덩달아 초조한 아이처럼 잰걸음으로 비를 피한다. 이렇게 사진이라도 남기길 잘했다. 찰나는 그저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 내 인생을 하나씩 엮어 나가는 조각들이라 무심하게 지나는 것들이 내게 간절했던 기회일 수 있다. 올해도 이미 반 이상 뒤로 했지만 뒤늦게 깨달은 바, 그래서 다행이고, 그로 인해 용기를 내고, 그래서 도전한다.

산 아래 작은 바다, 대아저수지_20200615

당초 흐릴 거란 예상과 달리 화창한 날씨는 여행자의 길에 동반자와 같다. 복잡다단한 호수길이 인도해 준 깊은 세상은 문명의 잡념을 고스란히 잊게 해 줘 중력의 위압감은 어느새 기대에 희열의 공기가 부풀어 무중력 공간 마냥 한층 발걸음이 가볍다. 이따금 만나는 거친 물소리조차 안도의 응원으로 속삭이는 칠성대 가는 길, 그 길 위에서 계절의 아지랑이가 설렘을 간지럽힌다. 또한 올 초 바다와 만나는 만경강 하구를 찾았던 감회의 힘찬 도약이 바로 이 언저리였다는 사실에 추억이 가진 힘을 아로새긴다. 근원은 알 수 없지만 산이 보듬어 준 덕분일지 모른다. 산은 많은 생명을 이어주는 강 또한 묵묵히 품어준다. 지나던 길에 음수교로 빠져 방류하는 광경을 감상한다. 물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한껏 떨어져 있음에도 온몸으..

가슴 시원해지는 구만제_20200320

가는 걸음이 무거웠을까? 차량에 넉넉히 밥을 챙겨 주곤 출발하다 지리산 생태공원이란 이정표를 보곤 옆길로 샜다. 지난 만추에 방문했던 야생화 생태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지나는 길에 슬쩍 봤던 눈썰미가 남아 어차피 구례를 출발하는 이상 앞만 보고 달릴 텐데 시간 여유가 있어 옆길로 새도 그리 빠듯할 것 같지 않았다. 아주 약간의 미세 먼지가 있긴 해도 이 정도 청명함이면 땡큐 아니것소잉. 구만제는 호수를 둘러싼 주변 경관이 매혹적이다. 그래서 공원은 물론이고 리조트와 휴양림도 들어섰다. 길게 늘어선 지리산 자락이 땅에 맞닿은 곳이라 호수는 매혹적인 경관을 연출하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대부분 산수유의 마법에 홀려 호수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품은 구례가 어디 산수유 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