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41

아련한 시대의 자취, 충주 고구려비_20240928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는 충청북도 충주시(忠州市) 중앙탑면(中央塔面) 용전리(龍田里)에 있는 사각 기둥 형태의 고구려비이다. 발견된 곳의 당시 행정 구역이 중원군(中原郡)이어서 중원고구려비라고 명명하였으나, 중원군이 충주시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충주고구려비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글자의 마모가 심하여 판독에 어려움이 있지만 5~6세기경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충주고구려비는 1979년 단국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 조사되었다. 충주고구려비는 오랫동안 선돌[立石]로 여겨졌기에 비가 서 있던 마을 이름도 입석 마을이었고, 비를 조사할 당시에도 일부 주민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호인들의 제보가 있어 현지 조사를 한 결과 삼국 시..

남한강을 따라 흐르는 시선, 충주 장미산성_20240928

충주 장미산성을 계획한 날, 1시간도 걸리지 않아 충주에 도착했고, 때마침 고구려 축제가 있어 차량 행렬이 비교적 눈에 띄었다.광활한 고구려의 의미를 기리듯 청명한 가을하늘은 더할 나위 없었는데 더불어 여정을 즐기기에도 최적의 날씨라 출발 전부터 기분은 공중부양 상태였다.장미산성은 해발 337.5m인 장미산을 중심으로 계곡을 감싸, 돌로 쌓은 산성이다. 수로 및 육로교통의 요충지이자 삼국시대에 전략적 거점이기도 한 이곳에는 백제시기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산성의 원류는 고구려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충주 고구려비’와 관련하여 고구려 세력의 남하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대림산성과 장미산성 내 설명판) 이 성과 관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충주의..

남한강 울타리 속 자연, 충주 비내섬_20240620

적당한 물비린내와 풀내음이 뒤섞인 비내섬은 남한강이 만든 섬으로 장자섬과 함께 가끔 들러 봄에는 공허함 가운데 신록의 파릇한 민낯을, 가을엔 생명의 성숙을 가르며 잔잔한 산문집을 읽는 기분으로 거닐던 곳이었는데, 문화 컨텐츠의 화력으로 인해 갑자기 신데렐라가 된 명소다.산문집이 그렇듯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쉽게 읽히지도 않는 것처럼 빼어난 풍광이나 특출 난 경관을 바란다면 이 또한 처음 몇 페이지만 읽다 덮고 서가에 먼지가 쌓이는 산문집과 같았다.걸음을 멈추고 익숙해진 화이트 노이즈를 잊어버린다면 무성한 풀섶 어딘가에서 들리는 여러 종의 새소리 화음이 뒤늦게 들렸고, 여러 종의 생명이 바람에 응수하는 제각각의 노래를 깨칠 수 있었다.이왕 비내섬에 왔다면 이미 떠나버린 사랑의 불시착보단 늘 ..

하늘재가 이어준 베바위, 충주와 문경의 하늘재_20240619

하늘재를 넘어 포암산 베바위 아래 포암사를 거쳐 다시 하늘재로, 하늘재에서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 다른 숲 속 자연관찰로를 밟아 원점으로 돌아왔다.무성한 숲이라고 폭염을 피할 수 없지만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무거운 더위를 떠받쳐주는 산의 숲에서 말 없는 유약한 길도 그 품을 파고든다.예전엔 끈적한 여름이 싫었는데 어느 순간 나이를 짊어져 무거운 추회를 읽는 순간부터 여름은 피하고 떨치는 계절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자연이 주는 축복이었고, 이렇게 내게 주어진 축복을 덤덤히 즐기는 것 또한 자연에게서 배웠다.더위에 흠뻑 젖은 내게 봇짐을 파는 분이 내민 생수 한 잔은 그 축복의 연장선상이었으며, 인근 수안보 온천에서 몸을 이완시키는 건 행복이었다.하늘재옛길을 걸어 포암산 베바위 아래 포암사에 도착했다.베..

이천 년 삶의 희로애락, 충주 계립령 하늘재_20240619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이자 남북을 잇는 요충지인 계립령로 초입에 자리한 절터에 도착하여 폭염을 뚫고 하늘재로 향하기 전, 역사의 흔적에 잠시 숙연한 상상에 빠졌다.한 때는 성행했고, 또 한 때는 외면받았던 하늘재 길목은 창칼을 겨누거나 큰 희망의 고갯길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무거운 공기만 가득했다.그래서 그 무거운 정적의 내음과 자취가 이끄는 대로 길을 밟으며 둔중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하늘재는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을 잇는 고갯길로 공교롭게도 충주 방면은 미륵리, 문경 방면은 관음리란 지명을 갖고 있었다.미륵과 관음이라...이승과 저승의 고갯길이 하늘재, 계립령이란 말일까?미륵대원지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고려전기 석굴을 주불전으로 하는 사찰터로 198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하늘재[..

구름의 강이 흐르는 충주 수주팔봉_20240515

때마침 수도권은 대낮부터 장대비가 내려 야외 스포츠도 우천으로 중단되었던데 반해 충주는 거짓말처럼 대낮엔 화창하다 16시를 넘겨서부터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17시 전후부터 장대비가 내렸고, 이른 저녁식사 뒤에도 부쩍 길어진 낮이 아직은 건재하여 비교적 가까운 수주팔봉으로 향했다.역시나 장대비로 일찌감치 사람들은 떠나버렸고, 어차피 고속도로 상행선은 정체구간이 길어 천천히 둘러보며 남은 공휴일을 누렸다.바람과 비, 그리고 구름이 함께 머물다 떠나는 자리, 충주에서 큰 골짜기만큼 진폭이 큰 휴일이었다. 강, 산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오작교, 수주팔봉_20210128오죽하면 강산이 고유명사처럼 사용 되었을까? 뗄 수 없는 인연의 골이 깊어 함께 어울린 자리에 또 다른 강이 함께 하자고 한다. 태생이 다른 ..

냥이와 제비의 열렬한 환영, 충주 홍두깨칼국수보쌈_20240515

내 이름은 만두.난 우측 뒷다리 하나가 없어.그래서 급할 때 다른 닝겐들처럼 민첩하게 뛰거나 피하지 못하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아.집사, 동네 사람들, 그리고 여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내게 미소를 날려주고, 따스한 손길로 나를 대해줘.나도 사람들이 좋아.그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도 어느 하나 큰 소리를 내거나 위협하지 않거든.난 늘 부족한 게 없어.밥도 적당히 채워져 있어 배고플 때 먹으면 되고, 심심할 때엔 뒤뜰에 벌레며 가끔 사람들이 함께 놀아줘.그래서 난 누군가 맛 좋은 걸 주는 것보다 관심과 애정, 그리고 나에 대한 삐딱한 편견만 없었으면 좋겠어.기생과 공생을 모르는 닝겐들이 아직 많더라구.집사는 내게 있어 세상이며, 나 또한 그들의 희열이거든.그럼 다음에 나를 보러 오게 된다면 나지막이 내 이름을 ..

호반에서의 유유자적, 충주 종댕이길 심항산_20240515

작년 늦여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 동경의 돛단배를 타고 다시 찾은 종댕이길은 이제 막 젖어들기 시작하는 봄의 문턱을 넘어 여름의 짙은 녹음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사람들의 손끝에서 비롯된 온기가 종댕이길 일대에 뿌리를 내려 간과될 만한 작은 소품들이 길 위의 모든 존재들과 길가를 겉도는 무형의 흔적들이 유기적으로 어울려 단순히 이동의 발판이 되는 길의 의미를 넘어 혼탁한 현실을 재조명시켜 주는 치유가 되고, 노동의 걸음이 아닌 지혜의 걸음으로 재탄생한다.내륙 속의 작은 바다에서 말미암은 파동으로 굳어진 사유에 겹겹이 끼인 때는 어느새 바스러지고, 길가 스치듯 가까워졌다 멀어져 간 모든 순간들조차 기억과 추억에 가두고 싶은 곳, 애환을 실어 나르던 종댕이길은 이제 삶의 이완제로 다가온 혈관이 되어 버렸..

충주호_20050729

가족 피서 겸 여행으로 충주 봉황계곡에 간 이튿날 충주호 유람선 여행을 떠났다.당시만 해도 충주호 유람선 여행은 제법 괜찮은 유랑 중 하나였고, 구간에 따라 단양까지 운행하는데 기억이 바래긴 했지만 아마도 월악산 선착장까지 다녀 오지 않았을까 싶다.먼저 공터와 같았던 요트 선착장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낸 뒤 유람선을 타고 탁 트인 시야와 강바람을 맞았다.유람선을 타고 월악산 아래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에 멀리 월악산의 멋진 산세가 펼쳐져 있었다.두 장의 사진은 7월 19일에 충주에 사는 형 뵙고 가르쳐 준 곳으로 요트 선착장이라 일반인들은 거의 알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

추억의 사색 2024.07.03

여름 피서, 충주 봉황계곡_20050728

교회 목사님 내외분 배려로 봉황계곡 보훈휴양원을 숙소로 하여 세 가족의 피서지로 손색 없었다. 첫 날은 봉황계곡 한포천에서, 둘 째날은 충주호 여행을 하며 빠듯한 시간을 알차게 보냈는데 한포천은 남한강으로 합류하는 지류로 봉황계곡의 위치상 하류임에도 수질은 큰 문제가 없었던 걸로 기억 났다.역시나 아이들은 말그대로 물 만난 제비가 되었다.

추억의 사색 202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