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30

작은 오지 쉼터, 봉화_20220731

깨진 평온에 심술이 난 물안개 사이로 금세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고, 여울틈 사이로 숨어 있던 생명들이 신기한 구경거리를 만난 양 다가와 툭툭 입을 맞혔다. 하늘이 떨구는 비는 여유의 향미가 곁들여지면 잠자던 자연의 협주곡이 되며, 수줍어 숨어 있던 안개를 춤추게 하며, 침묵하던 바람의 세상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래서 살짝 찍는 쉼표는 견줄 수 없이 감미로웠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차가운 여울에 살짝 발만 담근 채 잠잠해진 비를 피했다. 멀찍이 어딘가 숨어 있던 안개가 여울 위로 만개했다. 근래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물이끼가 제법 끼어 있었고, 그걸 먹이 삼아 다슬기도 빼곡하게 있었다. 굵은 빗방울 하나 여울에 튕겨 수정 구슬이 생겼다. 비가 내려 그나마 수량이 늘었고, 물은 원래의 그 청정함을 되찾았다..

소소한 절경의 향연, 수주팔봉_20220103

거리에 부담이 없으면서 막연히 성취감을 얻고 싶었다. 그러기에 언뜻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르는 곳, 충주 수주팔봉을 향해 달렸고, 더도 말고 거의 1년 전과 비슷한 감흥을 기대했다. 내린 눈이 얼어 아슬아슬한 충주 초입을 벗어나 수안보 방면으로 달릴 땐 다행히 눈 내린 흔적은 거의 없었는데 뽀송뽀송한 도로 컨디션을 보고 운전하기 수월한 19번 국도 대신 예전 도로인 문산재로 꺾어 서행으로 꼬불길을 올라갔다. 강, 산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오작교, 수주팔봉_20210128오죽하면 강산이 고유명사처럼 사용 되었을까? 뗄 수 없는 인연의 골이 깊어 함께 어울린 자리에 또 다른 강이 함께 하자고 한다. 태생이 다른 세 개의 사무친 그리움이 심연의 갈망을 이루기 위meta-roid.tistory.com편하게만 여겼..

구슬픈 고양이 울음소리, 소백산 휴양림_20210909

어느 순간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낮이 부쩍 짧아져 서둘러 하루 해가 등을 돌려 사라져간 잔해만 보인다. 시나브로 찾아든 가을이 문턱을 넘는 이 시기, 문득 뜨거운 노을처럼 가슴은 따스해지고, 무겁던 시야는 초롱이 불 밝힌다. 초저녁에 단양 소재 소백산 휴양림으로 출발, 단양에 들러 식재료를 마련한 사이 어느새 밤이 내려 도착했다. 평일치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여긴 산중 다른 세상 같다. 남한강이 발치에 내려다 보이는 공원이기도 하고 숲속이기도 하다. 칠흑 같은 암흑 속을 헤치며 잠시 걷는 동안 발치에 소리 없이 지나는 남한강을 마주했다. 휴양림 내 타워전망대를 따라 무심히 쳐진 거미줄을 뚫고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전망대에 서서 사방을 찬찬히 살피는데 정적 속에서 평온의 기운이 자욱했다. 잡고 ..

강, 산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오작교, 수주팔봉_20210128

오죽하면 강산이 고유명사처럼 사용 되었을까? 뗄 수 없는 인연의 골이 깊어 함께 어울린 자리에 또 다른 강이 함께 하자고 한다. 태생이 다른 세 개의 사무친 그리움이 심연의 갈망을 이루기 위해 지극히 무거운 걸음을 옮겨다다른 곳, 그래서 그 그리움을 잊지 않기 위해 첨예한 자연의 칼로 올곳이 조각하여 그리도 간절한 애정을 주홍글씨 마냥 그려 넣었을까? 만남은 그간의 애달픈 인내 였는지 갑작스런 눈발이 슬픈 곡조로 허공을 활보한다. 달천, 석문동천, 팔봉이 만나는 곳. 숨겨진 명소라 사위는 고요하고 인적은 뜸했다. 허나 숨은 보석처럼 미려한 곳이다. 출렁다리 밑 석문동천이 달천과 합류하는 곳으로 사람이 일부 가공했단다. 칼날 같은 능선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전망대에 다다르게 된다. 데크길이 없..

이른 아침 수주팔봉 가는 길_20210128

은사 댁에 들렀다 이튿날 일찍 충주 여행지로 향하던 중 해돋이를 만난다. 밭에서 잠자고 있는 배추와 한 치 오차 없이 동녘에 뜨는 일상의 태양은 외면받지만, 생명의 삶에 있어 필연과 같다. 분주한 도시와 다르게 시골 아침 정취는 부시시 고개를 내미는 햇살부터 여유롭다. 밭에 남은 겨울 배추를 보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난다. 서리가 앉아 꽤 신선하게 얼었다. 충주로 가는 길에 장호원을 지날 무렵 동이 튼다. 수주팔봉 도착. 주차장엔 스낵카와 내 차량뿐.

설경에 함락된 충주산성_20201218

눈이 소복이 덮인 성벽을 따라 걷는 동안 무심한 시간을 탓할 겨를 없이 허공을 채우고 있던 연무와 햇살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일상을 한발 벗어나고, 인파를 잠시 등지고 있던 찰나가 마치 정적에 휩싸인 허공처럼 한결 같이 머릿속을 맴돌던 잡념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뿌연 안개처럼 걷히며 무념의 가벼움에 도치되었다. 대부분의 산성들이 근래 들어 고증된 역사를 발판 삼아 복원되었지만, 그 땅에 서린 처절 했던 흔적과 달리 마냥 평화롭기만 했던 건 어쩌면 수 없이 흘린 피의 궁극적인 신념과 바램 아니었을까? 위태로운 비탈길을 따라 밟는 오르막길보다 더욱 긴장되는 내리막길은 양귀비의 마력에 혼이 나간 나머지 제 생명을 압박하는 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반증하는 만큼 때론 중력이 잡아 끄는 방향을 모르는 게 약이라..

충주의 천리안, 남산 충주산성_20201218

올해 눈과 인연이 많다. 봄의 정점에서는 미리 잡은 여행에 맞춰 뜬금없는 폭설이 내리고, 이번 또한 다를 바 없이 추위를 안고 맹렬한 기세로 눈발이 날렸다. 디딛는 발끝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고, 무심코 걷던 발걸음에 위태로움은 끊임없이 균형을 쥐락펴락하지만 몇 알 굵은 소금이 반찬의 풍미를 더욱 맛깔스럽게 미각을 현혹하듯 현재와 미래, 기억과 현실의 상호작용을 끈끈하게 뒤섞일 수 있도록 잡념의 티끌마저 하얗게 채색시켰다. 충주 시민이라면 삼척동자도 안다는 산기슭을 오르며 가는 시간의 안타까움마저 잊어버렸던, 찰나 같지만 울림이 깊은 하루였다. 처음 찾아온 곳이라 정확한 진입로를 몰라 헤맬 수 있으므로 충주시무공 수훈자공적비 공영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한 뒤 진입로가 있는 방면으로 걸어갔고, 생각보다 얼마 ..

짧은 시간의 장벽, 장미산성_20200829

변화무쌍한 날씨답게 이내 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을 떨군다. 온몸이 젖은 들 대수롭지 않다 여겼건만 갈피를 잡지 못한 천둥소리에 떠밀리듯 걸었던 길을 되밟는다. 인적이 전혀 없는 길을 따라 평원을 휘몰아치는 남한강 물줄기를 제대로 가슴에 담지 못했는데... 고즈넉한 산사의 길을 따라 그 끝이 궁금했는데... 나처럼 힘겹게 산을 이고지고 올라선 바람의 연주를 채 끝까지 듣지 못했는데... 허공 어딘가에 숨은 번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음에 다시 오라 한다. 다시 오는 건 아깝지 않다만 지금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회가 아쉽다. 자연과 시간은 항상 내 주위에 있건만 미묘한 감각은 제각각이지 않은가. 초행길이라 지도에 표기된 봉학사 바로 아래 주차한 뒤 길을 걸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오를수록 안개가 ..

남한강의 곁가지, 장자늪_20200829

충주로 내려오는 길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폭우가 쏟아졌고, 서충주신도시에 도착하여 커피 한 잔 내릴 무렵 천의 얼굴을 가진 하늘에서 무자비한 구름이 창궐했다. 꼭 들러야 되는데 늘 지나쳐 왔던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에 기필코 오겠다는 다짐으로 도착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잠정 휴관이라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고구려란 이름에도 흥분되는 걸 보면 한민족의 숨겨진 기백과 한이 이 나라에 서려 있고, 화려한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 시간은 영원히 이 땅과 가슴속에 남을 거다. 코로나19와 피서철로 인해 국내 여행객이 늘었다지만 여전히 관심의 뒷전에 밀린 곳은 어쩌다 들리는 발자국 소리조차 굉음으로 들렸다. 코로나19로 임시휴관이라 아쉽지만 어차피 충주는 만만한 거리에 자주 오는 여행지라 다음을 기약하..

장례식장 다녀 오던 길_20200210

코로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 사이에 공포는 꽤 컸다. 명동 시내가 언제 이런 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텅 비어 심지어 이른 아침 시간에 명동을 지날 때면 마치 다른 세상으로 넘어온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서울과 달리 수도권을 조금만 벗어나면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늘 듣는 말이 "여기는 청정지역이라 코로나가 올 수 없어요.",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곳은 아직 안전해요."라는 무심한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난 사람들이 밀집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을 오가는 입장이라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긴장을 했고, 결혼식을 비롯하여 장례식처럼 사람들이 웃거나 울거나 떠들어야 되는 폐쇄된 공간은 더더욱 피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경종 속에서 엄친의 갑작스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