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30

동해에서 원주로 향하는 영동고속도로_20220825

이튿날 동해시, 동해 바다와 작별하고,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원주로 출발했다. 지난 봄에 동해 바다를 만난 영덕이 숨겨진 보석이었다면 동해, 삼척은 진품이 검증된 보석이었다. 카페와 펜션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오래된 마을이 그랬고, 야생의 바다와 기암괴석이 그랬다. 올 때처럼 갈 때도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며, 대관령 지나 마치 뿌듯한 내리막길을 미끄러져 가는 기분에 도치되었다. 그 길 따라 도착한 원주는 새로 꽃단장한 간현이었다. 동해를 떠나 동해고속도로에 발을 걸쳤다. 망상해변 구간은 인접한 우측이 망망대해, 동해바다였다. 옥계를 지날 무렵 전방에 특이한 형상의 구름이 보였다. 마치 젊은 시절 한 가정을 떠받치느라 허리가 굽어 더이상 펼 수 없는 우리네 할머니 같았다. 강릉3터널을 지나며 남강릉IC가 가까..

영동고속도로 따라 동해 가는 길_20220823

동해바다와 동해/삼척을 목적지로 궈궈!!!비 내린 뒤라 대기가 이리 청명한 건 축복이자 행운이고, 피서철 끝물이긴 해도 여름과 가을이 묘하게 뒤섞인 정취는 뒤돌려차기하는 맛이 있었다.수평선이 이다지도 선명하고 간결하게 보이는 날, 축복과 행운을 절감했다.원주를 지나면 전형적인 강원도 지형인 장벽 같은 겹겹이 산세를 만날 수 있었다.우측에 거대한 치악산이 자리 잡고 있는데 비로봉 일대 정상은 구름에 가려졌다.둔내 즈음 지날 무렵, 비가 내린 뒤라 대기는 이보다 청명할 수 없었다.덩달아 기분은 업업!방향지시등은 차량을 구성하는 디자인의 구성 요소일 뿐, 무법천지의 차량은 실선, 점선도 구분 없었다.평창 둔내를 지나 청대산 자락의 둔내 터널을 지나면서 드넓던 하늘은 순식간에 달라졌다.메밀꽃 필 무렵... 봉평..

유희의 찬가, 치악산 종주능선과 남대봉_20220504

칼날 같은 능선은 아니지만 치악산의 종주능선길을 걷는 건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유희로 가슴 벅차다. 전형적인 오솔길로 길 폭은 한 사람 지나기에 자로 잰 듯 알맞고, 길가 유기물은 어느 하나 특별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찮은 것 하나 없이 여느 길과 완연히 다른 기분으로 착색시켜 이따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충족된 목적에 한숨 응수하며 오를 때의 고단함을 잊게 만들었다. 길이 아름다운 건 그 길의 필연을 역설하기 때문이고, 또한 오래된 시간의 자취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이 잉태된 땅에 불쑥 들어서 환영 받지 못하는 불청객은 길로 인해 손님이 되고, 친우가 되며, 때론 제자가 된다. 비록 뿌연 대기가 세상으로 뻗어가는 시선을 시샘하고, 용인하지 않지만 이 길에서 만큼은 세속과 다른 민낯을 하나씩 열거..

신선의 세계, 상원사_20220504

중력은 약하고, 자태는 묵직한 사찰인 상원사는 남대봉으로 가는 길이라면 꼭 들러야 된다. 탐욕의 비늘이 있는 자리에 나지막이 울리는 산내음이 있고, 둔탁한 엔진소리 대신 발자국 소리마저 숙연하게 만드는 은은한 풍경소리가 있다. 치악산의 파수꾼처럼 잔혹한 세속에서 우뚝 선 절벽 위 큰 어른.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처럼 유혹이 난무한 산행 뒤에 눈과 가슴으로 갈증을 깨친다. 힘든 여정의 감로수, 치악산 남대봉/상원사_20210817 평소 산을 거의 타지 않는 얄팍한 체력에도 뭔가에 이끌린 듯 무작정 치악산기슭으로 오른 죄. 평면적인 지도의 수 킬로를 우습게 본 죄. 시골 출신이라 자연 녹지의 낭만만 쫓은 죄. 여전히 대 meta-roid.tistory.com 상원사에 들어서면 누구나 약속처럼 감탄사를 남발하게 ..

치악에 대한 중독, 치악산 남대봉 계곡길_20220504

모처럼 치악산에 도전, 산으로 가기 전 든든한 식사는 기본이라 가까운 원주 혁신도시에서 에너지 보충과 더불어 커피 한 사발 짊어지고 떠난다. 회사 계단 오르는 것도 턱 밑까지 숨이 차는데 치악산 남대봉에 오를 수 있을까? 첫걸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발을 떼고 나면 어떻게든 오르는 것 보면 저질체력이 아니라 스스로 위안하고 다독거리는 수밖에. 원주혁신도시는 처음 밟는데 무척 깨끗하고 잘 짜여져 있었다. 게다가 외곽으로 치악산이 감싸고 있어 무척 부럽기도 했다. 또한 아침 햇살이 어찌나 강렬한지 산행을 하기 전부터 등짝이 촉촉해질 정도로 날씨 또한 포근했다. 치악산의 눈물, 영원산성_20210809 이 하늘에 모든 망설임을 털고 첫걸음 내딛는다. 티 없이 맑던 하늘의 화폭에 치악산의 미려한 선이 수놓듯 ..

여주와 부론을 오가며_20211002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아침부터 온 세상을 태울 듯한 강한 햇살에 은사 따라 덩쿨마 터널로 향했다. 덩쿨마가 만들어 놓은 녹색의 터널이 무척 인상적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덩쿨마는 크기가 제각각. 덩쿨마? 흔히 알고 있던 뿌리에 열매가 '주렁주렁' 맺는 녀석이 아니라 이건 가지가 덩쿨로 자라는 줄기에 열매가 '덩실덩실' 맺힌다. 맛은 영락없는 마에 모양은 연밥 같기도 하고, 돌덩이 같기도 하다. 모처럼 은사를 찾아뵙고 '덕지덕지' 붙은 피로와 잡념을 떨치던 날이었다. 아궁이와 가마솥은 조만간 문화재로 등재되더라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점점 사라져 가는 동시에 시간의 짙은 향수가 매캐하다. 이 정취가 마치 가을 초저녁에 어디선가 전해져 오는 낙엽 태우는 향 같다. 앞마당을 둘러본 뒤 점심 식사도 하고 드..

큰 품 아래 그늘, 반계리은행나무_20210911

천년 영혼이 깃든 나무의 자태는 어떤 형용사를 열거해야 그 위상과 자태에 걸맞는 붓으로 조각할 수 있을까? 이 자리에 서면 도가 사상에 찌들지 않더라도 어쩌면 신의 존재를 수긍할 수 밖에 없어 드높은 가을 하늘의 기둥 같은 기개를 마주하고 아낌 없는 감탄사를 뱉게 된다. 만약 완연한 가을이 깃들면 어떤 감동 보따리를 풀까? 거대한 시간 앞에서, 반계리 은행나무_20200912 찾는 이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그 적막한 울림에 잠시 기댄다. 지나는 이도, 마을 인가도 거의 없는 외딴 깊은 산속 마을처럼 수풀이 무성하고, 바위 틈틈 이끼가 자욱하지만, 그렇더 meta-roid.tistory.com 도착하자 남녀 한쌍만 덩그러니 지키고 있다. 한 바퀴 돌며 그 자태에 감탄하고 있을 즈음 쏙쏙 한둘씩 ..

힘든 여정의 감로수, 치악산 남대봉/상원사_20210817

평소 산을 거의 타지 않는 얄팍한 체력에도 뭔가에 이끌린 듯 무작정 치악산기슭으로 오른 죄. 평면적인 지도의 수 킬로를 우습게 본 죄. 시골 출신이라 자연 녹지의 낭만만 쫓은 죄. 여전히 대낮 기온 30도를 웃도는 여름에도 물 한 병 의지한 채 내가 마냥 청춘이라 착각한 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실한 준비로 치악산에 오른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고, 산길로 따라가며 내내 자책했다. 산이름에서 '악'이 들어가는 산은 입에서 '악!'소리가 난다고? 치악산 남대봉을 오르며 카메라 넥스트랩과 백팩조차 땀에 완전 절어 버릴 만큼 체력의 바닥이란 게 이런 기분인가 싶다. 산길 400m가 그렇게 지루하고 더딘지, 평소 인적이 거의 없다는 반증인지 길조차 애매하거나 온통 이끼로 뒤덮인 산길을 의심조차 없이 방..

천년 사찰의 흉터, 원주 법천사지와 거돈사지_20201015

벌판에 덩그러니 움튼 잊혀진 시간들. 전쟁의 상흔과 희생의 파고에 제 한 몸 지킬 수 없었던 치욕은 기나긴 시간의 빗줄기로 아물어 짙은 흉터만 남겼다. 그저 지나치던 흙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건 아닌가 보다. 고결한 바람 속에 규정할 수 없는 내음이 코 끝을 숙연하게 만들듯 무심코 밟는 바위는 집어삼킬 듯 이글거리는 화마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인고에 뒤틀리고 패인 나무 등짝엔 처절함을 견딘 부적의 휘갈김이 새겨져 있다. 무심코 다니던 마을에 이렇게 너른 절터가 두 군데나 있어 가을 정취 머금은 바람과 함께 잠시 걷기로 했다. 문광저수지에서 부론으로 넘어와 절터에 들러 연신 사진을 담았건만 사진 바구니-메모리카드-는 밑둥지가 뚫렸는지 모조리 날아가 버렸고, 아이폰에 담긴 사진만 겨우 남아 다행이라 해..

거대한 시간 앞에서, 반계리 은행나무_20200912

찾는 이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그 적막한 울림에 잠시 기댄다. 지나는 이도, 마을 인가도 거의 없는 외딴 깊은 산속 마을처럼 수풀이 무성하고, 바위 틈틈 이끼가 자욱하지만, 그렇더라도 넘치는 건 여유와 소박한 정취다. 걷다 아픈 다리를 잠시 쉬게 해 주는 육각정과 따가운 햇살을 막아 주는 건 감히 배려라고 읽어도 되겠다. 가을이 살짝 드리워진 여름 내음은 시원한 코끝에 살짝 덧씌워진 물의 향기처럼 파닥거린다. 그 유혹 참지 못하고 해가 지는 촉박함을 잊은 채 풀숲 너머 연신 졸고 있는 호수가 깰까 사뿐히 그 길을 밟는다. 호수 위 전망대가 비록 무성한 여름에 가려 뻗어나가고자 하는 시선이 좌절되더라도 가지 사이 간간히 풍기는 세상은 하늘처럼 넓고 산자락처럼 포근하다. 천연기념물 원주 반계리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