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24

큰 품 아래 그늘, 반계리은행나무_20210911

천년 영혼이 깃든 나무의 자태는 어떤 형용사를 열거해야 그 위상과 자태에 걸맞는 붓으로 조각할 수 있을까? 이 자리에 서면 도가 사상에 찌들지 않더라도 어쩌면 신의 존재를 수긍할 수 밖에 없어 드높은 가을 하늘의 기둥 같은 기개를 마주하고 아낌 없는 감탄사를 뱉게 된다. 만약 완연한 가을이 깃들면 어떤 감동 보따리를 풀까? 거대한 시간 앞에서, 반계리 은행나무_20200912 찾는 이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그 적막한 울림에 잠시 기댄다. 지나는 이도, 마을 인가도 거의 없는 외딴 깊은 산속 마을처럼 수풀이 무성하고, 바위 틈틈 이끼가 자욱하지만, 그렇더 meta-roid.tistory.com 도착하자 남녀 한쌍만 덩그러니 지키고 있다. 한 바퀴 돌며 그 자태에 감탄하고 있을 즈음 쏙쏙 한둘씩 ..

힘든 여정의 감로수, 치악산 남대봉/상원사_20210817

평소 산을 거의 타지 않는 얄팍한 체력에도 뭔가에 이끌린 듯 무작정 치악산기슭으로 오른 죄. 평면적인 지도의 수 킬로를 우습게 본 죄. 시골 출신이라 자연 녹지의 낭만만 쫓은 죄. 여전히 대낮 기온 30도를 웃도는 여름에도 물 한 병 의지한 채 내가 마냥 청춘이라 착각한 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실한 준비로 치악산에 오른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고, 산길로 따라가며 내내 자책했다. 산이름에서 '악'이 들어가는 산은 입에서 '악!'소리가 난다고? 치악산 남대봉을 오르며 카메라 넥스트랩과 백팩조차 땀에 완전 절어 버릴 만큼 체력의 바닥이란 게 이런 기분인가 싶다. 산길 400m가 그렇게 지루하고 더딘지, 평소 인적이 거의 없다는 반증인지 길조차 애매하거나 온통 이끼로 뒤덮인 산길을 의심조차 없이 방..

천년 사찰의 흉터, 원주 법천사지와 거돈사지_20201015

벌판에 덩그러니 움튼 잊혀진 시간들. 전쟁의 상흔과 희생의 파고에 제 한 몸 지킬 수 없었던 치욕은 기나긴 시간의 빗줄기로 아물어 짙은 흉터만 남겼다. 그저 지나치던 흙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건 아닌가 보다. 고결한 바람 속에 규정할 수 없는 내음이 코 끝을 숙연하게 만들듯 무심코 밟는 바위는 집어삼킬 듯 이글거리는 화마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인고에 뒤틀리고 패인 나무 등짝엔 처절함을 견딘 부적의 휘갈김이 새겨져 있다. 무심코 다니던 마을에 이렇게 너른 절터가 두 군데나 있어 가을 정취 머금은 바람과 함께 잠시 걷기로 했다. 문광저수지에서 부론으로 넘어와 절터에 들러 연신 사진을 담았건만 사진 바구니-메모리카드-는 밑둥지가 뚫렸는지 모조리 날아가 버렸고, 아이폰에 담긴 사진만 겨우 남아 다행이라 해..

거대한 시간 앞에서, 반계리 은행나무_20200912

찾는 이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그 적막한 울림에 잠시 기댄다. 지나는 이도, 마을 인가도 거의 없는 외딴 깊은 산속 마을처럼 수풀이 무성하고, 바위 틈틈 이끼가 자욱하지만, 그렇더라도 넘치는 건 여유와 소박한 정취다. 걷다 아픈 다리를 잠시 쉬게 해 주는 육각정과 따가운 햇살을 막아 주는 건 감히 배려라고 읽어도 되겠다. 가을이 살짝 드리워진 여름 내음은 시원한 코끝에 살짝 덧씌워진 물의 향기처럼 파닥거린다. 그 유혹 참지 못하고 해가 지는 촉박함을 잊은 채 풀숲 너머 연신 졸고 있는 호수가 깰까 사뿐히 그 길을 밟는다. 호수 위 전망대가 비록 무성한 여름에 가려 뻗어나가고자 하는 시선이 좌절되더라도 가지 사이 간간히 풍기는 세상은 하늘처럼 넓고 산자락처럼 포근하다. 천연기념물 원주 반계리 은..

적막과 평온의 공존, 여주와 흥원창_20200521

오랜만에 찾은 여주, 한강은 언제나처럼 유유하고, 고즈넉한 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차분했다. 어디선가 태웠던 낙엽이 대기 중에 향취로 남아 밟은 길 위에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 기분을 이어가느라 차분히 걷는다. 남한강 두물머리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시간이 잠시 멈춰 선 시간으로 뺨을 적시던 날, 행님께선 모처럼 찾은 나를 위해 서툴지만 토닥토닥 저녁을 준비하시고, 뒤이어 들판에서 자라던 온갖 싱그러운 야채를 한가득 식탁 위에 쌓아 올렸다. 풍성한 인심은 그 어떤 양념보다 맛깔스러워 가끔 잡초가 끼어 있더라도 그건 저녁 입맛을 응원해 주는 봄내음이다. 온전한 하늘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둘러 매고 빛이 없는 들판으로 나갔으나 막상 찍고 보니 구름 일변도다. 오순도순 정성이 빚어낸 행님의 보금자리. ..

적막 가득한 부론에서_20200117

부론에 도착한건 자정이 가까워진 꽤 늦은 시간이었다. 가뜩이나 일찍 찾아오는 시골 밤에 더해 부론 외곽에 있는 한강변은 말끔한 산책로의 모습과 달리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데 이 늦은 시각이면 사람은 고사하고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도 반가울 지경이다. 흥원창에 자리를 잡고 삼각대를 펼쳐 카메라를 작동 시켰지만 무엇보다 이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오래 전부터 힐링하는 나만의 은밀한 몰취향인데 오랜만에 온 반가움이 배가 되어 겨울 추위조차 느낄 수 없었다. 3개의 강이 이 부근에서 만나는데다 수도권의 젖줄인 한강이란 의미만으로도, 또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한적하면서도 시야가 탁 트인 전망을 생각하면 이 자리를 동경하는 건 이제 습성이 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여주를 찾은 건 ..

태풍 링링이 오던 날_20190907

올 들어 유독 예년에 비해 태풍 소식이 잦다.태풍 링링의 북상으로 비는 그리 많지 않지만 바람이 강력한 태풍이라는데 오늘 하루가 절정이자 고비란다.전날 집을 나서 원주에 들러 하루 지내는데 창 너머 바람 소리가 꽤나 강력한 태풍임을 직감할 수 있었고, 점심 해결하고 여주로 넘어와 종영형 잠깐 만나기 전에 커피 한 잔 사서 말 그대로 얼굴만 보고 헤어져 지인이 계시는 곳으로 왔다. 여주IC에서 내려 여주읍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돈까스 집 건물 외관이 특이하다.적벽돌로 쌓은 뒤 통유리를 외부에 덧대어 미관상 돈까스 집이 아니라 분위기 좋은 카페 같은 첫인상이다.종영형과 헤어져 지인이 계시는 곳에 도착하자 태양초-엄밀히 이야기하면 태양초가 아니고 건조기로 말린 건데 집에서 태양초 만들어 보면 정말 햇볕 좋은데..

한강을 사이에 두고_20181202

많이도 왔던 곳 중 하나가 흥원창이라 큰 시험을 앞두고 계획은 했었다.습관적인 게 개인적으로 자잘한 이슈들이 있거나 부근에 지나는 길이면 어김 없이 들러 음악을 듣거나 사진을 찍거나 아님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마냥 물끄러미 바라 보다 세찬 강바람을 실컷 맞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던 만큼 내게 있어 편한 장소이자 혼자만 알고 있던-착각일지라도- 비밀스런 장소로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자연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곳이라 신비감도 있었다. 늘 왔던 곳이 부론 방면에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인데 여기서 바라 보면 자연스럽게 여주 쪽을 볼 수 밖에 없어 처음 올 때부터 건너편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부론 방면에만 맨날 오다 보니 조금은 식상하기도 했다.그래서 지체 없이 차를 몰고 여주 방면으로 건너..

아주 오래된 추억, 부론장_20181201

시험을 치르고 바로 올라온 곳은 원주 부론, 흥원창도 만나고 모처럼 부론장에서 숙박하며 아주 옛 추억을 또 하나 걷기로 했다.감곡나들목에서 내려 장호원을 들러 미리 비상 식량을 챙기고, 여주를 거쳐 부론장에 도착할 무렵은 이미 늦은 밤이라 가뜩이나 시골 밤은 일찍 찾아 오는데 10시가 넘자 말 그대로 암흑천지다.부론장에 도착하자 쥔장은 한잠 들었다 겨우 일어나 방 키를 건넨다.내가 생각했던 아주 오래된 여관의 기억과 달리 내부는 현대식으로 완전 바뀌었다. 현관은 낡은 합판이 아니라 이렇게 아파트 현관 같은 소재에 말끔하게 도색 되어 있었다, 왠열! 예전 복도는 어쩔 수 없었는지 도색만 깨끗하게 칠해 놓고 좁은 복도와 오래된 샤시창 위치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방에 들어와 스원하게 샤워하고 나와 창을 열자..

간현 출렁다리_20180226

무한 도전의 여파인가?간현 출렁다리가 매스컴을 한 번 타고나서 거의 신드롬에 가까울 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단숨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몇 년 전 청량리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 원주 방면으로 가던 중 열차 창 너머 나름 소박하게 미려한 풍경을 보고 바로 맵을 열어 알게된 간현에 출렁다리가 생긴다는 소식은 이미 접했던 터라 언젠가 방문 하겠다던 의지를 갖고 있었는데 엄청난 인파를 목격하고 나서 무한 도전에 소개 되었단 걸 알았다.예까지 와서 발걸음을 돌릴 순 없고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큰 맘 먹고 온 만큼 인파의 틈바구니에 끼어 출렁다리에 몸을 실어 봐야지. 중앙선이 리뉴얼 되면서 직선화 되기 전, 이 철길이 중앙선이 었다.지금은 외형만 이렇게 덩그러니 남아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역할 외엔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