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28

이른 아침의 적막_20191018

어쩌면 빠듯한 시간에 정처 없이, 반쪽 짜리 여행으로 전락해 버린 이번 여정은 짧은 시간에 비해 동선만 길어 뚜렷한 흔적도 없었다.그래서 영주와 봉화에 갈 여정 없이 무작정 고속도로를 타고 저녁이 지나 도착하여 암흑만 반길 뿐이었다.밤에 잠이 드는가 싶더니 가을 먼지 털듯 후다닥 잠이 달아난 시각은 새벽 2시가 채 안되어 누운채 잠을 청해도 온갖 잡념이 한발짝 다가서는 잠을 떨쳐 버리자 아예 잠자리를 털고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영주에 흔치 않은 24시 해장국 집에서 든든한 아침 끼니를 해결하고 봉화로 향하는 길은 완연한 밤이라 간헐적으로 상향등을 켜 암흑을 뚫고 달렸지만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 동녘 하늘에서 부터 서서히 암흑이 걷히고 있었다. 텅빈 도로를 질주하다 동녘 여명이 다가오자 차를 세워 두고..

새벽 이슬_20191001

뒤척이다 잠에서 깨어 자리를 박차고 나와 텅빈 것만 같은 시골 마을의 새벽 공기를 마주했다.아직 여명 조차 서리지 않은 새벽이지만 조금 있다 보면 뉘적뉘적 여명이 암흑을 깨치고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허공을 서서히 밝히기 직전의 시각이라 아무런 인적도, 날벌레도 없는 이 자리에 서서 이슬 내음이 살짝 실려 있는 새벽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신기하게도 가로등 하나 밤새 불이 들어와 위안이 된다.이 빛마저 없었다면 멍한 암흑에 얼마나 심심하고 적막 했을까?마치 황망한 대해에서 만난 등대처럼 이 빛이 내려 쬐이는 곳을 거닐며 세상에 동등하게 뿌려진 대기를 찬찬히 훑는다.처음 이 자리에 섰을 당시 같은 자리에 가로등이 있었지만 시간의 굴레처럼 빛 바랜 전등이 힘겹게 뿌려대는 빛도 지금처럼 의지할 곳 없는 대해..

일상_20190831

8월의 마지막 여명에 이글거리던 여름의 암흑이 걷히고 가슴 속에 품어 두었던 그윽한 설렘을 풀어 본다.1년 전 여름에 비해 그리 냉혹하지 않았다고 한들 사람은 늘 순간에 마음을 졸이며 과거의 지나간 고난을 잊어 버린다.경험이 조언은 해줄 지언정 선택은 현재의 몫이자 그 선택 또한 고난의 시작이며, 행복의 과실이기도 하다.이런 자연의 장관에 잠시 넋 놓고 감동을 해 본 8월의 마지막 날,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해야지.

늦은 시간, 그리고 다음날 이른 시간_20190607

무주로 내려오는 길은 무척이나 지체 되었지만 기억에 남을 만큼 가족 여행으로 오손도손 따스한 분위기로 인해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무주로 목적지를 선택한 이유는 지방에 사는 한 가족이 대중 교통으로 이동해야 되는 특성상 도중에 픽업을 해야 되는데 각자 적절한 중간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서 관광 도시로써 제격이기도 했고, 앞서 봄에 방문했던 당시 오마니께서 극찬을 하시어 미리 무주 일성 콘도를 예약했다.가족 여행이라는 명분 하에 서운함과 정겨움을 나눠 보자는 취지 였고, 가뜩이나 평소에 비해 퇴근이 조금 지체 되었던 데다 가족 한 명을 태워 대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23시가 가까웠다.대전역에서 바로 또 다른 가족을 태우고 안주거리를 구입한 답시고 가양동을 지날 무렵 치킨에 순대를 투고 하느라 더욱 지체 되..

일상_20190402

이른 아침에 여명을 따라 움직이는 그믐달이 외로울새라 샛별 하나 말동무인 양 따라 다니며 외로움을 달래준다.청명한 새벽 하늘 답게 단조로운 듯 하면서도 경계를 알 수 없는 빛의 스펙트럼 속에 아주 차거나 아주 뜨거운 그 사이의 모든 질감을 찰나의 순간 천상에 밝힌다. 오후가 훌쩍 지나 해가 몽환적인 시간이 시작되는 4월 초, 무심코 오른 반석산 둘레길 따라 온화한 봄기운을 찾으러 나섰고, 그리 어렵지 않게 계절의 현장감을 포착할 수 있었다.향그러운 봄 내음에 이끌린 건 나 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봄이 깊어감에 따라 점점 다양해지는 봄 야생화들이 제각기 미모를 뽐내느라 혼란하다.반석산 둘레길에 발을 내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녀석이 산책길에 힘내라는 응원을 해준다. 봄의 전령사, 진달래가 절정인 시기로 ..

산중의 새벽_20180908

해가 뜨기 직전의 가을 하늘은 차갑다.유난히 말벌이 눈에 많이 띄는데 밤새 10마리 정도 잡은 거 같다.이른 새벽에 눈을 뜨게 된 것도 이슬에 젖어 힘을 쓰지 못하고 기절한 말벌들 확인 사살 때문.그러다 시골 깡촌의 새벽 정취에 도치되어 버렸다. 동녘 하늘에는 아직 일출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하늘에 거대한 비늘이 끼어 어디론가 바삐 흘러가고 있다. 감각대를 끼우고 발치에 흐르는 여울에 장노출 했다. 풀잎과 밤새 밖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스피커에 이슬이 아롱다롱 매달려 조잘거린다. 집에서 2년 동안 자라다 올 여름부터 새로이 자리를 튼 흙이 궁합에 맞는지 소나무는 부쩍 자랐다.섭씨 11도로 9월 초 치곤 제법 서늘한 산중 오지에 어떤 문명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오로지 밤..

일상_20180826

기록적이고 맹렬하던 폭염의 기세가 이제 꺾인걸까?태풍 솔릭 이후 계속된 강우와 서늘한 바람에서 가을을 속단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루한 더위가 계속된 여름이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동녘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하는 청명한 여명과 서늘해진 바람이 가을로의 착각에 빠져 봄직한 설렘이기도 하다. 점심은 깔끔하게 잔치 국수로~ 저녁 귀가길에 만나는 초롱한 일몰과 장엄한 노을은 폭염에도 견딘 세상 모든 사람들을 진정 응원하는 징표 같다.

일상_20180613

하지가 가까워지자 밤은 금새 꽁무니를 감추고 달아나 오래 동안 낮을 누릴 수 있다.그게 여름의 매력 아니겠나아주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날, 새벽 첫 차를 지나 보내고 두 번째 차를 기다리는 잠시 동안 주위를 맴돌며 여명을 쫓는 해돋이와 노을을 바라 본다. 육안으로 봐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 오렌지 빛은 가을 석양도 부럽지 않을 만큼 곱고 아름답다.이런 걸 보면 하늘이 아무렇게나 뿌린 것 같은 색채도 어느 하나 허술하거나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