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7

섬진강과 수많은 능선 사이, 용궐산 잔도길_20211221

채계산과 더불어 섬진강 따라 가공된 길을 찾아 순창에 도착, 극심한 미세먼지와 포근한 겨울의 공존은 따로 뗄 수 없는 명제가 되어 버렸다. 이왕 겨울을 누릴라 치면 살을 에는 추위와 함께 청명한 대기를 선택하겠지만 내 의지와 도전을 대입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에 차라리 퍼즐 조각 맞추듯 기억을 채색시키는 편이 낫다. 잠깐의 가쁜 숨을 달래면 위대로운 바위벽에서의 아찔한 육감도, 산을 뚫고 바다로 달리는 섬진강의 번뜩이는 의지도 가슴을 열어 장엄하게 누릴 수 있다. 이왕 순창에 왔다면 칼바위 능선도 감상했다면 좋으련만 걷잡을 수 없는 욕심으로 고개를 쳐드는 결정 장애를 어쩌나!용궐산 순창군 동계면 강동로에 위치한 용궐산(645m)은 원통산에서 남진하는 산릉이 마치 용이 자라와는 같이 어울릴 수 없다는 듯..

벌판에 솟구친 칼바위 능선, 채계산_20210120

칼바위 능선으로 정평난 채계산은 세상이 온통 설원으로 뒤바뀐 평원과 그 사이를 가르는 섬진강의 번뜩이는 줄기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에 우뚝 솟은 나지막한 산이다. 동강 절벽길 이후 칼끝과도 같은 위태한 길을 걷는 건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찔한 관문 뒤엔 늘 그렇듯 베일에 싸인 절경을 보여주는 답례도 잊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순창을 찾으리라 마음먹은 것도 바로 채계산이 꾸며 놓은 세상이야기를 듣고자함 인데 어느 계절에 오더라도 그 계절 아래 버티고 있는 자연은 같은 관용의 미덕으로 지나는 시간들을 쉴 수 있도록 큰 가슴 한 켠을 비워 놓는다. 이제는 칼끝과도 같은 바위 능선에 문명의 도구를 덮어 절경 이면의 위험은 사라졌지만 과대한 위선을 배제하고 살짝 그 위에 배려만 덫대어 놓..

햇살이 넘치는 섬진강 카페_20210120

순창은 섬진강 줄기 따라 하얀 겨울 설경이 함께 하며 거울처럼 평온에 잠겨 있다. 채계산으로 가는 길, 강변의 평화를 마주하며 커피 한모금에 쉼표를 찍고, 봄볕 같은 양지 바른 카페에서 크게 쉼호흡 한다. 멋진 절경에 못지 않게 먼길 달려온 평온 또한 소소한 시간의 유혹이 채색되어 있어 향그로운단잠 같다. 지인 따라 유명한 메기 매운탕 집이 있어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섬진강 잠수교를 건너 절묘한 위치에 카페가 있어 들렀다. 출발할 때와 달리 부산에서 부터 날씨는 화창한데 순창에서 출발할 무렵 화창한 날의 화룡점정 같다. 메기 매운탕집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차량이 줄줄이 들어서는데 막상 먹어보니 무청은 푸짐하다만 탄 내가 살짝 나서 많이 먹지는 않았다. 너른 유원지 같은 자리에 높지 않아도..

가을 서사시, 담양_20201118

햇살이 어디론가 숨어 버렸지만 대기의 화사함은 오롯이 숨 쉬고 있는 만추의 전형적인 날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거닌다. 이따금 갈 길 바쁜 바람결에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지만 그 또한 희열에 대한 남은 미련처럼 길 위를 거닌 감촉은 아득한 추억처럼 폭신하고 간드러진다. 계절보다 더 찰나의 순간과도 같은 낙엽 자욱한 만추는 그래서 기억에 더 선명한 각인을 새겨 넣는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오고 가는 차들도 이 길을 지날 즈음이면 가던 조급함을 잊게 되고, 앞만 보던 시야의 긴장을 늦추며 일 년 중 찰나의 이 순간을 위해 굳게 닫힌 마음의 창을 열게 된다. 뽀얀 눈이나 오색찬연한 꽃잎이 아님에도 아름다움을 마주칠 때 터져 나오는 감탄사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도보길이 아닌 일반 도로라 지나는 차량이 위험한데..

가을 여운조차 아름다운 강천산_20201117

가을이 되어 단풍이 익으면 꼭 찾으리라 다짐했던 강천산은 3대 단풍산이라 칭해도 좋을 만큼 나무도 많지만 이파리 또한 아리따운 선홍색으로 유명세가 한창이다. 더불어 걷기에도 좋고, 주변을 장벽처럼 두른 산들이 있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계절의 매력과 일대의 멋진 풍경들을 감상하기 좋다. 계곡길의 지나친 가공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많지만 월정사 전나무길이나 내소사 전나무길처럼 시간이 지나면 걷기 좋은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지는 건 시간 문제다. 이미 절정의 단풍을 훌쩍 지나 대부분 낙엽으로 뒹굴고 있는 늦은 시기지만 여전히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고, 미리 예정한 대로 광덕산을 거쳐 좀 더 오래 머무르기로 한다. 최고의 시기에 오면 좋지만 늦었다고 해서 모든 기회를 잃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인연도..

적막의 비가 내리는 금성산성_20200624

아침에 간헐적으로 내리던 빗줄기가 정오를 지날 무렵부터 굵어져 금성산성으로 가는 길 위에 작은 실개울을 만들었다. 전날과 같은 길을 답습한 이유는 내리는 비로 인해 텅 빈 금성산성에서 바라본 풍경이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충용문에서 만난 굶주린 어미 고양이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교적 화창한 담양은 가지런히 정렬된 새침한 느낌이라면 비 오는 날엔 슬픈 곡조를 목 놓아 부르는 망부석 같은 느낌이었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빗소리는 상당히 정제되어 풍경과 달리 고요했고, 아무도 찾지 않은 산성은 희로애락을 극도로 배제하며 차분한 모습은 잃지 않는다. 어디론가 서서히 흘러가는 물안개는 지상에서 남은 슬픔을 모두 껴안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도, 안개도 ..

사람 흔적이 떠난 강천산 탐방로_20200623

담양에서 순창과 경계를 이루는 강천산 탐방길에 들어서자 마치 산속 깊은 오지에 온 착각에 빠진다. 아름다운 가을 모습을 두고 여름이 엄습한 강천산은 그야말로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이었다. 물론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강천산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지만, 위성 지도만 챙긴 내 과오라 큰 깨달음을 챙긴 것도 여행에서 즉흥적으로 짜여진 각본이라 하겠다. 인적이 전혀 없는 용광로 같은 산중에도 내가 무심히 잊고 있던 여름 생명들이 엘도라도를 만들어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지극히 평이한 풍경이지만, 각별한 풍경이 되어 버린 서울에서 하나둘 사라져 버린 생명을 망각하며 점점 무심해져 간다. 길가에 기이한 돌탑이랄까? 담양에서 순창에 진입하여 강천산 탐방로를 향해 임도를 가던 중 이런 형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