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에 쌓인 아름다운 추억만큼 진득한 가을.
만추의 정취는 허무가 아닌 결 다른 낭만임을 항변하듯 지나는 바람에도 낙엽은 우수수 떨어져 곱게 써서 접은 편지 마냥 노란 마음으로 채색시켰다.
한걸음 물러서 아쉬운 소설은 한걸음 다가서 눈부신 시가 된다.
세심에서 채계산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먼 편으로 언제나 한적한 745 도로를 타고 후천마을에서 13번 국도에 합류한 뒤 연산마을 로터리를 지나던 중 전주 방향 15번 국도로 우회전하는 방향 멀리 가을로 물든 교정이 보여 잠시 곁길로 새듯 15번 국도 방향 관전마을로 향했다.
도로는 줄곧 한적한 데다 너른 대지에 길게 뻗은 도로라 천천히 달리기엔 그만이었는데 곁길 가을이 물든 비교적 오래된 시골 교정의 모습은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원래는 학교 밖에서 담장 너머 고개를 내민 노란 은행나무를 담으려다 그 빛깔을 대충 훑어보기 아까워 굳게 닫힌 교문 옆에 예전 쓰레기 소각장은 담장이 없어 오래된 계단길을 밟으며 어느새 학교 담장 안에 서있었고, 노란 낙엽 자욱한 학교 뒤뜰을 걸으며 요람의 추억도 되새겼다.
도로 인접한 나무들은 유독 이파리가 샛노랗게 익어 아직은 가지에 무성히 매달렸는데 때마침 부는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에서 찬란한 가을과의 작별을 예고했다.
학교 뒤뜰은 아주 작았음에도 그 공간에 뿌리를 튼 몇 그루의 나무가 무척이나 화려했다.
나무 아래 자욱한 낙엽이 교정의 오래된 계단에도 조잘조잘 모여 있었고, 잠시 머무른 와중에도 이파리 몇 개씩 떨어지며 다음 바람을 기다렸다.
학교 교문과 후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바로 옆은 담장이 없는 교정, 아마도 교정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거나 가을 정취를 감상하기 위한 사람들에게 내어준 게 아닐까?
이렇게 이파리는 수시로 떨어졌고, 가지에 무성한 이파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이 들었지만 나무도 떠나는 가을이 아쉬웠는지 일시에 모든 이파리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나무와 이파리가 서로 작별을 고했다.
노란 낙엽이 자욱한 바닥에 햇살이 굴절되어 아름다움의 역치를 넘겨 시큰거렸다.
책갈피로 은행잎 하나 끼우면 책은 사시사철 가을향을 품고 조금씩 향을 발산했던 지난 시절, 그런 정취가 때마침 학교 교정이라 더 아득했다.
가지에 매달린 이파리들 또한 햇살을 굴절시켜 곱디고운 노랑을 살랑거리며 손짓했다.
주차된 곳으로 돌아오자 유독 세찬 바람들이 숨가쁘게 다가왔다 이내 지나가 버렸고, 몇 차례 같은 길을 줄지어 지났다.
그와 동시에 지나는 가을 길목의 바람을 쫓아 이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졌는데 일 년을 통틀어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은 찰나와 같은 순간이라 아쉬움과 동시에 찬란한 순간을 가슴에 담겼고, 흩날리는 계절의 정취는 기나긴 잔향으로 코끝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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