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11

섬진강과 수많은 능선 사이, 용궐산 잔도길_20211221

채계산과 더불어 섬진강 따라 가공된 길을 찾아 순창에 도착, 극심한 미세먼지와 포근한 겨울의 공존은 따로 뗄 수 없는 명제가 되어 버렸다. 이왕 겨울을 누릴라 치면 살을 에는 추위와 함께 청명한 대기를 선택하겠지만 내 의지와 도전을 대입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에 차라리 퍼즐 조각 맞추듯 기억을 채색시키는 편이 낫다. 잠깐의 가쁜 숨을 달래면 위대로운 바위벽에서의 아찔한 육감도, 산을 뚫고 바다로 달리는 섬진강의 번뜩이는 의지도 가슴을 열어 장엄하게 누릴 수 있다. 이왕 순창에 왔다면 칼바위 능선도 감상했다면 좋으련만 걷잡을 수 없는 욕심으로 고개를 쳐드는 결정 장애를 어쩌나!용궐산 순창군 동계면 강동로에 위치한 용궐산(645m)은 원통산에서 남진하는 산릉이 마치 용이 자라와는 같이 어울릴 수 없다는 듯..

섬진강 따라, 곡성_20210120

섬진강만 그 자리에 있을 뿐 완연히 봄과 다른 겨울 옷을 둘러쓴 함허정은 지난해 여름 폭우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아쉬운 대로 주변을 돌며 강바람 짙은 향연 속에 잠시 몸을 맡긴다. 먼 길 달려온 강물은 함허정을 감싸고 잠시 쉬어 가듯 강폭이 넓어지고 웅크리는데 오랜 시간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많이도 한탄과 삶의 집착을 내려놓았을까? 겸허해지는 순간 억겁 동안 지낸 강은 스승과 다를 바 없다. 세상 모든 적막들이 모여 쉬고 있는 저곳에 서는 순간 진가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여름 장마 폭우 당시 섬진강 수자원을 잘못 관리하는 바람에 강유역에 수많은 피해가 났었던 게 떠올랐다. 서쪽 섬진강에서 반대편인 동녘으로 고개를 돌리면 칼날 같은 동악산 능선에 또 한 번 감탄한다. 동악산 능선을 넘어 석양이 잠시 숨..

벌판에 솟구친 칼바위 능선, 채계산_20210120

칼바위 능선으로 정평난 채계산은 세상이 온통 설원으로 뒤바뀐 평원과 그 사이를 가르는 섬진강의 번뜩이는 줄기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에 우뚝 솟은 나지막한 산이다. 동강 절벽길 이후 칼끝과도 같은 위태한 길을 걷는 건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찔한 관문 뒤엔 늘 그렇듯 베일에 싸인 절경을 보여주는 답례도 잊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순창을 찾으리라 마음먹은 것도 바로 채계산이 꾸며 놓은 세상이야기를 듣고자함 인데 어느 계절에 오더라도 그 계절 아래 버티고 있는 자연은 같은 관용의 미덕으로 지나는 시간들을 쉴 수 있도록 큰 가슴 한 켠을 비워 놓는다. 이제는 칼끝과도 같은 바위 능선에 문명의 도구를 덮어 절경 이면의 위험은 사라졌지만 과대한 위선을 배제하고 살짝 그 위에 배려만 덫대어 놓..

햇살이 넘치는 섬진강 카페_20210120

순창은 섬진강 줄기 따라 하얀 겨울 설경이 함께 하며 거울처럼 평온에 잠겨 있다. 채계산으로 가는 길, 강변의 평화를 마주하며 커피 한모금에 쉼표를 찍고, 봄볕 같은 양지 바른 카페에서 크게 쉼호흡 한다. 멋진 절경에 못지 않게 먼길 달려온 평온 또한 소소한 시간의 유혹이 채색되어 있어 향그로운단잠 같다. 지인 따라 유명한 메기 매운탕 집이 있어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섬진강 잠수교를 건너 절묘한 위치에 카페가 있어 들렀다. 출발할 때와 달리 부산에서 부터 날씨는 화창한데 순창에서 출발할 무렵 화창한 날의 화룡점정 같다. 메기 매운탕집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차량이 줄줄이 들어서는데 막상 먹어보니 무청은 푸짐하다만 탄 내가 살짝 나서 많이 먹지는 않았다. 너른 유원지 같은 자리에 높지 않아도..

산과 강의 어울림 속에서, 하동 고소성_20201118

섬진강 남쪽 구례에서 광양으로 가는 강변길은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데다 봄이면 벚나무 가로수가 일렬로 길게 늘어서 드라이브 하기 좋은 도로로 그 길을 따라 화개로 진행했다. 화개장터 일대는 장날이 아니라 인파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휑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말과 노래로만 접하던 화개는 화개천을 중심으로 양갈래 높은 산과 더불어 상류 방면에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지리산, 섬진강 너머 구례 또한 높은 산이 버티고 있어 너른 동네는 아니지만 밀도 있게 짜여져 있다. 다음 목적지 고소성으로 가던 중 잠시 들러 한참을 달려온 여독을 깊은 한숨으로 밀어내고 다시 가던 길을 바란다. 화개로 가던 중 '전망 좋은 곳'이란 푯말을 따라 잠시 들른 곳은 섬진강변 작은 휴게소로 전망 데크가 있었다. 남도대교로를 따라 운..

해 질 녘 곡성 도깨비_20200319

사성암에서 출발하여 다시 곡성으로 향했는데 오전에 섬진강변의 17번 국도를 경유했다면 이번엔 섬진강을 넘어 반대편의 한적한 도로를 경유했다. 첫 번째는 두가헌이라는 멋진 시골 카페를 이용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도깨비마을로 가기 위함이었다. 물론 두가헌의 멋진 정취에 빠져 오래 앉아 있는 사이 석양은 서산으로 완전히 기울어 더 이상의 멋진 절경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데다 하루 동안 동선을 감안하면 허기가 밀려올 만했다. 그래서 도깨비마을 방문은 패스하고 마을 입구까지만 가는 걸루~ 해질 무렵 음산한 도깨비 마을. 어릴 적 어둑한 암흑 속에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도깨비는 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잊혔다고 안심했던 도깨비가 다시 눈앞에 떡!허니 자리를 잡고 있는데 때마침 석..

구례와 지리산을 마주한 오산 사성암_20200319

지리산 노고단과 섬진강, 사람들의 터전인 구례를 마주한 오산은 무릇 다른 산들이 질투할 만한 천리안을 빙의시켜준다. 텅 빈 사성암의 위태로운 벼랑 위에 서서 한눈에 모든 걸 구겨 넣듯, 그러면서도 과하지 않고, 여유와 여백을 멋들어지게 채워 넣은 구례 일대를 보는 사이 세찬 바람을 따라 시간도 금세 흘러가 버린다. 구례에 온 시기가 절묘했던 건 한동안 대기가 뿌옇게 흐리다 이날만큼은 대기가 깨끗하고 화창했다.-구례가 고향인 사우의 말에 의하면- 곡성 지인과 함께 구례로 다시 넘어와 사성암으로 안내한다. 구례에 오면 '고곳은 꼭 가봐야제'라며, 주말 휴일엔 산아래 셔틀버스만 이용 가능할 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때마침 평일이라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사성암까지 차량으로 통행이 가능했다. 막상 사성..

섬진강도 쉬어 가는 곳, 함허정_20200319

지인이 안내한 곳은 지극히 평화로운 시골 마을 정취에 섬진강을 직면한 함허정이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닌 그리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원했고, 그 숨은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여 정말이지 지나는 인적이 거의 없어 흔히 지나칠 법한 그런 흔하디 흔한 시골이다. 그럼에도 섬진강을 끼고 약간 지대가 높은 언덕이 배후에 있는 고전적인 정자였다. 함허정(涵虛亭)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 543년(중종 38) 심광형(沈光亨)이 만년에 유림들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세웠는데, 그 후 증손 청안현감(淸安縣監) 민각(民覺)이 쇠락한 정자를 옛터의 아래로 옮겨 새로 건립하였고, 다시 5대손인 세익(世益, 호는 浩然亭)이 중수하였다. 세익이 두 아우와 우애가 매우 돈독한 것을 보고 마을사람들이 칭송하여 ‘호연정’이라 별칭을..

곡성 가는 길에 섬진강 봄_20200319

구례에서 곡성으로 가는 길은 크게 2가지. 섬진강변 도로와 산중 텅 빈 도로로 어느 길로 가든 봄 풍경에 기분이 좋아져 허투루한 음악 소리에도 선율을 타고 어깨를 들썩인다. 이번엔 섬진강변을 따라 양갈래 산이 끊임없이 이어진 협곡 같은 길로 건너편은 행정구역상 구례며 한적한 반면 곡성 17번 국도는 매끈하게 포장되어 실제 곡성까지 거리에 비해 소요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곡성으로 가는 섬진강변길엔 봄의 화사한 초록을 여기저기 흩뿌려 놓았는데 태동하는 초록의 화사하고 싱그러운 빛깔이 섬진강을 따라 곡성까지 이어졌다. 더불어 아침부터 대기를 뿌옇게 짓누르던 연무가 조금씩 걷히며 여정의 즐거움을 증폭시켜 줬다.

호수에 빠진 가을이려나, 옥정호_20191010

옥정호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다시 찾은 국사봉 전망대는 하늘 아래 모든 세상이 가을에 빠져 경계를 끝없이 확장하고 있었다.국사봉 전망대는 팔각정이 아니라 국사봉을 오르다 보면 산 중턱 지점의 데크가 깔린 곳으로 왜 옥정호를 찾게 되고, 왜 국사봉에 오르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며, 여러 멋진 사진보다 그 자리에 서서 눈 앞에 펼쳐진 전망을 여과 없이 바라 보게 되면 그 진가를 이해할 수 밖에 없다.그와 더불어 지상에 나린 가을은 옥정호가 솟구치고 붕어섬이 꿈틀대는 착각 마저 들게 할, 비유하자면 전주 비빔밥의 풍미를 극대화 시키는 감칠맛 나는 양념일 수 있겠다. 주차장 초입에 이런 이정표가 손을 흔들듯 반긴다.어느 블로거가 올린 이 사진을 보며 이제야 제대로된 길을 찾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이정표가 가진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