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산과 강의 어울림 속에서, 하동 고소성_20201118

사려울 2023. 1. 2. 22:03

섬진강 남쪽 구례에서 광양으로 가는 강변길은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데다 봄이면 벚나무 가로수가 일렬로 길게 늘어서 드라이브 하기 좋은 도로로 그 길을 따라 화개로 진행했다.
화개장터 일대는 장날이 아니라 인파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휑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말과 노래로만 접하던 화개는 화개천을 중심으로 양갈래 높은 산과 더불어 상류 방면에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지리산, 섬진강 너머 구례 또한 높은 산이 버티고 있어 너른 동네는 아니지만 밀도 있게 짜여져 있다.
다음 목적지 고소성으로 가던 중 잠시 들러 한참을 달려온 여독을 깊은 한숨으로 밀어내고 다시 가던 길을 바란다. 

화개로 가던 중 '전망 좋은 곳'이란 푯말을 따라 잠시 들른 곳은 섬진강변 작은 휴게소로 전망 데크가 있었다.

남도대교로를 따라 운천교를 건넌 곳으로 섬진강 너머 길은 간간히 차가 지나다니는데 이 도로는 마주치는 차량이 거의 없었다.

화개 도착.

큰 동네는 아니지만 노랫말처럼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화개는 비교적 말끔하게 변장되어 거리엔 꾸준하게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화개천 상류를 바라보면 거대한 위용의 지리산이 구름을 뚫고 서 있다.

여기가 화개장터로 장날이 아니라 장터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동네 한 바퀴 돌고 바로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

먼 길을 달려 바다와 바짝 다가선 섬진강은 백두대간을 따라 수많은 굴곡의 역사 마냥 그리도 빼곡한 산세를 비집고 망망대해와 만난다.
때문에 섬진강 주변 산세는 한결 같이 거대하고 가파른 형세로 마치 그 위용은 푸념과 단념의 장벽처럼 쉽게 오르기를 거부한다.
오르는 이들에겐 고난의 길이 되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겐 자연이 억겁 동안 만든 절경이며 많은 생명들이 기댈 수 있는 포용으로 새로운 세상의 빛에 낯선 울음을 터트리는 아가에게 있어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고 든든한 아량이다.
고소성으로 가는 길목에 스카이워크가 있어 그립던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며 위태로운 발걸음을 내디뎌 보지만 단양 스카이워크만큼 아찔한 고도차가 없어 젓갈이 몽땅 빠져 버린 김장 김치처럼 스릴감은 전혀 없었다.
사실 단양 스카이워크도 천길 낭떠러지 같았지만 막상 올라 보면 먼 데서 보는 것과 달리 싱거운데 여긴 테라스에서 보는 순간 기대감조차 물거품처럼 순식간에 걷히고, 다만 섬진강과 그 주변을 에워싼 거대 산세의 앙상블을 감상하는 의미라면 입장료는 전혀 아깝지 않다.

스카이워크에 서면 정면에 백운산 방면 광양으로 섬진강 너머 도로가 구례에서 이용했던 도로다.

지리적 위치가 절묘할 만큼 크게 굽이치는 섬진강과 광양, 하동 일대 멋진 절경을 넋 놓고 감상할 수 있다.

크리스탈 위에 있어도 오금이 저릴 정도는 아니다.

스카이워크에서 가장 하이라이트 자리.

촘촘한 철망과 그 중앙 크리스탈 바닥 구조물 위에 서면 크게 거대한 산세를 비집고 남쪽으로 달리는 섬진강의 굽이치는 물결을 읽을 수 있었다.

점점 거리를 두면서 스카이워크를 바라보면 이렇게 공중부양한다.

전망대 4층 카페가 있는데 출입구 들어가기 전 한 팀이 절경 감상 중이다.

카페에 앉아 조금은 맛 없는 커피 한 잔에 먼 길 달려왔던 피로감을 잊는다.

천장이 감각적이다.

스카이워크에서 나와 차를 세워둔 채 고소산성을 가기 위해 거쳐야 될 작은 사찰을 지나며 다시 하동 벌판을 응시했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기도 한 평사리 너른 벌판 초입에 사랑을 새겨 놓은 동정호의 말끔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뒤따라 거대 벌판도 한눈에 들어왔다.

작은 사찰 한산사를 지나 우측 탄탄한 산길로 접어들면 고소산성으로 향하게 되는데 평사리 너른 벌판을 바로 아래 둔 위치가 매력적이다.

고소산성으로 가는 길은 뿌듯한 오르막길로 초입엔 간헐적으로 포장된 길이지만 자욱한 낙엽이 깔려 있어 가끔 발을 잘못 디딜 경우 돌뿌리에 삐끗하게 된다.

이 길은 인적이 없다는 듯 낙엽이 수북하다.

평탄한 오르막길을 얼마 지나면 산길이 나오고 그 길에 접어 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성벽이 보인다.

특별할 건 없음에도 천길을 달려온 섬진강과 그 옆을 요지부동 지키는 험준한 산세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만나 꽤나 다양한 각도에 따라 각양의 모습을 보여줬다.
강과 인접한 산세가 도저히 그칠 기미 없이 첩첩이 우뚝 서 있으리라 여겼건만 그 틈바구니에서 제법 반가운 평원도 함께 그려져 있어 비집고 서 있는 곳에 따라 연신 천의 얼굴을 비쭉 내밀었다.
거대한 산세에 조금이라도 나지막한 땅이라면 어김없이 섬진강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덕에 마치 신선이 산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 광양으로 지나온 동선 주변은 살포시 서린 비구름조차 하늘을 잘라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가파른 산세에 잠시 기댄 고소성은 규모가 작고 비탈이 심해 취하고자 하는 적들도, 지키고자 하는 자들도 쉽지 않았을 터, 다만 일대 먼 곳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지형으로 여행자의 눈엔 천리안을 잠시 빌려 가슴을 뚫고, 눈을 각성시킬 수 있었다.
찾는 이가 없는지 가을 잔해만 덩그러니 남아 황막한 겨울을 암시하는 고소성에 잠시 앉아 있는 동안 지나는 비의 노랫소리가 애처롭고 구슬프지만 거기에 마음을 맡긴 여행자는 적막 자욱한 감동을 추슬렀다.
끝 모를 사막에서도 오아시스가 있듯 가끔 이렇게 진공과도 같은 상태에서도 희열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적막한 성 내에 핀 꽃.

섬진강과 평사리 평원을 비롯 일대가 훤히 보인다.

최후의 파수꾼처럼 성벽에 홀로 선 소나무 한 그루.

성벽 위엔 침엽수 낙엽이 소복하다.

잘 영근 감.

고소성 가장 높은 곳을 지나면 섬진강을 향해 산세와 성벽은 급격히 내리막으로 치닫는다.

가는 빗줄기가 세찬 바람에 먼지처럼 휘날리기 시작, 비는 아랑곳 않고 잠시 앉아 한숨 돌리며 평온의 맛을 되씹는다.

멀리 구름에 휩싸인 백운산 정상 아래 산자락은 수호신처럼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은은하게 굽이치는 섬진강과 그 배후 장벽 같은 백운산을 함께 감상하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급한 내리막의 남쪽 방면을 지나면 다시 급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고소성을 떠나는 아쉬움을 털기 전, 멀리 광양 방면을 바라본다.

다시 한산사로 돌아와 계절을 잊은 듯한 꽃망울의 환영을 받는다.

한산사에서 평사리 너른 벌판을 바라보며 고소성 여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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