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섬진강 따라, 곡성_20210120

사려울 2023. 1. 14. 20:16

섬진강만 그 자리에 있을 뿐 완연히 봄과 다른 겨울 옷을 둘러쓴 함허정은 지난해 여름 폭우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아쉬운 대로 주변을 돌며 강바람 짙은 향연 속에 잠시 몸을 맡긴다.
먼 길 달려온 강물은 함허정을 감싸고 잠시 쉬어 가듯 강폭이 넓어지고 웅크리는데 오랜 시간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많이도 한탄과 삶의 집착을 내려놓았을까?
겸허해지는 순간 억겁 동안 지낸 강은 스승과 다를 바 없다. 

세상 모든 적막들이 모여 쉬고 있는 저곳에 서는 순간 진가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여름 장마 폭우 당시 섬진강 수자원을 잘못 관리하는 바람에 강유역에 수많은 피해가 났었던 게 떠올랐다.

서쪽 섬진강에서 반대편인 동녘으로 고개를 돌리면 칼날 같은 동악산 능선에 또 한 번 감탄한다.

동악산 능선을 넘어 석양이 잠시 숨을 고른다.

해무리가 선명한 걸 보면 조만간 비가 내리려는 암시 같다.

곡성에서 막창을 먹을 수 있다.
막창 하면 2018년 대구에서 교육 동안 뻔질나게 먹었고, 거기가 최적의 좌표로 알고 있었는데 곡성은 묘하게 다른 식감에 장맛이 틀리다.
대구 막창은 저렴한 무기로 이빨을 훑을 만큼 쫄깃하다 못해 대화에 심취하는 사이 불 위에서 계속 몸을 뒤틀다 보면 생고무처럼 질겨지지만, 곡성은 점점 흐물 해지고 걸쭉한 맛으로 바뀐다.
맛과 식감을 떠나 곡성에서 추억의 막창을 먹는 기분에 후한 평점을 내리는데 더해 추가로 나온 고구마, 봄동 무침, 배춧국을 곁들여 먹는 밥은 서울에서도 맛보기 힘든 감칠맛이 난다.
이렇게 입이 즐거워 야단법석을 떠는 사이 하루가 지고, 다음 여정인 보은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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