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구례와 지리산을 마주한 오산 사성암_20200319

사려울 2021. 8. 23. 02:25

지리산 노고단과 섬진강, 사람들의 터전인 구례를 마주한 오산은 무릇 다른 산들이 질투할 만한 천리안을 빙의시켜준다.

텅 빈 사성암의 위태로운 벼랑 위에 서서 한눈에 모든 걸 구겨 넣듯, 그러면서도 과하지 않고, 여유와 여백을 멋들어지게 채워 넣은 구례 일대를 보는 사이 세찬 바람을 따라 시간도 금세 흘러가 버린다.

구례에 온 시기가 절묘했던 건 한동안 대기가 뿌옇게 흐리다 이날만큼은 대기가 깨끗하고 화창했다.-구례가 고향인 사우의 말에 의하면-

곡성 지인과 함께 구례로 다시 넘어와 사성암으로 안내한다.

구례에 오면 '고곳은 꼭 가봐야제'라며, 주말 휴일엔 산아래 셔틀버스만 이용 가능할 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때마침 평일이라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사성암까지 차량으로 통행이 가능했다.

막상 사성암까지 오르는 길은 왕복 2차로지만 꽤 가팔랐고, 그나마 구간은 짧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 사찰 바로 밑에 주차장이 좁아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 따로 셔틀버스 운행할 만했다.

주차장과 사찰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가파른 산 중턱에 있어 호흡은 가쁘다.

그래도 사성암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자연스레 감탄사는 터져 나오는데 사찰 정면에 전경에서 한 번, 절벽에 기댄 사찰에 또 한 번 감탄사를 뱉게 된다.

사찰 법당을 지나 뒤편으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 틈새로 갈래길이 있는데 성인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보면 많은 촛불과 함께 불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종교에 문외한이라 정확한 명칭을 몰라 두리뭉실한 용어만 알고 있다-

그 바위틈은 양방향으로 비슷하게 뚫려 있는데 들어왔던 반대 방향으로 쭉 진행하면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처음과 다른 섬진강이 휘몰아치는 구례읍, 이 고장의 가장 멋지고 거대한 어른인 지리산이 한껏 펼쳐진다.

난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게 구례를 거쳐 순천이나 광양, 남해 방향으로 지나가면서도, 직접 여정을 위해 구례를 밟으며 언제나 지리산을 보면 그 위상은 우리나라 그 어떤 지형보다 감탄하게 된다.

강원도 일대의 산지가 높다고 하지만 지대 자체가 높다 보니 고도차가 그리 크지 않아 거대한 산세가 실감 나지 않는데 반해 구례는 해수면 높이와 큰 차이가 없어 상대적으로 지리산과 고도차가 큰 데다 지리산 자체도 3개 도에 걸쳐 있는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 아닌가.

그래서 난 구례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면 정말 신이란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성암 뒤편 큰 바위를 지나면 오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는데 얼마 오르지 않아 이내 오산 정상의 팔각정에 도착하게 되고, 구례가 얼마나 멋진 지역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주변이 큰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 한가운데는 구례읍과 섬진강이 관통하는 넓은 곡창지대라 지형 자체로도 아주 멋진 곳이다. 

오산 정상에서 내려와 사성암으로 가는 길에는 절벽에 망대 같은 전망대가 이렇게 자리 잡고 있는데 그리 무섭지 않으면서도 절벽 위에 올라선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사성암에서 오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큰 바위틈바구니를 지나거나 우회할 수 있는데 우회길엔 이런 석불이 있고, 그 뒤에 수 없이 많은 금빛 카드가 걸려 있어 세찬 바람에 찰랑이는데 워낙 대기가 깨끗하고 선명해 햇살 또한 눈부실 만큼 화사했다.

사성암에서 바라보면 구례로 들어오는 섬진강이 곡성에서부터 달려 들어오는데 강렬한 햇살이 반사되는 이 정취 또한 몽환적이다.

오산에서 사성암으로 내려와 돌계단을 딛기 전, 바위 절벽에 기댄 모습이 무척 위태로울 것 같지만 막상 이 앞에 선다면 불안이나 위태로움은 잊게 된다.

사성암의 멋진 자태와 더불어 이 일대의 절경에 육감이 마비되어 버린 탓이다.

사성암에 도착했을 때가 벌써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라 그리 오래 있지 않았다.

함께 여정을 떠난 곡성 지인이 다음 추천할 곳을 감안한다면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었고, 저녁은 이미 내가 추천한 최고의 맛집이 산수유마을에 있어 아직도 남은 먼 거리에 대한 일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상 못한 사성암에서의 정취는 아쉬운 미련으로 남았다.

이 정취를 품을 수 있다면... 어느새 과욕은 덤덤한 사념으로 순화되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무심하던 시간에게 조차 경의를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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