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114

첫 걸음과 마지막 걸음, 운탄고도 화절령_20211027

막장의 상처를 자연이 치유한 흔적인 도롱이연못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며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벼운 눈인사로 공간에 대한 공유와 공감을 아우른다. 사북의 잃어버린 탄광마을_20141129 전날 늦은 밤, 신고한 터미널에 도착했을땐 이미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리는 중이었는데 일행을 만나 다른 곳은 둘러볼 겨를 없이 강원랜드 부근 하이캐슬리조트로 가서 체크인 후 조촐한 맥주 meta-roid.tistory.com 가을 열매 설익은 하늘숲길, 화절령 가는 길_20201007 가을이면 달골 마냥 찾는 곳 중 하나가 정선 하늘숲길(사북의 잃어버린 탄광마을_20141129, 하늘숲길에 가을이 찾아 들다_20191023, 하얀 하늘숲길을 거닐다_20200203)로 고산지대에 조급한 가을과 더불 meta-roid.ti..

고요, 적막, 평온한 우포_20211025

석양이 남은 하루 시간을 태우는 시간에 맞춰 우포출렁다리에 다다라 쉴 틈 없던 여정에 잠시 쉼표를 찍는다. 간헐적으로 오가는 사람들과 간소한 눈인사를 주고 받으며 적막강산의 정체된 공허 속에서 희열과 여독으로 점철된 존재를 조용히 되짚어 본다. 가끔 낯선 사람들의 사소한 지나침이 반가울 때가 바로 이런 경우 아닐까? 상대 또한 그런 그리움의 만연으로 무심한 듯 주고 받는 목례에서도 감출 수 없는 반가운 미소와 함께 지나친 뒤에 그 행적을 돌아보며, 다시 마주친 시선의 매듭을 차마 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좀 전까지 밭을 한가득 메우던 농부의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여행자의 발자국 소리만 굴절된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정이라 걷는 동선을 줄일 목적으로 꾸역꾸역 차를 몰고 출렁다리로 접근..

고원에 부는 세상 향기, 황매산_20210513

인간이 품어온 동경이 쉬어가는 곳, 철쭉이 질 무렵 뒤따라온 신록의 물결이 바람결에 출렁이며 자욱한 봄내음이 가슴까지 술렁인다. 봄이면 철쭉이, 가을이면 억새가 터줏대감이 되어 무던히도 여행자들을 설렌 이끌림에 마주치는 고원은 그 일몰 또한 아름답다. 갈망하던 은하수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실망의 매듭이 풀릴세라 가슴을 현혹시켜 돌아갈 의지를 잊게 된다. 언덕으로 봉긋 솟아올라 다시 그 위에 닭벼슬처럼 첨예하게 자리 잡은 황매산 능선은 공존하는 두 세상이 다른 책임을 부여받은 마냥 시선으로 판별되는 질감이 대조적이다. 철쭉과 억새 군락지가 너른 고원에 사지를 펼쳐 드러누워 있다면 한 줄기 산자락은 그와 다른 생명들이 울타리를 치고 그들만의 영역을 만들어 지내는 형상으로 철쭉만 만났던 지금까지와 달리 ..

이른 봄의 전주곡, 태안_20210220

서해의 바람이 지치지 않는 태안에서 진지하고, 유희 넘치는 대화를 나누던 날, 들판에서 소생하는 봄소식에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을 되짚어 바람에게 묻노나니... 불현듯 찾아온 손님의 반가움이 바로 이런 기분일까 싶어 또한 같은 마음이려나. 빼곡한 장독대에서 부서지는 햇살이 아직은 찬 바닷바람에 냉점을 마비시킨다. 마당 한켠에 장독이 쨍한 햇살을 받아 반사 시킨다. 봄을 예고하는 양지 바른 곳이라 파리가 날아다니는 건가~ 노숙자 스타일. 소리소문 없이 봄을 전해주는, 땅에 나지막이 달라붙어 작은 꽃을 피워 몰래 봄을 데리고 왔다 갈 때도 몰래 데리고 간다. 하루 일과가 무척 짧게 느껴져 어느새 기웃거리던 해가 멀리 도망가 버렸다.

섬진강 따라, 곡성_20210120

섬진강만 그 자리에 있을 뿐 완연히 봄과 다른 겨울 옷을 둘러쓴 함허정은 지난해 여름 폭우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아쉬운 대로 주변을 돌며 강바람 짙은 향연 속에 잠시 몸을 맡긴다. 먼 길 달려온 강물은 함허정을 감싸고 잠시 쉬어 가듯 강폭이 넓어지고 웅크리는데 오랜 시간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많이도 한탄과 삶의 집착을 내려놓았을까? 겸허해지는 순간 억겁 동안 지낸 강은 스승과 다를 바 없다. 세상 모든 적막들이 모여 쉬고 있는 저곳에 서는 순간 진가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여름 장마 폭우 당시 섬진강 수자원을 잘못 관리하는 바람에 강유역에 수많은 피해가 났었던 게 떠올랐다. 서쪽 섬진강에서 반대편인 동녘으로 고개를 돌리면 칼날 같은 동악산 능선에 또 한 번 감탄한다. 동악산 능선을 넘어 석양이 잠시 숨..

갯마을 석양 아래 강구_20201110

동해 바다에 있는 영덕은 바로 앞이 바다가 아닌 내륙 도시와 진배없었다. 후포와 저울질하다 호기심에 찾아간 영덕 강구는 대게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다가온 대게철을 실감할 수 있었지만 제 바닥이라고 해서 저렴한 건 아니었다. 다만 바다를 바라보며 대게를 뜯는 기분은 아무런 양념이 없음에도 풍미를 배가 시켜주는 플라시보 이펙트랄까? 모처럼 대게를 질리도록 먹고 나오자 하늘엔 땅거미가 깔려 이내 하루가 저물 기세라 바로 앞에 있는 광장을 한 번 둘러봤다. 꽤나 너른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자 비로소 딱 트인 동해가 눈에 들어오며 나도 모르게 수평선에 시선을 맞췄다. 공원 한 켠 방파제 언저리엔 건조에 한창인 생선이 있고, 그 아래엔 굶주린 길냥이들이 행여나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촘촘하게 짜여진..

일상_20201005

잊을만하면 회사 인근에서 만나던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삼색이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단다. 녀석도 꽤 어려 보이던데 벌써 어미가 되었다는 사실은 궁금하던 차 회사 동료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한동안 보질 못했으니 나도 잊고 지냈다. 허나 위태로운 난관에서 쉬고 있었다니. 방해 안 할 테니 조심하고, 가끔 이쁜 얼굴이나 보여주렴. 가을과 하늘의 석양 협주곡. 어느 하나 어색하거나 도드라진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