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114

일상_20190921

주말에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가을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가을 내음이 물씬하여 가벼운 방수 코트를 하나 걸치고 공원을 나갔다. 걷기 좋은 나무 터널 아래 바람을 타고 온 미세한 숲의 향기가 잠자고 있던 미소를 깨운다. 오후가 무르익을 수록 빗줄기는 더욱 가늘어져 얇은 방수 코트 위에 송알송알 빗물이 영근다.걷기 좋은 산책로를 따라 가는 동안 공원이 텅빈 것처럼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부쩍 줄어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이 반가울 때가 있던 날이다. 적막의 한가운데 서서 비와 바람의 곡조를 음미한다.이렇게 가벼운 비는 도리어 활동에 큰 지장이 없고, 묘한 적막의 단맛이 느껴진다. 해 질 무렵 구름을 뚫고 석양이 비춰 육중하던 구름을 붉게 태워 허공으로 날려 버린다.어찌나 이 색감이 고운지. 가을에 감탄..

일상_20190905

가을 장맛비가 한창이다.맑다가 갑자기 흐리고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쳐 버리기도 하고, 그치는가 싶다가도 지루하게 내리길 다반사. 비가 내린 뒤 일시에 걷히는 구름으로 거대한 무지개가 하늘을 채색했다.금새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남가일몽인들 어떠하리.이제 가을인 걸. 가끔 그럴 때가 있다.아무런 기대 없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는데 예상치 못한 경관으로 한참을 우러러 본 적.가을에 대한 기대감도 잊을 만큼 나는 앞만 보며 무얼 그리 응시 했던가.가을 비가 추적히도 내리던 저녁, 작은 행복에 미소 짓는 그런 날도 있긴 하다.비 온 뒤의 쾌청한 하늘은 고난 뒤의 성취감과도 같다.

일상_20190817

매일 맹약처럼 동녘에서 나타나 서녘 마루를 넘어가지만 감회는 남다르다.바람에서 느껴지는 가을 내음이 깃들어 지난한 더위가 한풀 꺾인 게 위안 아닌 위안 거리가 되어 억누를 수 없는 기대감에 사로 잡히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도 석양을 바라 보며 위로한다.여름이 지겹더라도 지나고 나면 어느 하나 허투루하지 않았던 걸.늘 지나고 나서 숙연해 진다. 찰나의 순간처럼 아주 짧은 시간 일몰은 사라지고, 아쉬운 마음을 알아 주는 배려인지 기나긴 땅거미가 여민다.

일상_20190706

바람 좋은 주말, 길섶에 웅크리고 있는 풍경들이 특히나 반가워 집을 나선다. 화사한 햇살, 청명한 대기로 개망초 군락지에 우뚝 솟은 나무, 이 장면이 영화에 나올 법한 수채화 같다. 2016년 처음 보게 된 새끼 고라니는 혹독한 겨울을 지나 초록이 넘쳐나는 먹이의 풍년을 누리고 있다.허나 홀로된 두려움은 반복되는 시련일 거다. 지나는 길에 풍뎅이 같은 게 있어 허리를 숙이자 바글바글하다.바람 좋은 날, 바람 나는 날이여? 오래된 공원의 작은 길을 따라 놓여 있는 벤치가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있다. 강한 바람에 넘실대는 건 비단 개망초 뿐만 아니다. 폰카의 발전은 어디까지 일까? 어느새 저녁이 다가와 교회 너머에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든다.강한 햇살로 인해 늘어뜨린 그늘이 고맙고, 뜨거운 대지의 열기로 인해..

일상_20190629

늑장을 부리는 장마 대신 보슬한 비가 나풀거리던 주말, 반석산에 올라 둘레길을 따라 비가 지나간 궤적을 되밟아 본다. 개망초 꽃길을 지나. 매력적인 독버섯. 낙엽 무늬 전망 데크에 가까워질 무렵 산딸기 군락지가 있다. 벌써 밤송이가 맺혔다. 벤치로 제2의 생을 보내고 있는 나무. 뭔 사연이 있길래 나무가 이렇게 자랄까?같은 나무일까, 아니면 다른 두 개의 나무가 함께 자라는 걸까? 하늘을 향해 아득하게 가지가 뻗은 나무. 이 꽃은 뭐지?엷은 비에도 벌 하나가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을 정도다. 장미 꽃잎에 피어난 보석 결정체. 산딸기 군락지에 아직 남아 있는 산딸기의 볼그스레한 열매가 탐스럽다.어느 젊은 여성이 수풀 사이에서 뭔가를 조심스레 따먹길래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산딸기를 열심히 줍..

무심한 시간의 파고에서 꽃이 피다_20190608

월류봉에서 석양이 넘어갈 무렵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가족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서울 인근이라 함께 차로 이동할 수 없는 한 사람을 위해 황간역에서 덜컹대는 무궁화호를 이용하기 위해 배웅에 나섰다.황간까지 왔는데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동해식당에서 다슬기전과 탕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열차 시각에 맞춰 황간역에 도착했다.(숨겨진 다슬기 해장국 고수_20190305)전형적인 시골 기차역이라 규모에 비해 너른 광장에 다다르자 생각보다 많은-대략 10명 이상?-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나머지 그와 비슷한 수의 사람들은 마중을 나왔다.기차역에 들어서기 전, 광장에 유물과도 같은 것들이 멋진 조경의 일부가 되어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있는데 한적한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구시대의 상징인 시골 열차역..

석양과 달이 머무는 자리_20190608

도마령을 넘어 길게 뻗은 구부정길을 따라 황간에 도착했다.절실 했던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황간을 몇 바퀴 돌다 아쉬운대로 파리바게트에서 몇 사발 들고 도착한 황간의 명물, 월류봉은 예상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북적대는 곳이었다.관광버스가 들어오는가 싶더니 공간을 메운 인파가 북적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많던 사람들이 빠져 나가고, 이내 다시 인파가 들어서길 몇 번 반복하는 사이 해는 서서히 기울며 머물러 있던 낮도 사라져 갔다.한 자리를 잡고 2시간 정도 앉아 마저 남은 커피를 비우며 남은 이야기도 비웠다. 홀로 우뚝 솟은 월류봉의 끝자락을 부여 잡은 월류정과 그 바위산을 단단히 부여 잡은 초강천이 함께 어우러진 월류봉은 그 일대가 그림 같은 곳이다.힘들게 이 먼 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건져..

긴 여름의 시작_20190601

동탄호수공원에서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이미 시간은 6시반을 훌쩍 넘겨 호수를 시계 방향으로 돌며 길이 더 꼬였고, 7시가 넘어 만나게 되었다.호수 주변에 꾸며진 공원의 테마는 제각각 달라 지루할 틈이 없었고, 걷기 알맞은 날씨라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불과 초봄에 왔을 때만 해도 호수는 텅비어 있고 공원엔 싸늘한 바람만 불었는데 그게 얼마 지났다고 완전 다른 세상의 풍경이다. 호수변 수변생태식물? 늪지? 같은 곳으로 진입해서 통화를 하며 걷는데 서로 이야기 하던 종착지가 달라 거기로 걷는다는 게 또 다시 다른 방향으로 걷게 되었고, 그럼 한 사람이 자리를 잡고 내가 찾아가는 게 수월하다고 판단하여 호수를 반 바퀴 돌아 약속 장소에 조우했다.호수 서편에 위치한 레이크자이 테라스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