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58

화로의 불씨처럼 하루가 꺼질 무렵_20240729

이제는 회사 동료, 사우에서 각자 지인으로 갈라지게 된 멤버들을 소환하여 3년 전 그때처럼 음악 소리에 바비큐를 곁들인 불멍을 때리며 추억도 나눴고, 아쉬움도 달랬다.오랫동안 손발을 맞힌 것처럼 각자 역할을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자리를 세팅한 뒤 저녁 식사와 더불어 술이 몇 순배 돌자 그간 공유했던 시간들을 끄집어내 함께 웃고 떠드는 사이 금세 어둠이 찾아왔고, 요란하게 달라붙는 날파리도 어느샌가 잠잠해져 그간 쌓였던 마음 봇짐을 풀어헤쳤다.[이전 관련글] 자연이 숨겨둔 관창폭포_20211003마지막 여정은 선유도와 가까운 관창폭포로 자연이 예리한 칼로 거대 바위를 수직으로 자른 뒤 모서리에 작은 틈을 만들어 물길을 틔어 놓았다. 자연이 취할 수 있는 거대 전위 예술이라 해도meta-roid.tist..

어김 없이 봄, 봉화_20240429

때마침 지나던 길에 5일 장터가 열려 구경도 하고, 양질의 식료품도 저렴하게 득템했다.게다가 금낭화와 핫립세이지 모종도 모셔왔는데 몇 해 전 집에서 있던 금낭화가 서거하시어 또 한 번 도전하기로 했다.왜냐, 내가 젤 좋아하는 꽃 중 하나이기 때문.가시엉겅퀴는 산과 들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곧추서고 높이 약 25cm,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전체에 부드러운 흰털이 난다. 뿌리잎은 줄기잎보다 크고 꽃이 필 때 남아 있다. 잎몸은 타원형 또는 도피침형이며 깃꼴로 갈라진다. 갈래조각은 난형 또는 긴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깊이 파여 들어간 모양의 톱니와 가시가 있다. 줄기잎은 타원상 피침형이며, 촘촘히 붙어 난다. 꽃은 7~8월에 피는데 가지와 줄기 끝에 머리모양꽃차례가 1~3개씩 달리고 지름 3~5..

장엄한 석양을 담은 봉화 축서사_20240407

붉은 석양이 질 때면 아쉬움도 붉게 타들어간다.그럼에도 밤이 지나 다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진리로 인해 오래 머무르지 않고 내일을 기다린다.석양 맛집에서 아쉬움을 털고 땅거미 등에 염원을 실어 날린다.더불어 문수산에 둘러 쌓인 사찰에 첫 발을 들이는 순간 장엄해지는 기분에 습관처럼 감탄사를 뱉게 된다.3대 청정탄산약수와 축서사를 품은 문수산(높이 1,205m)은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춘양면 서벽리, 봉성면 우곡리에 걸쳐 있다. 백두대간 옥돌봉에서 남동쪽으로 안동의 학가산까지 뻗어가는 문수지맥의 산으로 봉화의 진산(鎭山: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지켜주는 주산으로 정하여 제사 지내던 산)이다. 신라시대에 강원도 수다사에서 도를 닦던 자장 율사가 태백산을 찾아 헤매던 문수보살이 이산에 화현(化..

태백 철암역에서 협곡열차 타고_20240406

다시 찾은 철암에 변한 것은 단 하나, 바로 겨울이 물러난 자리에 봄이 들어와 한층 온화한 정취로 변모했다.하얀 눈으로 뒤덮인 선로는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았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철암천은 두텁던 얼음 대신 신록의 희망에 잔뜩 부풀었다.어느 하나가 좋다는 느낌보다 산골 마을 계절이 주는 묘한 매력을 함께 체득한다는 게 계절마다 특색 있는 푸짐한 밥상을 거나하게 즐긴 기분 이상이었다.다만 열차 이용과 식솔이 많아 시간대가 애매한 바람에 철암에 1시간 정도 머문 걸로 만족해야지.꾸준하게 몰리는 사람들로 인해 꽈배기를 시켜 포식하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 예약한 열차 출발이 임박했고, 돌아오는 길에 승부역, 양원역에 잠깐씩 들러 감질 맛 나는 간이역 구경에 비해 순도 높은 오지를 편하게 앉아 정독하는 재미는 ..

추억과 오지의 간이역, 봉화 분천역_20240406

불과 한 달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봄은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앙상한 가지에 연둣빛 옷을 입혔고, 황량하던 흙 위에 노란 점을 찍었다.그도 모자라 간이역 플랫폼에 생기를 불어넣어 오가는 걸음 분주하다가도 이내 사라졌고, 그러다 정적이 쌓이면 다시 종종걸음이 싣고 온 웃음소리를 채웠다.어느 누구에겐 덜컹이는 기차가 삶의 동선이라면 어느 누군가에겐 추억의 장난감이 되어 감성에 젖게 했다.그래서 이번엔 종점, 철암으로 간다.분천역은 영동선의 철도역.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길 49(분천리 935-1) 소재.역명은 여우천에서 내려오는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 하여 부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제가 '부내'를 한자화 해서 분천(汾川)이 된 것이다. 현재의 역사는 1957년 완공된 것이다. 2..

오지 협곡에 흐르는 풍류, 낙동강 세평하늘길 1구간_20240309

협곡에 살짝 걸쳐진 길을 걷다 앉으면 길가 벤치가 되고,조밀한 나무 어깨를 지나면 터널이 되고,깊이 들숨을 마시면 향기가 되는 곳.낙동강이 허락해 준 낙동강 세평하늘길(이하 '세평하늘길')은 극도로 한갓진 두려움도, 깊디깊은 적막의 어둠도 없었다.그럼에도 자연의 숨결이 명징하게 피부를 스치며, 새의 지저귀는 노래가 이토록 아름다운지, 구르는 물의 소리가 이토록 흥겨운지, 또한 바람 소리에서 이토록 향그로운 향이 나는지, 문명이 차단된 계곡이 투영한 햇살이 콧잔등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교감했다.길은 강변 수풀을 헤치고, 모래자갈밭을 지나며,바위를 밟고, 철길과 나란히 걷거나 아래를 지나며,데크길로 가파른 비탈길을 날고, 절벽을 스친다.그래서 길은 삶이 지나는 혈관이며, 이야기가 오고 가는 전신주였다.겨..

세 평 협곡 간이역, 봉화 승부역_20240309

문명은 시간도 거칠고 세차게 현혹시켰다.하루가 다르게 변화에 길들여진 세상과 달리 2004년 이후 20년 만에 찾은 승부역은 시간도 더디게 흘렀는지 고순도의 옛 모습을 유지했다.하늘 아래 세 평 간이역, 승부역에서 요동쳐 철길 따라 소소히 구전되다 길의 유래가 되어 버린 협곡 품 아래 작은 간이역에서 작은 도전과 소박한 출발을 고했다.더불어 변하지 않아 반가운 것들, 붉은 벽돌 역사와 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서있는 플랫폼, 그리고 산중 에이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대기실을 정독했다.승부역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위치한 영동선의 철도역이다.역 인근에 작은 마을이 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역 이용객은 사실상 전무했으나, 1999년 환상선 눈꽃순환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로는 접..

흐르는 강물처럼, 낙동강 세평하늘길 3구간_20240309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유일무이한 길이자 강변과 함께 나란히 늘어선 세평하늘길을 걸으며 그 길이 안내하는 대로 쉼 없이 걸었다.가끔 마주치는 인가와 어쩌다 지나는 차량의 엔진소리가 반가울 만큼 문명의 밀도가 낮은 공간을 파고들어 언제부턴가 소음에 길들여진 어색함을 털기 위해 나지막이 음악을 곁들였다.세평하늘길은 총 3 구간으로 1구간은 승부역~양원역, 2구간은 양원역~비동 임시승강장, 3구간은 나머지 비동~분천역까지로 나뉘는데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걷는 구간은 3구간으로 낙동강이 첩첩산중을 비집고 들어가 억겁 동안 트여놓았고, 인간은 거기에 좁은 도로와 철길을 얹어 놓았다.그래서 강에 자생하는 생명들과 자연들이 서로 교합하여 만들어낸 소리가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풀어놓은 실처럼 이정표가 되어준 덕..

외면의 알을 깨고 세상으로, 봉화 분천역 산타마을_20240309

철길이 유일한 이동 통로인 곳, 영화 '기적'의 배경이 되는 양원역 일대 둘레길이 조성되었고, 철길을 중심으로 도보길이 실타래처럼 얽힌 세 평하늘길에 당도했다.지난 대관령 여정에서 함께 둘러볼 심산이었으나, 당시 동해역 부근 허름한 모텔조차 15만원이라 잠시 미뤘고, 일주일 지나 그 땅을 밟았다.세평하늘길은 지자체에서 트레킹 코스로 만들어 둘레길 중 한 곳인 승부역 초대 역무원의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라는 시에서 착안, 세평하늘길이 되었는데 분천역에서부터 양원역을 거쳐 승부역까지 약 12km 둘레길로 겨울이면 오지의 협곡에 잉태한 눈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이동 수단인 열차를 타고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2004년에 유일한 민자(?) 간이역인 양원역을 어렵게 찾은 적 있었는데 당시 양원역은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