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아까시향 바람, 동탄_20240501

사려울 2024. 7. 9. 02:30

모처럼 동네 산책으로 10km 이상 걷기 도전.
여느 해와 비교해 봐도 아까시향이 풍년이라 20km를 걸어도 입에 개거품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역시 행복한 오감의 위력을 절감했다.
아카시향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거기에 이팝을 비롯하여 각종 봄꽃들과 들판을 뚫고 나오는 신록이 더해져 국토종주를 해도 될 만큼 발자욱마다 희열도 넘치던 날이었다.

아까시나무는 미국 원산의 콩목에 속하는 낙엽활엽수로 한국에서 흔히 부르는 아카시아는 사실 미국 원산의 이 아까시나무로, 호주 원산의 아카시아와는 다른 식물이다. 실제로 아까시나무에서는 하얀 꽃이 피고, 아카시아에서는 노란 꽃이 핀다.
과거에 미국 원산의 이 나무(pseudoacacia)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아카시아'로 잘못 불리게 되었는데, 일본의 영향을 받았던 과거 한국에서도 '아카시아'로 불렀던 것이 오해의 시작이다. 일본 학자들은 미국 원산의 이 나무(pseudoacacia)가 기존 호주 원산의 아카시아와 다른 것을 인지하고 이름을 '니세-아카시아(가짜 아카시아)'로 바꾼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계속해서 '아카시아'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가, 호주 원산의 아카시아를 결국 마주하고는 다른 이름을 찾아야 될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명명한 것이 "아까시나무"이다. 가시(까시)가 있는 것도 있는 것이지만 기존에 부르던 것을 포기하기 그래서 약간 변형해서 명명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대충 이름을 지었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름을 정하기 힘들 정도로 해당 나무의 역사ㆍ문화가 부족하다면 원래 영어 명칭대로 '가짜아카시아'라고 부르거나, 아니면 나무의 주된 특징에 기초해서 아예 다른 이름을 만들어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일제가 들여온 나무라는 점과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점 때문에 생긴 편견과 달리 아까시나무는 오히려 6.25 전쟁 이후에 산림녹화(綠化)를 위해 대량으로 심어졌다. 심지어 난지도에 공원을 조성할 때도 가장 먼저 심은 나무가 바로 아까시나무였다. 이외에도 아까시나무에는 장점이 많다. 꽃 모양과 꼬투리에서 알 수 있듯 콩과 식물이라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질소를 고정시켜, 비료를 안 줘도 되고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황폐화된 민둥산의 토질을 향상하는 데는 최적인 셈. 심으면 주변 나무들도 덩달아 잘 자란다. 5월경에 피는 꽃의 향기도 좋고, 심은 지 4년이 지나면 따로 꿀을 채취하기도 한다. 장작은 오랫동안 타고 화력이 강하며 연기가 적어 땔감으로도 아주 좋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숲 생태계를 해친다는 이미지와 달리, 다른 나무가 잘 자라기 쉬운 일반 토양에서는 거꾸로 다른 나무의 번식력에 밀려 사라진다고 한다. 단기적인 번식력은 뛰어나지만 장기적으로 다른 나무를 경쟁에서 압도하는 생태계 교란종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남산에서도 소나무에 밀려 아까시나무가 사라지는 추세. 수명이 100년 정도로 나무치고는 짧고, 전래된 지 100여 년에 불과해서 나무들이 한국의 토양에 적응이 덜 되어 50년을 못 넘긴다. 밑동 지름이 50cm를 넘으면 속부터 썩어 비어 간다. 60여 년 된 나무 밑동이 1미터 정도 되므로 성장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인데, 뿌리가 얕고 약해서 나무가 커질수록 비바람에 잘 넘어지는 것도 오래된 나무가 없는 이유이다. 한국은 태풍 시즌이 있어서 아까시나무가 장수하긴 힘든 환경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아까시나무는 빠른 속도로 번식해서 민둥산을 양질의 토양으로 바꾸어놓은 뒤, 수명이 다하고 경쟁에 도태됨으로써 다른 나무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주고 퇴장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다행히도 아까시나무가 오해를 받아 왔음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산림청에서는 다시 아까시나무를 심는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전국 국유림 내에 매년 150ha씩 총 450ha 규모로 아까시나무 조성사업을 한다.
그러나 한번 뿌리내리면 제거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고 외래종인데도 불구하고 왕성한 번식력으로 야생화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산림청에서도 이에 대해 아까시나무를 '외래화우려식물'로 지정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제거하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미국에서도 본래 자생지 밖에서 심는 것을 금지하는 주가 꽤 있어서 원산지에서도 유해수종 취급받기도 하고, 한국과 비슷한 기후 조건을 가진 일본에서도 왕성한 번식력으로 야생화되고 있는 점을 우려하여 대규모로 베어내고 다른 식물로 대체하는 데, 우리나라만 예외라고는 볼 수 없다.
꽃말은 '우아함', '죽음도 넘어선 사랑', '모정'.
[출처] 아까시나무_나무위키
 

아까시나무

파일:external/cfs12.blog.daum.net/481fd28deaa04&filename=%EA%BD%83

namu.wiki

한창 이팝나무가 만개한 시기라 노작마을 입구에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이팝나무를 찾았고, 어김없이 초입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노작마을 놀이터를 지날 때 새 이파리가 새록새록 나오는 상큼한 초록의 전나무 또한 눈길을 끌었는데 소나무는 원래 달려 있던 짙은 이파리 가지 끝에 새로운 연두가 뻗어 나와 대조적이었다.

노작마을 카페 거리를 지날 무렵 활짝 핀 꽃잎이 고개를 갸우뚱 내밀었다.

반석산 둘레길에 접어들어 화사한 연둣빛에 휩싸인 채 길을 정처 없이 걸었다.

여긴 제법 무성한데.

물러날 것 같지 않던 겨울색이 급격히 오그라들며 봄의 기운에 점차 깊은 잠에 빠져들 즈음이었다.

잣나무와 함께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참나무 숲에 들어섰다.
굵은 나무는 양팔을 벌려야 겨우 감싸 안거나 아니면 손끝이 닿질 않았다.

워낙 키가 훤칠해서 진달래 같은 소심한 나무들이 크게 자라지 못하는 걸까?
내게 있어 반석산 둘레길 중 좋아하는 구간이기도 했다.

반석산과 여울공원을 이어주는 거대한 육교 공사 중이라 여기서부터 오산천 산책로와 가까이 인접한 구간은 당분간 임시 폐쇄 중.
하는 수 없이 반석산 정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노작마을 뒤편 반석산허리에 작은 공원을 거쳐 정상으로 걸었는데 쉼터 등나무꽃을 피웠고, 남은 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그 아래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반석산 정상에 도착하여 습관처럼 일대를 둘러보는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늘 아래 쉬고 있었다.

올해 유난히 강하고 향긋한 아카시꽃이 절정을 이뤘다.
몇 년 동안 아카시꽃은 여전했음에도 향은 거의 맡을 수 없었던 반면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 유난히 짙은 향을 발산했다.

꽃을 보면 지금이 절정의 시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곤충이 꽤 많아 산책로나 길 주변에 꽤 많았다.
이미 죽은 것들도 있었고, 아직 살아있지만 왠지 힘을 쓰지 못하는 것들도 무척 많았다.
까치가 길 주변에 유난히 많더라니.

반석산 낙엽무늬 전망데크에 도착하자 아카시향이 청명한 대기를 가득 채웠다.

전망데크 주변으로 아카시꽃이 많았는데 매캐한 향이 더해 기분은 더할 나위 없었다.
매혹적이면서도 달콤한 아카시향을 함박 들이마시는 사이 땀방울과 피로감은 금세 증발하여 자취를 감췄다.

둘레길 주변으로 악동 까치가 꽤 많다 싶더니만 까만 곤충들로 배를 채우기 때문이었는데 여간해서는 거리를 좁히는 순간 날아가버리는 녀석들이 이번엔 불과 2m 정도까지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다 좀 더 가까워질 거라 생각되면 이내 날아가 버렸다.
까치와 곤충의 먹이사슬 관계에 전혀 방해할 의도가 없어 가급적이면 까치가 있는 자리를 최대한 떨어져서 우회했다.

여느 때와 달리 아직은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이라 노작호수공원으로 방향을 잡고 반석산을 내려갔다.
아직 신록이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무성해져 나무 터널을 만들어놨다.

반석산에서 생태통로를 지나 노작호수공원으로 내려왔다.
일대 군락지를 형성한 토깡이풀 또한 하나 같이 화사한 꽃을 피웠다.

걸어서 노작호수공원을 오랜만에 찾았다.
늘 단정하게 가꿔놓은 공원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15년이 넘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 사이 나무는 장대처럼 자랐고, 그 외 녹지들은 풍성해졌지만 도리어 그게 공원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또한 관리도 꾸준하게 잘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동탄 초기에 아이들과 자주 왔던 수변 데크 공원에는 데크가 없어지고 인공 여울만 남았다.

봄의 아릿다움에 향기까지~

인공 여울 따라 그 위를 나란히 하던 나무 데크길이 사라지고 작은 쉼터로 변신했다.

악동 까치가 열심히 벌레를 쪼아 먹다 길을 지나자 바로 옆 펜스로 훌쩍 뛰어올라 빤히 눈을 맞혔다.
'식사 중인데 누가 방해할깎!'

인공 여울 위 작은 쉼터는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전체적으로 새삥 흔적이 아직 남았다.

예당교를 지나기 전, 일련의 나무 무리는 키가 훌쩍 자라 작은 숲의 형태를 갖췄다.

어느덧 재봉산 밑 산책로를 지나는데 유난히 아카시향이 짙어 걷는 속도를 낮췄다.

어찌나 아까시향의 밀도감이 높은지 연중 그리 길지 않은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했는데 아까시꽃은 워낙 키가 큰 나무에 매달려 있어 볼 수 없지만 특유의 향긋하고 달달한 내음으로 인해 상상에 날개를 달아 꽃의 아름다움은 적절한 추상적 아름다움까지 더해졌다.
그로 인해 이 구간을 흔히 걷는 속도로 지나쳐 버리면 다음 일 년 동안, 아니 아까시꿀차를 마시는 내내 후회할 것만 같아 걸음을 천천히 옮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런 벅찬 내음을 실어 나르는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데 어찌 무덤덤하게 외면할 수 있겠나.
길의 끝에 다다른 뒤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굳이 이 길을 지나간 이유도 바로 아까시향 덕분이었다.

넓지만 휑하지 않고, 나무가 얼마 서 있지 않은 녹지지만 단아한 정취의 반남 박씨 묘역은 어느덧 동탄의 아웃사이드에서 당당한 녹지의 구성원이 되어 버렸다.

산책로의 끝, 동탄 최북단인 기흥동탄IC 인근에 도착한 게 얼마만이었던가.
수년 전 자전거를 이용했을 때엔 자주 들렀던 곳이었는데 몇 년 동안 자전거를 방치한 채 도보만 이용한 뒤 5년 동안 처음 아니었나 싶다.
여기서 잠시 쉬는 동안 도보로 온 사람은 딱 1명, 그 외엔 전부 자전거를 타고 이 지점을 반환하여 돌아갔다.
그만큼 걸어서 오기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는데 괜한 감회가 작동했는지 10여분 가량 쉬면서 갈증도 해소하고, 계속해서 틀어놓은 음악도 잠시 쉬도록 했다.

 

일상_20190407

동네에 태동하는 봄소식들.활동하기 적당한 날씨에 산책을 하면서 봄 꽃 위주로 둘러 본다. 엥간히도 성격 급했던 철쭉은 흔히 볼 수 있는 조경의 구성원 중 하나다.집을 나서 퍼렇던 영산홍 무

meta-roid.tistory.com

산책로 끝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 이번엔 자전거길로 걷기 시작했는데 근래 산책로 옆에 자주 볼 수 있는 공조팝이 여전한 절정을 과시했다.

가로수에 종종 보이는 이끼 같은 이건 뭘까?
마치 얼룩 같은데 자세히 보면 이 또한 나무에서 서식하는 또 다른 생명이었다.

자전거길로 걷다 다시 도보길로 넘어온 이유는 바로 오감과 기분을 극대로 전환시키며 걷는 내내 흐뭇하게 만든 아까시향 때문.

꽃에도 이런 표현이 적절하려나?
정말 탐스럽게도 열렸다.

길가 봄의 징표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런 봄의 징표들을 만나는 동안 어느새 인공 여울 데크 쉼터에 닿았다.

그 쉼터 위를 넘어 다시 도보길에서 자전거길로 넘어와 추억처럼 서린 석재 타일길의 흔적도 찾았다.
조만간 무성한 풀에 이 흔적도 가려지겠지?

자전거길에 길게 늘어선 벚나무 터널이 인상적인 곳이라 여기에 잠시 머물러 감상했다.

동탄원천로의 열림교 아래를 지나면 작은 꽃밭이 있어 걸음을 멈췄다.
시민이 가꾼 화단이란다.

정말 작은 땅을 개간하여 꽃밭을 만들었는데 내용면에서 정말 알차고 충실할 정도로 여러 봄꽃들이 만개했다.

열림교를 넘어 동탄여울공원으로 걸음을 급선회했다.
아직도 충분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피로감이 거의 느껴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길로 뻗어 나온 탐스런 아까시꽃도 만날 수 있었다.

동탄여울공원의 큰 어르신, 느티나무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느티나무를 반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면서 위치와 보는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달리 보이는 나무의 멋진 자태를 담았다.
어떤 위치에서 가장 멋지냐는 질문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란 유사한 질문 같지 않은 질문처럼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위선적인 게 바로 이 나무 아닌가 싶다.

느티나무 옆엔 새로 조성된 테마 공간이 있었고, 국제작가정원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전체적으로 작은 잔디 광장과 야외무대를 연상시켰다.

정원 가장자리에는 이렇게 가을을 대표하는 적단풍의 붉은 결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제작가정원을 바로 지나면 너른 동탄화목원이 바턴을 이어받았다.

지형을 십분 활용한 입체적인 정원인 동탄화목원은 마치 바빌론정원처럼 고대 정원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부조화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엇갈리는 계단과 그 길을 중심으로 좌우 펼쳐지는 산책로의 비대칭, 꺾이고 틀어지는 자리에 작은 쉼터들.
그런 부조화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고, 도리어 안정감을 잡아주는 큰 틀 내에서 아무렇게나 흩트린 것처럼 보임으로써 뻔히 예상되는 지루함을 벗어나 안정적이면서도 동시에 위치와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여 기대감을 고취시켰다.
거기에 하늘도 도우사 정갈한 정원의 지붕이 됨으로써 그 지붕 아래 정원의 원색을 더욱 증폭시켰다.

동탄화목원은 철저하게 고도차를 활용하여 입체적으로 배치되어 빌딩숲을 등진 채 거대한 하나의 자연 녹지인 반석산과 오산천으로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봄을 맞아 여러 다양한 식물종들이 새로이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고 모든 걸 갈아엎어 무조건 새롭게 하기보단 다년생 식물의 경우 방치를 하여 마치 한정된 공간에 빼곡히 구겨 넣는 패착은 없었다.

변화무쌍한 습지원은 각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대조되는 곳이었다.

여울공원에서 육교 하나를 사이에 둔 자라뫼공원으로 넘어오자 단아한 봄이 잔잔하게 깔려있었다.

꽃과 작은 신록을 헤쳐 미로 같은 곡선의 길 끝엔 그런 봄의 정취를 작게 압축한 쉼터 겸 전망대가 있었고, 살짝 높은 지대에 기대어 선 덕분에 사방 흠뻑 젖은 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도심의 길로 통했고, 육교 아래 그늘에서 청량한 바람을 쐬며 모처럼 기나긴 도보 여행의 땀방울을 털어냈다.

뽀얀 눈이 내린 것처럼 이팝나무는 화사한 자태를 드러냈다.

아파트 정원에 턱시도 냥이가 나긋하게 오가던 중 까치와 만나 한바탕 신명 난 장난을 치며 누구 하나 더할 것 없이 익살맞은 귀염을 들러냈는데 휴일에 오롯이 보이는 여유의 정취 아니겠나.

그 모습을 잠시 넋 놓고 지켜보다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집으로 돌아왔다.

반응형

'일상에 대한 넋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 산소_20240503  (0) 2024.07.09
냥이_20240502  (0) 2024.07.09
베란다의 봄 야생화_20240501  (0) 2024.07.07
냥이_20240429  (0) 2024.07.07
냥이_20240430  (0) 2024.07.06